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선․왕윤과 오두미도(五斗米道) 그리고 만적의 난

작금의 대한민국 상황을, 특히 권력의 속성과 사회현상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대해 나는 하나의 틀(프레임)을 정하고 그것을 통해서 보는데 위에 열거한 단어는 이에 대한 키워드이다. 보는 견해는 각기 다를 수 있다.

간혹 역사 관련 글을 읽다보면 일종의 기시현상(데자뷰)과 같은 착각을 경험한다. 길게는 이천년 전에서 가깝게는 몇 십 년 전에 일어난 일들이 지금도 무대장치와 인물만 바뀐 채 다시 재연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치지 못할 때가 많다.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차츰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이 그리고 거기에 기반하여 생성된 권력의 속성이라는 것이 동서고금을 통해 거의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부터 비로소 나름대로 이해의 실마리를 풀 수 있었다.

어릴 때부터 삼십대 중반까지 간간히 그러나 즐겨 읽었던 성경에 사울 왕을 세우는 과정을 주목한 바가 있었다. 백성들이 다른 민족은 왕이 있어서 강하니 우리에게도 우리의 왕을 세우게 해달라고 강력하게 요청하는 장면이 있다. 하느님은 내가 너희들의 왕인데 왜 유한한 인간을 왕으로 세워달라고 하느냐며 답답해한다. 그러다 워낙 이스라엘 백성이 강력하게 절규하므로 인정하고 사무엘에게 그 일을 맡겨 진행시킨다(궁금하신 분은 읽어보시길).

그렇다. 인간은 그런 존재인가 보다. 가시화된 그 무엇이 있어야 거기로부터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모양이다. 눈에 보이지 않은 것을 사고(思考)로 체계화하고 신봉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는 것 같다. 그러니 그들의 신앙역사는 우상과의 싸움이었다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종교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삼국지를 읽어보신 분이라면 연환계로 유명한 고사를 모를 일 없으니, 초선, 왕윤, 여포 합작으로 동탁을 몰아내는 과정의 상술(詳述)은 피한다. 여기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우선 당시의 정치적 배경이다. 여자들의 권력다툼으로 인한 우여곡절 끝에 헌제가 등극했으나 결국 실제 권력은 서량의 군벌이었던 동탁이 쥐게 된다.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군사독재정권이라고 할까.

동탁을 축출하는 과정은 근왕(勤王)의 대의명분을 아무리 높게 세운다 하여도, 부도덕하기 이를 데 없는 치졸한 것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좋은 말로 계략이라고 하나 결국 속임수로 일관된 결과 아닌가. 거기다 동탁의 부하였던 여포까지 끌어들이니 이런 것을 정치에서는 야합이라고 하던가?

내가 제일 애석하게 여기는 것은 초선이다. 나중에는 결국 여포의 첩이 되었는데 왜 내 첩이 안 되었나 화(?)가 치민다. 좋게 말하면 꽃다운 나이에 만금같은 여자의 정절을 초개와 같이 버린 것이 되겠으나 다른 각도에서 보면 어린 나이부터 남자 복이 터진 여인쯤으로 볼 수도 있을게다. 그 남자 중 하나로 내가 끼지 못한 것이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중국의 4대 미인 중 하나라는데...정말 아쉽다. 요새 식으로 풀면 성상납 쯤 될려나 모를 일이다.

정작 문제는 왕윤이다. 권력을 잡고 나더니 동탁의 시신 앞에서 곡을 했다는 이유로 당대의 석학이자 문장가인 채옹을 척살한 것이다. 개인적으로 알력이 있었는지 어쨌는지는 모르나 동탁과 같은 자 밑에서 학문을 빌려주었다는 빌미를 걸어 숙청시켜버린 것이다. 여기에서 문사의 독선(獨善)을 보는 것이다. 동탁이 무력의 독선을 행했다면 왕윤은 문치의 그것을 자행한 것이다. 결국 실권하고 부엉이바위가 아닌 성루에서 뛰어내린다.

주유가 적벽대전을 승리로 이끌었을 때 그 과정에서 유비는 계략과 술수로 승전의 전리품인 형주를 차지하고 소위 천하삼분계에 미쳐 서촉을 넘볼 시점에, 한중(漢中)은 오두미도의 장로라는 자가 다스리고 있었다. 도교의 일종인 오두미도는 황건란을 일으켰으나 실패하고 만 장각의 태평도와 선이 닿아 있는 듯하다. 장로의 할애비인 장릉이란 자부터 한중을 다스렸다던가. 그래서 그 정치적 이상이 아마도 도교의 이상향 구현이었으리라 상상한다.

