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백운(靑山白雲)이다. 부처님을 마주하고 좌청산 우백운이니 청산은 언제나 그곳에 있는것이고 백운은 한철 한시각 잠시 머무는것이니 참으로 절집의 언어로 적절하다. 이 절집을 지키는 승(僧)이 청산이고 절집을 거쳐가는 수많은 승려들이 백운이다. 청산은 단단하지만 언제나 그자리여 답답하고 백운은 풍운이여 알싸하지만 무엇인가 허전하다.

청산도 백운도 아닌것이 머리검고 두발로 걷는 양족존(兩足尊)이라고 멀리 백암산까지와 백양사 일주문의 문턱에서 헛발질 헛기침으로 산책을 한다. 일주문을 지나 해탈교를 지난다. 해탈은 피안(彼岸)이다. 육조(六祖)는 '단경'에서 이언덕과  저언덕을 말했다. 이언덕은 내가 발딛고 사는 이곳이고 저언덕은 내가 정신으로 지향해야 할 저곳이다.

나는 절집에오면 사물(四物)을 먼저본다. 지심귀명래가 울려퍼지는 절집에 황혼이 내리는 순간 바라보는 사물은 아에 나를 미치게한다. 대웅전은 찰지고 단정하다. 일대사(寺)의 대웅전의 우측은 범종각의 자리다 . 좌측은 텅빈 공간이다. 이것이 색과공의 조화를 생각한 절집의 양식이란다.

범종 법고 목어 운판이 사물이다. 사물은 세상을 들깨우는 소리판이다. 사물성(聲)은 세상의 인간과 축생을 부촉하고 삼악도에 고통받는 중생은 물론, 윤회의 과정에있는 중음신(中陰身)까지 법고청신을 들려준다. 천수천안을 본다. 삼백존불중 하나 백의존(尊)도 본다. 그 앞마당에 오두막한 삼층석탑을 본다. 석탑을 손으로 쓰다듬는다.

나는 9년전 이곳 백양사에 왔었다. 아이를 임신한 처와 동행이었다. 나는 석탑을 쓰다듬으며 '불소행찬'의 한구절을 뒤씹는다.

-나는 무덤사이에 시체와 해골들과 지낸다. 목동이와 오줌을 싸고 침을 뱉기도 한다. 그들중 한명은 나의 귀에 꼬챙이를 쑤셔 넣기도 한다. 나의 목과 얼굴에는 오랜 먼지로 인해 저절로 가죽옷을 마련한다.

지난 9년여가 한편의 서사로 떠오른다. 그러나 이 아름답고 따뜻한 탑앞에서 나의 서사는 한갓 여름낮의 꿈일뿐이다. 아이를 낳고 아이가 두살때 이별을 했다. 그리고 백양사에 오기 보름전 아내와 아이와 다시 합쳤다. 처와 아이가 나를 떠났던 오년여 나는 외로웠고 고독했다. 스스로 준만큼 받는것이다를 자고(自苦)하며 설림미망(舌林微望)으로 칩거했었다.

법당 강원 율원건물들이 크다. 단청의 화려장엄함은 차라리 졸도할 정도다. 나는 할말을 잊는다. 위대하다 .석존이시여. 존경하옵나니 불법이여를 위칠것인가. 물신(物神)이 지나친 세상이다. 세상은 물신의 포로가 되어 미쳐돌아간다. 그러나 이또한 엄혹한 현실이고 세상의 적나라한 모습이다. 존중할 일이다.

번쩍이는 청산의 승려들이 분주하다. 기사까지 부리는 고급승용차에 앉은 승려를 보면 저 사람이 과연 삼귀(三歸)를 알까 자문한다. 물론 육조의 삼귀야 줄줄 외울것이다.

-법을 좃아 생각하는 것이 변하는 것이다. 순간 순간 생각하는 것이 몸을 지키는 것이다. 스스로 깨달고 스스로 닦는것이 귀의니 가죽과 살은 육신의 집일뿐 귀의할곳은 아닐것이다. 하여 삼신(불)을 깨달아야 하나니 이것이 대의를 아는 것이다.(從法身思量卽化身念念善卽是報身. 自悟自修卽名歸依也. 皮肉是色身是色身舍宅不在歸依也.但五三身卽識大意.)

그러나 입으로 위우는 '삼귀'가 무슨 소용이랴. 책으로 배우고 가르치는 '사홍서원'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 시간이 되어 절집을 떠나며 나는 삼층석탑에 합장을한다. 나는 지심귀명래를 모르고 사홍서원과 관계없지만 절집이 좋고 부처에 거부감이 없기에 그저 불학무식한 마음으로 나무아미타불을 뇌깔일뿐이다.

백양사 삼층석탑을 쓰담듬다가

돌아간다.

기억하라.

일주문 내려가는 솔밭길에

만남과 이별의 고통이 쓰러졌음을

나는 아직 울 눈물이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