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동수(變動數)가 많은 11월

한 동안 오로에 뜸했었다. 이리저리 바쁘고도 제법 중요한 일이 좀 생겼다. 우선은 지난 10월 말 경에 ○○에 이력서를 제출한 적이 있었는데 11월 9일 면접을 보자고 연락이 온 것이다.

또 다른 일은 10일 이사를 하기로 한 것인데 지난달 중순에 확정된 일이다. 집안 이사하는 것이야 내가 비록 가장이지만 할 일이 없었다. 나야 그저 내 서가의 책하고 소소한 소지품 정도만 정리하면 될 일인데, 포장이사를 하니 책은 건드릴 일도 없으니 자연 나로서는 한가하지만, 9일 멀리 부산까지 가서 면접을 보고 집에 돌아오니 밤 10시가 훌쩍 넘었다. 집안은 이사 준비한다고 난리도 아니다.

어렵게 잠을 청하고 이사 당일 일어나니 안사람이 어디 기원에나 가서 놀고나 있다 오라고 한다. 고백하건대 그 동안 여러 차례 이사를 하였건만 나는 그 일에 깊이 관여한 적이 없었다. 집안일이니 바깥사람이 신경 써야 될 것이 무엇이 있단 말인가?

이사 당일 그리고 소식

따라서 예전에도 이사를 하건 말건 나는 출근하였다. 퇴근 후 그 동네 근방에 가서 전화를 걸어 나 여기 어디쯤 있으니 데리러 나오라고 해서 새로 옮겨간 집으로 가곤 했다. 이번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다. 일곱 시 반에 이사짐 센터에서 온다고 하여 일곱 시쯤 집을 나섰다. 집사람의 조크성 멘트가 흘러나온다. “버리고 가지 않을 테니 너무 걱정하지마시구료.” 허허롭게 웃으면서 집을 나섰으나 너무 이른 아침이어서 갈 데가 없었다. 에라! 목욕탕이나 가자.

목욕 후 휴게실에서 실컷 늘어져 자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면접 본 곳에서 언제 출근할 수 있냐고 전화가 온 것이다. 언제든 가능하다고 답을 했더니 16일부터 출근해달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앗! 뜨거워라 싶었다. 부산 내려갈 생각을 하니 공연히 마음만 분주해진다. 준비해야할 것이 좀 있을 듯해서다. 그러건 저러건 오늘은 이사를 하니 무슨 준비를 한단 말인가? 우선은 집사람에게 알려야 할 것 같아서 전화를 거니 귀 따가운 소리가 들린다. “버리고 갈까봐 걱정되어서 전화했수? 호! 호! 호!. 바빠 죽겠는데 뭔 일이요?” 할 말이 없어졌다. 기원에 가서 바둑 몇 판 두다 보니 어느 덧 저녁 해가 기울었다.

타향살이 그리고 잡(Job)

우선은 부산에 머물 곳부터 정해야 하는데 멀리 떨어져 있으니 방법이 없었다. 당장 필요한 옷가지 몇 벌과 책 몇 권을 챙기는데도 적잖이 시간이 들었다. 대강 짐을 꾸려 부산으로 내려왔다. 숙소는 일단 주변에 있는 허름한 모텔을 한 달간 임대해 쓰기로 했다. 팔자에 있었는지 없었는지 모를 일이나 타향살이가 시작된 것이다.

근무처는 불교 관련 ○○종단 종무실이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으나 우선은 일반 행정 및 교육관련 업무를 맡기로 했다. 피차간 삼 개월 정도의 시간을 가지고 적응해보기로 전제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로 근무 시작한지 8일 째 되는 날이다. 가장 답답한 것이 담배를 마음 놓고 피울 수 없는 것이다. 처음에는 미칠 것 같았다. 어차피 적응해야 하는 일. 독하게 마음을 잡았다. 이제 대강 두어 시간 정도는 담배 생각 없이 몰두할 수 있을 정도로 적응이 되었으나 불현듯 담배 연기가 그리워질 때가 자주자주 있다. 나름대로 두 시간을 기준으로 정해놓고 지키려고 애쓰고 있는 중이다. 단 퇴근해서는 마음껏 피운다.

일을 시작하니 불안증세가 사라지는 듯하다. 과거 편두통과 불안증세와 불면증에 시달려왔었다. 편두통은 오로 글쓰기를 통해서 어느 정도 치유가 되었는데 불안감은 이번 기회를 통해 많이 완화가 되는 것 같다. 다만 불면증은 잠자리가 바뀌어서 그런지 아직까지 규칙적이지 못하다. 조금 더 정신과 몸을 피곤하게 하고 잠자리에 적응이 되게 하면 나아지려나.

<일>을 다시 한다는 것에 대한 단상(斷想)

젊은 시절부터 오십만 넘으면 다 때려치우고 산으로 들어갈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해 왔다. 그런데 억세게도 아홉수를 잘못 넘기는 바람에 탈진상태로 한 삼년을 넘어 백수로 살게 되었다. 아무 것도 하기 싫었다. 손가락조차 꼼짝하기도 귀찮았다. 그 바람에 산으로 가는 일은 다 물거품이 되고 만 것이다. 마치 정해진 미로를 나만 모르고 달려오다 눈을 떠서 앞을 보니 여전히 담벼락에 막혀 있는 그런 기분이었다.


▲끝없이 이어진 길. 마치 인생의 그것 같기도...다원(나무나루님 작)


이제 다시 무슨 야망을 키운단 말인가. 일에 대한 욕심이야 있지만, 예전과 같이 돈을 왕창 벌어보겠다는 생각은 아예 없어진 듯하다. 그저 소박하지만 이 사회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일이다. 그러고 보면 인생이 계속 후퇴하는 것 같다. 첫 직장은 경제기획원에서 85년도 인구센서스 행정 기획을 하여 그 대상이 전 국민인 약 4,500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모 그룹으로 옮겨 정보시스템 기획을 주로 했으니 내가 관리해야할 사람이 200여명 안팎이었다. 세 번째는 사업을 하면서 관리 대상 업체가 200여개였다면 돈 좀 벌었을 것이다. 보통은 일을 하면서 연륜이 쌓여 가면 그 폭이 점차로 넓어지는 것이 보통인데, 나같은 경우는 거꾸로 된 것이다.


▲인생이란 이렇게 혼자 노 저어 가야하는 길인가?

지금은 종교 종단에 몸을 담으면서, 비록 부족한 경험과 앎을 일로써 풀어가게 된 것이다. 와서 보니 체계 정립 등 해야 할 일이 엄청나게 많아 보인다. 은근히 일에 대한 욕심이 생기기 시작한다. 탄탄하고 알찬 조직으로 변모해 가는데 미력하나마 일조를 하고 싶은 열망이 서서히 고개든다.


▲서버린 저 풍차를 어떻게 다시 돌게 할 것인가?

그러면서 인생의 후반기를 아름답게 마무리 하고 싶다. 가기 전에 이름 석 자라도 남겨놓고 가야할 것이 아니겠는가? 그동안 숙제로 남겨 놓았던 참선과 단전호흡에 몰두해 볼 생각이다. 어차피 홀로 살다 홀로 돌아가는 세상살이 아닌가? 그 끝이 무엇인지 확인해보고 싶다. 꼭 산에 가야만 되는 것은 아닌 것이다. 내 생각을 어떻게 갖느냐에 따라 여기가 심산유곡의 암자도 될 수 있는 것이리라.

인생의 마지막 동남풍이 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칠성단을 쌓고 있다. 어느 분 말씀처럼 서산을 벌겋게 물들이는 시도는 해봐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