그러나 부적의 남발이라던가, 그 태운 재를 먹으면 병이 낫는다던가, 쌀 닷 되를 입교 시에도 내고 이런 저런 이유로 틈만 나면 바쳐야했으니 소위 우민화정치의 표상을 실현하고 있었다고 봐도 무방하리라. 그 통치체제도 이름만 달랐지 기존 권력체계의 그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장각이 태평도의 난을 승리로 이끌어 후한을 무너뜨리고 권력을 잡았다고 가정해 봐도 한중의 그것과 무슨 대차가 있었으랴.

이제 우리 역사를 돌아보자. 고려 때 정중부의 난으로 시작된 무신의 난은 최충헌 때에 이르러 절정기를 맞는다. 군사독재시절인 것이다. 작금의 현대사로 풀자면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쯤으로 비정할 수도 있으리라. 최충헌의 사노였던 만적은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더냐 하는 기치를 내걸고 반란을 모의한다. 그러다 어느 노비의 밀고로 수포에 돌아갔다는 것이다.

고교 때 이 부분을 배우면서 이상하게 생각했다. 난을 일으킨 것도 아닌데 난이라고 이름 붙인 것 하며, 한국 최초의 노비해방운동이었다는 등의 해석이 붙는 것이었다. 질문했다가 욕만 얻어먹고 입을 닫았다. 대강 나이 들어 이것저것 뒤적이다 고려사 편찬과정을 알게 되었다. 애초에는 정도전이 쓴 것으로 되어 있으나 세종 때 정인지, 김종서의 손을 거쳤다는 것 그리고 그 이후에도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지금의 고려사로 남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역사의 기록은 승자의 몫이라고 하던가. 아마도 조선왕조는 반란의 기록을 원형대로 전하기가 껄끄러웠던 모양이다. 자칫 불순한 의도를 가진 자에게 훌륭한 교과서가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였으리라. 전두환의 쿠데타 과정은 박정희의 그것을 전범으로 했다는 설도 있다.

미루어 추정하건대 대단한 난리가 났던 것 같다. 어쩌면 최충헌의 권력체계에 심각한 결정타를 가했을지도 모른다. 사서에서야 몽고의 침입으로 무신정권도 흩어진 것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딱히 그렇게만 볼 일도 아닌 듯도 싶다. 다만 기록에 남아있지 않으니 더 이상의 추론은 가능하지 않겠지만 그 난 자체가 다음 왕조에서 편찬된 사서에 흔적으로 남아있었다는 것은 예사롭지 않았던 일임에 틀림이 없었으리라.

그러건 저러건 만적의 주장은 우리가 우리 주인을 배반하고 다 처결한 후 우리도 왕후장상이 되어보자는 것이었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만적의 난이 성공했다고 상정해보자. 세상이 확 바뀌어서 살기 좋은 극락토가 되었을까? 보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의 개인적인 생각은 무신정권의 그것보다 결코 나아졌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혼란만 더 가중되는 소위 역사의 퇴보가 필연적으로 뒤따랐을 것이라고 본다.

권력이란 무엇인가? 정치학을 배워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학문적 수사를 동원하기가 어렵다. 나의 얕은 생각으로는 자기 영향력의 범주 확보라고 정의한다. 영향력이 적은 사람은 권력이 없는 것이고 영향력이 아주 큰 사람은 권력을 쥐었다고 생각한다. 영향력의 다소는 무엇을 위한 것인가? 인간은 아마도 무언가든지 자기 마음대로 하려는 속성을 가진 동물이 아닌가 싶다. 육체적으로는 유한한 동물의 그것이지만 정신적으로는 전지전능한 신(神)을 꿈꾸는 것이 인간인 것 같다. 전지전능에 대한 동경을 내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권력은 어디서부터 오는가? 내 영향력이 많이 미치는 사람으로부터 오게 되어있다. 자신을 떠받드는 사람을 많이 확보하려면 이러저러한 요소도 필요하겠지만 결국 돈이 필요하게 된다. 돈이면 귀신도 부린다던가. 돈을 통해서 권력을 확보하고 권력은 자연히 그것의 유지와 강화를 위해 돈을 추구하게 되어있는 듯하다. 그 과정에서 여자는 필수불가결로 따르는데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모르는 것은 아니나 굳이 거론하고 싶지 않다). 한 때 계룡산 자락에 천하태평안심교라는 사이비교단이 있었던 모양이다. 교주는 건장한 청년을 기용해 자기 주변을 지키게 하고 일곱 선녀(七仙女)를 차출하여 요일마다 바꿔 잤다던가 어쨌다던가. 인간은 그런 존재인가 보다.

