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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 달의금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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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도로 겨울 1
2024-04-14 오후 3:11 조회 3691추천 11   프린트|스크랩

며칠 뒤 정애의 의견을 들은 박진수는 무척 당황했다.

“꼭 그렇게 하셔야만 하겠습니까.”

비장함에 더해 절망감마저 드러내며 그가 물었다.

“,,,”

그녀는 말없이 앉아 있었다.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앉아있던 그가 자세를 고쳐 잡았다.

“차관님이나 제가 안가로 모시려던 이유는 보안상의 문제였습니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드러나게 되는 사생활과 가십성 소문들로부터 차관님과 사모님을 보호해드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런 선택을 하셨다면 사모님께서 최대한 주의를 해주시는 것밖에 방법이 없어 보입니다. 따님이 마음에 걸려서 그러시는 것을 누가 탓하겠습니까. 제가 한 가지 제안을 다시 드리겠습니다. 현재 거주지에서 생활하시되 하시던 일은 접어주십시오. 그 대신 매일 안가로 오셔서 일하시던 곳에서의 시간만큼 계셔주시는 겁니다. 차관님이 낮 동안에 가끔 찾아오실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퇴근하시듯 집으로 돌아가시는 겁니다.”

“제가 꼭 그렇게까지 하면서 차관님과 관계를 지속해야만 하나요?”

그의 표정에 안타까움이 흘렀다.

“사모님께서는 권력의 속성과 무서움을 잘 모르십니다.”

그가 하는 말의 의미를 알 길이 없는 그녀는 그냥 찻잔을 내려 보고만 있었다. 잠시 후 그는 긴 한숨과 함께 자신이 권력 주변에서 생활하면서 보고 들은, 자신이 정의하는 권력에 대해 소상하게 설명을 시작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는 몹시 진지하면서도 간절하게 입가에 백태까지 만들어가며 그녀를 이해시키고자 애쓰고 있었다.

한참을 가만히 듣고만 있던 그녀가 한숨을 내쉬며 나직하게 말했다.

“박비서님이 제게 이해시키려 애쓰는 의미는 제게는 이미 선택권이 없다는 것이네요.”

“죄송합니다만, 사모님은 이제야 지금의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셨습니다. 권력자들은 자신들이 일반인들 보다 상위에 있는 존재로 여깁니다. 재벌가의 사람들이 직원이나 아랫사람을 직원이 아닌, 부하나 종쯤으로 대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권력자들은 자신들이 오히려 더 높은 세상에서 사는 것처럼 여깁니다. 기업가나 재벌도 그들에게는 마치 낮은 계급의 사람들로 치부되고는 하니까요.”

그가 자신의 긴 이야기를 요약하듯 말 하자 정애는 마음이 답답해졌다. 비록 사상이나 체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고 살아왔지만 모두들 자유민주주의라고 이야기 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고 여겼다. 이런 세상에서 권력자나 재벌가의 사람들은 서민을 하층계급이라고 생각하고 대한다는 그의 말은 소화를 시키지 못하고 부글거리고 있는 뱃속만큼이나 불편했다. 그렇지만 박비서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와 의미는 충분하게 이해되었다.

‘기왕에 이렇게 되어 버린 일 마음에는 들지 않는 방법이지만, 나도 김차관의 권력을 이용해 호가호위 하듯이 권력자들의 삶을 누려볼 수 있다는 의미다. 비록 옛날 고관대작의 첩으로 들어가 호사를 누리며 살던 여인들과 다를 바 없는 구차스런 삶이지만!’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눈치 빠른 박비서에게 그녀의 마음속 갈등이 감지되었다. 특별하지도 않고 한편으로 선해 보이기까지 한 이 여자의 앞날이 걱정스러웠지만, 자신의 임무는 상사의 의중대로 일이 처리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생각을 정리 할 시간이 필요하실 것입니다. 내일 이곳에서 다시 뵙죠.”

 

날이 추워지자 휴장하는 골프장이 점점 늘어났다. 여름은 혹독하게 덥고 겨울은 혹독하게 추운 환경의 나라. 어린 시절에는 뚜렷한 4계절을 가진 아름다운 나라라고 배우며 자랐지만, 어른이 되어보니 서민들에게는 난방비와 냉방비까지 함께 치러야 하는 열악한 나라였다. 사람에게 이런 곳이니 생물들에게는 더 힘겨운 일이었다. 아무리 비용을 줄이려고 페어웨이의 잔디를 중지로 조성했지만, 늦가을 들어 누렇게 갈변하던 잔디들은 겨울이 오자 눈까지 푹 뒤집어 써야 했다. 추운 날씨에도 간혹 골퍼들이 라운딩을 원하지만, 그들의 운동을 위해 사우나 물 데우고 건물 난방을 하고 전등을 밝히며 직원들을 근무시키기는 너무 벅찬 것이 현실이다. 게다가 눈이라도 많이 내리면 전 직원들을 총 동원해 광대한 면적에 제설작업을 해야 한다. 그래서 많은 골프장들이 휴장을 선택한다.

“우리 여행이라도 다녀올까?”

현균이 연지에게 말을 건넸다.

“어디 갈만한 데가 있겠냐!”

