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병상에 있었다는 핑계로 이름만 걸어놓고 글을 올리지 못해 송구한 마음이다.
바둑사이트라 바둑에 관한 글만 올리고 싶은데, 단조로운 일상이 반복되다 보니 체험이 있을 리 없고 그러다보니 그만 이렇게 되고 말았다.
어제 농심배를 관전하던 나의 머리에 번쩍 전기불이 지나갔다.
없는 체험을 만들어서라도 11월이 다하기 전에 글을 올려야겠다는 생각이 그것이었다.
그런 마음을 가진 탓인지 어제 밤 꿈에 아내와 아이의 얼굴이 보이기까지 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야릇한 마음이 들고 농심호텔로 달려가야겠다는 생각에 정신마저 혼미해졌다.
일단, 회사에 전화를 걸어 땡땡이(?)를 선언하고는 농심호텔로 부리나케 달려갔다.
노오란 은행잎이 바람에 깔려가는 온천장 입구에 도착하면서 나의 마음은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집에서부터 편도 40km의 거리였지만 멀다는 느낌 하나 없이 달려온 셈이다.
아내와의 추억, 나의 단란했던 한 때가 고스란히 녹아있는 농심호텔(예전 동래관광호텔)이었다.
아이와 함께 온천욕을 즐기던 허심청, 아내와 소주잔을 곁들이며 먹던 석쇠 꼼장어 구이, 호텔 앞 유명한 순두부집 모두가 아련한 옛 추억을 일깨우는 곳이었다.
헌데 성급한 마음에 달려온 나머지 그만 대국 시작 시간을 깜빡하고 말았다.
삼성화재배와 착각을 한 나머지 오후 2시 대국인 줄 모르고 오전 10시인 것으로 안 것이다.
할 수 없이 허심청에서 목욕을 하고 꼼장어집에서 백반 한 그릇을 뚝딱해야했다.
차라리 잘 됐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대국이 시작되면서 나는 검토실이 아닌 대국실로 달려갔다.
호텔 안내직원이 나를 노려보는 듯 했지만 핸드폰을 꺼내며 기자인 척 당당하게 대국실로 들어가니 이미 많은 기자들이 카메라를 눌러대고 있었다.
이미 반상엔 목진석사범의 흑돌 하나가 놓여 있었고, 요다9단은 반상을 노려보고 있었다.
내가 카메라를 작동시키려는 순간 요다9단의 소매가 불쑥 하늘로 향하더니 도끼 장작을 패듯 백돌 한 점을 놓는데 그만 백돌이 데르르 구르고 말았다.
놀라운 일이었다.
고개를 숙여 미안하다는 표시를 하고 요다9단이 착점한 곳은 놀랍게도 대고목, 나의 눈이 크게 떠지지 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예전 매니아광장에 올린 나의 글 중에 꿈속에서 요다9단과 대국을 하던 내가 요다9단의 장작패기 실패를 언급한 적이 있었는데, 현실에서 그것도 내가 보는 앞에서 요다9단의 장작패기 실패가 등장하다보니 정말 묘한 일이란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대국실을 나오며 나는 요다9단의 패배를 선언해 버렸다.(^^)
누구도 알지 못하는 이 굴초의 저주였던 셈이다.
검토실로 가니 검토실 앞에 웬 꼬맹이 하나(나중에 알았지만 이재성군)가 아빠의 손을 잡고 비실거리고 있었다.
아빠되시는 분이 내가 진행자쯤 되는 줄 알고 들어가도 되느냐고 묻는다.
나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내심 걱정이 되었는데 그 누구도 제지하는 사람이 없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아직 프로기사들은 보이지 않는데 김승준사범만 해설 때문인지 노트붘앞에 앉아 있었다.
조금 있으니 김인국수, 하찬석국수, 후야오위8단, 야마다기미오9단, 박정상사범이 차례로 모습을 보였고, 검토가 시작되었다.
검토실엔 사이버오로 대국실이 대형스크린에 비춰지고 있었고, 바둑티비 생중계도 시작되고 있었다.
이 때 미모의 중년 여성 한 분이 나에게 다가와 속삭이듯 말했다.
프로기사들 사인을 받고 싶은데 누가 누구인지 모르겠다는 거였다.
나는 여성만 보면 이상하게 용감해지는데(?) 이게 무슨 횡재냐는 생각이 슬며시 들었다.
멀리 보니 프린트기가 보였고 A4지가 꼽혀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얼른 한웅큼을 훔쳐서는 여성과 나눈 뒤 함께 프로기사들 사인을 받기 시작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누군가의 사인을 받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검토는 3개진영으로 나누어 이루어졌다.
한국프로팀, 중국프로팀, 그리고 아마잡탕팀.
처음 나는 멋도 모르고 아마잡탕팀의 검토를 주도했다.
인터넷 급수로 15급이라는 중년여성, 4단이라는 중년 남성, 꼬맹이 그리고 내가 아마잡탕팀이었는데, 4단과 15급은 나의 검토에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데 꼬맹이가 자꾸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는 게 영 마음에 걸렸다.
“어이 꼬맹아, 니 몇 급이고?”
“인터넷으로 6단 두는데요....근데 아저씨는 얼마 두세요?”
“,,,,,,,,,,”
내가 잠시 숨을 고르는 사이 이 꼬맹이가 돌을 주르르 놓는다.
그 속도가 어찌 빠른지 나는 한참을 보고서야 꼬맹이의 뜻(?)을 헤아릴 정도였다.
“니, 몇 살이고?”
“10살인데요...”
이 때 사이버오로의 손종수님이 우리 검토진영으로 와서 말을 건다.
“모두 함께 오신 거에요?”
아마 함께 모여 웃으며 바둑돌을 놓는 모습이 한 가족처럼 보였나 보다.
모르는 사람들끼리 처음 만나서도 마치 한 가족처럼 보이게 하는 게 바로 바둑의 매력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이제 아마잡탕팀의 검토 주도권은 꼬맹이에게로 넘어갔다.
꼬마는 과자를 연신 씹으며 돌을 놓고 있었고 나는 커피를 연신 빼 먹으며 꼬마의 손놀림을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몇 집?”
김승준사범의 목소리에 홍민표사범이 대답하며 싱긋 웃는다.
“창하오9단이 20집이라는 데요....”
중국팀은 바둑돌을 걷더니 목진석사범이 사석작전 편 곳을 다시 검토하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한참 반면을 응시하더니 모두 검토실을 나간다.
바둑은 끝나지 않았지만 승부는 이미 끝났다는 뜻이리라.
나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생전 처음 해 본 나의 프로대국관전은 그렇게 끝났다.
요다9단의 첫 착수가 나의 저주가 아니었어도 나도작가 코너에 글을 올릴 수 있도록 해 준 2007년 농심배 관전은 오랫동안 나의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프로기사도 아니라며 사인을 거부하던 손종수님이 나의 사인지에 써 준 “건강하셔서 기쁨니다”란 문구가 돌아오는 발걸음에 뒤섞여 더욱 유쾌한 하루였다.
‘목사범님 3연승 축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