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야스쿠니 가치관의 잉태 1 | 나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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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야스쿠니 가치관의 잉태 1
2022-03-21 오전 9:00 조회 431추천 9   프린트스크랩

형님! 민국이를 현충사에 일주일 정도 보내야 할 것 같네요.”

무슨 일이여?”

설민국의 초등학교 담임선생이 아버지를 만나서, 교육청에서 학생을 선발해 현충사 경내에 있는 충무수련원에 입소교육을 시행한다는 공문을 받고, 학부모 면담을 진행하고 있었다.

이 마을 출신으로 사범학교를 나와서 고향에 있는 초등학교 교사를 하고 있는 이유로 조 길은 마을에 사는 학부모 모두를 형님이나 아우라고 부른다. 여자 학부모들은 물론 누님이나 동생으로 호칭한다.

 

국가적인 시책으로 충무공의 호국충정을 기리고 배우고자 각 학교의 우수한 인재 한 명씩을 선발해서 교육시키고 전파시키고자 한다는 공문이었다. 기관에 입소교육을 한다는 개념이 생소한 학부모들이 걱정을 할 것이 염려되어 보호자에게 충분하게 취지를 설명하여야 한다고 공문에서 강조하고 있었다. 설명을 들은 설민국의 아버지 설억은 근심스런 낯빛을 감추지 못하고 물었다.

보내도 괜찮은 겨?”

나라에서 하는 일인데 별 일이야 있겠어요?”

, 그라것제. 동상이 알아서 햐!”

기간은 일주일이고 민국이는 세면도구만 준비하면 돼요. 제가 출발하는 날 데리러 올게요.”

설민국은 그렇게 국가를 접했고, 충무공의 삶을 접했다.

 

설민국에게 일본은 악질 침략자의 표본이었다.

어떤 나라든 국운이 성하기도 하고 쇠하기도 한다. 국운이 다한 나라는 멸망하기도 하고 새로운 나라가 세워지기도 한다. 그 이치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가 일본을 악질 침략자로 규정하는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다. 그들은 한민족이라는 하나의 민족을 말살하고자 했다. 물론 나치 정권의 독일도 유태민족을 말살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 국제사회와 피해 당사자들에게 반성하고 진심으로 사죄를 했다.

오직 일본만이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기는커녕 미화하고 정당화하며 심지어는 재침략의 의도를 숨기지 않고 있다.

일제 강점기 시절 초기인 1910년에 초대 총독 테라우치 마사타케는 전국 각지의 서적 20만권을 강탈해 조선의 사상을 말살하려 소각시키고, 자국의 역사학자 이마니시 류를 앞세워 조선의 민족사를 하나의 설화로 바꾸려 시도했으며, ‘임나일본부설을 조작해 조선을 일본의 지방 속국인양 조작했다.

그도 모자라 저들은 한글을 말살하고 성씨를 일본으로 개종하여 영원히 한민족을 일본에 귀속시키려는 만행을 저질렀다.

일본의 만행은 해방된 대한민국을 향해서도 끊이지 않았다.

그들은 지금도 극우단체가 침략사관으로 왜곡한 역사교과서를 국가 검정 교과서로 채택하여, 4세기 후반부터 200년 동안 한반도 남부를 식민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을 역사의 진실인 양 가르치고 있으며, 군인들의 성적인 욕망을 채워주기 위해 어린 소녀들을 유인하고 강제로 동원하여 위안소를 운영해 여성을 성적착취 대상으로 이용하였고, 침략자의 근성을 버리지 못하고 1998년과 200211, 첨단무기로 무장한 자위대 병력을 동원하여 동경남쪽 해상에 있는 이오시마에서 독도 점령 훈련을 시행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아예 국정교과서에다 독도를 일본 땅이라고 공표하였다.

 

일본을 이기는 것이 내 삶의 목표다.”

설민국이 공공연하게 내뱉는 말이었다.

이런 그의 의식은 같은 또래의 젊은이들 중에서도 유독 도드라졌다. 그 덕에 그의 직장에서의 별명은 독립군이었다.

 

이런 설민국은 같은 직장에 다니고 있던 최선미의 눈길을 끌었다.

삶이 벅찬 그녀는 다른 일에 눈 돌릴 틈이 없이 살았다. 무능하게 살다 일찍 세상을 떠난 아버지와 그런 남편이 지겨워서 도망쳐 새 가정을 꾸리고 살고 있는 엄마 사이에서 그녀는 어떠한 도움이나 위안도 받지 못하고 성장하고 학교를 다녔다.

그런 그녀를 정신적이나 경제적으로 지탱할 수 있도록 지켜준 것은 오롯이 고모였다. 아버지와 엄마가 없는 가정에서 고모가 집안을 지탱해 나간다는 것은 고모에게는 큰 희생이었다. 희생만으로 조카들이 고모를 의지해서 반듯하게 커나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임에도, 고모가 부모의 역할을 감당해 나갈 수 있었던 데에는 고모가 가지고 있던 남다른 이력과 그 이력이 가지는 정신적인 반향과 자긍심이 큰 역할을 했다. 그녀는 고모의 삶이 위대하다고 생각하며, 고모의 삶을 닮아 가고자 노력했다.

 

광복군 총영 제3지대 연락책 최윤경

 

젊은 세대의 후손들에게는 뜬금없으리만치, 어찌 보면 생경하기까지 한 그녀의 이 지위는 한편으로는 너무나도 보잘 것 없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1919년의 3.1 만세운동 후, 일본의 서슬 퍼런 감시하의 1920년대 시대상으로 본다면 모든 것을 걸어야만 얻을 수 있는 역할이고 지위였다.

