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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청 기림풍운(棋林風雲)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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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림풍운(棋林風雲)11> 제27회 삼성화재배 - 난도참장(亂刀斬將)
2022-11-27 오후 6:55 조회 4462추천 6   프린트|스크랩

기림풍운(棋林風雲)11> 제27회 삼성화재배 - 난도참장(亂刀斬將)
-16강전 신진서 대 판팅위



1
2022 삼성배 32강전 박정환과 커제의 바둑을 소개하지 못해 마음이 불편하다.
16강전에 한국 7명, 중국 5명, 일본 3명, 대만 1명의 기사가 진출한다.
이 컬럼은 대회 후기(後記)라서 우승자인 신진서와 최정을 중심으로 작성되었다.
독자 제현의 이해를 부탁드린다.
16강 대진표를 보면 국가별로 안배가 잘 되어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신진서 상대인 판팅위는 32강전에서 강동윤을 이기고 16강전에 진출한다.
판팅위(廷钰玉)는 1996년 상하이 출생으로 12세에 입단했다.
2013년 제7회 잉씨배 세계바둑프로선수권대회에서 우승(상대 박정환 3:1 승)한다.
불과 16세 7개월로 중국 최연소 세계챔피언이 되었고, 바로 세계 최연소 9단으로 승단한다.
여담인데 이 기록과 32강전의 주인공인 미위팅의 몽합배 우승 기록은 매우 유사하다.
미위팅은 2013.12.06 제1회 몽백합배 우승(대 구리 3-1) 후 17세 4단에서 단숨에 9단으로 승단했다.
2013년에 중국 바둑은 2명의 기린아(麒麟兒)를 얻었다.
실로 기이(奇異)하다 하겠다.
2016년 제18회 농심배 세계바둑단체선수권대회 7연승 달성.
2018년 제20회 농심배 세계바둑단체선수권대회 두 번째, 선봉 7연승 달성.
2회에 걸친 농심배 7연승 기록은 판팅위의 이력 중 가장 빛나는 부문이 될 것이다.
판팅위에 대한 이야기 중에 ‘판팅위는 나이는 어리지만 상당히 노련해 보였고, 형세의 우열을 막론하고 무색했으며, 말수가 적어서 패배하거나, 이기더라도 두서너 마디를 할 뿐이었다.’라는 말은 기억해 둘만 하다.
판팅위는 바둑 기풍이 온건하여 '소년 석불(少年石佛)'이라는 미칭으로 불렸으며, 판팅위 스스로도 자신에 대해 ‘소언과언(少言寡語-말이 드물며), 개성침정(個性沈靜-성격이 침착, 평정함)’하다는 말을 남기고 있다.
판팅위같은 기사는 상대하기가 참으로 까다롭다.
판탕위는 성정이 온유하면서도, 심기가 깊고,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사람에 속한다.
노련, 무(안)색, 과묵, 침착, 평정한 사람을 어떻게 상대한단 말인가?
방법은 더 참고, 더더 참으며, 더 견디고, 더더 견뎌내는 수밖에 없다.
말 그대로 먼저 입을 여는 놈이 지는 거고, 먼저 움직이는 놈이 지는 거다.
저런 사람 앞에서는 돌덩어리가 되는 수밖에 없다.
견디고, 더 견디고, 더더 견뎌내야 이길 수 있는 까닭이다.
그렇다면 신진서는 더 더욱 무서운 사람이다.
판팅위를 상대로 5승 1패로 앞서 있으니 하는 말이다.
하지만 일류기사에게 지나간 전적은 무의미하다.
전투는 변화가 많고, 상황에 따라 늘 새롭게 전개되기 때문이다.
2022년 9월 현재 판팅위는 커제, 리쉬안하오에 이어 중국서열 3위에 랭크되어 있는 초강자다.
기력이 약동하고 있는, 이 시대 최고 수준의 기사 중 한 사람인 것이다.



2
삼성배 결승으로 가는 길은 멀고 험하다.
첩첩산중이다.
신진서로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2020년 커제와의 대국은 잊혀지지가 않는다.
경솔했을지 모르나 억울함도 있었다.
의도적이지 않은, 지극히 단순한 마우스와 커서의 미스로 인해 메이저급 세계대회의 승부가 결정된다면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 아니었겠는가!
지나간 이야기로 끝났다고 생각할진 모르겠으나 나는 여기서 의도적, 고의적이 아닌 이런 실수에 대해선 심판진, 혹은 주최 측의 적극적인 관여, 판단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기계 조작의 미스는 바둑의 영역이 아니니까.
마땅히 합당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수정되어야 한다.
2022년 2월 농심배에서는 ‘10초, 그리고 11초’ 사이에 놓은 착점이 실격인지, 아닌지에 대한 논란과 판정번복이 있었다. 당시 상대는 미위팅이었다. 형세는 미위팅이 유리했다.
‘재대결’로 처리됐지만 지금까지도 미심쩍은 점이 앙금처럼 남아있다.
- 이런 일은 항상 중국에게 유리하게 처리된다.
2021년 삼성배 결승에서 신진서는 박정환에게 선승 후 2연패로 물러섰다.
신진서는 좀 더 적극적으로 화끈하게 싸웠어야 했다. 크나큰 미련이 남는 대전이었다.
패배 후 패배를 수용하는 신진서의 자세는 처절하다.
자성의 기나긴 밤을 지새워야 한다. 현실보다 생생한 자책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렇게 지쳐서 쓰러지고, 쓰러져야, 그래서 모든 걸 다 비워야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일 년 후 삼성배 세 번째 도정에 오른다.
이번에 실패하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
기림(棋林)에서는 인지로는 예측할 수 없는 변화무쌍한 풍운(風雲)이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나는 까닭이다.
신진서는 자신이 광풍노도(狂風怒濤)와 같기에 이런 흐름을 누구보다도 예민하게 인식한다.
그래서 필사적인 자세로 승부에 임한다.
- 승리 후 인터뷰에서 신진서는 ‘실패하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 지도 모른다’는 동일한 의미의 말을 하고 있다.

