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판의 바둑이 인생을 닮았다면,,,]

(평생을 사랑만 받아온 나, 한 번도 남을 사랑 한 적 없었지. 모두가 내 손을 놓아 버렸고  나 또한 그들의 손을 잡지는 않았지만,  하늘의 그물도 거슬려 바람처럼 떠돌던 나의 영혼,  세상의 사랑 산처럼 쌓였건만 돌아보지 못한 나의 참회,  용서하라 나의 사랑,  나의 소망... 이제야 나를 사랑하는 법을 터득했으니...)

봄의 정령이 들창 앞에 산들 거리는 바람 소리를 내기에 나는 발신지 없는 바람의 엽서를 들고 남도의 하늘밑으로 와  한 산등선 아래 마을에서  오체투지로 납작 엎드립니다. 영구산 , 거북이를 닯은 등선 아래에서 대숲 소리에 잠들고, 개울물 소리에 잠깨며,  졸리면 자고  배고프면 밥먹는 안빈의 일상을 보내며  아 나는 잠시 세상의 것들과 소통을  끊습니다.

어지러운 일상 ,  세상 살이의 연과  매듭마다 꼬이고 쌓여만 가는 숙제들을 잠시 뒤로 미루고  남도의 아름다운 자연과 봄의 소리를 벗 삼아  지나가는  시간을 손잡고  나를 돌아 보는 순간은 행복입니다. 어디 주머니가 풍족해야 하는 일입니까. 없으면 없는데로 떠날 수 있는것이 여행... 그리하여 여행은 역말살이 끼어야 하는것,  그렇지 못한 사람은 달리는 기차를 바라보며 꿈이나 꾸어야 합니다.

미당 서정주의  영혼이 머무는 선운사를 구경 하고,  눈푸른 운수납자들이 용맹정진 하는 백양사의 쌍계루에 앉아 주렴을 감상 하다가  나는 다시 몸을 훌쩍 날려 내가 묶고있는 영구산의 산마을로 돌아 옵니다. 가는 곳마다 가람이요 가는 곳 마다 호수인 남도, 이곳은 분명 축복의 땅 , 예인의 고장입니다.

다시 순천의 송광사를 찾아 갑니다. 판사 스님, 효봉선사의 친필 서신을 보고  앙증 맞아라 작고 작은  세심천 옆의 작은 부처님께  합장 하고 나는 세상의 모든것들에 감사와 속죄의 경배를 합니다. 아침에 죄짖고 저녁에 참회하는 이 못난 중생을 어찌 합니까.  한낮에 거짓을 뇌깔이고 한밤에 후회 하는  이 중생을 어찌 합니까.

나의 기도와 경배는 오래갑니다. 풍경 소리 바람에 딸랑거리고  사시 공양을 알리는 예불 소리 정겨운 경내에서 나는 뜻 하지 않은 사람을 만납니다. 만난지 3년도 넘은 한 선배를 절집에서 만난것은 분명 또 다른 경험이며 인연입니다.

'아우...'

'아니 형님...'

그는 한 때 중부권의 거대 폭력 조직의  오야봉으로  검,경에 조직이 와해 된 후, 나와도 소식이 끊겼던 탓으로  반가움이 컷습니다. 나와는 조직의 규범이나  금도와 관계없이  세상사 인연으로 만나 흉허물없이 지냈던 사이로  그 또한 오랜 도피 생활에 지친듯 그저 반가움을 표했습니다. 인연은 아름다운 것이지만 인연은 또한 괴로운 것이기도 합니다. 그것을 이 선배가 나에게 증명 하고 있지않습니까.

오랜만에 만난 나와 선배는  절 밑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운주호반으로 가  낚시를 했습니다. 아니 선배가 늘어 놓은 텐트와 낚시대 앞에 앉았다고 하는 것이 맞는 표현일 겁니다. 선배는 그렇게 호수가를 떠돌며 도피 생활을 하고 있었던겁니다. 눈물이 났지만  그의  폭풍같던 장부의 삶을  기억 하던 나는 눈물을 보일 수는 없었습니다.

'바둑 한 판 어때?'

'바둑요?'

