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어느 지역이든 기인이사(奇人異士)는 있게 마련인데 우리나라는 더욱 그러한 모양이다. 전북 정읍에 농초(聾樵) 박문기라는 분이 계시다. 선대의 전통적인 교육관에 따라 현대식 교육을 배제하고 한학을 공부하셨다고 한다. 그러면서 옛적 선비들이 그러하듯 주경야독으로 낮에는 농사를 밤에는 책을 읽는데 주 전공분야가 역사다. 우연치 않은 기회에 그분의 저서를 접하게 되어 흥미가 발동해 대강 발간된 모든 서책을 섭렵했다.
그의 호 농초에서 대략 그분의 삶의 방식을 짐작할 수 있으니 이른 바 벙어리 나무꾼이라는 뜻을 보건대 산업화 현대화가 진행되어감에도 그런 현실에 귀 막고 입 봉하고 나름대로 살겠다는 것이 아닐까 유추해본다. 그분의 저서 <숟가락>이라는 책에 조렵론(釣獵論)이라는 칼럼(222쪽 ~ 227쪽)이 있어 읽고 공감하는 바가 많았다. 이에 대강 그 내용을 요약 정리해 본다.
조렵론 대강
대저 예부터 남쪽 사람은 그 성질이 교활한 데 가깝고 북쪽 사람은 잔인한 데 가까운 바 남쪽에서는 낚시질을 북쪽에서는 사냥을 즐겨한 까닭이다. 낚시질이란 미끼로서 미물을 속여 끌어내는 것인데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이 지렁이나 떡밥 따위로써 미물을 속이고자 앉아있는 일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서 부득이 사냥이나 낚시를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하겠으나 레저스포츠라 하여 취미나 오락으로 이를 즐기고 더 나아가 자식들까지 함께 즐기는 것은 경계해야 마땅한 바 그 난폭함과 교활함을 배워 제2의 천성으로 굳어질까 저어되기 때문이다.
▲현대 레져스포츠로 각광받는 낚시
옛날 선비의 낚시질은 그 뜻을 얻고자 함에 있었지 고기를 얻고자 함이 아니었다. 낚시를 드리우며 세상인심의 동향을 살피고 군자와 소인을 구분하는 법을 익혔다. 따라서 홀로 조용히 앉아 임했고 무리지어 다니지 않았다. 관직에서 물러난 늙은이는 자신의 지난날을 뒤돌아보고, 장차 큰일을 도모할 계책을 세운 자는 장구한 계획과 함께 소인을 식별하는 안목을 넓히고자 하는 것이다.
대저 길을 상징하는 도(道)자의 의미는 사람의 머리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말함이니 머리 수(首)자가 들어있고, 또 길 로(路)는 사람의 발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뜻하니 발 족(足)변이 붙는 것이다. 그러기에 옛 선비의 낚시는 비록 미물을 속일지라도 사람의 바른 길을 찾는 이치를 구하고자 함이요 또한 옳은 길을 밟아나가는 방법을 찾고자 함이었다. 즉 뜻을 얻고자 함이었으니 지금 사람들이 흔히 레저스포츠라 하는 외래어를 써가며 사냥을 하고 낚시를 하는 것과는 완연하게 달랐다. 재미로 거기에 머무른다면 교활함과 잔인함 외에 얻을 것이 무엇인가?
요약해서 쓰다보니 다소간 논리의 비약이 있는데, 여하튼 살상을 즐기는 놀이는 할 것이 아니요 그것을 자식에게 보여주어서도 안 될 뿐만 아니라 함께해서는 더더욱 안 될 일이다. 낚시에 마음을 쓸 것이 아니라 자기의 인격도야를 위한 소도구 쯤으로 여겨야 마땅하다 뭐 이런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다.
오로에서의 글쓰기
사이버오로에 들어와서 보니 여기저기 많은 글이 넘쳐나고 있다. 때로는 자신의 일상을 때로는 소회를 혹은 어떤 주장을 나름대로 펼친다. 또 오고가는 댓글로써 의견을 교환하는 것을 보는 것도 재미가 쏠쏠하다. 어떤 이는 시적인 표현으로 어떤 이는 생활 용어로 혹은 현학적으로 풀어쓰는 분도 있다. 각각의 취향에 따라 글을 쓰니 읽다보면 나름대로 느껴지는 바가 많고 배울 점도 꽤 많다.
가끔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이분들은 왜 글을 쓰고 있는 것일까? 글쎄 그 이유가 각각일 것이다. 나는 왜 쓰는가? 스스로에게 자문한다. 처음에는 멋모르고 썼지만 바둑을 두는 일이나 관전하는 것과 같이 시간 죽이기(Killing Time)였다. 무료한 일상을 보내는 재미있는 일 중 하나가 된 것이다.
물론 자기 존재에 대한 확인의 기쁨도 있었고, 동조하시는 분이 있을 때 거기서 느끼는 뿌듯함도 있었다. 반론이나 악성 댓글에 대해서는 열이 나는 것이야 인지상정이리라. 그러건 저러건 글이라고는 평생 보고서 밖에 안 써본 사람으로서 이런 종류의 글을 쓴다는 것이 처음에도 쉽지 않았고 지금도 역시 그렇다. 차이가 있다면 익숙해졌다는 정도일까.
▲낚시로 세월을 낚는 신선
때로는 뻔한 단어도 사전을 찾게 된다. 더 좋은 표현방법이 없을까 고민도 한다. 구성은 제대로 잡고 쓰는 것인지 뒤도 돌아본다. 논리전개에 허점은 없는지도 살핀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나의 생각이 제대로 정리되어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럭저럭 쓰다보니 많은 글을 쓰지는 못했지만 머리가 맑아지고 마음이 안정되는 기쁨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킬링 타임에서 세월 낚기라고. 내가 비록 강태공은 아니지만 때를 기다리며 곧은 낚시를 드리우고 세월을 낚는 한사라도 된 기분이다.
