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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심론은 이상주의이며 유물론은 현실주의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유심론과 유물론을 기준으로 분류될 수 있으며 이상주의와 현실주의의 관점으로 나뉠 수 있다. 두 가지 이론은 얼핏 표현의 차이일 뿐인 듯하고 일견 동의어인 듯싶으나 분명한 차이가 있다. 유심론과 유물론은 대상을 바라보는 나의 입장과 결정을 강요하는 반면에 이상주의와 현실주의는 내가 현재 어느 쪽에 서 있는가 하는 상태를 설명하는 것이며 진리와는 무관하다.

 인간은 생각을 하면서부터 행불행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 후 모든 인생은 유심론과 유물론의 사이에서 방황을 하기 시작했다. 만일 당신이 신을 믿고 있다면 당신은 다음과 같은 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기를 바라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네가 믿는 것은 유심론이냐 유물론이냐? 네가 유심론을 선택하였다면 천국 백성이 될 수 있을 것이지만 네가 유물론을 선택하였다면 땅에서 죽으리라. 그런가 하면 당신은 한 때 큰 혁명을 일으켰던 자들이 유심론의 시대를 끝내고 유물론의 시대를 열려고 하였던 일을 기억할 것이다. 그들은 그 때 세상의 모든 종교를 철폐하고 이전의 문화와 사상을 쓰레기로 치부한 뒤 오로지 물질을 기반으로 한 눈에 보이는 존재 가치만을 인정하려고 하였다. 그리고 그 결과 공산주의자라고 칭하는 그들은 인류가 벌일 수 있는 최고의 촌극을 완성하고 말지 않았던가.

 아직까지 유심론과 유물론의 사이에서 진리를 밝혀내거나 증명을 해낸 사람은 없었다. 다만 모두들 한 쪽을 선택하여 믿고 나아가거나 때로는 목소리를 높여 주장을 할 뿐이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이상주의와 현실주의에 관한 인식과 소통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을 해 볼 필요가 있다. 대개의 인간은 생각을 할 줄 안답시고 지나치게 자신을 우주의 중심에 놓으려 한다. 소통은 이러한 근원적인 부분에서부터 불가능해진다. 그렇지만 누구나 나이가 들게 되고 운이 좋아 철이 들게 되면 생을 후회 한다. 그리고 목적과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며 소통부재의 인생을 애통하기 마련이다. 간혹 자신이 쌓은 업적을 기억하며 삶을 돌아보는 사람도 있겠지마는 대개의 사람들은 가슴 따뜻했던 기억과 누군가와 마음이 통했던 순간을 돌아보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바로 소통의 가능성이 열리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이상주의자는 위험하다. 주변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리기가 쉽다. 아이러니 하게도 공산주의자들은 유물론과 이상주의는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무시한 채 혁명을 밀어붙인 바 있다. 만일 당시에 마르크스나 레닌과 같은 인물들의 성향이 조금만 덜 이상주의적이었더라면 역사는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이상주의의 위험성에 대한 쉬운 예를 찾자면 과거 우리나라가 대만과 단교를 하고 중국과 국교를 맺던 일을 살펴볼 수 있다. 당시에 중국 공산당은 수정 노선을 걷기 시작하면서 개방을 하고 자본주의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이 때 남한에선 노태우 정권과 위정자들이 거시적인 관점에서 국익을 따져봐야 하는 시기를 맞이한다. 그리고 자유진영인 대만과 국교를 끊고 아직 공산 세력의 표상이라 할 수 있는 중국과 국교를 맺는 일을 감행하였다. 그 후 많은 시간이 흘렀고, 결국 오늘날 중국은 EU와 미국을 제치고 우리나라 최대의 교역국이 되었다.

 대한민국이 대만과 단교를 결행하면서까지 중국과 수교하였을 당시에 지성인들과 우익 사상가들 중엔 정부의 결정을 천박한 실리주의라고 비난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이상주의적인 관점에서는 친구를 버리고 적과 손을 잡는 행위는 용납될 수 없는 일인 것이다. 국가적인 문제이며 미래학적인 문제였기 때문에 당시에 큰 혼란과 소란은 없었지만 이 부분에서 우리는 상상력을 발휘해 볼 필요가 있다. 만일 당시에 들어선 정권이 노태우 정권과 같은 현실주의자들이 아니고 노무현 정권과 같은 이상주의자들이었다면 어땠을까? 그리고 이상주의적 성향이 강한 대통령과 추종자들이 명분만을 내세워 중국과의 수교 필요성을 무시하고 대만과의 의리를 고집했다면 어찌됐을까. 한 번 상상해 봄직하다.

