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자기 한 몸도 못 지키는 비운의 천재 예형
- 조조의 콧대를 꺾은 사나이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
아예 애련(愛憐)에 물들지 않고
희로(喜怒)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
억 년(億年) 비정(非情)의 함묵(緘默)에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하여
드디어 생명도 망각하고
흐르는 구름
머언 원뢰(遠雷)
꿈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두 쪽으로 깨뜨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유 치 환 -바위-
조조는 공융을 시켜 유표의 투항을 설득하려했다.
공융은 공자의 후손으로 두뇌회전이 빠른 사람이었다.
그는 예형은 “어렸을 때부터 재주가 있고 기상이 강인하고 호탕한 천재로 글재주나 언변이 뛰어나 유표를 설득 하는데 적임자라고 추천하며 그에게 소임을 맡겨볼 것을 권했다.
예형은 조조가 낙양에서 허도로 수도로 옮긴 그 무렵 고향인 형주로부터 관직을 얻어 벼슬을 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왔다.
관직을 얻기 위해서는 우선 명사나 실력자를 찾아가서 자신의 소개를 잘 해야 했는데 예형은 명사를 방문하기 위해 자기 소개서를 만들어 언제나 호주머니 속에 간직하고 다녔는데 그는 모처럼 손수 글씨를 써서 만든 소개문이 다 닳아서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까지도 누구 한 사람 방문을 하지 못했다.
그건 자기 재주에 너무 자신을 갖고 있기 때문에 남에게 머리를 숙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떤 이가 그걸 보다 못해, “여보게, 조정에서 일하고 싶으면 조조장군의 심복인 순욱이나 곽가, 정욱 같은 사람을 만나보지 그래.” 하고 권했다.
그들은 모두 조조 휘하에 있는 쟁쟁한 인물들이야”.
그러자 예형은, “아니야. 조조는 별로 대단한 인물이 아니야.” 라고 말하고는, “순욱에게서 쓸만한 건 얼굴 뿐으로 그는 장례식 조문사가 안성맞춤이지.
그리고 곽가는 잠이 오지 않을 때 그 사람에게 난해한 책을 낭독하게 하면 잠이 잘 올 걸세, 또한 정욱은 기껏해야 그런 책들을 쌓아놓은 서고나 지키게 하면 잘 어울릴 걸세 하며” 독설을 퍼부었다.
그러면서 조조 밑에 있는 사람 중에 쓸 만한 사람은 공융 밖에 없다고 하였다.
공융은 예형의 재주를 높이 평가하여 조조에게 추천하기를 “예형은 성품이 뛰어나고 재주 또한 특별합니다.
학문을 하게 되면 당장 그 오의(奧義)를 알게 되며, 그가 한 번 눈여겨본 문장은 곧 외울 수 있고 한 번 들은 일은 결코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그의 본성은 도와 합치하고 묘안을 짜는 것이 흡사 신기에 가깝습니다.” 라고 칭찬하였다.
조조는 예형을 한번 만나보고 싶어 했다.
곁에 있는 공융도 열심히 권했다.
그러나 예형으로서는 평소에 조조를 별로 훌륭하게 보지 않은 터라서, 만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나는 종종 정신이 흐려지니”하면서 적당히 얼버무려 조조와의 면담을 사양하고, 여전히 조조에 대한 비판적 언사만은 잊지 않고 있었다.
조조로서는 과히 기분 좋은 일이 아니었지만 그를 죽이지는 않았다.
그 대신 그가 북을 잘 친다는 말을 듣고 있었으므로 그에게 북치기 고수라는 벼슬을 내리고, 불러다가 여러 사람들 앞에서 북을 치게 하여 망신을 주려고 했다.
그런데 그 날, 예형은 그런 조조의 의도를 알고 평복을 입은 채로 북을 치면서 조조 앞으로 나왔다.
다른 고수들은 모두 음악 연주자의 예복인 두건을 쓰고 노랑색 옷으로 갈아입고 나와 북을 쳤다.
