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라밋과 오배로이 호텔

어쨌든 이렇게 하여 이집트에서부터 우리 팀의 문화유산 답사가 시작되었다.

이집트는 국토의 95%가 사막이다. 그래서 카이로, 알렉산드리아 룩소르, 등 사람이 모여 살고 있는 개발된 도시를 제외하면 모두가 사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가 제일 먼저 찾아간 기자지구도 카이로에서 서쪽으로 13키로 정도 떨어져 있다는 사막이다. 이 기자지구에는 두 가지가 유명하다. 하나는 7대불가사이의 하나인 피라밋과 이를 지키는 스핑크스이다. 처음 보는 것이지만 자주 대한 사진 덕분에 뭔가 신비감 같은 것은 덜했지만, 스카이라인에 비친 피라밋의 모서리 선이 어떻게 저리도 자로 잰 듯 곧고 깨끗할 수가 있을까?

 기계로도 들어올리기 쉽지 않는 큰 돌(2.5톤 크기의 화강암)들을 저토록 정교하게 쌓아올린 당시의 토목과 건축과 기하학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며, 피라밋의 네 능선의 꼭지점이 동서남북을 정확하게 가리킨다니 당시에 무슨 기술로 천체와 지구방위를 이처럼 정확히 계산할 수 있었을까?

 그것도 18세기나 19세기쯤의 얘기가 아니다. 이집트에는 크고 작은 피라밋이 30여 개가 있다는데, 그중 최초의 것이 BC 3,200년경에 만들어졌다니 지금부터 5,200년 전의 일이다. 상상이 되지 않아 벌린 입이 닫히지도 않지만 쳐다보는 고개도 아프다. 내 죽기 전에 다시 올 수 있을까 싶어 사진을 찍으려 해도 돌덩어리만 나왔지 삼각형 모양의 피라밋이 잡히질 않는다. 사진은 1.5km 떨어진 곳에 가야 찍힌다는 안내원의 얘기를 듣고서야 고개를 끄덕인다.

 바로 코밑에서 146m를 쳐다보니 고개도 아플 수밖에. 능선의 길이는 186m, 각도는 51도 50분의 경사, 꼭 둥근 지구본이 삐딱하게 걸려 있는 각도와 비슷하다. 또 밑변의 한 변 길이가 230m나 된다니 7대 불가사의의 으뜸이란 얘기가 결코 허명은 아니구나 싶다. 이 위대한 문명을 탄생시킨 주역이 정말로 고대 이집트인이었나 생각하니 그저 감탄사만 나올 뿐이다. 

 세계에서 제일 큰 두 개의 건조물을 꼽는다면, 피라밋과 만리장성이라고 한다. 나일 강 600마일 상류 채석장에서 강과 육로를 이용해 이곳까지 나른 230만 개의 돌로, 10만 명의 노예가 1년에 석 달씩 노동에 동원되어 만들었다는 이 피라밋, 길을 만들고 돌을 운반하는데 10년, 피라밋을 건조하는데 20년, 모두 30년의 역사의 산물을 마주 대하고 있다하니 어찌 감개가 없을까?

 더구나 30년의 역사였다면, 자신의 무덤을 만드는 일을, 왕으로 등극하면서부터 바로 시작한 꼴이니, 먼저 이 규모와 신비성에 할 말을 잃었지만, 그보다 죽음을 통해 영생을 믿고 있었던 인간의 신념이, 이토록 무서운 결과를 가져왔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죽었어도 육체만 훼손되지 않으면 언젠가 영혼이 돌아 온다는 굳은 믿음으로 미라를 만들었고, 이 미라를 보다 견고하게 보관하기 위해 지은 것이 피라밋이기 때문이다.

 또 이들은 동쪽과 서쪽을 삶과 죽음의 의미로 인식했다고 한다. 해가 뜬다하여 생명으로 보고, 해가 진다하여 죽음으로 본다 했다. 그래서 신전은 나일 강의 동쪽에 짓고 무덤은 나일 강의 서쪽에 썼다고 했다. 장례를 지내고 제사를 올리며, 환생을 대비해 미라를 만드는 장제전이 있는 곳도, 모두 나일 강의 서쪽이요, 쿠푸 왕과 아들 카프라 왕, 손자 멘카우라 왕의 무덤인 3개의 피라밋이 나란히 나일 강 서쪽, 이곳 기자에 자리하고 있는 이유도 이것 때문이라 한다.

 안타까운 것도 있다. 문화유산의 훼손이다.

 가는 곳마다 문명의 잔해들이 딩굴고 있다. 문화재가 너무 많아서인가? 아니면 이를 거둘 수 있는 국가적 여력이 없어서인가? 별로 귀한 대접을 받지 못해, 보존은커녕 파괴를 방치하고 있는 듯한 느낌들뿐이다. 피라밋도 예외는 아니다.

 지금은 돌이 쌓여있는 모습이 그대로 보이지만, 당초에는 쌓아올린 4면을 라임스톤(대리석의 일종)으로 미장하여 그 벽면에 빛이 다 반사되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모스크(이슬람사원)를 짓기 위해 이 미장한 돌을 다 뜯어내어, 마치 피라밋의 껍질을 벗겨놓은 듯한 모습을 보고 있을 뿐이다. 세 개의 피라밋 중 중간에 있는 아들 카프라 왕의 것만은 다 벗겨 가지 못하고 일부가 아직 정상부에 남아있다.

 오죽했으면 문화유산 보존사업을 유네스코가 직접 추진하고 있었을까? 이 위대한 문명국이 어쩌다 GNP 1,300불밖에 안 되는 후진국으로 전락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아무리 우수한 민족이라 하더라도 걸출한 지도자의 유무에 따라 그 민족의 흥망성쇠가 좌우된다는 역사의 교훈은 이곳에 와서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꼴이다. 

 또 하나 유명한 것은 하나의 조그마한 호텔이다. 바로 이곳에서 61년 전인 1943년 11월, 우리들이 쉽게 잊어서는 않될 카이로회담이 열린 곳이라 해서다. 이 호텔은 ‘오베로이’란 이름으로 아직도 영업을 하고 있었고, 당시 참석한 정상(처칠, 루즈밸트, 장개석)들을 기념해서 처칠 방, 루즈벨트 방 들이 아직도 있다고 한다.

 암울하고 혹독했던 일제치하에서, 한국의 독립과 연합국의 결전을 선언한 이 곳, 그러나 지금은 그 암울했던 나라가, 독립 후에, 그것도 세계11위의 경제규모를 갖추고 찾아온, 옛날의 그 대한민국의 국민이라 생각하니 감회가 새롭지 아니할까?

 5천년 역사 중 수많은 외침을 이웃들의 도움으로 지탱해왔다는 우리의 역사이고 보면, 우리는 이토록 어려울 때 받은 도움들을 제대로 갚기나 하면서 살고 있는지? 생각이 여기에 이르니 어딘가 부끄러운 생각이 앞선다. 

         다음에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