두어 달 전에 다툰 일로 연지는 아직도 마음이 풀리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돌아온 대답이 딱히 흥미롭지 않다는 뉘앙스였다.

“너 뒤끝 참 길다. 그동안 내가 많이 사과했는데!”

“나는 사랑하는 마음으로 너와 함께 했는데 너는 동물의 본능으로 나를 안았다며! 이게 좁혀질 간극일까? 내 마음이 가여워서 아직도 난 자꾸 눈물이 나.”

“그건 오해야. 인식이나 관념에 대한 말이지 내 마음이 그렇다는 건 아니야. 내 진짜 마음을 네가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마음을 너무 강요하려들지 말아줘. 진심은 시간이 지나면 드러날 테니.”

그들은 팔짱한번 끼지 않은 채 겨울의 건조한 마음으로 각자의 숙소로 돌아갔다.

 

하루하루가 누적될수록 맞지 않는 옷 같았던 생활의 패턴은 점차 익숙해져갔다. 그리고 골프장이 휴장에 들어가자 캐디 일을 계속하고 있는 것처럼 연기하며 살 일도 없어져서 마음도 조금 편해졌다. 마성은 여전히 정열적이고 친절하고 다정한 남편처럼, 그리고 민지의 친아빠처럼 일주일에 두어 번씩 아파트에 드나들었다. 다행인 것은 그의 생활에 일정한 패턴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의 예측되는 생활이 그녀의 이중생활을 훨씬 용이하게 만들어주었다. 김차관이 베푸는 권위적인 다양한 혜택들과 마성이 주는 가정적인 행복감들로 정애는 지금의 생활이 정상적인 듯 느껴지기까지 했다.

“요즈음은 낮에도 추울 텐데 밖에 나가면 뭐하며 시간을 보내?”

퇴근하고 집에 들른 마성이 지나가는 말인 듯, 건성으로 물어 보는 듯 말했다.

“외출을 해도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추운 줄 모르겠던데! 영화도 보고 아이쇼핑도 하고 친구들이나 캐디들이랑 커피도 마시고. 그동안 못한 것들 몰아서 하는 중이야. 봄에 다시 일하려면 몸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무감도 좀 있고.”

찔리는 마음에 장황하게 말하며 그의 안색을 살폈다. 그렇지만 질문을 해 놓은 그는 대답을 듣는지 마는지 무덤덤해 보였다. 불타오르듯 강렬하게 하던 섹스도 어느덧 매너리즘에 빠진 듯 일상으로 여겨지기까지 되었다. 그렇다고 싫어하는 것은 물론 아니었다. 서로의 관계에 패턴이 생겼다는 의미일 뿐이었다.

“세상에 있는 놀이 중 물리거나 흥미가 사라지지 않은 유일한 것이 섹스인거 같아.”

언젠가 그가 말했을 때 깊이 공감했던 기억이 났다. 정말 수백 번 수천 번을 해도 늘 경이로운 경험을 느낌을 주는 놀이였다.

“아마 우리가 정식 부부가 아닌 것도 섹스의 질이 높아지는 것에 한 몫을 했을 걸!”

그녀의 말에 그도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었다.

 

일 년 중 가장 추운 시기인 1월 하순경. 정애는 설 명절의 대체공휴일인 월요일에 라운딩을 할 생각이 없느냐고 물어 오는 김차관의 말에 화들짝 놀랐다.

“그제 눈이 10cm도 넘게 왔어요. 골프장에는 아마 그보다 더 왔을 걸? 이런 날에 문을 연 골프장이 있어요?”

“어느 골프장이든 우리가 열라고 하면 열거야. 명절 쇠고 한가해서 몸이 찌뿌드드하잖아. 자기가 일하던 골프장에 연락해서 그쪽 회장과 김회장, 당신과 나 이렇게 한게임 할까?”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그가 놀라웠다. 그동안 캐디 일을 하면서 겨울에 수도 없이 눈을 치웠었다. 자신들이 일하는 곳이니 당연히 눈을 치워야 된다고만 생각했었다. 그랬는데 지금에 생각해보니 이런 사람들을 위해 그 생고생을 한 거였다니.

몇 달을 함께 지내다 보니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보게 되었고, 자신도 가끔씩 이 부류들의 행동과 생각을 따라하는 것에 얼핏 놀라기도 했었다. 그렇지만 골프장 하나를 자신들의 놀이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눈까지 치워서 열라고 한다는 발상에 기가 막혔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마음을 충동질 하는 치기가 솟았다.

‘그동안 내가 생고생을 해봤으니 한번쯤은 누려 봐도 되는 거 아냐?’

회장 일행과 버젓이 라운딩을 하는 자신을 보고 그렇게도 위세가 대단했던 경기팀장과 마스터의 경악해하는 모습이 궁금했고, 회장이 자신을 어떻게 대할지도 궁금해졌다.

‘졸부들의 마음이 아마 이랬을지도 모르지.’

“해보고 싶어요.”

“알았어. 그럼 내일 하루쯤은 시간을 줘야 하니까 모레 10시쯤 황제 라운딩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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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공선달 |  2024-04-14 오후 3:21:26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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