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나서는 그녀를 하시모토는 사무실 구석에서 바라보았다. 그녀가 무슨 느낌에서인지 한 번 더 뒤를 돌아보는 바람에, 얼굴을 더 보았다는 사실에 기뻐하는 자신이 무척 어색했다.
가족과 이혼을 한다는 것은 무척 힘겨운 일이다. 한때는 세상을 만만하게 여길 만큼 자신감에 차 있던 아내는 갑작스럽게 당한 교통사고로 뇌를 다쳤다. 디자이너로 업계에서 최고의 자리에 서겠노라며 각국을 누비던 그녀는, 황급하게 병원으로 찾아간 그를 알아보지도 못했다. 사고로 뇌세포가 손상을 입었고, 뇌에 차 있는 양수가 세포를 압박해 기억 회로가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병원 측은 설명했다. 몸이 양수를 흡수하면 기억 중 일부가 살아날 것이라며 병원에서는 수술을 권하지 않았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나자 그녀는 기억 일부를 상실한 채 퇴원을 했다. 퇴원한 그녀 앞에 닥친 것은 불행히도 일부 뇌기능의 상실이었다. 그녀에게 디자이너로서의 능력이 상실되었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 빠진 그녀는 망가진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지 못하고 회피하느라 술에 빠져버렸다. 그녀를 회복시키려고 몇 년이나 노력하던 그도 그녀를 포기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상처를 안고 일에만 몰두해 있던 그에게 오늘 한 여인이 불쑥 걸어 들어와 버렸다. 무엇으로도 설명이 되지 않을 이 상황! 10대처럼 풋사랑을 느낄 나이도 아니고, 여자를 모르는 순수함을 가진 것도 아닌 자신이 이런 감정에 빠지는 것이 스스로도 어처구니없지만, 분명한 것은 그는 처음 본 그녀로 인해 자신이 변해버렸다는 사실이었다.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그는 언제 다시 한국에 출장을 갈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빨리 한국에 다시 갈 수 있는지. 그녀를 다시 만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1998년 신년을 맞았지만, 새해에 대한 기대는 어디에도 없었다.
줄줄이 이어지는 산업 전반에 걸친 부도사태는 하루에 100개 업체를 넘기기도 했다. 이렇게 넘어진 업체를 해외의 투기자금들과 일본의 지하자금들은 주워 담기 바빴다. 경매를 통해서, 투자를 통해서, 적대적 인수를 통해서··· 시장에는 매물이 넘쳐났다. 금융업, 제조업에 이어 대학까지도 팔아야 하는 돈가뭄이 이어지며 한국은 외국 투기자금의 천국이 되었다.
이 와중에도 서민들에게 아침과 저녁은 번갈아 반복되었다. 살아있는 목숨들은 무엇이든 먹어야 했고, 어디에서든 잠을 자야 했으며, 식솔들을 먹여야만 했다. 전쟁 통에도 생명은 태어나고, 들꽃은 피어나듯이, 외국 자본에 의해 국권을 침탈당한 한국에도 서민들의 삶은 이어지고 있었다.
대중들은 알고 있었다. 지금 이 땅에서 또다시 경제적으로 일본의 침략이 자행되고 있음을! 현명한 이 땅의 국민들은 옛날 임진왜란을 맞아 의병을 일으켰듯이, 일본제국에 맞서 독립운동을 했듯이, ‘금모으기운동’으로 무너진 나라의 경제를 구하기 위해 일어서기 시작했다. 그 참여 열기는 참여한 사람들 자신마저 놀랄 만큼 폭발적이었다. 1월 5일에 시작된 이 운동은 1월 말까지 27일 동안 무려 165톤이라는 어마어마한 실적을 나타냈다. 세계의 언론은 이 사실을 대서특필했다. 한국을 집단주의의 대표적인 표본이라고 사회 심리학자들은 정의를 했고, 특히 일본인들은 놀라움을 넘어 충격으로 받아들였다. 그들의 뇌리에는 삼일만세운동과 자국에서는 볼 수 없는 의병활동에 대한 기억이 남아있었기에, 이 시대의 한국인들에게서 느끼는 단합된 힘에 경탄을 금하지 못했다.
한영운은 감격에 겨워 목이 메었다.
이 나라의 국민들이 가진 힘을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이렇게 거대하고 도도할 줄은 짐작하지 못했다. 언론에서 말하는 제2의 국채보상운동이라는 표현이 한 치의 어긋남도 없었다. 그와 연락이 닿는 모든 해외의 지인들과 국내의 고위 관료들도 모두가 놀라며 민족의 저력에 감탄했고 자부심마저 느낀다고 말했다. 세계 어디에도 없는 자랑스러운 국민!
한영운은 일본 정부의 주요 인사들이 당황하고 있음을 알았다.
앞으로도 수십 년을 한국을 착취 할 기회로 삼고자 했던 저들이었기에 한민족의 단합된 저력 앞에 내심 경외의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었으며, 그들의 전략을 수정 할 필요가 있음을 인정했다.
“한국인 개개인을 만나면 나약하고 이기적인 면이 많아서 때로는 놀라기도 하는데, 이 민족은 필요한 때가 되면 이렇게 똘똘 뭉쳐서 위기를 극복해내니 그 속을 알 수가 없는 족속이란 말이야.”