 현실주의는 고약하다. 현실주의에 안주하기를 결정한 사람은 나름대로의 이상을 지닌 척하지만 결국엔 거짓과 궤변 위에 서서 세상을 살아가게 된다. 현실적으로 모든 남성은 매일 아침마다 새롭게 태동하는 성욕에 지배된 채 하루를 시작한다. 남성의 내부에서 ‘精’이 쌓이면 모든 남자들은 음란해진다. 청소년기에는 꿈을 꾸어 몽정을 함으로 해서 ‘精’을 배출하고 에너지를 순환시키지만 어른이 된 뒤에는 꿈이 줄어드는 만큼 음란함이 자란다. 흔히 사람들은 대머리가 정력이 좋다는 속설을 믿고 있지만 실상은 정력적인 사람이 대머리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여색을 밝히고 내면에 음란함의 자리가 늘 마련되어 있는 사람의 경우엔 필연적으로 ‘精’을 과소비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몸에 비축된 진액이 아래에서부터 위쪽으로 소모되기 시작한다. 처음엔 요통을 느끼고 그 다음엔 입천장의 연구개가 타는 듯한 병증을 느끼며 결국엔 모발이 가늘어지고 머리가 빠지기 시작한다. 이처럼 남성의 현실은 무섭도록 육신과 본능에 지배되어 있으며 DNA가 보내는 한 가지 신호에 순식간에 사로잡히게 된다. -보다 나은 토양에 최대한 씨를 뿌려라.- 하는 신호가 바로 그것이다.

 현실주의자들은 바람을 피운다. 이상주의자들은 실수를 범하기도 하고 개중에는 ‘오입(원나잇스탠드)’이라는 것으로 육체의 숙제를 해결하기도 하지만 애인을 만들 생각은 감히 하지 않는다. 하지만 현실주의자들은 과감하게 배우자를 속이고 애인을 만든다. 그들은 ‘결혼 서약’ 같은 개념과 ‘말’이나 ‘신념’과 같은 개념이 대체로 희박하다. 또한 자녀가 실망하게 될 일, 과거 아내를 얻었을 당시에 느꼈던 기쁨에 대해 기억하는 등의 상상력과 체감 능력이 빈약하다. 그리고 끊임없이 반복해야 하는 자신의 거짓말에 대한 그릇됨과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다.

 그 밖에도 반복적인 범죄꾼들은 철저한 현실주의자들이다. 살인을 하거나 남을 짓밟는 행위에 있어서 타인의 불행을 상상할 줄 모르며 삶의 가치와 이상 같은 것은 그저 무시해 버린다.

 유심론을 기반으로 도덕과 신념, 때로는 신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 중에도 현실주의자는 있다. 반면에 유물론을 기반으로 물질과 안락만을 중시하는 사람들 중에도 이상주의자는 있다. 그렇지만 대개의 사람들은 관념과 현실 사이에서 적절한 중도의 길을 걷는다. 그리고 치우치고 그릇된 길을 걷다가 파멸에 이르는 사람을 보면 혀를 찰 줄은 안다.

 이제 중요한 화두가 남았다. 문제는 유물론적인 관점으로 유심론을 말하거나 유심론적인 관점으로 유물론에 대해서는 말하는 일이 없는데, 이상주의적인 관점으로 현실을 논하고 현실주의적인 관점으로 이상을 논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이 세상의 싸움과 다툼 중에는 바다를 보기 원하여 해변에 도착하였건만 태풍이 닥친 일로 인해 서로를 원망하는 일이 너무나 많다. 함께 바다를 보기를 원한 것은 이상이며 함께 태풍을 맞이하게 된 것은 현실이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바다를 보기를 원했던 동기를 쓸데없이 태풍과 결부시키기도 하고 태풍 속을 걷는 일의 불편함을 쓸데없이 바다에 대한 실망으로 확대하기도 한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찬돌의 아버지 박준은 현실주의자였다. 그는 찬돌의 어머니 김미영과의 결혼 생활 중에 스스로의 본질이 한 여자로 만족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박준은 현실주의자답게 정부를 만들었고 두 명의 여자에게 사랑을 이분하는 방식을 택했다. 하지만 가정이라는 이상과 약속의 가치를 절대시 하는 김미영은 박준의 변심을 눈치 채자 용서할 수 없었다. 결국 그들은 자아를 돌아보거나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도 없이 이혼을 하게 됐고 그 과정에서 찬돌의 인생도 안정된 궤도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현실적으로 현대 사회에서 부모의 이혼이 자녀들에게 크게 악영향을 끼치는 경우가 흔하지는 않다. 왜냐하면 인간의 기본적인 정서는 출생 후부터 유아기 사이에 대부분 형성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은 신이 인간을 믿지 못하여 그나마 마련하여 놓은 안전장치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는데, 어쨌거나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찬돌과 주리의 삶에 있어서 큰 상처를 남긴 당사자들은 지독한 악연으로 맞물려 있었다. 결혼생활을 미국에서 하던 중에 한국에 입국할 때마다 그의 정부 윤소영을 찾았던 박준은 이혼을 한 뒤 NS 사 한국 지사장으로 근무하게 되면서 그만 균형을 잃고 만다. 그리고 상당한 현실주의자이이면서 세상 모든 사람을 속일 수 있을 듯이 자신의 영악함을 과신했던 윤소영도 가정과 쾌락 사이에서 균형을 잃게 된다.