낚시가 드리워진 글
전공이 전산학이라 간혹 주변에서 사이버 세상에 대해 문의하는 일이 종종 있다. 전자상거래에 대해 묻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대답해주는 것은 이렇다. 어렵게 생각하지 마라. 사람 사는 세상이다. 그것이 정보통신을 이용하여 시간과 공간이 확장된 것이라고 생각해라. 다만 차이가 있다면 실세계에서는 주요 소통매체가 말인 반면 사이버는 글이 대부분이고 UCC등과 같이 멀티미디어도 많은데 중요한 것은 기록으로 남는다는 것이다. 그러면 대개는 쉽게 이해한다.
그렇다. 여기도 사람 사는 세상인 것이다. 그러니 화합과 분란이 끊일 날이 없다. 실세계와 조금도 다름이 없다. 다만 글로 남는다는 것 외에는. 그런데 때로 미끼가 달린 낚시가 드리워진 글을 발견하게 된다. 그때마다 눈살이 찌푸려진다. 날카롭게 끝이 휘어진 낚시 바늘 같은 댓글도 종종 본다. 언제든지 낚아챌 수 있다는 자신감의 발로를 유감없이 보이는 글도 있다. 어떤 것은 심하게 복선을 깔아서 대체 무엇을 걸고넘어지려고 하나 궁금증이 증폭되기도 한다.
우리나라 상고사에 관심이 있는 터라 관련된 사이트를 제법 찾아보는 편이다. 주로 학술적인 주제를 논하는 곳이라 그런지 오고가는 의견주장이 치열하지만 대개는 그 내용에 한정된다. 거기도 사람 사는 곳이라 날선 인신공격도 오고갈 때가 있지만 그러면 즉시 운영자가 개입한다. 주장과 반론 그리고 재반론 이렇게 의견교환이 오고가는 것을 보다보면 저절로 고개가 끄떡여진다. 참으로 예의바르다 하는 생각이 절로 우러난다.
그런 곳과 사이버오로를 비교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세계이니 좀 그렇지만 그 행태는 본받을 만한 것 같다. 결코 글의 내용을 넘어 인간에게로 향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 사는 이야기가 주여서 그런지는 모르나 오로에서는 곧잘 그 칼끝이 인간을 향하는 것을 자주 목격한다. 어쩌면 낚아채자고 드리워놓은 그 낚시바늘에 본인이 꿰거나 그 칼끝이 오히려 자신을 향할는지도 모를 일이다.
사람에 대한 존중
이글의 성격이 광장에 올라가야하는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으나, 요즘 광장에서 일어나는 분란을 보고 있자니 답답한 소회에 적어보는 글이다.
바둑관전시 대창에서 노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언어의 유희라고나 할까. 그런데 간혹 <나는...> 또는 <내가...> 이런 식의 표현을 하는 분이 있다. 더 나아가 반말과 욕설도 종종 목격한다. 욕설이야 정신파탄의 지경이니 논할 바가 없겠으나 자신을 낮추는 표현을 자제하는 분들에게는 죄송스러운 말씀이나 그 정신상태에 대해 의아해 하지 않을 수 없다. 대체 무슨 배짱으로 남을 깔보는 것인지.
우리는 기본적으로 남을 존중해야할 필요가 있다. 존중하기 어렵다면 최소한 무시는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마지막 마지노선 아닐까? 글을 쓰는 분이나 댓글을 다는 분이나 대창에 말씀하시는 분이나 기본은 지켜져야 한다고 본다. 그럼으로써 본인도 존중받게 될 것이고 본인의 처신에 합당한 대우를 받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더. 궁중에서는 찌개를 조치라고 한다고 한다. 타계한 궁중요리전문가의 말씀으로는 찌개라는 말에 된소리가 들어가므로 그 말이 몹시 상스러워 궁중에서는 쓸 수 없는 말이라는 것이다. 아울러 생고기를 소금구이해서 즉석으로 먹는 것도 쌍놈들의 음식이라는 것이다. 고기에 남아있는 독소를 빼지 않고 급하게 먹는 것에 눈이 먼 상민들이나 즐기는 것이란다. 이런 것까지 고려하는 것이야 이제는 좀 우습게 되었지만 그 정신은 한번쯤 새겨봐야 하지 않을까?
간혹 대명을 보다보면 기가 막힌 생각이 든다. 된소리가 들어감은 물론이요 그 뜻조차 묘한 분위기를 연상시키는 것이 무척 많다. 물론 개중에는 위트 넘치는 것도 많지만 어떻게 자신의 간판 격이라 할 수 있는 대명을 저렇게 작명했는지 의아하다. 스스로를 비천한 경지로 끌어내렸으니 어떻게 보면 다른 이에 대한 멸시의 뜻을 품었다 볼 수도 있으려니와 또한 그런 대명을 버젓이 내미는 것은 나를 날로 소금 쳐서 구워먹으라는 미끼 끼워진 낚시 바늘 같이도 보인다. 오로에서는 대명에 대한 사전 검열제도 같은 것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을 듯 하다. 사전에 독기를 제거할 강력한 이유가 있다는 말이다. 아마도 화기애애한 분위기 조성에 일조하지 않을까?
▲담양에 소재한 명옥헌(鳴玉軒) 풍광 - 출처 : 오로디카방 나무나루님 작품
.gif){kind=logo}
작가의 말
아라베스크
이끼그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