고백하건대 나는 비겁한 사람이다. 고교 때는 반미적 시각과 문화적 종속주의에 대한 심리로 팝송을 멀리했다. 멀리한 정도가 아니고 증오했었다. 뽕짝으로 대변되는 대중가요는 천박하다는 이유로 아예 배울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수백곡도 넘게 뽕짝을 기억하고 불러대는 나의 누나는 내게 있어서 조롱거리의 대상이자 천박함의 상징이기도 했다. 나는 지금도 그 흔한 으악새조차 가사를 끝까지 모른다. 이제는 좀 불러보는 것도 괜찮지 않는가 생각하지만 쉽지만은 않다.

대학 때는 박정희 피살사건과 신군부 등장이라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 흔한 데모 대열에 끼어본 적이 없다. 허약하고 겁 많은 청춘이었던 셈이다. 나의 2년 선배가 서울대에서 확성기로 반정부 시위를 외치고 뛰어내려서 관악산으로 도주한 사건이 있었을 때 그 용기에 찬사를 보냈으면서도 나는 참여하지 못한다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래서 늘 사회정의라는 말이 나오면 부끄러워했다. 마치 원죄를 발견하고 거기에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는 소녀처럼 그랬다. 85년도인지 대충 그때 즈음에 DJ가 국내에 귀국했다. 공직에 있을 때였는데 정치적 파장을 우려했는지 동요하지 말라는 상부 지침이 내려졌다. 그랬을 때도 나는 말 한마디 못하고 따랐다. 유신사무관제도의 유습이 시퍼렇게 살아 있을 때였다.

노태우정권부터 노조의 활동을 억압하던 정책기조가 바뀐 것으로 기억한다. 무려 30년 넘게 억압해왔던 것이 풀리기 시작하니 한꺼번에 많은 욕구들이 분출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혼란의 와중을 보면서 청년기를 보냈다. 99년도인가 공기업민영화 정책의 일환으로 ○○공기업을 인수하기 위해 인수팀의 일원이 되어 파견 근무한 적이 있었다. 그 기업에 노조가 있었고 민노총 소속이었다. 구차한 이야기는 생략한다. 그 때 나는 원죄로부터 해방되었다.

내가 학생운동을 하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사회선동세력들의 이론에 물들지 않은 것이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내가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개인의 양심과 사회에 대한 기여에 대해 자긍심을 가져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비로소 든 것이었다. 나는 노조가 정의롭다고 생각했었다. 이상적 가치를 지녔다고 생각했었다. 최소한 공정성이라도 유지하고 합리성이라도 있는 조직인 줄 알았다. 그런데 실상을 보니까 또 하나의 권력추구 집단이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던 것이다.

이 생각은 전교조 사건으로 떠들썩하던 2000년에 들어서 더욱 확고해졌다. 교사가 노동자다?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었다. 전교조 홈페이지 들어가 질문을 했다. 당신들이 노동자면 누가 사용주인가? 그 때 답이 무엇인지 상상하시겠는가? 답이 제각각이었다. 대통령이라는 답, 교육부 장관이라는 주장, 교장 교감이 아니겠냐는 미심적은 내용까지...

허파가 뒤집어지는 줄 알았다.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사용자 내지는 고용주가 누군지도 모르고 노동투쟁을 하는 조직원이라니. 한심무인지경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고백하자면 대학시절 여동생이 간호학과를 다니고 있었는데 탈춤 동아리를 한다고 하길래 허락했었다. 어느 날 책꽂이를 보니까 정약용의 목민심서가 꽂혀있었다. 간호학을 공부한다는 애가 취미도 다양하네 하고는 겉표지가 하얀 달력종이로 쌓여 있는 다른 책을 들쳐보니 사상서였다. 탈춤 동아리가 운동 서클이었던 것이다. 천신만고 끝에 겨우 말렸다.

