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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청 기림풍운(棋林風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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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림풍운(棋林風雲)2> 신진서 – 출정전야
2020-02-14 오후 9:16 조회 2169추천 5   프린트스크랩

기림풍운(棋林風雲)2> 신진서 출정전야 1

- 24LG배 조선일보 기왕전 결승 3번기


1

사카다 에이오(坂田榮男)불꽃의 승부사(勝負師 坂田栄男シリーズ)’로 불린다.

1961~1967년 본인방전 7연패로 23세 명예 본인방 에이쥬(栄寿)로 추대된다.

1963년 제2기 명인전()에서 후지사와 히데유키 명인을 4-3로 꺾고 타이틀을 탈취한다. 이어서 제18기 본인방전에서는 다카가와 가쿠9단을 4-2로 꺾고 타이틀을 방어, 일본기원 최초의 명인, 본인방이 된다.

19647개 타이틀(3기 명인전(), 19기 본인방전, 12기 왕좌전, 11NHK, 일본 기원 선수권전, 프로十傑전 등)을 획득하고, 29연승의 대기록(역대 1)을 세운다.

1983년 제2NEC 컵 우승으로 통산 타이틀 획득 수 64개를 달성한다.

이 기록은 일본 기원 사상 2위의 기록이다. (조치훈이 75개로 일본기원 1위다.)

승부를 결정짓는 예리함이 마치 면도날과 같았다.

샤프함에 더하여 질김도 대단했다.

쉽게 이겼어도, 절대로 쉽게 지지 않았다.

그의 앞에 앉으면 귀기(鬼氣)가 느껴질 정도로 승부에 집요했고, 악착같았다.

상대를 압박, 질식시킬 정도로 아우라가 넘쳤다.

난공불락의 철옹성이었다.

진정으로 불꽃의 승부사였다.

쾌도난마(快刀亂麻)의 무사였다.

그리고 거대한 산이었다.

<사진 pixbay>

수많은 기사가 그의 무시무시한 공격을 받고 봄바람에 꽃잎이 날리듯 무참히 스러졌다.

조치훈도 그 중 하나였다.

누구보다 많이 베이고, 찔리고, 잘렸다.

온 몸이 흉터로 가득했다.

조치훈이 사카다라는 험악하고, 사나운 산을 극복하는데 걸린 시간은 결코 짧지 않았다.

그 시기 조치훈의 고뇌와 고통, 절망과 좌절은 극한에 이르렀다.

조치훈은 자신이 사카다를 넘지 못하면 단 한 걸음도 전진할 수 없다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도 뼈저리게 인식하고 있었다.

하늘은 대임(大任)을 맡길 때 먼저 고난과 시련을 준다고 했다.

사카다라는 강한 철벽을, 그 매끄러운 빙벽을 맨손, 맨발로 넘은 조치훈에게 철벽, 빙벽 이상의 강인함과 파워가 생긴 것은 하늘의 안배였을 것이다.

그 고난과 역경이 바로 천우(天佑)였고, 신조(神助)였던 것이다.

1975년 일본기원선수권전, 18세의 조치훈은 사카다를 맞아 당당하게 2, 기염을 토한다.

그렇지만 쉽게 물러설 사카다가 아니었다.

사카다는 당대 그 누구보다도 노련했고, 강했고, 질겼다.

사카다는 수많은 악전고투를 경험했다. 사카다는 평생 동안 초인적인 완력 없이는 감당할 수 없는 냉혹한 전투를 수없이 치루며 살아왔다. 그리고 쇠심줄보다 질긴 인내와 쇠기둥 같은 굳센 버팀, 명석한 판단력, 심오한 수읽기로 정상에 군림했다.

상대를 질리게 하는 정도의 질김과 버팀은 일류기사에겐 평범한 일에 속한다.

상대가 울화통이 터져 죽게 만들 정도가 돼야 조금 질기구나. 조금 버티는구나.’라는 평을 받게 된다.

오십오세의 사카다는 2연패를 당한 후 3연승으로 열여덟 살인 조치훈을 점잖게 돌려세운다.

조치훈에겐 자부심과 자신감을 고조시키고, 영광과 명예를 지킬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다.

인생의 분수령이 될, 운명이 걸린 대승부였다.

그리고 손 안에 거의 다 움켜잡았었다.

하지만 승리는 물처럼 빠져나갔고, 바람처럼 허공으로 사라져버렸다.

승부 후 조치훈은 망연자실, 넋이 나가버린다.

<사진 pixbay>

조치훈이 불멸의 대 승부사로 성장한 것은 천부적인 재능도 있었지만, 뼈를 갉아내고, 가슴을 저미는 고통스러운 패배를 통해 잘 배우고, 깊이 깨달은 덕분이었다.

이 패배는 조치훈에게 각별한 의미가 있었다.

당시 일본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어떻게 보면 치훈으로서는 이번에 진 것이 오히려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 바둑 팬들에게 뭐랄까, 어떤 비극적 영웅의 인상을 남겼다. 이겼을 때보다 훨씬 더 강렬한 이미지로 각인된 것이다. 이겼으면 영웅이 되었겠지. 그러나 그런 영웅의 이미지는 얼마 안 가서 희미해져 버린다. 그것보다는 비극적 영웅의 아우라가 팬들의 마음을 더 오래 사로잡는 법이다.”

