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인되지 않은 어쩌면 영원히 확인할 수 없는 속설일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자주 가는 집에서 단골대우를 받는다. 단골이 되면 일단 주인의 풍성한 인심을 기대할 수 있다. 주머니가 얄팍하더라도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주머니 털어봐야 먼지 밖에 안 나도 걱정이 별로 없다. 넉살좋게 웃어주면 통한다. 그것이 단골이다. 어느 때인가 우연치 않게 책을 보다가 단골의 어원을 이르는 구절을 본 적이 있었다. 말이 되나 하고 의문을 품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럴 듯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신라가 백제와의 대야성 전투에서 패한 이후로 40여개 성을 빼앗기고 김춘추의 사위까지 전사한 기록이 있다. 대야성은 지금의 합천 해인사 일대를 칭한다고 하는데 우리의 사서에서 지명에 대한 것은 늘 읽는 자로 하여금 곧잘 혼란에 빠뜨린다. 한 개 성의 관할 범위가 어느 정도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면(面) 정도는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정도보다 작다면 농산물의 소출과 행정적 관할의 생산성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비효율적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약 40개 면이라는 것인데, 그 정도면 엄청나게 넓은 지역일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과연 지금의 합천 주변이 그 정도로 광활할까 생각해보면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다. 고대사의 지명은 늘 혼란을 주는 요소다. 아마도 대륙의 어디쯤에서 찾아야하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그러건 저러건 그 전투 이후 신라는 국가 존립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

백제의 장군 윤충(백제 최후의 충신 성충의 동생이라는 설이 있음)의 지휘로 의자왕의 전폭적인 지지에 힘입은 바 크고, 신라로서는 김춘추의 딸 고타소랑의 남편인 품석이라는 작자가 음란을 일삼으며 폭정을 자행해온 죄과로 단 일격에 대야성을 내주고 만다. 김춘추는 여기에서 극도의 위기감을 느끼고 고구려와 협상을 벌리려고 했으나 연개소문의 엉뚱한 제의에 좌절감을 느낀다. 개소문의 순 우리식 발음은 ‘갓쉰’이라고 한다. 그 부친이 50에 아들을 보아 쉰둥이라고 이름을 지었다는 야사가 있다.

그러건 저러건 연갓쉰은 같은 동족인 우리가 삼한에서 서로 이전투구 할 것이 아니라 서토(당)를 정복하고 나누어 다스리자는 제의를 하나 그것은 김춘추로서는 받아드릴 수 없는 것이었다. 일설에는 사위와 딸에 대한 복수심 때문이라고 하지만 그것보다는 국가 존망의 위기감 때문이었을 것이리라. 그만큼 대야성 전투의 후폭풍은 신라를 공포에 떨게 만들었고 또한, 백제의 압제 강도도 더 증폭되었으리라. 그리하여 당의 원조를 끌어내기로 하고 천신만고 끝에 당과의 군사연합을 성공으로 이끈다. 그 이후는 여러 분도 잘 아는 삼국통일의 과정이 있었다.

통일을 이루고 난 후 저항세력도 제압하여 어느 정도 안정을 찾으면서 신라는 급격한 국력의 신장이 이루어진다. 그 바탕은 고구려와 백제를 정복함으로써 얻어진 풍부한 토지와 노동력 때문이었으리라. 절대 권력과 부의 축적은 절대 부패를 불러오게 되어있다. 신라 지배층의 정복지에 대한 핍박은 굳이 문헌으로 대하지 않더라도 고대 사회의 특성을 보는 눈만 있다면 쉽게 상정할 수 있다.

그 당시 신라는 골품제도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성골은 대가 끊겼으나 진골이니 뭐니 해서 하도 골품을 들먹이니까, 고구려와 백제의 옛 땅에 남아있던 그 후예들은 그것을 비웃어주는 의미로 우리는 단군의 후예이니 단골(檀骨)이라고 했단다. 서로가 서로를 단골로 부르며 단골끼리는 동병상린의 정으로 더욱 도타운 관계를 유지했다는 것이 그 어원을 주장하는 분의 요지였다.

아울러 댕기라는 말도 원래는 단기(檀褀?)라 하여 옛날 단군조선 및 부여에서 머리를 길러 땋는 것을 말하는데 세월을 거치면서 발음이 변했다는 것이다. 요샌 많이 사라졌지만 예전에는 시골마다 당집이라는 것이 있었다. 서낭당이라고도 하고 지방에 따라서는 당재라고도 한 모양이다. 그 서낭당신이 아마도 추정컨대는 환인, 환웅, 단군을 지칭하는 것이리라. 지금도 절에 가면 삼신각이니 삼성각(三聖閣) 해서 신선이 호랑이를 옆에 두고 동자 2-3명을 거느린 탱화를 볼 수 있다. 아마도 불교가 유입되면서 민간신앙과 융합하는 과정에서 그 유습이 지금도 남아있는 것이라고 본다.

