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그전에 영어 때문에 한번 조마조마 했던 일 하나. 중학교 졸업하고 고등학교 갈 때, 제가 소위 고교 평준화 1기생이거든요. 당시 연합고사를 쳐서 전기로 실업계를 먼저 뽑고, 후기로 인문계를 배정했죠. 실업계는 자기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는 것이니, 실제 경쟁이 있고, 따라서 학교간의 차이가 났죠.

그러나 인문계는 인문계 고교 총 정원으로 총원을 선발하고 선발된 학생들을 추첨으로 각 학교에 배정하는 것이죠. 그러다 보니, 그 전의 치열한 고교 시험 영향 탓인지, 실제론 그래도(비록 적은 수의 탈락자만 있는 경쟁이었지만) 시험은 시험이요 선발은 선발인데, 무시험 입학이라고 했었죠. 따라서 고등학교 못 간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 못할 일이었죠.

그런데 연합고사를 보고 채점을 하니 185점인 겁니다. 사실 시험이 너무 쉬웠죠. 어떻게 185점이냐구요? 총 200점 만점 중 체력장이 20점이었는데, 체력이 약한 것은 둘째고, 특히 100m달리기가 제가 기어가는 수준이걸랑요. 거기서 최저 점수제의 영향으로 13점(아니었다면 14점이었을 텐데요 ㅋㅋㅋ), 영어 20점 만점에 또 13점 - 제가 그 전에 학교에서 단 한번도 50점을 넘은 적이 없었으니 얼마나 쉬웠으면 그런 신기록 점수가 나왔을까요. 그리고 음악에서 피아노 건반 문제 하나 틀려서 -1, 나머지는 다 맞았죠.

그런데 다음날 학교에 가니, 시험이 너무 쉬워 커트라인이 184-5점 정도가 될거라는 소문이 돈 겁니다. 바로 제가 모가지 점수라는 겁니다. 아 집에선 없는 살림에 막내 아들 그래도 대학까지 보내겠다고 인문계 보내려 하는데, 소위 무시험이라고 까지 하는 고등학교를 낙방한다면. 정말 까무러칠 일이었죠.

그 날 부터 발표 할 때까지 그렇다고 말도 못하고 밥 먹기 조차 힘들었죠. ㅋㅋㅋ 그 때 실제 커트 라인이 얼마였냐구요? 아직까지 깨지지 않은 고교 시험 커트라인 최고 점수였죠. 남자 147, 여자 143 - 너무 애를 태운 탓에 그 점수가 제 뼈에 새겨졌네요.

추억을 한번 더듬어 볼까요. 정말 기억에 남는 문제 하나, 국민윤리 문제였는데 답을 지금까지 기억하네요.

문제는 <다음 중 합리적인 생활 태도가 아닌 것은?>

< 철수네는 ~~중략  (중간 중간 철수네 행동에 밑줄을 쳐 번호가 붙어 있고, 그 마지막 4번이 이렇습니다) ~~누나의 결혼은 중요한 것이므로 사주 팔자를 보기로 했다>

고교를 졸업하고 예비고사를 세 번이나 봤죠.(핑게지만 당시 재수는 필수 삼수는 선택이라 했었죠) 체력장 20점을 뺀 320점 만점에서 50점 만점 영어 한 과목이 깎아 먹은 점수가 최소 1/3, 최대 1/2 이 되더군요. 나중 일이지만 소위 이해찬 세대가 못된게 너무 아쉽더라구요. 여하튼 우여 곡절 끝에 대학엘 들어갔죠.

그리곤 79년 4월 17일 입대했고요. 군에서 10/26, 12/12, 5/18 다 겪었죠. 당시 군 복무 기간이 33개월이었는데, 유신 정부가 32개월로 줄인다고 했죠. 그리고 저의 동기가 그 혜택을 받는 첫번째에 해당 되고요, 고참들이 그걸로도 볶더라구요. 누군 33개월인데 니들은 32개월이라 좋겠다며. 그런데 결과는 33개월 12일 했네요. 하여 82년 1월28일 전역을 했죠.

