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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청 기림풍운(棋林風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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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림풍운(棋林風雲)12> 제27회 삼성화재배 - 난도참장(亂刀斬將)
2022-12-10 오후 4:13 조회 4510추천 6   프린트|스크랩
기림풍운(棋林風雲)12> 제27회 삼성화재배 - 난도참장(亂刀斬將)
- 8강전 신진서 대 박정환

  1

  2002년 27회 삼성배 8강전 대진표는 아래와 같다.


  

<2020년 남해슈퍼매치 - 오로바둑에서>

 애기가들이 미리 보는 결승전이라고 아쉬워하면서도(양웅이 결승전에서 만나길 기대하는 마음에) 초미의 관심을 갖고 지켜본 일국이다.
  박정환과 신진서의 대결은 성사되는 순간, 바로 관심의 대상이 된다.
  한국 랭킹 1, 2위의 결전이기도 하지만 긴 승부를 해오면서 많은 사연이 쌓인 까닭이다.
  통산 전적에서 신진서가 31승 23패로 앞서고 있지만, 21년 삼성배 결승전에서 박정환은 신진서의 벽력같은 공격에 맞서 담대하게 싸워 승리했다.
  신진서로서는 가슴 아픈 패퇴였다.
  박정환과 신진서는 국내외에서 용호상박의 긴 승부를 이어오고 있다.
  싸우면서 아픔을 주고, 또 받는다.
  이기고 지면서 슬픔을 받고, 또 준다.
  공통점도 있다. 
  승부 앞에서 둘 다 외롭다는 것이다.
  승부란 아프고도, 슬프고도, 더더욱 외로운 것이다.
  사는 게 다 그런 거다.
  승부의 세계는 그것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날 뿐이다.

  


  2020년 10월 1일 팬들에게 맨살 보이듯 공개된 슈퍼매치 남해 7번기 7연패의 고통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겠는가!
  박정환은 승부사로서 거의 종착점까지 갔었다.
  남해 7번기는 매우 격렬하면서도, 위험한 게임이었다.
  4패를 하고도, 3판을 더 둘 수밖에 없도록 규정이 정해져 있었다.
  좋게 보면 회복할 기회를 주는 조건일 수도 있지만, 나쁘게 보면 상처 위에 칼질에 더 하도록 만든 혹독한 규정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최악의 경우가 7연패인데, 당하는 기사는 심리적으로 거의 파탄이 날 지경에 이른다.
  우리는 그 잔혹한 광경을 목격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박정환의 심경은 어떠했을까?
  2021년 11월 3일 제26회 삼성배 우승 후 가진 박정환의 인터뷰에 그 답이 들어있다.
 
 - 쏘팔코사놀배, 용성전, 남해에서 열린 7번기까지 신진서 선수에게 계속 지면서 멘탈이 흔들릴 법했는데 내상을 거의 입지 않은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세계대회에서 한국선수들의 성적이 좋은 것은 장고 기전이 늘고 그 실전 기회가 늘어난 덕분이라고 본다.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능력도 한국선수가 중국선수보다 더 좋은 것 같다. 작년엔 신진서 선수에게 정말 많이 졌는데 그중 아무래도 가장 힘들었을 때는 남해에서 7번기를 벌였을 때 0-7로 진 것이다. 4국부터는 더 힘들었다. 그 7번기가 내가 성장한 계기가 된 것 같다.”