그러나 그의 절묘한 연주 솜씨에 사람들은 모두 숨을 죽였다. 그때 담당관리가 큰 소리로 꾸짖었다.
“당돌하구나. 옷도 갈아입지 않고 공 앞에 나오다니. 당장 물러가 옷을 갈아입고 나오라!” “아, 그렇습니까.”
이렇게 말한 예형은 그 자리에서 부모님이 주신 훌륭한 새 옷이라며 훌훌 벗고 실오라기하나 걸치지 않은 체로 다시 태연하게 북을 치면서 물러나갔다.
그러자 조조가 쓴웃음을 지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놈에게 욕을 보이려다가 오히려 내가 욕을 보았다.”
뒤에 공융이 예형을 불러 이렇게 타일렀다.
“그래도 넌 군자인가”?.
조조는 “너에게 호의를 갖고 있었기에 가만히 있었지 그렇지 않았다면 목숨을 부지하지 못했을 거야” 알아주는 인물로부터의 충고이니 예형인들 듣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알았습니다”. “앞으로는 공의 체면을 손상치 않도록 하겠습니다.” 라고 말하고 물러나갔다.
공융은 다시 조조를 찾아가서 그 점에 대해 해명을 했다.
“그때 그는 그 지병이 발작한 거였습니다. 그런데 이젠 그것을 후회하고 찾아뵙고 사과하겠다고 합니다마는.”
조조는 매우 기분이 좋아서 “손님이 오면 들어오도록 하라.”고 문지기에게 일러놓고 예형을 기다렸다.
그런데 예형은 누더기 같은 옷을 걸치고 낡은 두건을 쓴 초라한 모습에 손에 지팡이를 들고 대장군의 영문앞에 이르렀다.
그리고는 털썩 주저앉아 지팡이로 땅바닥을 치면서 조조에 대한 욕을 퍼붓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문지기가 당장 그 사실을 조조에게 알렸다.
“어떤 미친놈이 영문 앞에서 장군의 욕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당장 잡아서 목을 베겠습니다.”
이 보고를 받고, 조조는 이번만은 참으로 화를 냈다.
“예형이란 놈은 아직 애송이가 아니냐. 내가 그를 죽이는 것은 참새나 쥐새끼를 죽이는 셈이 되지. 아예 손댈만한 자격도 없는 놈이야. 이놈에 대한 소문은 원래 헛소리였다. 그놈을 당장 유표에게로 보내 어떻게 하는지를 봐야겠다.” 즉 예형 따위 죽여버리기는 식은 밥 먹기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나의 도량이 좁다는 것을 천하에 보일 뿐이니 죽이고 싶지만 죽을 수가 없다는 뜻이다.
권력자에게도 이렇게 난처해질 때가 있었던 것이다.
조조는 귀찮은 존재를 털어 버릴려고 부하에게, “저놈을 말에 태워 무조건 유표에게로 보내버려라.”고 명했다.
그러면서 예형에게 생각을 바꿔 유표를 자신에게 투항시키는데 성공한다면 공경의 벼슬을 하사 하겠다고 달래고 나섰다.
예형은 조조의 지시로 형주에 있는 유표에게로 갔다,
유표는 그의 재주와 평판을 듣고 융숭하게 그를 맞았다. 그도 또한 여전히 재주를 발휘하여 유표를 기쁘게 했다.
“모든 문장과 변설이 예형을 빼놓고는 이뤄지지 않는다.” 라고 기록될 정도였다.
어느 날 유표가 많은 문인들을 모아놓고 천자에게 올리는 문장을 지어보도록 했는데 늦게 그곳에 도착한 예형은 다른 사람들이 이미 지어놓은 문장을 땅바닥에다 내동댕이치면서, 어안이 벙벙한 유표를 본척만척, 보란 듯이 종이를 들어 달필로 문장을 써 내려갔다.
그것은 훌륭한 문장이었다. 이에 대해, “유표가 크게 기뻐하여 그를 더욱 중히 여겼다.” 라는 기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