전교조와 함께 한동안 떠들썩했던 한민련인지 뭔지 하는 조직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다. 전교조 홈페이지하고 링크되어 있어서 심심한 김에 눌러 본 것이다. 어랍쇼! 주체사상에 대한 글이 좍 뜨는 것이었다. 기가 막혔다. 실상이 이렇구만.

우리 사회는 민주주의를 신봉한다. 민주주의가 옳은 체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스라엘 같은 신권정치체제도 인간에 의해 거부당했다. 민주주의라는 것도 인류가 실험하는 권력체계의 한 종류이고 차선책이라고 여긴다. 요체는 국민이 주인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의 슬로건인지 아닌지는 모르겠고 여하튼 내가 권력주체의 중심이고 나로 인하여 통치권력이 탄생한다는 것 아닌가. 개개권력의 집합을 통해서 모여진 그 권력을 위임하는 형식이라고 이해한다.

대한민국에선 헌법 위에 국민정서법이라는 것이 있다. 그 다음에는 떼법이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그 하위 법이 헌법이라는 것이다. 한 때 일부 세력이 노동자 농민 운동을 전개한 적이 있었다. 운동가요 중에서 그런 가사가 있는 것 같다. 노동자 농민이 주인되는 세상이라던가? 그들을 통해서 나는 만적을 떠올린다. 자신이 노비라는 말 아닌가? 물류를 멈춰 세상을 바꾸자? 역시 만적이 떠오른다.

지난 정권 때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었다. 그 정당성의 가부가 헌번재판소로 넘겨졌다. 그 때 일부 세력의 주장에 기겁을 한 일이 있었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은 정당성이 없다던가 뭐라던가. 만적과 왕윤의 얼굴이 동시에 오버랩된다. 역사바로세우기인지 뭔지를 주창한 무리가 있었다. 고려사 편집과정과 왕윤의 독선이 떠오른다. 결국은 동학란에 희생당한 영령까지 보상을 해주었는지 안 해주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기왕이면 임진왜란이나 위화도 회군까지 외연을 넓혔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나의 부친이 일제 때 징용으로 끌려가셨다가 부상당하시고 귀국하셨는데 그런 것에 대한 보상액은 입으로 말하기조차 부끄럽다. 내가 부친에게 권했다. 아버님 차라리 포기하세요. 이것 받자고 이 정부와 일본에게 면책의 사면령을 내린단 말입니까?

박정희를 비롯해서 노태우까지 동탁이 눈에 어른거린다. 물론 정중부부터 최충헌까지도. 문민, 국민, 참여정부 운운에는 오두미도에 의한 장로의 한중공화국이 생각난다. 김영삼의 권력쟁취과정을 보면 왕윤과 여포의 야합이 떠오른다. 민노총 간부의 전교조 여교사 성폭행 사건에서 초선이 그려진다. 말이 나왔으니 한마디 안 할 수 없다. 소위 운동권에서 양말 빨아주는 이야기가 있는 모양이다. 격렬한 운동 후에는 검거가 뒤따르니 도피 및 은둔이 필요해지는 것이다. 여기저기 피해 다니다 보니 제대로 세탁할 환경이 되겠는가. 여학생들이 양말도 운동화도 빨아준 모양이다. 피 끓은 청춘이 한방에서 기거하다 보니 어디 양말만 빨았겠는가. 다른 것도 열심히 빨아주고 다른 운동도 역시 격렬하고 가열차게 했다는 설이 있다. 탁구같은 단식의 운동인 경우 한 사람하고만 치면 흥미가 반감된다. 새로운 상대하고도 운동하고 싶어지는 법이다. 운동이라는 것이 단식만 하다보면 재미가 없지 않은가? 때론 돌아가며 복식도 하고 때론 집단체조도 하고 했던 모양이다. 초선이 떼로 있었던 모양이다. 이러니 내가 초선을 첩으로 거느리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운 것이다.

입사할 때 노동조합에 기부금(?) 내지 특별입회비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적이 있었다. 쌀 닷 되가 그리 큰 것도 아니구만. 틈틈이 바쳐야 했던 모양이다. 사람 사는게 다 그렇지 뭐. 노조원들이 사장 물러나라 누구누구는 할복하라 소리에는 만적이 생각난다.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이 이것은 정부 탓이다 라고 하며 정권퇴진 소리를 지를 때 당연히 만적이다. 가진 자에 대해서 욕설을 퍼부으며, 그 있는 것마저 사회에다 내놓겠다는대도 여전히 손가락질이 끊이질 않는다. 왕윤의 독선이 아니던가.