    
  <2020년 남해슈퍼매치 - 오로바둑에서>

  박정환은 2021년 11월 1일 – 3일 두어진 삼성배 결승전에서 신진서를 2 대 1로 꺾고 설원(雪冤), 우승을 했다.
  박정환이 무서운 것은 죽음의 절망을 ‘성장의 계기’로 삼아 깊이를 알 수 없는 저 어둠의 심연에서 힘차게 날아오를 수 있는 자기 단련의 의지와 신념을 갖고 있다는 점이 아니겠는가!
  박정환은 불사조의 진면목을 보여줬다.
  2021년 박정환의 삼성배 우승은 참으로 장렬했다.
  바둑 중계를 통해 TV에서 보는 박정환은 온유하고, 과묵하며, 매우 점잖아 보인다.
  박정환은 2020년을 전후해서 여러 해에 걸쳐 한국 바둑의 위상을 지키고자 중국 기사들에 맞서서 고군분투했다.
  그리고 큰 성과를 거두었다.
  1993년 생이니까 이제 30세가 되었다.
  기사로서 완숙기에 접어들었지만 후배들의 약진은 맹렬하기 짝이 없다.
  오늘 신진서와 제27회 삼성배 4강 진출을 놓고 맞붙는다.
  신진서 대 박정환의 대국에서 2018, 19년 무렵에는 신진서가 거의 판 맛을 못 봤다고 할 정도로 밀렸지만, 2020년으로 들어서면서 신진서가 거의 일방적인 우세를 보이고 있다. 
  2021년 11월 박정환이 삼성배에서 우승, 전환의 계기로 삼았지만, 2021년 12월 40기 KBS 바둑왕전에서 패퇴하면서 주춤한다.
  박정환은 신진서에게 2019년 5승 무패, 2020년 2승 14패,  2021년 5승 10패, 2022년 1승 3패를 기록하고 있다.
  2020년을 기점으로 승부가 신진서 쪽으로 기울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두 사람이 승부를 할 기회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두 사람이 정상에서 만나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이것은 강자들의 저변이 확대되고 있고, 박정환이 힘겨운 승부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2
  기사는 산을 만나면 무조건 넘어야 하고, 물을 만나면 무조건 건너야 한다.
  기림에서는 고산준령(高山峻嶺)과 같고, 장강대해(長江大海)와 같은 강적과의 승부를 피할 수가 없다.
  못 넘으면 스러지고, 못 건너면 떠내려가 버린다.
  승부의 세계인 기림(棋林)에는 단순, 명쾌한 생존의 법칙이 지배한다.
  약육강식(弱肉强食)!
  적자생존(適者生存)!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에서 ‘이기적’이라는 말을 빌려 기사의 이름 앞에 붙이면 기림에서 행해지는 모든 일들의 진실과 실체가 확연히 드러난다.
  즉 바둑에 관한 한 ‘이기적인 신진서’가 수많은 의문의 정답이 된다.
  기사의 ‘DNA’는 오직 승리를 지향하도록 선천적으로 프로그램이 되어 있는 것이다.
  승리를 못하면 기사의 ‘DNA’는 자연스럽게 소멸의 길을 걷게 된다.
  기사는 운명적으로 이겨야지만 살아남을 수 있게 되어있다.
  기림은 그런 곳이다.
  그래서 승률이 80%를 넘어도 부족한 것이다.
  승리에 허기져서 맹렬하게 승부를 찾는 존재가 진정한 기사라 할 것이다.
  승부는 기사의 숙명이다.
  신진서는 배고픈 기사다.
  나는 박정환이 더욱 굶주린 야수이길 희망한다.
  배를 채우려면 무조건 먹어야 한다.
  박정환은 더 많이 이겨야 한다.


  사실 도킨스의 이론은 우리에게 그리 편하지가 않다.
  ‘이기적 유전자’의 주인공은 인간이 아니다.
  바로 ‘유전자 – DNA’ 자체다. 
  이 이론에서 ‘유전자를 가진 모든 생명체의 주인’은 유전자다.
  생명은 ‘유전자의 이익(유전자를 후세에 남기는(전하는) 것)’을 달성하기 위해서 유전자에 의해 복제, 창조된 ‘생존의 기계’, 즉 도구일 뿐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인간도 ‘이기적인 유전자’를 존속시키기 위해 프로그램된 기계요, 도구에 불과한 것이 되고 만다.
  유전자는 무섭다.
  유전자를 남기기 위해 생명체를 빌려 쓰는 까닭이다.
  내가 그러한 유전자에게 묻고 싶은 것있다.
  그것은 ‘유전자가 유전자를 남기려는 것’의 ‘의미와 가치’다.
  나는 여기서 ‘유전자를 전하는 것’이 그렇게 ‘절대적인 목적일 수 있을까?’하는 의문을 품게 된다.
  어찌 됐든 기림에서 남는 것은 오직 ‘승리의 결과’ 뿐이다.
  기사의 생명수는 바로 승리인 것이다.

  3
  현실의 인간관계가 따듯하고 친밀하다고 해도, 승부에 임하게 되면 기림의 구조상 비정하게 바뀐다.
  승부사는 절제와 자제력으로 이 모순된 딜레마(dilemma)를 극복해야 한다.
  신진서와 박정환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바둑은 은밀하다.
  이 모든 것들을, 즉 인간의 정과 한, 애증, 은원, 시비, 갈등, 환희, 비애 등을 19로 판 위에 숨기고 있기 때문이다.
  박정환 흑, 신진서 백번으로 바둑이 시작된다.
  바둑은 상대의 의도와 자신의 의도가 충돌하면서 일파가 천파만파를 불러일으키는 식으로 전개된다.
  승부의 균형과 평형은 순식간에 깨질 수밖에 없다.
  기사의 수 읽기와 선택, 그리고 판단에 따라 승부의 방향이 결정된다.
  두 개의 의지, 욕망, 이성과 힘이 부딪히면서 불꽃처럼, 유리조각처럼 흩어지고, 부서지는 불균형과 파탄의 드라마가 바로 우리가 보는 승부인 것이다.
  신진서는 백66(△)으로 큰 모양을 갖춘다.


