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여행의 시작과 감동

 여행이 좋은 것은 미지에 대한 설렘과 흥분, 그리고 이어지는 크고 작은 감동들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어쩌다 한번씩 하는 여행은 그 맛을 어디에다 비교할 수가 있을까? 그래서 오랜만에 여행계획이라도 잡히게 되면 마음은 들뜨기부터 하고, 들뜬 마음은 미리 날개를 단다. 

 나는 이렇듯 여행을 좋아하면서도 별로 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국내는 물론 해외도 가본 데가 별로 없다. 현직에 있을 때의 직무출장이 내 여행의 전부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내여행은 주로 도내 중심이었고, 해외는 겨우 두 차례의 동남아 출장과 중국이 전부였다. 그래서 나에게는 이번처럼 지중해를 중심으로 한 인류문명 답사는 미증유의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그것도 서울의 한 문학단체의 권유로 함께 하게 된 것이긴 하지만, 어쨌든, 나는 총 13일간의 일정으로 3개국의 문명을 보고 왔고, 지금은 보고, 듣고, 느낀 감동들을 상기해 내기가 바쁘다. 여행을 하려면 젊어서 하라는 이유를 비로소 알 것만 같다. 여행의 효율성도 그렇지만, 돌아서면 잊고 마는 기억의 한계가 더 큰 이유가 아닌가도 싶다.

 우리 일행이 터키항공편으로 인천공항을 이륙한 것은 2004년 4월 5일 오후 3시, 이번 일정은 그리스와 터키를 보기 전에 이집트부터 돈다하여 직항로가 개설된 이스탐불을 경유해서 카이로로 가기 위해서다. 몸이 부상하는 느낌과 날개 너머로 바다와 구름을 보니 드디어 여행의 시작이구나 싶다. 그래서 그런지 여행 첫날부터 미증유의 사건이 시작된다.

 제일 먼저 온 것은 일상과 달리 일생에서 가장 긴 하루를 보낸 것이다. 아침 6시에 기상한 후 인천공항을 이륙한 시간이 오후3시, 그로부터 우리나라와 위도를 같이 하면서 서쪽으로 9시간을 날았는데도 해가 지질 않았다. 차고 간 시계로는 밤12시였는데도 바로 그 시간에 우리는 날개를 붉게 물들이는 불타는 저녁노을을 즐기며 카스피해를 날고 있었다.

 그래서 오늘은 가장 긴 낮이 된 샘이다. 결국 6시간의 시차 때문이기는 하나, 아침 6시에서 저녁 6시까지 12시간을 낮이라 한다면 이 날은 18시간의 낮을 보낸 꼴이다. 그래도 서울에서 이스탐불까지는 11시간을 날아야 한다는데 9시간밖에 날아오지 못했으니 아직 2시간을 더 날아야 했다. 

 이 날은 또 2번을 더한 5번의 식사를 한 날이기도 하다. 아침과 점심은 집과 공항에서, 그리고 기내식이 3번이니 하루가 길어진 덕에 5번의 식사를 한 꼴이다. 이륙한지 1시간 반쯤, 기내식으로 저녁(?)이 나오고, 식사를 마치자(5시쯤) 태양이 작렬 하는 한 낮인데도 바로 창문을 내리며 강제 취침을 시키더니, 한참 후 또 밤찬(?)을 먹인다.

 이때가 차고 간 시계로는 밤12시 반, 현지시간으론 저녁6시 반이니 밤찬이 아니고 그들의 저녁인 모양인데 그럼 먼저 먹은 것은 또 무엇인가? 어쨌든 2시간 후 8시 반에 이스탐불에 도착, 공항에서 2시간 반을 더 기다렸다가 밤11시 카이로 행 비행기를 탄 후 또 기내식 밤찬이 나왔다.

 좁은 비행기 안에서 비육우처럼 운동도 못한 채 5번의 식사, 더구나 배설을 못해 배가 좀 거북하긴 했어도 맛도 좋았고, 소화에서도 이상이 없었다. 먹는 것마다 그저 맛있고 즐겁기만 했다. 이게 바로 여행의 힘이요, 불가사의한 여행생리인 모양이다. 

 이 날은 또 가장 늦게 자고 가장 일찍 일어난 날이기도 하다. 카이로에 도착시간이 밤 1시 15분, 이스탐불과 카이로 간 시차가 1시간이니 카이로 시간으론 밤 12시 15분, 짐 찾고 공항나선 시간이 밤 2시, 호텔 와서 씻고 침대에 누운 시간이 밤 3시, 차고 간 시계로는 이튿날 아침 10시, 그러니까 하룻밤을 새운 후 아침 10시에 잠자리에 든 꼴이니 꼬박 28시간만에 잠자리에 든 샘이다.

 그리고는 3시간 후인 6시 모닝콜, 7시 아침식사, 8시 버스탑승이라니 먼저 건강이 견뎌 줄까도 걱정이지만, 이쯤 되니 이 나이에 무엇을 하자고 이 먼 곳까지 왔는지 그것부터가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은 새로운 세계에 대한 흥분 때문인지, 아니면 오면서 주는 대로 먹기만 한 탓인지 지치지 않고 그럭저럭 견디면서 따라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하루에 여덟 시간을 자고, 또 세끼를 먹어야 되는가 했던 나는, 뭔가 뒤죽박죽이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만 했다. 그러나 일상의 틀에서 벗어난 나만의 공간에서, 두 팔 벌리고 가슴을 활짝 연 나신처럼 홀가분한 자유를 찾아 훨훨 떠나는 것이 여행의 참맛이라면, 하루에 다섯 끼를 먹던 스물여덟 시간만에 자던 자유롭고 행복하면 그만이지 그딴 게 다 무슨 상관이랴 싶었다.

 어쨌거나 하늘에서 본 세상은 새로웠다. 이 많은 물이 어디서 났을까 하고 볼 때마다 궁금한 푸른 바다, 끝이 보이지 않던 황량한 사막, 저런 게 백년설인가 싶은 장엄한 설산, 이어지는 산과 끝없는 땅들, 그리고 그 사이에 끼어있는 바다 같은 호수가 다 새로운 만남이었다.

 더구나 어두운 밤에 상공에서 내려다 본 1,200만의 도시 이스탄불의 화려한 야경과, 어딘가 조용하고 어두운, 신비스런 카이로의 야경까지,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들이 여행에 필요한 에너지원이 되고 있는 게 틀림이 없었다. 이래서 여행은 신비하고 즐거울 수밖에 없는 것인가 보다.    

                      (다음에 피라밋과 오베로이 호텔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