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글을 바둑 전문 사이트에 올린다면 어쩌면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 꼴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만, 그래도 모르시는 분들도 꽤 되시는 듯하여 얼굴에 철판을 한겹 두르고 글을 올립니다.

여기 들어 오시는 분들은 바둑을 그냥이 아니라 매우 좋아하는 분들이 대부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바둑을 두기 위해서 필요한 물품 제1호인 바둑판에 대해서는 잘아시지 못하는 분들이 계신 것 같은데, 그래도 애기가라면 어느 정도는 알아 두시는게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가끔 TV퀴즈에서도 바둑 관계 문제가 나오던데, 가족들과 함께 보시다가 다른 문제라면 몰라도 그런 문제라면 자신있게 맞춰 체면도 좀 올릴 수 있지 않을까요?(바둑 안두는 분들은 바둑 문제 많큼 어려운 문제도 없을테니 더욱 힘을 줄 수 있겠죠)

바둑판을 만드는 재료로는 옛날부터 비자나무, 피나무를 최고급으로 했죠. 그런데 현실적으로 바둑판으로 만들만한 그런 나무를 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봐야겠죠. 그러다 보니 수입산 가문비나무로 만든걸 신비자라고 하는 모양이더라구요. 그러다 보니 국산으론 어렵지만 그래도 구할 수 있는 것이 은행나무죠. 어쩌면 근래에 제작 된 것중 최고급반은 은행나무 바둑판 즉 杏子盤이라 해야 할 겁니다. 그런데 사실 그 은행 나무 구하는 것 또한  쉽지 않을겁니다. 실용적인 바둑 판으로는 제 생각엔 아가티스판이 최고가 아닌가 싶습니다. 아가티스(발음이 정확한 건지는 모르겠는데,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에서 수입하는 남양재(라왕)의 일종으로 예전에 수입할 땐 그렇게 불렀습니다.) 는 재질이 매우 부드러운 느낌을 주고, 색깔도 노란 것이, 대번에 '바둑판 괜찮은데' 하는 느낌이 듭니다. 그외에 그야말로 대중적으로 쓰이는 것으로 평판 또는 접는판으로 입자가 고와 그래도 좀 좋은 것은 MDF(섬유보드)판이고, 제일 저급으로 입자가 거친 것은 PB(칩보드)로 만든 것이죠. 길거리에서 파는 다리 달린 바둑판은 대부분이 미송이나 뉴질랜드, 칠레산 소나무로 만든것으로 무겁고 제대로 건조도 안된 것이라 금방 균열이 생기는등 망가지게 되어있습니다. 그거 사실 바엔 아얘 다리 없는 아가티스판이 좋을 겁니다. 그 외에 수입 삼나무로도 바둑판을 만드는데 매우 가볍고 밝으레한 색이 정말 죽입니다. 그것도 소위 바둑 한판 두면 자국이 남는다는(그리고 나두면 다시 복원된다는) 그런 판이죠. 문제는 1년쯤 지나면 그 색이 과도하게 진하게 변한다는거죠. 그래도 신비자 이상으로 좋은 바둑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예전에 직장 분들이 가장 많이 가지고 있던 바둑판중에 하나였죠. 에고 그러고 보니 직장 다닐때 당시 대졸 초임 월급이 40만원이 안되던 시절, 무려 당시 시가 50만원짜리, 30만원짜리 삼나무 바둑판 두개를 갑조 을조 우승 상품으로 내걸고 바둑 대회를 했는데 히유 을조 4강에서 탈락한게 지금도 아쉽게 다가오네요. 4강 상품으로 원목 바둑알통과 바둑알을 받았지만요.