아토는 방위상을 만난자리에서 당혹감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러게 말이오. 어떤 자들은 나라를 팔아먹는 일조차도 눈 하나 깜짝 안하는데, 이렇게 뭉쳐서 대들 때면 마치 태산 같은 두려움마저 느끼게 하니, 이 민족을 나도 도무지 모르겠소.”
“상황이 이렇게 바뀌면 얼른 치고 빠지는 전술이 낫겠소. 자칫 우리 자본들이 한국에 묶이는 일이라도 생기면 큰 낭패를 당할 것이오.”
‘금모으기운동’을 계기로, 시간이 흐르면서 국민들은 냉정을 되찾고 이 난관을 극복 할 자신감도 조금씩 되찾아갔다. 물론 경제적인 혼란은 아직 하나도 극복되지 않았다. 오히려 각종 경제지표는 나빠져만 갔지만, 견뎌낼 자신감을 갖게 된 한국인들은 당황하지 않고 현실을 맞닥뜨려 나갔다.
최윤경은 시장에서 만나는 동네 사람들의 얼굴에서 두려움 대신 자신감이 보이는 것을 느꼈다. 일자리를 잃고 실의에 차 있던 최선애도 점점 기력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녀에게는 동생 최선미를 시집보내야 하는 큰 일이 앞에 닥쳐 있었다.
“고모, 이 어려운 시기에 결혼식을 하는 것이 맞기는 한 거야?”
“굳이 의미 있는 날에 하고 싶어 하잖니. 선미는 그렇다 쳐도 나는 설 군이 먼저 수요 집회가 300회 되는 날에 결혼하자고 청했다는 사실이 참 신기해. 젊은이들 중에 그런 일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 그런 두 사람이 만나기도 쉽지 않을 텐데, 그 날에 의미를 두고 결혼을 생각했다는 게 나는 설 군이 너무 기특하다.”
“고모의 조카사위 사랑이 과하다. 나는 그런 행사에 관심도 없고 의미도 두지 않는데, 두 사람이 특이한건 인정해!”
“네가 이상한거야! 어떻게 수요 집회에 의미를 두지 않을 수 있어. 네가 무척 현실적인 거 잘 알지만 너무 현실적이라서 염려스럽다.”
“고모 걱정 마. 관심이 없는 거지 나쁘다는 건 아니야.”
하시모토는 다음 달에 있다는 한국 거래처 최선미의 결혼 소식에 몹시 기뻤다.
그동안 몇 차례 한국에 출장을 다녀왔지만 그녀의 언니를 만날 수 있는 구실을 찾을 수 없었다. 이제 그의 한국 출장 목적은 그녀의 언니를 만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되었지만, 그동안 계기를 마련하기가 쉽지 않았었다. 최선미를 통해서 그녀가 결혼하지 않은 상태라는 것을 어렵게 알아내고 기쁨에 들떴지만, 막상 그녀는 자신의 존재조차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었고, 그녀의 주변에 다른 남자가 있을 수도 있는 일이며, 자신을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했다. 아니, 그녀라는 존재가 있고 그녀를 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했다. 응답받지 못하는 사랑일지라도 가치마저 다르지는 않다는 것이 그의 소신이다. 오히려 그런 사랑이 더욱 가치 있는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는 그녀와 이루어지는 사랑이기를 바랐다. 단 한 번의 건네진 웃음으로 마음이 터져버려, 그 미소를 평생 간직하는 그런 극단적인 가슴앓이를 하는 사랑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을 믿지 않으면서도, 어이없게도 자신이 이렇게 순정파적인 사랑앓이에 빠져버렸음을 인정해야만 했다.
“고모! 나는 아직 한 번도 면사포를 못써봤네.”
동생의 결혼식을 준비하며 이것저것을 분주하게 챙기던 그녀가 불쑥 말했다.
최윤경은 마음이 울컥했다. 아이를 둘이나 낳은 조카가 정말 아직 제대로 된 결혼식을 해보지 못했던 것이다.
“고모! 내가 이 말을 한 것은 선미라도 제대로 된 결혼식을 하게 돼서 다행이고, 나도 기뻐서 그래. 내가 엄마의 마음으로 잘 챙겨서 보내고 싶어.”
“그래, 나도 네가 남들과는 조금 다르게 사는 것이 늘 마음에 걸렸고 네게 미안했단다. 어른들의 잘못으로 네 인생에 그늘을 드리웠구나. 그래도 동생을 그렇게 아끼는 마음을 가졌다는 것이 고모는 무척 고맙다.”
“아버지나 고모가 잘못 사신 거 하나도 없어. 아버지는 살면서 하실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다는 거 나 잘 알고, 고모가 독립운동하신 거 오히려 존경받아 마땅한 일이지. 다만 내가 그런 정신적인 유산에 마음을 쓸 겨를이 없이 살아서 그런 거야. 내가 너무 현실에 급급하고 여유 없이 살아온 거야. 무엇에도 의지 할 곳이 없다고 생각하며 살았어. 고모가 이렇게 든든하게 지켜주고 있는데도!”
그녀는 고맙다는 말 대신에 말없이 조카의 손을 잡았다. 최선애의 얼굴에 미소가 흘렀다. 그렇지만 그 미소는 쓸쓸하고도 허탈함이 느껴지는 그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