자신의 목숨만이 아닌 가족 전체의 목숨까지도···

고모의 지위는 목숨 값이었다. 세상의 어느 누구도 고모를 하잘 것 없는 역할밖에 하지 않았다고 폄하할 수 없는 것이다

 

최선미의 눈에 비친 설민국은 그렇기에 치기어린 애송이였다.

저 사람 관종 인가?’

다른 사람에게 관심 받고 싶어서 나대는 사람을 비하해서 일컫는 비속어를 떠올릴 만큼 그녀에게 그는 어설펐다. 정말로 사람을 물고자 하는 개는 짖지 않는다. 겁에 질려 물지도 못하는 개가 요란스레 짖어댄다. 그녀의 눈에 그는 그냥 혈기만 넘치는 잠시 저러다 마는 수많은 남자들 중의 하나로 보여 졌던 것이다.

그녀는 대학에 진학하자마자 고모도 모르게 대한독립의군부의 비밀단원이 되었다. 그만큼 그녀의 마음은 확고하고 치밀했다.

그런 그녀에게 그가 철부지로 보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수도 있었다.

 

설민국은 수요일인 오늘도 일본 대사관 앞에 있다. 매주 수요일마다 참관하지는 못하지만, 그는 틈이 나는 대로 이 모임에 참관하고자 노력했다. 참석 인원이 많은 날에는 멀리에서, 참석 인원이 적은 날에는 소녀상 가까이에서 행사에 응원을 보냈다. 자신이 행사의 전면에 나서거나 집회를 주동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처럼 참관해주는 많은 사람들이 있음을 보면서 아직은 이 나라에 희망이 있음에 위안을 받고 돌아가고는 했다.

비록 일본 제국주의의 수많은 악행 중에 하나인 종군위안부 소녀를 위무하고, 그 만행을 일본으로부터 사과 받고, 그들의 만행을 징치하려는 이 수요 집회가 작은 몸부림에 불과한 노력이라 할지라도 이 집회가 가지는 의미는 무한한 것이다

지금 당장 저들을 무릎 꿇리고 사과를 받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저들은 강자에 약하고, 약자에 강한 존재들이다. 지금 분명히 대한민국은 일본에 비해 힘없는 나라다. 그런 우리에게 저들이 먼저 나서서 사과할리 만무하다. 과거를 기억하고자 하는 이 집회가 그래서 더욱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최선미는 모자를 깊숙이 눌러쓰고 셔츠의 깃까지 올린 채 멀찍이서 집회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런 행사에 참관을 하면서도 그녀는 이제 습관처럼 철저히 자신을 감추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대한독립의군부의 단원은 언제 무슨 과업을 수행하게 될지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늘 자신을 감추어야만 한다는 것이 총사령관의 첫 번째 지침이었다. 모든 단원들은 점조직으로 이루어졌다. 비밀단원이 되는 날 단 한 번 총사령관을 만난다. 그 이후의 모든 과업은 필요시마다 점조직을 통해 하달되었다. 그녀는 수많은 매체에 오르내리는 이슈에 대해서도 단 한 번의 댓글조차 남기지 않는다. 모든 나라의 정보망은 언제 어디에서든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 필터링 작업을 시도할 것이고, 개개인의 신상 자료를 통해 성향을 파악해내려 할 것이다.

 

무심코 주변을 둘러보던 그녀의 시선에 낯설지 않은 사람의 모습이 포착되었다.

저 사람은 설민국이잖아. 그가 왜 여기에 있지?’

그녀는 흥미가 생겼다.

수요 집회가 시작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고, 일반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지도 않았는데 그가 이 자리에 있다는 것이 이채로웠다. 관심을 가지고 이 자리를 찾은 것인지, 지나가던 길에 우연히 집회가 있어서 자투리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했다. 오늘은 날이 좋아서인지 사람들이 제법 많아서 다행히 자신은 그에게 노출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녀는 앞으로 그를 조금 더 살펴보기로 했다.

┃꼬릿글 쓰기
영포인트 |  2022-03-21 오후 5:31:43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누님들의 이름은 모두 ***子입니다.
일제시대 사용하던 이름,
타마고... 하루코... 세츠코... 가 한자 그대로 호적에 올려진 탓입니다.
그래서 아직도 일제시대의 그늘, 우리는 다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신인 피해자의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았는데 가해자는 책임이 없다고 하네요. 하물며
같은 피해자인 자들 중 일부는 가해자를 두둔하기도 하는 현실!
이 불합리를 건드려봅니다.
선배님, 격려 고맙습니다!!💚💛💚
머루 |  2022-03-21 오후 5:48:24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우리가 그들을 미워하듯 그들도 우리를 미워한다고 하네요.
답은 국력이겠지요. 고맙습니다.  
⊙신인 미워하는 상대방을 좋아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두 나라는 좋아지기 어렵지 않을까요,,,,ㅠ
다만, 더 악화되지 않기를!!
주향 |  2022-03-22 오후 1:18:33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아직도 우리의 삶 곳곳에 일본말이 있어요
특히 공사판 에서는 많이 순화 되기는 했어도 그말 아니고서는 대화가 이뤄지지 않을것 같
기도 하지요
해방 된 지 벌써 몇 해째 인가요?
그들의 민족 말살" 정책의 효과가 얼마나 대단 했기에 아직 까지 남아 있는건지.....
"뼈속까지 왜구 ...이런말을 해야만 하는 현실이 너무도 안타 깝습니다
좋은글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신인 [주향]님의 말씀이 맞아요.이런 단어도 일본말이었구나 하고 놀랄정도죠.
우리가 일본이라는 존재를 완전하게 극복할 날을 우리 세대는 맞지 못하겠죠?
저들은 아직도 막강하니,,,,
고맙습니다! 이리 용기를 주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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