바둑판의 규격이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정규 규격은 가로가 한자 네치(42.42cm)이고 세로가 한자 다섯치(45.45cm)죠. 제가 위에서 고급 수종의 나무를 구하기가 어렵다고 했죠? 그 이유를 이제부터 말씀드리죠. 규격을 말씀드리니 일단 매우 굵은 나무라고는 생각이 드실겁니다. 그러면 얼마나 굵은 나무여야 바둑판을 만들 수 있을까요. 크기가 나왔으니 그 보다는 굵어야겠는데, 그럼 50? 60? ... 물론 그정도로도 바둑판을 만들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걸로 만들어서는 절대로 고급반은 안됩니다. 고급반이 되기 위해서는 최소 지름이 1.2m이상, 왠만하면 1.5m는 되야 제대로된 고급반을 만들 수 있지요. 고급반을 만들려면 가공 할 때 깎여지는 부분을 감안한다면 가로, 세로, 높이를 대략 45 * 48 * 25 정도로 제재할 수 있어야하죠. 쉽게 설명하자면 바둑판을  세워 놓은 상태가 원목을 반으로 쪼개서 세운 한쪽 부분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런데 나이테의 가장 속 선도 바둑판 위에 그어지게 하려면 바둑판의 두께가 두꺼울 수록 나무의 심재 부분에서 멀리 떨어져야하는 것이죠. 그래서 좋은 바둑판이라면 판 윗면의 나이테는 세로로 촘촘하고 간격도 같게 평행선을 달려야하고, 옆면은 나이테가 간격이 매우 넓게 보이고 매끄러워야하고, 바둑 두는 사람의 배앞에 있는 앞면은 나이테가 세로로 형행선을 이뤄야 가장 좋은 것이죠. 결국 그러기 위해선 원목의 굵기가 1.5m정도 되야한다는 겁니다. 우리나라에서 그 정도 굵기의 비자나무 피나무 은행나무 구하는거 쉬울까요? 가문비나 삼나무등 수입목도 그 정도면 특급 규격이죠.

한가지 더요. 바둑판은 왜 정사각형이 아닐까요. 아마 대부분 아시는 내용일지도 모르겠네요. 그것은 사람의 착시현상을 감안한 것이죠. 옛 건물의 기둥을 배흘림으로 한거와 똑 같은 이유죠. 가로 보다 세로가 커야 앉아서 바둑판을 대할 때 그 판이 정사각형으로 보일테니까요. 또 하나 바둑판을 만들기 위해 제재를 할 때 꼭 주의해야할 것이 있는데요, 위에서 언급한 바 있는데 꼭 여유분을 두고 제재해야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충분하게 건조시켜야죠. (톱밥 속에서 2-3년간 건조시키죠) 지금 제가 국산 은행나무반을 하나 가지고 있는데, 두께가 15cm정도 되죠. 제재도 위에서 설명한 것의 80% 정도는 만족시키는 것이니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는 훌륭한 바둑판이죠. 그런데 문제는 그 판을 만들기 위해 제재하신 분이 잠시 착각을 하신겁니다. 보통 정규 규격이 가로 42, 세로 45라고 말을하고 있으니까, 고급반을 만드신다고 그대로 제재를 했죠. 그런데 바둑판을 만들기 위해선 대패질이며, 샌드 페이퍼질도 해야하는데 그걸 생각 못하신겁니다. 최대한 깎지 않고 만들었는데도 만들고 나니 0.3cm가 모자라게 되었죠. 전통적 규격인 척관법으로 따지면 대략 한푼이 부족한 셈이죠. 물론 팔 것은 아니지만 가치로만 따진다면 반으로 줄어버린 거죠. 에구 공짜로 얻은거지만 아까운 것은 아까운 거죠.

여하튼 저는 바둑 실력은 오로에서 겨우 3단 정도이지만 그런대로 훌륭한 바둑판과 알통을 가지고 있죠. ㅋㅋ 그런데 그 훌륭한 바둑판이 어디에 있는지 아십니까? 컴퓨터 책상 아래에 놓고 발판으로 쓰고 있네요. 바둑판에 천으로 덮개를 만들어 쒸어 놓긴 했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