 지독한 이상주의자인 윤소영의 남편 정민규는 아내의 외도를 눈치 챈 뒤에 자신이 더욱 수세에 몰릴 것이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다. 그리고 당당하게 이혼을 요구하는 윤소영을 이해할 수 없었다. 박준과 윤소영은 그들의 현실주의적인 사랑이 비록 고약한 냄새는 풍기고 있을지라도 머지않아 악취는 대기 중에 희석될 것이며, 결국에는 시련이 거름이 되어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을 피우게 될 것이라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생각은 죽었다 깨어난다 할지라도 고귀한 이상에 대해서 절대 알지 못할 자들만의 일장춘몽인 것이었다. 게다가 두 사람은 이상주의자의 위험성에 관해 주의가 부족했다.

 정민규는 그가 아내를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의 핵심을 끝내 찾아내지 못했다. 정민규가 가족과 자식과 미래를 말할 때 윤소영은 반복되는 과거와 지친 현실만을 들춰냈다. 정민규는 윤소영이 제시하는 현실을 자꾸만 이상적인 관점에서 이해하려 하였다. 따라서 현실을 충족시킬 수 있을만한 세밀한 노력과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고 아내의 마음을 끝내 돌이킬 수 없었다. 반면에 윤소영은 현실주의를 기반으로 한 자아의 관념에 도취되어 스스로를 속이고 합리화 하는 오류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릇된 삶을 바로잡고 있다는 생각에 지나치게 몰입한 나머지 배우자의 가슴 깊은 곳에 분노가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어느 비 오는 날에 정민규는 박준을 찾아가 칼로 살해하였다. 그날. 만일 정민규가 이상주의적인 성향의 소유자이기보다 현실주의적인 성향이 강했더라면, 박준의 중학생 아들이 골프채를 들었을 때 그는 아이마저 살해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가 지독한 이상주의의 성향을 보이지 않았더라면 박준을 살해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궁극적으로 두 부부를 구성했던 네 남녀는 불완전한 관념과 소통의 부재로 인해 두 명의 고아 아닌 고아를 만들어 내고 말았다. 그리고 고아가 아닌 고아 중의 사내아이는 청소년 시절의 추억이 있는 집에서 시집간 어머니가 혹시 돌아오지 않을까 하여 기다리게 되었으며, 고아가 아닌 고아 중의 계집아이는 악몽과 같은 기억이 남아 있는 집에서 아버지가 출감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바둑을 두는 일은 생각의 힘을 기를 수 있는 행위이기에 가치가 있다. 바둑을 잘 둘 수 있게 된다는 것은 전후 상황을 논리적으로 판단하고 상대방의 의중을 정확하게 알게 되는 일이기에 가치가 있다. 인생은 심장이 뛰는 가운데 따뜻한 마음을 나눌 수 있기에 진정 아름다울 수 있는 법이지만, 인생과 우주의 존재를 존재답게 하여 주는 기초단위인 신호와 소통을 바탕으로 한 실체와 실존이야말로 진정 중요하다.

 인간의 입장에서 신과 인간의 차이를 아는 일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우리가 완벽한 소통이라는 명확한 목표를 지닌 채 인생을 대할 줄 알게 된다면, 거듭남의 비밀 정도는 모두에게 허락될지도 모른다. 이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바둑을 두는 사람들은 대부분 바둑이라는 영역에서 거듭남을 체험한 사람들이다. 지금까지 여러분에게 이야기를 들려드린 나의 경우엔 자폐라는 병을 극복하고 세상으로 나올 수 있기 위해 한 차례 더 거듭남이 필요했다. 그러나 그 과정의 고통에 대해선 설명이 불가능하다. 다만 불완전한 나의 어린 시절에 부모님이 늘 곁에 계셨으며, 내 불안한 정신세계에는 두 명의 천사가 들어와서 어른이 되기까지 언제나 함께 하였다는 사실만을 전할 수 있을 뿐이다. 이제 신께서 내게 보내주신 두 천사들이 서로 만나 사랑에 빠지고 운명의 잔혹함에 맞서야 했던 이야기를 이쯤에서 마치려 한다.

 혹시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제 1회 NS 오픈 세계 바둑 대회 5차 예선과 본선에서 있었던 무용담을 여러분께 들려드릴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특히 소더버그 회장이 세상을 놀라게 하기 위해 준비한 세 가지 중에 이제 겨우 인공지능 ‘오메가’에 대한 한 가지만 공개됐다는 사실을 미리 밝혀둔다. 그리고 나머지 두 가지는 소더버그 회장이 직접 이끄는 팀의 전력이 오메가 못지않은 강력한 우승 후보라는 사실과, 32강 월드 챔피언십 특별 서버의 구동 시스템이 오픈되는 순간 전 세계 모든 바둑인들을 경탄케 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후 바둑의 대중화와 세계적인 붐을 일으키는 데에 있어서 크게 기여했다는 사실 정도만 알려드린다.

 마지막으로 여러분께 바둑을 즐기는 일이 생활의 리듬을 망가뜨리거나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외롭게 하는 결과를 낳는다면, 바둑이 지닌 진정한 의미에서 벗어나는 일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그럼 훗날 여러분과 다시 소통할 수 있는 날이 찾아오기를 바라며 작별 인사를 나누고자 한다.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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