공무원이 자기들은 노동자라고 주장하면서 전공노를 결성할 때는 기가 막혔다. 왕조시대로 치자면 나리에 해당하시는 고귀한 분들인데 자신들을 노비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 때는 우스갯소리도 많이 했었다. 눈앞에서 강도가 지나가는데 경찰이 지금은 파업 중이니 난 모른다고 하면 어쩔 것이냐. 또 적군이 쳐들어왔는데 군인들이 파업 중이라 우린 총을 쏠 수 없다고 하면 어떻게 되겠나. 물론 웃자고 하는 이야기이다. 웃기는 하지만 그런 일이 벌어지지 말라는 법이 있는가? 철도가 멈추고 화물차가 멈추고 기업의 생산라인이 멈추고 기업이 도산하는 판국인데 그런 일인들 안 일어날 것이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단 말인가?

홍길동전이나 임꺽정전을 읽으면서도 같은 생각을 했다. 그래서 홍길동은 도화국을 세웠다던데 그 나라는 조선왕조하고 다른 체제를 가졌다는 것인지, 거기 백성들은 다 잘 살았다는 것인지, 그 나라는 탐관오리가 없었는지, 그리고 언제 망했는지 그 과정에서 의적은 안 생겼었는지 궁금한 것은 많은데 아무런 설명 없이 대미란다. 홍명희의 임꺽정 소설에도 대두령에 소두령, 파수꾼까지 여러 역할들이 나오는데 그 조직체계는 기존 통치조직과 어떻게 다른지 그 책무를 맡고 있는 사람들은 다 청렴했는지(도둑이 청렴하다니 조금 우습기도 하지만) 아무런 설명이 없다. 오래 되어서 기억은 잘 안 나지만 도둑떼 패거리에서도 도둑질 한 분이 계서서 벌을 주었다는 장면에 실소를 금치 못했던 적이 있는 것 같다.

이상이 불초한 내가 세상을 읽는 방식이다. 우리는 이미 상당한 권력구조를 실험해봤다. 최대 걸림돌이 된 지역적 문제도 권력으로 이미 다 경험해봤다. 뭐 대단히 다른 것도 없었다. 오히려 더한 구석도 눈에 띄는 게 많았다. 시민혁명의 주체세력이라고 자랑스럽게 떠들며 무슨 민주화 운동했다는 완장차고 뽐내던 분들의 권력체계도 경험해 봤다. 별반 다른 게 눈에 안 띈다. 내가 볼 때는 다 오두미교이고  장로의 한중공화국일 뿐이다.

더욱이 내가 가장 답답하게 여기는 것은 본인을 노비로 격하시켜 생각하는 만적의 무리다. 생각은 자유이니 뭐라 할 수도 없고 다만 바라는 것은 소위 이념의 신봉자가 되어서 홍위병 노릇을 하고 있는데 기왕 할 것이면 제 정신 차리고 똑바로 해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해결책은 무엇인가? 해결책이라는 것도 어폐가 있다. 그러나 일단은 성숙한 시민이 되는 것이다. 뇌화부동하지 않는 현명함이 필요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눈에 보이는 인물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사고의 산물을 신봉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정치인에게 목을 맬 필요가 없고 신통방통한 부적쯤에 해당하는 그들의 그럴듯한 슬로건과 수사에 넘어갈 일이 아니다. 법이 아무리 훌륭하면 무엇 하겠는가! 운영의 묘가 없다면 역시 악법이 되고 만다. 남 탓 일삼는 노비근성의 탈피 또한 중요하다.  비록 적으나 권력을 뽑는 한 표를 가지고 있다.

이번 방송통신법을 둘러싸고 여의도에서 일어난 행태를 보니 답답한 마음에 써보는 글이다. 다수결로 뽑혀 그 자리에 간 사람들이 다수결을 거부하고 협상을 통해서만 해야 된다는 생떼에 국회의원직도 협상을 통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느 골빈 분이 중재안이라고 내 놓으셨는지 모르지만 방송통신 발전을 저해하는 누더기 법을 협상이라는 미명하에 내놓고 그걸 통과시키는 한심한 사람들과 거기에서 무슨 노조라던가 불법으로 난입해 난장판을 저지른 인간들을 보면서 나는 초선과 왕윤과 여포와 오두미도와 만적의 난을 한꺼번에 떠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