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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산책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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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충, 프로도 넘어야 할 인식론적 장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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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토실은 침묵! 침묵! 두 대국자는 복기도 잊었습니다. 침묵!
웬 멘트일까. 다름 아닌 월요일 이창호 9단(흑)과 이세돌 9단의 제38기 왕위전 도전 3국의 마지막 해설 멘트였다. 반집이 이창호 9단에게 기울어져 있던 국면. 그러나 5시 48분을 막 지나는 순간 승부는 역전되었다.
기보의 우하귀를 보자. 백1 이을 때 흑2 따낸 수가 패착. 3에 이어두었으면 흑이 한 수 빠른 수상전이었다. 그러나 백3 끊겨서는 역전이다. 백13 이후 흑A 백B로 백이 이긴다. C가 흑에게 자충(自充)이기에 백이 한 수 느는 것이다. 너무나 급전직하로 역전된 상황이기에 검토실도 해설자도 대국자도 침묵밖에 할 말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때 나에겐 다른 기보가 두 개 떠올랐다. 하나는 좌하귀. 언젠가 이 칼럼에서 보여드린 것인데, 1953년 제8기 본인방전 도전 1국에서 다까가와 9단이 놓친 것이다. 백19 백21이 절묘한 수순으로 백23 끊어 수가 난다. 흑은 귀를 살리려면 a로 먼저 따내야 하기 때문에 백b로 큰 손해를 입는다. 역시 자충을 이용한 것.
또 하나 떠오른 것은 며칠 전의 인터넷 대국. 상변 흑14 끊을 때 백15 단수가 실수. 18에 두어야 했다. 실전은 흑16 흑18이 절묘한 수순이 되어 백이 자충에 걸렸다. 다음 ‘가’는 ‘나’로 잡힌다. ‘다’에 둘 수 없기 때문. 백은 라, 마, 나까지 후수로 살 수밖에 없었다.
초읽기에 몰려서 일어난 비극이라고 하기엔 뭔가 석연찮다. 그렇다. 상변의 흑 석점과 좌하 우하의 2선 돌 3개가 서로 닮기는 했지만, 나를 잠깐 잠기게 한 것은 그런 형태상의 닮은꼴이 아니었다.
자충을 개념으로 붙잡고는 있으나 그에 대한 시각적 표상을 깊이 인지(認知)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듯하다. 문제로 주어진다면 한눈에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자충의 맥점이긴 하지만, 그에 대한 그 어떤 인식론적 장애가 프로의 내면에도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그럴 것이다. 사고가 자유롭다는 프로의 정상도 세계를 이해하고자 공부하는 학생과 큰 차이는 없을 것이다. 학생들이 공부 과정에서 여러 가지 인식론적 장애를 만나고 극복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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