  좌변에서 중앙으로 거대한 세력이 형성된다.
  그런데 이 모양이 허허실실 미묘하다.
  지켰다고 하기엔 너무 넓어 허하고, 쳐들어가기엔 마땅한 지점을 선택하기 참으로 애매하다. 
  백66엔 신진서의 지모와 배짱이 들어 있다.
  박정환에게 자신이 이미 모든 침입을 예견하고 있고, 다 대응할 자신이 있다면서 큰 소리를 치고 있는 것이다.
  박정환에게 들어올 수 있다면, 얼마든지 들어와 보라고 신호를 보낸 것이다.
  이제 박정환의 선택이 이 승부의 분기점이 될 것이다.
  얕으면 승부에서 밀리고, 깊으면 위험해진다.
  얕지도, 깊지도 않게 승부의 흐름을 유리하게 바꿀 수 있는 요처를 선택해야 한다.
  박정환은 천원에서 좌변 한 줄 아래 쪽으로 흑67을 내려놓는다.
  신진서의 큰 세력권 안으로 뛰어든 이 수가 앞으로의 승부를 결정짓게 된다.
  그런데 박정환이 숙고 끝에 놓은 흑67(▲)은 승률을 47%에서 40%로 떨어뜨린다.


  신진서는 이 수에 대해 다시 좌파변 한 칸 아래 쪽으로 응수, 방어를 한다.
  좌변을 지키면서 반격의 기회를 노린다.
  박정환은 흑 69로 다시 한 칸 더 백 세력 쪽으로 들어간다.
  신진서가 백70으로 흑의 한 칸 뛴 중앙을 들여다 보면서 응수를 타진한다.
  박정환이 흑71로 밀어가고, 신진서는 백72로 한 칸 띄어 좌변을 방어한다.
  이후 흑73(▲)까지 흑백의 모양이 갖추어지고 세부 경계선을 결정하는 힘겨루기로 들어간다.


  4
  박정환은 흑73으로 하변 백22를 공격하면서 승기를 잡고자 한다.
  신진서는 흑73을 외면하고 백74로 흑진을 향해 진격한다.
  이후 박정환의 흑85 이후 흑진에서 파란이 일어난다.
  읽어도 읽어도 그 끝을 알 수 없는 수읽기의 바다가 펼쳐진다.
  신진서가 공격의 주도권을 잡고, 우하변 박정환의 큰 모양 안에서 수를 내기 위해 좌충우돌, 천변만화의 노림수를 던지며 돌진해 들어간다.
  박정환으로 보면 상황이 매우 불길하다.
  흑 모양이 크고 단단해 보여도 많은 허점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신진서는 도검을 마음 껏 휘둘러 잘라내고, 찌르고, 베어나간다.
  현란하다.
  여기서 물러났다가는 저기로 쳐들어가면서 종횡무진, 자유자재로 용병술을 펼친다.
  박정환도 단 한 치의 물러섬 없이 강렬하게 응수한다.
  그런데 신진서의 백92 끼움에 대한 박정환의 흑93(▲)이 문제였다.
  강력한 차단이었지만, 무리한 수였다.


  박정환의 응대에 실수가 나오면서 진영이 흐뜨러지고, 힘의 균형이 와르르 무너져내린다.
  박정환이 혼란에 빠진다.
  이제 백은 침투한 돌이 죽더라도 변방에서 작은 수만 내면 이기게 된다.
  흑93 시점에서 백의 승률은 92.0%에 이른다.



  승률의 흐름 도표를 보면 신진서의 백58 시점에서 흑이 50% 대로 회복했다가, 흑63을 두면서 43.5%로 떨어진 이후 회복을 못하고 흑93에 이르면서 8%대까지 추락하게 된다.
  148수 끝, 백 불계승. 
  
  승부를 갈라가는 신진서의 표독함이 상대의 폐부를 찌른 한 판이었다.
  상대가 약점, 허점을 보이면, 그 기회를 날카롭게 포착해서 전광석화처럼 발톱을 쑤셔박는다.
  한 번 얽히면, 워낙 수읽기가 깊고 정교해서 벗어날 수가 없다.
  상대는 눈을 뜨고, ‘어어’ 하는 사이에 당하고 만다.
  ‘이기적인 유전자’의 주인답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신진서에 대한 박정환의 평을 본다.
  2021년 11월 삼성배 우승 후 가진 박정환의 인터뷰 중 한 대목이다.

  - 어떤 점이 부족했고, 어떤 점에서 성장했다고 할 수 있을까?

  “신진서 선수와 대국하면 다른 선수와 대국할 때에 비해 내 약점이 잘 드러난다. 실수하면 바로 치고 들어오기 때문이다. 신진서 선수의 실력이 워낙 강한 까닭이다.”
  
  이 바둑에서 박정환은 스스로 잘 알고 있으면서도 신진서에게 보여선 안 될 약점, 허점을 보였다.
  바로 그 순간 바둑이 끝나버리고 말았다.  
  박정환이 권토중래(捲土重來), 더 강해진 모습으로 다시 돌아오길 기대한다.

예고> 기림풍운(棋林風雲)13> 제27회 삼성화재배 - 난도참장(亂刀斬將)
         - 8강전 - 최정 대 양딩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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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오디 |  2022-12-12 오전 9:36:57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재밋게 잘 읽었습니다 ^^*  
이한청 |  2022-12-12 오전 11:35:4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아직 글자 폰트, 칼라, 줄 간격, 기보 수순 등 수정, 교정이 여의치 않은 부분이 있어 보기에 불
편합니다. 수정해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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