위대한 승부사들의 공통된 기질 중 가장 강렬한 것은 바로 ‘승부에 임해서는 인정사정을 두지 않는다’는 점이다.
승리를 위해서는 ‘냉혹, 비정, 무자비하게 도(刀)를 내려찍어 버린다.’는 것이다.
마치 사츠마(薩摩)의 지겐류(示現流)와 같이.
전해 오는 이야기에 ‘사츠마의 지겐류’는 수련할 때 하루에 일만 도를 내려친다고 하는데, 빠르고 강해서 목검에서 연기가 나올 정도라고 한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찍어버리는 단 일격이 지겐류의 정수(精髓)요, 비의(秘義)다.
실전에서는 이 일격으로 생사, 승패가 가려진다.
방어하는 상대의 도검을 두 토막을 내고, 여력으로 몸뚱어리까지 두 동강이를 내버리는 단순, 명쾌한 일격필살의 도법인 것이다.
그런데 이 도법이 상상외로 실전적이고, 효과적이어서 역사적으로 수많은 승리를 거뒀다고 한다.
칼과 사람은 물론이고, 아예 말허리까지 잘라버렸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무시무시하고 무자비한 단 일초의 도법이 지상 최고의 도법이 된 것이다.
신진서의 바둑에서는 이와 같이 예민하고, 예리하고, 막강하며 무지막지한 수가 심심찮게 등장한다.



불꽃의 승부사 사카다 에이오(坂田榮男)는 별호가 면도날(面刀)이다.
사카다의 바둑은 일기(一騎)로 첩첩산중같은 적진을 뚫고 들어가서 적장의 가슴에 창을 꽂고 활로를 열어나가는 냉혹, 처절, 치열한 전투 중심의 바둑이 많다.
그래서 ‘타개의 사카다’로 불리기도 했다.
사카다 바둑의 핵심은 가공할 수읽기와 예리한 감각을 바탕으로 강렬한 타개와 현란한 묘수를 구사하여 승부를 결정짓는 ‘강인하고 강력한 힘’에 있다.
사카다는 승부를 할 때 불꽃처럼 활활 타올라 찬란한 빛과 화염을 폭사하며 폭발해버린다. 그리고 눈부신 섬광이 되어 허공으로 순식간에 사라져버린다.
찰나지간에 승부를 끝내버리는 것이다.
남는 것은 전장을 뒤덮은 선혈뿐이다.
그는 승부에서 관용이란 게 없었다.
그는 19로 바둑판 위에서 잔인무도했다.
항상 뒤가 없는 치열한 바둑을 두었다.
그로 인해 많은 상대가 상처를 입었다.
그런데 50년 후반에서 60년대 초 일본 기림의 최강자였던 그도 1963년 23세의 임해봉에게 명인위를 넘기면서 ‘바둑은 슬픈 드라마’라는 비애(悲哀)가 그득한 말을 남겼다.
그는 한 판 한 판의 바둑을 벼랑 끝에서 전개되는, 뒤가 없는 오직 한 번 뿐인 승부라고 생각하고, 가혹할 정도로 비정하게 상대를 몰아부쳤고, 냉혹하게 결판을 내버렸다.
그의 승리와 영광과 위업은 핏물에 젖은 칼날 위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나는 신진서의 바둑을 관전하면서 사카다의 이러한 기질과 유사한 부분을 읽어내게 된다.
이것은 나만이 즐기는 신진서 바둑의 맛이요, 멋이요, 재미이기도 한데 기림의 호걸들이 동의해 줄지 모르겠다.