ㅋㅋㅋ 제가 전역해서 한 일이 뭔지 아십니까. 대학교 1학년 영어 교과서 단어 공부와 해석하는 것이었습니다. 대학 필수 과락으로 학점 못 받으면 졸업이 안되잖습니까. 그래도 대학 들어 갔으면 졸업은 해야하는 것 아닙니까. 세상에 대학교에서 예습을 한 셈이죠. 여름 방학 때는 2학기 것을 그렇게 했죠.

정말 어렵게 시험 쳤죠. 결과는 C 학점. 왠만한 친구들은 짜증낼 학점이지만 저는 너무 감사했죠. 그리고 2학기엔 C+로 한 단계 올랐죠.

저는 이제 영어에서 해방(취업이야 다른 걸로 하면 되니까) 됐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웬걸요, 3학년이 되니 대학에 전공 필수가 새로 생긴겁니다. 제가 다니던 대학에 경제, 통계, 정외, 신방 이렇게 4개의 과가 있었는데 정경영어란 과목이 신설 된 것이죠. 1학점 짜리이지만, 4개과가 공통으로 운영한다는 편법으로 시간은 주 4시간(각과가 한 시간씩 강의하는 것으로 총 4시간), 시험도 매주 있고요... 정말 죽을 맛이었죠.

그런데 어쩌나요. 졸업이 안되는데, 더구나 네시간 짜리니 과락하면 정말 치명타죠. 그런데 매주 한권씩 취급하는 교재가 얇은 단편 영어 소설인데, 다 아는 내용이라 일단 해석은 그 내용으로 해도 되어 그나마 다행이었죠. 그래서 1학기엔 B, 2학기엔 B+, 제겐 정말 꿈 같은 학점이었죠. 대학 영어는 그렇게 C로 시작해서 B+로 끝마쳤죠.

참 고교 졸업하고 재수에도 실패, 대학 포기하고 있을 때, 영어로 물 먹은 적이 있군요. 어쩌면 그게 제 인생이 바뀔 수 있는 것 이었을지도 모르죠. 아마 영어로 인한 평생 타격 중 가장 크다 할 수 있을 겁니다. 당시 4급을(요즘 7급) 공무원 시험을 잠시 준비했죠. 과목은 헌법, 행정법, 행정학, 국사, 영어, 경제학(또는 수학) - (저는 수학 보다 사회 과목을 더 좋아해 금방 되리라 생각하여 경제학을 선택했고, 그 때 공부한 남덕우님의 가격론이 나중에 대학에서도 많은 도움이 됐죠.) 각 과목 20문제, 8개 과락, 일반적으로 합격선이 94~5개 정도였죠.

정말로 히이유~~~~ 영어 7개 맞았네요. 총점은 96. 24개 틀린 것중 영어만 13개. 정말 한숨이 나와야겠죠. 나중에 생각하니 고교 졸업하고 군에 가기 전에 4급 을 합격하고 군에 갔다 오면, 어쩌면 대학 졸업 후 고시 패스 하는 것 보다 더 빠르고 좋을 수 있는 것인데. 그야말로 통한의 한 문제였죠.

직장 가려고 원서 내고 서류 통과 면접을 봤죠. 다른 사람들 다 타임지에서 한 페라그라프를 읽고 해석한 담에 합격했죠. 저요? 전 읽기만 했죠. 그런데 다행인게 처음 영어 배우는 중학교 제 모교가 전국 최고의 시설을 자랑하는 학교였는지라, 당시에 랩실을 운영 했었거든요. 매주 1시간씩. 하여 영어 실력에 비해 발음은 그런대로였죠.

