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어른 가시다

지난 해 말, 장인어른의 상태가 악화되었다고 연락이 왔다.

몇 년전부터 주 2회 개호사가 집으로 와서 개호를 하던 것이, 주 3회 요양센터를 다니게 되고, 그러다가 입원을 하고, 지난 연말에 건강이 악화되고 부터는 병원측에서 손을 놓고 집에서 조용히 보내드리기로 한 것 같다.

해가 가기 전에 들르라고 하는 것을, 연말 한국방문을 계획하고 있었기에 뒤로 미루었다.

1월 중순, 집에서 요양하던 장인이 음식을 받질 못하므로 모든 장치를 끊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내가 처갓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5일 후 장인어른이 돌아가셨다.

한국 나이로 88세이므로 장수를 한 셈이다.

미야기현 미나미산리쿠 시즈가와(宮城県 南三陸 志津川).

처갓집은 어촌이다.

2011년, 천년에 한 번 일어난다는 대지진이 일어난 곳이다.

4년 가까이 지났지만 마을도 교통도 전혀 복귀가 안되었다.

수천명의 사망자를 낸 어촌 중심지도 4층짜리 흰색병원건물만이 남아 있을뿐 다른 잔해는 모두 철거되었다.

아마 병원건물은 지진의 상처를 잊지 않기 위해 남겨 둘 요량인것 같다.

해마다 여름휴가때 온가족이 봉고차를 타고 들르던 사방 3킬로정도의 마을이 사라져 버린것이다.

목요일 오전11시,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경조사휴가가 없다.

결혼을 해도, 교통사고로 입원을 해도, 부모가 돌아가셔도 모두 유급휴가로 처리해야 한다.

대신 유급휴가는 45일까지 모아 둘 수가 있다.

45일이 넘으면 나머지는 자동으로 소멸된다.

처갓집까지 가는것도 여러갈래로 계산을 해 보아야 한다.

거리는 나고야에서 토쿄까지 300킬로, 토쿄에서 센다이까지 400킬로, 센다이에서 처갓집까지 100킬로로 전체거리는 대략 800킬로이다.

자동차로 가면 편도가 기름값이 리터당 8킬로면 100리터 15000엔, 나고야-토쿄간의 고속요금이 5000엔, 토쿄-센다이가 7000엔, 센다이-시즈가와 2000엔으로 전부 29000엔, 왕복이면 대략6만엔이다.

물론 대충계산이지만 최소경비이므로 이보다 더 줄진 않을것이다.

시간은 고속도로로 쉬지않고 열한시간이다.

토요하시에서 센다이까지 신칸센을 이용하면 토쿄에서 한 번 갈아타야 하고 편도요금이 3만엔 가량이다.

센다이에서 처갓집까지는 고속버스가 1500엔, 전부 31500엔, 왕복 63000엔이다.

시간은 갈아타고 기다리고 하면 거의 열시간 걸린다.

즉, 혼자서 자동차를 가지고 가는것과 신칸센요금이 거의 같다.

일본의 대중교통요금이 비싼것을 실감할 수 있다.

나고야에서 출발하는 야간버스는 편도요금이 만엔이었다.

나는 야간버스를 타고 갔다.

버스라고 얕볼것이 아니다.

좌석은 지그재그 3열배열에 항공기 일등석만큼이나 넓고, 140도정도 눕힐수 있다.

전용 담요에, 난방시설에, 실내화에 발받이까지, 실내도 조명을 모두 없애고 되도록 불빛이 안들게했다.

마치 아늑한 방이 달리는것 같다.

그런데도 좀처럼 잠을 이룰수가 없다.

몸 하나를 충분히 눕힐수 있는 넓은 좌석인데도 한, 두 시간 같은 자세로 누워있으면 몸이 조금씩 불편해 온다.

일본사람들... 그런 상황에서도 옆사람에게 방해를 끼치지 않을려고 몸하나 끼적거리지 않고 조용하다.

조명등으로 책을 읽거나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는 사람도 없다.

옆좌석과의 사이에 커텐이 쳐져 있지만 조그만 불빛이 방해가 된다는 것을 평소의 생활습관으로 익히고 있는 것이다.

야간고속버스는 밤9시 30분 나고야역을 출발, 아침 7시에 센다이에 도착한다.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분명히 오사카에서 출발하는 버스도 밤 9시 30분 출발에 아침 7시 도착이었다.

오사카에서 센다이까지는 대략 1000킬로이고, 나고야에서 센다이까지는 700킬로이다.

오사카에서 나고야까지 고속도로를 달려도 서너시간 걸린다.

그런데도 야간버스의 이동시간이 같다?

안내를 듣고 시간은 납득이 되었다.

오사카-센다이의 야간버스는 동명(東名)고속도로를 타고, 나고야-토쿄를 거쳐서 가고, 나고야-센다이간은 토쿄쪽으로 가지 않고 중앙(中央)고속도로를 지나 나가노현쪽을 달려서 조금 돌아가는 것이었다.

멀리 돌아가지 않고 조금 천천히 달리던지 조금 빨리 달리면 시간을 조정할 수 있을텐데라는 초보적인 생각을 하다가 혼자 웃었다.

일본인에게 이런 초보적인 발상은 없는듯하다.

일본인들의 머리속에는 고속버스는 정해진 속도를 지켜야 하고, 영업시간과 도착지의 연계버스등의 사정도 있으므로 코스를 변경시킴으로서 거리를 늘리고 줄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있는것일까?