3


판팅위는 중국 바둑의 영웅이다.
농심배에서 그의 활약은 단연 돋보였다.
삼국지 최고의 전신인 관우의 오관돌파 참육장을 상회하는 칠관돌파를 무려 2회나 달성했다.
중국 바둑팬들은 그의 승리에 열광했다.
농심배 자체가 국가대항전에다가, 연승전이어서 매우 드라마틱하게 전개된다.
판팅위는 농심배 최고의 스타 중 한 사람으로 조금도 손색이 없었다.
판팅위는 전술한 대로 조용하고, 고요하고, 유유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대하기가 조심스럽다.
바둑의 흐름도 그의 성격을 따르는 까닭이다.
진폭이 없이, 마치 물 흐르듯 잠잠히 흐르면서 승리의 순간이 오길 기다렸다가 번개처럼 낚아 채버린다.
상대하는 기사마다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은인자중(隱忍自重), 길게 참고 견디며 한없이 조심하는 사람을 상대하기란 쉽지가 않은 법이다.
노(怒)하고, 격(擊)하면 도리어 상대에게 휘말려 들어 패망의 길을 걷게 된다.
신진서는 어려운 상대를 만났다.
판팅위는 10월 현재 세계 랭킹 10위, 중국 랭킹 3위에 랭크되어 있다.
과거 전적은 신진서에게 밀리지만 언제든지 만회할 수 있는 실력이 있는 기사다.
16강은 두 기사 모두에게 어려운 관문임이 틀림없었다.
그런데 두 사람의 바둑은 마치 바람이 불 듯 불어와서는, 물처럼 유유히 흘러가버렸다.

신진서 백, 판팅위 흑.
이 바둑은 전체를 보면 앞에서 말한 그대로 바람이 부는 대로 불어왔다가, 물이 흐르는 대로 흘러 가버려서 팬들이 기대하는 거친 돌풍이나, 사나운 격랑같은 걸 찾을 수가 없다.
판팅위는 그냥 가만히, 묵묵히, 뒷짐을 짚고 신진서 한 걸음 뒤에서 따라 왔을 뿐이다.



백4 이후 흑은 딱 한 번, 승률 50%대를 기록한다.
즉 신진서가 백28로 우상귀 흑1 소목 좌측에 붙였을 때, 저울추가 한 번 흔들린 것이다.
신진서의 백28은 극히 사소한 완착이었다.
그로 인해 흑의 승률이 46.2%에서 52%로 변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흑의 우세는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다시 판팅위가 흑29로 받자 승률이 바로 44%로 떨어져버렸다.
흑29 수 이후 판팅위의 승률은 도표에서 보이는 그대로 한 번도 50%를 넘지 못했다.
흑59에는 승률이 더욱 하락, 21.3%를 기록했다.
흑71에는 17.7%, 10% 대로 떨어졌다.
그 이후에는 특별한 반전이 없었다.
백264수 끝. 백 1.5집 승으로 바둑이 마무리됐다.

이 바둑이 미묘함은 집 차이에 있다.
승률 그래프 상으로는 판팅위가 형편없이 밀린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적인 내용에서는 조금 다른 점이 있다.
즉, 승률의 큰 차이에 비해 실제적인 집의 차이는 매우 미세했던 것이다.
일류들의 차이는 종이 한 장에 불과하다. 아니 그보다 더 작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초고수의 영역에선 그 극소(極小), 그 극미(極微)한 차이가 바로 난공불락, 극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클 수도 있는 점이다.
신진서와 판팅위의 승부 감각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예민하고, 섬세하며, 치밀하다.
우리가 그것을 식별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일류 승부사들은 명확하게 감각하고, 인식하면서 바둑을 둔다.
작은 우세를 끝까지 지켜 이기는 바둑이 있고, 조금 뒤쳐지지만 꿋꿋이 따라가서 뒤집는 바둑도 있을 것이다.
기사들도 사람이기에 착오도 있고, 실수도 있어서 승부가 요동치기 마련이다.
또 그런 점이 관전자의 재미와 흥미를 배가시키는 요소가 되는 것도 사실이다.
일사불란하게 마무리 될 것같은 승부가 어느 한 순간 광란작열하는 폭풍과 폭우를 수반한 뇌성벽력 소리에 훌러덩 뒤집어져 버리는 것을 얼마나 많이 지켜보아 왔던가!
승부는 사람의 손바닥을 뒤집는 것처럼 번운복우(翻雲覆雨)하는 까닭에 예측이 불가하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의 한 집 반은 너무나 커서 뒤집기도, 뒤집히기도 쉽지가 않다.
기회를 노리는 판팅위의 끈질김, 버팀, 물고 늘어짐이 대단하지만, 신진서의 지킴도 그에 못지 않게 지독하다 할 정도로 견고했다.
관전 내내 둘 다 대단하다는 생각을 지을 수가 없었다.
바둑은 겉모습과 다르게 마지막 한 수까지 팽팽했다.
당겨진 현(絃)은 어느 순간이라도 끊어질 수 있었다.
긴장과 초조가 판 위로 유유(悠悠)히 맴돌고 있었다.
그 유유함이 바로 이 바둑의 맛이요, 매력인 것이다.
이 바둑에서 한가로움 속에 숨겨진 분주함을 보고, 느긋함 속에 담긴 긴박감을 느끼고, 고요함 속에 잠긴 사자후(獅子吼)를 들을 수 있었다면 당신은 이 바둑을 제대로 즐긴 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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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 신진서의 멋, 그리고 최정의 바람

기림풍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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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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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강전 최정 대 양딩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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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hsong |  2022-11-28 오전 10:05:48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재밋게 잘읽었습니다.
감사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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