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온 강대한에게 누나 강민희가 집에서 같이 지내자고 권했다. 그도 마땅히 있을 곳이 여의치 않아서 같이 지내기로 했다. 엄마가 제일 좋아했다.

“민희야, 고맙다. 가끔 내가 음식을 마련해서 한국에 들러야겠네. 내 새끼들 얼굴도 볼 겸.”

누나는 동생이 당분간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지내도록 조언했다. 아버지가 다른 형제가 엄마가 다른 형제보다 심정적으로 가깝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어린 시기에 양육을 주로 엄마가 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다. 그래서인지 그가 친동생으로 생각되는 때가 많았다. 더구나 지금은 그가 마음에 큰 상처를 받은 상태다.

현충일이 다가왔다. 그동안 그녀는 이모와 동생이 전화 통화조차 하지 않은 것을 알고 있었다. 조카가 한국에 온지 몇 달이 지났지만, 이모는 대한이를 볼 용기가 나지 않았던 것 같았다. 그것은 대한이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그녀는 이런 기간이 너무 길어지는 것은 좋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동안 그녀는 이모와 매년 현충일마다 대전으로 고모할머니를 찾아뵈었었다. 이번 현충일에는 이모가 정신적으로 경황이 없을듯해서 그녀가 먼저 일정을 잡으려고 준비 중이었다.

“이모, 좀 어때?”

시간이 약이었다. 그녀의 눈에 초점이 잡혀 있었다.

“어서와!”

“이모! 보름만 있으면 현충일이야. 올해도 다녀와야지.”

“그렇구나. 나는 생각을 못하고 있었네. 고맙다.”

“이모 경황이 없는 거 내가 잘 알아. 그럴 것 같아서 겸사겸사 온 거야.”

“그래! 고모 만나러 다녀오자.”

“이모, 그런데 이번에 대한이랑 같이 가려고 생각중인데.”

모처럼 찾아온 조카에게 저녁을 먹여 보내려고 분주하게 움직이던 그녀의 손길이 멈칫했다. 이모의 눈에 또다시 촉촉하게 물기가 번지자 그녀는 이모의 뒤로 다가가 안아주었다.

잠시 조카에게 몸을 의지하고 있던 최선미는 살며시 조카를 밀어내며 말했다.

“고맙다, 민희야! 우리 조카 이모를 위로할 줄도 알고, 이제 정말 어른이네.”

“그럼! 나 시집가도 되겠지?”

그녀는 분위기를 바꿔보려고 노력했다. 다시 차분해진 최선미가 말을 이어갔다.

“그래! 대한이도 이번에 같이 다녀오도록 하자.”

“그래도 되지? 이모 고마워.”

“이렇게 애쓰는 네가 더 고맙지. 이번 기회에 대한이랑 얘기를 해보자. 조카를 영원히 잃을 수는 없지.”

한국에 오니 숨 쉬는 게 나아졌다. 항상 느끼던 긴장감과 압박감이 사라진 일상이 강대한은 고마웠다. 마음에 조금 여유를 느끼니 생각할 것들이 많아졌다.

먼저 정리해야 할 생각은 이모부였다. 죄송함을 넘어, 이모부가 가진 생각이 궁금했다.

‘무엇이 이모부에게 목숨을 걸도록 만들었을까?’

생명체 모두에게 목숨은 하나뿐이다. 그것을 내놓는 것은 전부를 내놓은 것이다. 그러려면 목숨을 내놓을 대상에게 절대적인 믿음과 가치가 있어야만 한다.

‘이모부에게 그것이 무엇이었을까?’

그는 자신이 일본에서 살아내려는 의지가 강했던 때를 생각해보았다. 무엇이든 할 수 있었을 법한 시기였다. 죽으려는 의지가 강했던 최근을 생각했다. 더 이상 아무것도 해낼 수 없다는 좌절에 사로잡혀 있었던 시기였다.

하지만, 이모부는 희망을 향해 죽음을 택했다. 그것도 자신만의 희망이 아닌 모두의 바람을 담은 희망을 택했다.

‘좌절로 택하려 했던 죽음과, 희망을 향해 택하는 죽음!’

그 죽음의 값이 다를 것은 너무도 명확했다.

‘나는 이모부의 삶을 더 알아야해.’

그는 먼저 누나에게 물었다.

“누나! 나는 한국에 있을 때 이모부를 많이 만나지 못했어. 대화할 시간도 적었고. 누나는 내가 일본에서 사는 동안에 이모나 이모부랑 많이 만났었어?”

“응! 내가 자주 만나려고 노력했었어. 한국에 나만 남아서 외로운 탓도 있었지만, 나는 이모와 이모부를 보면서 고모할머니를 떠올렸거든.”

“왜 누나가 두 분을 보면서 고모할머니를 떠올리게 돼?”

“나는 두 분에게서 고모할머니를 닮고자 애쓰시는 모습을 발견했어.”

“이모는 혈육이고, 어린 시절부터 고모할머니를 잘 따랐다고 들었는데, 이모부는 이모와 결혼을 하면서 우리 가족을 알게 된 거잖아.”

“실은 고모할머니가 매개가 되어서 두 분이 사귀기 시작한 거래.”