- 2015.09.02 [일요신문] -이광구기자


이 이야기의 핵심은 그날
, 그 바둑이 끝난 뒤 조치훈이 남 모르게 밤을 지새우고, 그 다음날 귀가하기까지 일어난 일이 된다.

조치훈은 깊은 어둠 속에서 도대체 무슨 일을 했을까?

그 답은 퍽 단순하다.

- 조치훈은 통곡했다.

그리고 여기에 입단을 전후한 이야기가 겹쳐진다.

조치훈은 1968년 일본기원 사상 최연소인 119개월에 입단했다.

Q. 어렸을 때 입단을 못하면 닛코(日光)의 폭포에서 자살하려 했다면서요?

-닛코는 도쿄 북쪽 도치기(栃木)현에 있는 도시. 명승지로 게곤(華嚴)폭포가 유명하다.


A.
제가 그랬었나요? 입단을 못하면 죽고 싶다, 뭐 그런 정도였는지는 모르지만, 닛코라고 구체적인 지명까지 말하지는 않았을 텐데. 글 쓰는 분들이 좀 과장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기왕 폭포 얘기를 하시려면 나이아가라폭포라고 하셨으면 스케일도 크고 더 좋았을 텐데요^^”

- 2015.09.02 [일요신문] -이광구기자


'죽으려고 했다
.'

나는 조치훈이 말했다는 목숨을 걸고 둔다는 말의 유래를 여기서 찾는다.

만약 조치훈이 몇 잔의 술로, 몇 방울의 눈물로, 몇 걸음의 방향 잃은 방황으로 자신의 패배를 달랬다면 오늘의 조치훈은 없었을 것이다.

입단에 실패하면 닛꼬(日光) 폭포에서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놓고 죽기 위해 밤을 새우며 서 있었을 11살의 어린 조치훈이 가슴에 품은 오기와 각오가 바로 우리가 오늘 보고 있는 불멸, 불굴의 전사 조치훈을 만든 것이다.

<사진 pixbay>

조치훈은 패배의 가치를 극대화, 승리의 발판으로 삼았다.

오늘의 패배를 내일의 승리를 만드는 초석으로 활용했다.
진심과 열정이 있었기에 죽음을 앞에 두고 그는 크게 각성했다.

바로 유마의 일묵과 같은 만인이 찬탄해 마지않는 대오(大悟)의 경지로 어린 나이에 발을 내디딜 수 있었다.

죽음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조치훈의 바둑은 절실하고, 진지하다.

그래서 위대하다.

한 판 한 판 마다 비장미가 넘친다.

그리고 한 수 한 수 마다 죽음을 초월하는 박력과 생동감이 용암처럼 꿈틀댄다.

박정환 9단에게 9연패 중인 신진서 9단은 조치훈을 알아야 한다.

그에게 패배를 반전의 계기로 삼는 지혜를 배워야 한다.


오늘 우리의 승부사들과 조치훈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

기림풍운(棋林風雲)을 연재하게 된 계기가 24LG배 조선일보 기왕전 결승 3번기때문이었음을 밝힌다.

서둘러서 출정 전에 글을 올리고 싶었다.

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시기를 놓쳤다.

한국 바둑의 미래를 열어나갈 멋진 승부를 앞두고 박정환과 신진서에게 격려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였는데 안타깝고, 아쉽다.

2000년대 초 한국바둑은 천하제일이었다.

수많은 바둑 영웅들이 비전의 절기를 갈고 닦아 세계만방에 과시하며 승전보를 전했다.

조훈연의 비연신기, 이창호의 바둑신화, 이세돌의 불의 전차 등은 세계인을 놀라게 한 영웅담으로 전해온다.

새로운 영웅이 출현해서 초절정의 상승무공으로 더 새롭고 멋진 무용담을 보여주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중국이 약진하는 오늘, 바둑 팬들이 박정환과 신진서를 비롯해서 우리 기사들에게 거는 기대는 매우 간절하다.

그 간절한 기대를 담아 24LG배 조선일보 기왕전 결승 3번기를 둘러보고자 한다.

┃꼬릿글 쓰기
영포인트 |  2020-02-15 오전 1:25:59  [동감1]  이 의견에 한마디
1975년 일본기원선수권전의 기억이 새롭네요.
조치훈의 2연승에 나라가 들석이는 듯 싶었는데
이후 이어진 3연패에 응원하던 나까지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 싶었습니다.

돌아보면 그게 조치훈에게는 보약이 되었고 그래서 우리는
명인 본인방 기성의 대삼관에 오르는 진정한 영웅 조치훈을 만나게 되었지요.

설레이며 조치훈의 바둑을 기다리던 그날의 느낌이
님의 글을 읽으며 다시 살아오네요.
고맙습니다. 저 충직한 님의 독자가 될래요.  
이한청 감사합니다. 더 노력하겠습니다.
짜베 |  2020-02-15 오후 12:21:09  [동감1]  이 의견에 한마디
글도 좋고, 사진도 아주 좋습니다.  
삼나무길 |  2020-02-15 오후 8:32:13  [동감1]  이 의견에 한마디
군협지 보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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