선배는 뜻밖에도 바둑 한 판을 청해 왔습니다. 강 3급이던 선배의 기력을 알고는 있었으나  이 판에 바둑이라니...  더욱 놀라운것은 선배는 승용차 안에 바둑판과 몇권의 바둑책을 함께 갖고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선배의 도피 생활에 바둑이 친구가 되어 주고 있었던 겁니다. 어디 바둑이 배반을 하던가요. 어디 바둑이 거짓을 하던가요. 두는 대로, 수 나는 대로 흐르는 것이 바둑이라면 지금의 선배의 삶에 바둑은  거의 유일 한  애인일 터이죠.

3점 접 바둑이 주암호 푸른 물결옆에서 시작 되었습니다. 다소 버거운 치수를 요구한 선배는 시간을 무제한 사용 하며 한 판의 바둑을 두기 시작 합니다. 그속에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행주에서 짜지는 물처럼 뚝뚝 떨어지고... 선배의 양 미간에 반짝이는 눈물이 보였습니다. 바둑은 선배의 흑의 거대한 세력속으로 단기로 뛰어든 백말이 커지며 대마몰이가 되어 끝내 함몰 직전에 치달으며 프로들 바둑에서나 볼 수 있는 장고가 시작되었습니다.

바둑판이 뚫어져라 응시 하는 선배를 남겨 두고 나는 호수가를 걸으며 긴 한숨을 내 쉽니다. 아직도 그 선배는 망부석 마냥 그 자리를 지키고 앉아 침묵의 시간과 악수하고 나는 호수를 바라보며 눈물을 닦았습니다. 그는 간단하게 포기 하지 않을 겁니다. 그리 간단한 사람이라면 조직의 리더가 아닐 것이며 결코 어둠의 세계와  손잡지 못했을터이죠.

여기서 나는 선배에게 한 마디  해줘야 합니다. 위로와 애정의 입에 바른 소리 보다는, 보다 건강 하고 선배나 이 사회에 함께 도움이 되는 실질적인 충고 말입니다. 그것은 자수를 권유 하는 그것입니다. 그러나 나의 충고가 어디 강당키나 하겠습니까?  자기 의지로 움직이는 강철의 사내에게 말입니다.

'안된다. 안돼...'

선배는 투석을 하고 쓸쓸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 보며  한 마디 합니다.

'니가 볼적에 나는 어찌해야 한다고 보나?'

'형님 , 물어 보시니 말씀드립니다. 다시 두어야죠.'

'다시... 바둑처럼...'

우리는 더이상 말 없이 호수가를 떠나 각자의  도상에 다시 섯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은 수배자를 보면 신고를 해야 하지만,  숨겨주거나  도피를 직접 도와 주지 않은 바에야 처벌되는 법 조항은 없습니다.  더구나 우연으로 길위에서 만난 이런 부자유한 경우에는 더욱... 시비가 두려 운것이 아니라  나는 돌아 오는 발 길이 천근 만근 이었습니다.

산 아래 민박으로 돌아와 선배와의 바둑을 다시 복기를 해봅니다. 과연 대마는 살 길이 없었습니다. 선배는 바둑판 위에서 지금의 자기 자신의 처지를 간파 하고 필사적으로 생도를 생각했던 것입니다. 두집이 없는 대마가 돌아 가 숨쉴 귀로가 있느냐, 거대한 흑세력 안에 철저하게 포위된 상황은 도무지 암흑이고 절망 자체였습니다.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아마 선배도 불면의 밤을 나와 함께할 겁니다. 새벽이 오고 동창이 훤 하게 밝아 와도 바둑판위의 대마는 살아 날 길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살수 없는 돌은 이창호도 조훈현도 어찌 못하는 것 , 나는 선배가 마음을 다시 추스르고 자수를 해  다시 한번  인생을 시작 하는 모습을 기대 합니다. 인생이 바둑과 닯았다지만  그것은 맞지 않는 말입니다. 다시 둘 수 있는 바둑과  한 번 접으면 끝인 명이 어찌 같을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러나 그것이 과연 맞는 말일까요. 실패한 인생은 다시 시작 할 수 없는 것일까요. 인연과 연기와 윤회의 바다위에서 ................ 가면 오고  오면 가는 대 자유와 순리앞에서  언제라도 다시 시작 하는 삶이 있다는 것을  그 선배는 깨달기를... 나는 다시 저녁 운주사 천불천탑앞에서  바라고 또 바랬습니다.  선배는 얼마후 자수를 했고 지금은 00교도소에서 복역중입니다.

ㅡ 있다 그러나 없다[화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