“고모할머니랑 이모부가 서로 아시던 사이라서 이모를 소개한 것도 아닌데 그게 가능해?”

강민희는 동생에게 두 사람의 연애사를 자세하게 들려주었다.

“이모부가 민족과 역사에 깊은 관심이 있으셨구나. 그래서 이모와 결혼까지 하게 된 거였어.”

이야기를 모두 듣고 난 강대한이 말했다.

대전 현충원은 늘 단정하고 말쑥했다.

새롭게 조성된 이유도 있겠지만, 최선미는 이곳을 찾을 때마다 각이 잘 잡힌 군대의 열병식을 받는 기분이 들었다. 자신만의 느낌일 수도 있겠지만, 현충원의 참배객들에게 ‘이곳의 영령들에게 국가가 예우를 다하고 있다’는 느낌을 가지게 만들어주었다. 숙연함이 깃든 여러 묘역들을 지나 가장 안쪽에 자리한 애족지사 묘역에 도착했다.

일본으로 떠나기 전에 이곳에 들렀었던 강대한은 느낌이 새로웠다. 야스쿠니 신사의 경험 때문인 듯 했다. 그곳도 3천 평이 넘는 넓은 면적이었는데 이곳은 대략 100만평이라고 하니 30배가 넘는 무척 광대한 공간이었다. 그곳이 아기자기하고 요밀조밀했다면 이곳은 남자의 너른 어깨를 연상시켰다. 그곳처럼 이곳 역시 국가를 위해 헌신하신 분들에게 예우를 나타내 보이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되었다.

언제나처럼 고모의 묘는 단정하게 꾸며져 있었다. 일반인들의 산소가 관리하느라 늘 신경 쓰이는 것을 생각하면 후손들로서는 참 고마운 일이었다. 작년에 두고 간 생화가 있던 자리에는 조화가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이곳 관리인들이 시든 생화를 치워주고 조화를 대신 놓아둔 것 같았다.

고모에게 인사를 올리고 잠시 주변의 풍광을 둘러보고 있는 최선미의 옷깃을 강대한이 슬며시 끌었다. 돌아보니 조카가 고개를 푹 수그리고 서 있었다. 그런 그를 잠시 바라보고 있던 그녀는 조카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조금 힘주어 안았다. 조카의 얼굴이 붉어지며 고개가 더욱 땅을 향했다.

“이모, 나 고모할머니 산소 앞에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어요.”

‘무슨 말인데?’ 하고 묻듯이 그를 바라보는 그녀를 그는 산소 앞으로 끌었다. 그리고 그녀를 그곳에 앉게 하더니 그는 고모할머니 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이모! 제가 고모할머니 앞에서 그날에 있었던 일을 거짓 없이 고백하고 싶어요.”

그녀는 조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짐작이 갔지만 잠자코 앉아 있었다.

강대한은 이모에게 엉겁결에 이모부의 신변을 저들에게 밝히게 된 경위를 말했다. 특히 이모부가 출국했으니 일본 경찰에 잡히지 않을 거라고 착각을 한 부분을 말하며 그는 울먹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이후로 괴롭고 죄스러운 마음에 죽고 싶었다는 말을 했다. 옆에 있던 누나는 그런 동생의 어깨를 다독였다.

최선미는 조카의 말을 들으며 자신이 오해를 했었던 부분이 있음을 깨달았다.

“대한아! 나는 네가 이모부를 저들에게 고의적으로 신고했다는 오해를 했었다. 네가 고모할머니 산소 앞에서 네 말에 거짓이 없음을 증명하려고 하고 있으니 네 진심을 믿을게. 그동안 이모는 네가 일본사람들에게 잘 보이고 싶고, 정말 일본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마음에 우리 가족을 배반하고 일본에 이모부를 팔았다고 생각하며 무척 괴로웠었다. 이제 오해를 풀었다. 네 마음도 모르고 너를 미워한 이모가 네게 사과할게.”

그녀도 조카의 어깨를 다독였다.

“이모, 그동안 대한이가 이모부에 대해 많은 것을 물어봤어요.”

강민희가 옆에서 동생을 거들었다.

“사실이에요. 저는 이모부가 국가와 민족을 위해 가지고 계셨던 마음이 그렇게 깊은 줄을 몰랐어요. 누나의 말을 들으며 궁금증이 생겼어요. 그리고 이모부가 가지고 계셨던 생각들을 더 알고 싶어졌어요. 제가 일본에서 생활하느라 ‘일본이 대체 무엇을 잘못했다는 것인지’ 납득이 안 갔었거든요. 조선이 힘없어 점령당했고, 점령자들이 약탈을 하는 것은 세상의 모든 점령국들이 하는 행위일 뿐인데, 약했던 자신들을 탓하지 못하고, 강했던 일본만 잘못 했다고 하는지 저는 무척 궁금해요. 지금은 제 생각이 잘못됐다고 인정하지만, 구체적으로 무엇 때문에 일본을 미워하고 용서를 받아야 하고 반성을 요구해야 하는지 알고 싶어요.”

강대한은 눈물이 마르지 않은 얼굴에 결연함마저 보이며 심경을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