지방에 따라서는 무당을 당골네라고도 칭하는 모양이다. 단군이 제정일치 시대의 지도자였으므로 민간신앙 차원에서 그대로 전해져온 말이 아닌가 생각한다. 역사에서 왕조는 사라졌어도 그 영토와 백성과 말은 그대로 남아 오늘에 이른다. 보통 제례와 혼례에 대한 전통은 가장 보수적이어서 거기에 따르는 풍속과 언어는 그 생명력이 다른 것이 비해 길다고 한다. 그러니 우리가 무심코 쓰는 언어를 잘 살펴보는 것도 우리의 역사를 되짚어보는데 힌트를 제공하지 않을까?

요즘 오로에 여설하님의 토우가 연재되고 있다. 2000년 즈음이었을 것이다. 우연치 않게 김대문의 화랑세기라는 책을 구입해서 읽은 적이 있다. 거기서 미실이라는 궁주의 이름도 발견했다. 얼핏 이해하기로는 대단한 색녀에 절대권력의 최측근에서 호사를 누리다 간 여인이라는 것과 함께 소설적 흥미를 자아내는 소재로 그만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나 다를까. 미실이라는 이름의 소설이 새로 나왔다는 광고도 본 적이 있는 듯하다. 내가 소설적 문재가 없음을 슬퍼한다. 있었다면 아마도 내가 먼저 써서 돈 좀 벌었을 것을.

신라 토우에 대해서는 어떤 화보집을 통해서 사진으로 그 실체를 접했었다. 적나라한 성행위 체위들이 묘사되어 있어서 흥미를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여설하님은 미실과 토우를 연관시켜 소설의 소재로 삼으신 듯하다. 어떻게 그 모티브를 잡고 소설을 연재해나갈지 궁금해진다.

화랑세기를 읽으면서 신라의 혼인제도 내지는 남녀관계에 대해 많은 의문이 들었었다. 유교적 관점에서는 ‘문란’이라는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시대에는 유교가 그 사회를 움직이는 패러다임이 아니었다. 따라서 유교적 시각으로 본다는 것은 접근방법 자체가 잘못된 것이리라. 그러나 그 내용은 충격적이어서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고 있었는데 어느 날 TV에 중국의 남방 소수민족을 소재로 하는 다큐멘터리가 방영된 적이 있다. 확실하게 기억은 안 나는데 장족이었는지 요족이었는지 여하튼 모계사회의 전통이 그대로 남아있는 부족의 생활상과 풍습과 그들의 생각을 담은 프로그램이었다. 그것을 보면서 신라의 혼인제도를 이해하는 약간의 실마리를-어쩌면 핵심적일지도 모를- 얻을 수 있었다.

주지하는바 신라는 다종족(多種族)으로 구성된 사회였다. 6부로 상징되는 기존 토착민 세력이 주류를 이루었을 것이란 생각이다. 신라가 나라를 세운 시기를 개인적으로는 대략 기원전 200여년 전후로 추정한다. 당시는 중국이 6국을 통일하여 진시황의 새로운 시대가 열릴 때였다. 6국이라는 것과 6부라는 것에서 무언가 감이 잡히지 않는가? 여하튼 혼란의 시기였고 그 혼란의 와중에 부여제실의 공주가 아이를 배고 북만주에서 남쪽으로 도피한 사건이 벌어진다. 여하한 사정이 많지만 거기에 대한 설명은 생략하고, 박혁거세를 왕으로 추대하는 사건은 북방유목민 세력의 토착화 과정이라고 본다.

또한 가야세력과의 통합과정도 겪는데 가야는 남방 해양종족의 대표 세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가야와의 통합은 훨씬 후대에 이루어진 일이라 논외로 치고, 대체적으로 남방계 국가들은 그 이름의 끝에 라(羅)가 붙은 모양이다. 섬라국, 다파라국, 탐라국 등등. 그렇다면 신라도 라(羅)가 붙으니 해양세력의 일종이었을까? 신라의 별칭은 여럿이 있다고 전해지는데 시라(尸羅)니 계림(鷄林)이니 따위가 그것이다. 대강 이런 것들을 종합적으로 유추해보면 신라사회는 적어도 토착민, 북방계, 남방계 이상 3개 세력이 주를 이루었을 것이다. 우연의 일치인가? 박석김 세 성씨가 돌아가면서 왕을 했다는 것도 단순히 넘기기에는 심상치 않은 구석이 있다.

어제 다시 화랑세기를 펼쳐들었다. 그동안 보고들은 것을 나름대로 정리하고픈 마음 때문이다. 신라에서의 남녀관계와 혼인풍습에 대한 것과 다종족으로 구성된 사회가 어떻게 삼국통일을 이루는 원동력인 사회적 통합을 일구어 냈는지 궁금해졌다. 정리가 되면 글로 올릴 생각이다. 우선은 여설하님의 연재소설 토우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데 일조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또 하나는 신라가 이룩한 사회적 통합의 역사가 지금 분열로 치닫고 있는 우리 사회에 어떤 교훈이 될 수 있을까 살펴보기 위함이다.

짧게 쓰려고 노력하지만 그 앎이 얕아 늘 말이 많아진다. 그러나 어찌하랴. 일없는 한사의 쓸데없는 호기심쯤이라고 넓게 혜량하여 주시길. 아울러 여설하님의 토우가 성황리에 연재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