남들 10분에 끝나는 면접을 30분간 치렀죠. 그 30분 동안 무수한 일반 상식 문제를 테스트 받았고 그걸로 입사에 성공했죠. 영어는 거의 면제(?) 받았고요. 그리곤 정말 영어는 내 인생에서 끝났다고 생각했죠. 뭐 그 후에 회사에서 사원들 역량을 키운다고 영어 회화도 강의하고 했지만 그거야 못해도 그만이니.

그런데 웬걸요. 그 동안은 시험 없이 때만 되면 잘 승진시켜 주던 회사가 인사가 적체 되자 시험을 치겠다고 발표하지 뭡니까. 당시 저의 부서엔 대상이 7명이었죠. 그런데 5명은 현장직이라 다 고졸 출신이고, 저 외에 다른 한명도 사무직이지만 고졸이었죠. 저만 대졸.

부서 본부장님이 하시는 말씀. <정석 , 넌 니 힘으로 승진해, 난 몰라. 난 다른 사람 챙기기도 바쁘잖아. 다른 사람은 그래도 현장직이니 뭐니 얘기 할 수 있지만, 넌 뭐라 할 수 없잖아.>

사실 전 별명이 박사였거든요.(각종 상식과 컴퓨터 때문에) 주위에서도 제가 영어를 못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래도 저의 승진을 믿어 의심치 않았죠. 그런데 내겐, 그 시험이 사규, 상식, 영어라니... 시험 보기 한달전 회사에서 두툼한 상식 책과 영어 토플(이름도 기억 나네요. 반석 토플) 책 한권 주더군요. 사규야 비치되어 있는 것이니 알아서 보라하고. 그 나마 다행인게 이번에 처음이라 듣기는 안한다네요. 그리고 문제도 책에서 똑같이 사규 빼곤 다 객관식으로 낸다고 하더군요.

저 지방 출장 갈 때도 그 토플 책을 가지고 갔죠. 그래서 답을 다 외웠죠.  상식책은 볼 생각도 안했죠 토플 답 외워야 하니. 그것이 제 인생의 걸림돌 영어의 마지막 시험이었죠.(적어도 현재까지는) 그래도 대학까지 나온지라 아무리 못해도 읽을 능력은 되니 답이 외워지데요. 영어 50문제 중 한 문제 틀렸죠. 당시 대졸자가 동기들 포함해서 25명 정도 였는데 만점이 수입부에 있던 동기 한 명, 그 담이 저였죠. 상식은 안 봤어도 50개 다 맞았고, 사규도 그런대로... 당당 1등을 했죠.

제가 면접을 보러 들어가는데 면접관 중의 한분인 저의 부서 본부장님 좌우를 둘러 보시며 하시는 말씀, <아 이제 다 물어봐도 돼.> 전 무슨 말씀인가 했었죠. 그런데 그 동안 저의 부서 다른 사람이 들어오면 현장직이야, 고졸이야 하시며, 현장 일만 잘 하면 되는것 아니냐며, 질문을 하지 말아 달라고 다른 면접관들에게 부탁을 계속 했답니다.

제가 부서를 대표해서 승진 면접을 보게된 셈이고, 결과는 모두 승진, 본부장님은 "너 때문에 다른 사람도 다 됐다."라며  좋아하셨죠. <봐라, 같은 조건(대졸)이면 우리 부서 출신이 너의 부서 보다 월등하지 않느냐> 저 그때 부터 지방 다닐 때 술 많이 얻어 마셨죠. 일에도 많이 도움을 받았고요.  마지막 영어 시험을 성공한 덕에요.

그런데 지금도 영어 시험 친다하면 겁납니다. 자격증 따려하니 영어 시험이 곧 도입될거란 말이 돌더군요. 그래서 그 전에 땄죠.ㅋㅋㅋ

한도 많고 탈도 많은 영어, 제 인생의 가장 큰 걸림돌 영어, 이젠 그 영어 시험을 또 칠 일이 있을까 싶지만, 사람일 알 수 있나요. 그래서 항상 뭘 하든 한 쪽이 약간 저려옵니다. 혹시 영어 테스트 한다면 어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