운전기사는 두 사람으로 중간쯤에서 잠시 차를 세워 운전교대를 하지만 운전교대만 할 뿐 곧 바로 출발한다.

그리고 그대로 밤새도록 달려 센다이 도착 한 시간정도를 남겨두고 겨우 휴식을 한다.

아마도 도착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인것 같다.

아침 다섯시가 다 되어서 선잠에서 일어나 버스안에 있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버스의 중간지점, 일반 시내버스의 출구문이 있는곳에 계단을 내려서면 화장실이 있다.

안으로 들어가면 천장이 45도 정도의 삼각형 공간에 지름이 한 뼘밖에 안되는 작은 좌변기가 설치되어 있다.

그리고 벽에는 간이 세면시설이 마치 소꿉장난을 하듯이 아기자기하게 갖추어져 있다.

문제는 소변을 누어야 하는데...

여성이라면 손바닥만한 좌변기에 걸터 앉아 앞집과 뒷집을 모두 볼 수도 있겠지만, 남성의 경우 걸터앉으면 대소변을 동시에 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앞 뒤로 전진 후진을 반복하여 어느 한 쪽을 포기하고, 또 어느 한 쪽을 참으면서 어떤 한 쪽을 처리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소변만 처리하면 되는 입장이므로 어느 한 쪽을 참을 필요는 없었지만, 시간이 새벽시간인데다가 잠에서 막 깬 직후였으므로 아침발기가 일어난 상태였다.

참으로 곤란했다.

평소때같으면 지름 20센티의 구멍속에 소변을 누는거야 백발 백중 자신이 있으나, 좁은 공간안에서 허리를 구부린채로 박격포처럼 방열된 포를 발사를 한다면 필시 얼굴에 명중할 것이다.

원산폭격.

어쩔수가 없었다.ㅠㅠ.

일본의 장례는 대개 通夜(쯔야;죽은 사람의 유해를 지키며 밤을 샘), 葬儀(장례식), 火葬(화장), 納骨(납골)로 이루어진다.

처갓집의 경우 火葬을 먼저했다.

일본은 아이가 태어나면 신사(神社)에 보고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결혼식은 보통 식장안에 딸린 교회에서 올리고 전통 결혼식은 신사에서 올린다.

그리고 죽으면 이번에는 불교식으로 화장을 하고 절에서 관리하는 공동묘지에 납골된다.

신사나 절은 개인의 소유이고 결혼식이나 장례등으로 들어온 수입은 꼬박꼬박 세금신고를 해야한다.

신사의 신관, 절의 주지 대부분은 결혼을 해서 가정을 가지고 있으며 사찰등은 자녀에게 상속된다.

많은 주직들이 이동할때 하이브리드자동차나 고급 승용차를 몰고 다니는것을 보면 수입이 제법되는 모양이다.

이번의 장례식에서도 보리사(菩提寺;선조의 위패를 모신 절)의 주지가 시종일관 주도를 했다.

보통 회사에서 경조사때 부조나 축의금은 대개 2000엔정도이다.

같은 부서나 친한 사람이라면 3000엔, 그 외는 1000엔이나 2000엔이다.

그런데도 축의금을 내면 꼭 반에 해당하는 금액을 상품권으로 되돌려 준다.

처음에는 어이가 없었다.

한 번은 타부서의 계장의 결혼식에 1000엔을 내었는데 500엔짜리 상품권을 받았다.

보니 손에 가득 이름이 적힌 상품권봉투를 들고 각 부서를 돌고 있었다.

하지만 결혼식에 직접 참여할려면 최소 3만엔은 각오해야 한다.

결혼식에 내는 축의금은 둘로 갈라지지 않는 숫자, 즉 1,3,5.. 로 낸다.

만엔, 삼만엔, 오만엔.. 등이다.

피로연 경비가 보통 일인당 3만엔 정도이므로 축의금을 만엔 한 장 달랑 내면 신랑신부에게 두고 두고 갈릴 각오를 해야한다.

식장도 초대권을 받지 못한 사람은 아예 좌석 배정이 안되어있다.

TV드라마등에서 본 장례식에서는 참석자들이 가끔 눈물을 찍어 내는 장면이 있었으나 이번의 장례식에서는 아무도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없었다.

장인어른을 모시고 살았던 큰언니는 손님들에게 웃으며 미소로 답했고, 다른 식구들도 오랜만에 만난 일가친척들에게 반가움을 표할 뿐 누구하나 눈물을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병이나 사고가 아니고 천수를 다하고 이승을 떠난것이므로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 들이는듯 했다.

마지막날의 친족모임은 민숙여관에서 했는데, 고급식재가 양도 상당히 많이 나왔다.

따로 싸갈수 있도록 여분의 상자도 준비되어 있었다.

그리고 식사가 끝나자마자 또 다시 집으로 가서 잔뜩 차려진 음식을 앞에 놓고 저녁때까지 술을 권한다.

이번 장례식에는 아이들은 같이 오지 못했다.

학교와 아르바이트가 있어서 빠지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8월, 일본의 추석인 오봉때 오면 되므로 강요는 하지 않았다.

돌아가신 후의 첫 오봉이므로 그 편이 나을듯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돌아오는 길의 새벽, 비좁은 버스의 삼각형 화장실안에서 나는 또 한 번 원산폭격을 경험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