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호선

1.토쿄

한 달에 한 두 번, 센다이의 집으로 갔다.

주 5일근무였기 때문에 금요일 밤에 출발해서 일요일 밤에 돌아오는 것이다.

일을 마치고 기숙사로 돌아와서 저녁을 먹고 바로 잠자리에 든다.

한 시간 정도이지만 대체로 금방 잠이 든다.

의외로 깊은 잠에 빠질수가 있다.

한 달에 한 두번의 귀로이지만 습관이 붙었다.

당시 나는 요코하마의 기숙사에서 토쿄의 중심지에 있는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회사까지는 전차로 40분 걸렸다.

퇴근시간의 전차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토쿄-요코하마간을 잇는 토오요코센은 항상 붐볐다.

회사에서 제일 가까운 역에서 다섯번째역이 시부야이다.

사람들이 많이 내린다.

시부야는 신쥬쿠와 더불어 사람들의 왕래가 제일 많은 곳이다.

시부야에서 겨우 자리에 앉을 수 있다.

그리고 눈을 감는다.

한국처럼 노인이 서 있어도 자리를 양보해야 할 지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자리에 앉고 싶은 사람은 자기가 알아서 노인석으로 가며, 양보해 주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은 눈을 피해주기 때문이다.

처음 일본에 와서 전철을 탔을때, 바로 앞에 서 있는 할머니에게 자리를 양보했다가 얼굴이 빨개지는 경험을 했다.

내가 창피할 정도로 할머니는 감사해했다.

할머니와 같이 있던 가족들도 방아깨비처럼 인사를 해 댔다.

주위 사람들도 신기한듯이 보고 있었다.

그들은 내릴때도 몇 번이나 인사를 하면서 내렸다.

몇 번인가 같은 일이 반복되고 나서 나는 신념을 꺾었다.

혼자힘으로, 한국처럼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일본을 변화시키기에는 아무래도 역부족이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습관이 몸에 배어 있으므로 지금도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지만, 처음때보다 창피하지는 않게 되었다.

응답을하는 여유까지 생겼다.

관록이 붙은건지 일본식이 몸에 익은 건지..

출근때는 40분동안 계속 서 있어야 한다.

자리에 앉는것은 꿈과 같은 일이다.

하긴 몸도 움직일수 없는 만원전차안에서 빈자리를 찾는것은 어려운 이야기다.

가방이 사람들사이에 끼이면 상당히 무리한 자세를 강요당한다.

젊은 여성 사이에 끼이면, 가방을 붙잡고 있는 손이 영판 치한이다.

그래도 갈아타지 않고 한 번만에 갈 수 있는 것이 다행이다.

역에서 내리면 기숙사까지는 다른 전차로 한 정거장이다.

편도 200엔, 왕복 400엔이다.

걸어서 25분, 뛰면 15분 걸린다.

물론 전차는 이용하지 않는다.

교통비가 나오는 회사가 아니었으니까.

2.출발

밤 열 두 시, 핸드폰의 알람이 작은 소리로 울린다.

즉시 눈을 뜨고 알람을 끈다.

나는 알람을 두 번 이상 울린적이 없다.

군 생활때, 귀에 속삭이듯한 소리로 이름을 불러도 즉각 눈이 떠졌다.

그 때의 습관이 아직 남아 있다.

수첩과 속옷 두 벌, 양말 두 켤레와 보리차 한 병을 들고 차에 오른다.

밤이므로 엔진소리가 요란하다.

벽에 반사된 헤드라이트가 눈이 부셨다.

눈을 비비면서 천천히 골목을 나와서 국도 246번 도로로 진입한다.

지금부터 밤새도록 400킬로를 달려야 한다.

시부야에서 수도고속도로를 탄다.

요금 700엔.

수도고속은 고가도로로 휴게소가 없다.

순환선이므로 입구에서 한 번 요금을 지불하면 하루종일 달려도 상관없다.

도로안내를 잘못보고 내리지 않는 한 빙글빙글 돌아도 된다.

낮에는 정체가 심하지만 밤에는 비어 있으므로 속도도 낼 수 있다.

도로표지만 보면서 우에노까지 갔다.

우에노에서 내리면 니혼바시에서 출발하는 국도 4호선과 연결된다.

토쿄-우쯔노미야(토치기현)-코오리야마(후쿠시마현)-후쿠시마(후쿠시마현)-센다이(미야기현).

밤새 달려서 지나가야 되는 주요 도시들이다.

목적지는 센다이.

요코하마를 출발해서 센다이까지는 꼭 400킬로이다.

계속해서 국도 4호선은 이와테현의 모리오카를 지나, 본토 최북단의 아오모리까지, 북으로 북으로 천킬로에 가까운 여행을 한다.

일본에서 제일 긴 국도이다.

밤 열 두시가 넘었는데도 우에노역 근처는 자동차로 붐빈다.

처음에는 국도 4호선이 수도고속과 연결되어 있는줄을 모르고 우에노역 주위를 한참동안 헤맨적이 있다.

출발한지 한 시간이 지났다.

달리면서 먹는 핫도그소시지는 별미이다.

우쯔노미야는 토쿄에서 100킬로거리이다.

토쿄의 외곽을 벗어나면 4호선이 갑자기 고속도로로 돌변한다.

지금까지 사이좋게 달리고 있던 차들이 모습을 감춘다.

왕복 4차선의 넓은 도로가 눈앞에 펼쳐지면서 모두들 질주를 한다.

밤이 되어 차들이 적어진데다가 신호가 없는 바이패스 도로이기 때문이다.

트럭이 굉음과 함께 무시무시한 속도로 뒤따라 왔다.

타이어가 열 개나 달린 큰 트럭이 짐을 가득 싣고 바로 옆을 스치듯이 달리고 있다.

눈앞에서 거대한 타이어가 흙탕물을 튀기면서 달리고 있는것을 보면, 엄청난 파워를 느낌과 동시, 공포감에 휩싸인다.

내가 시속 100킬로로 달리고 있으니까 옆의 트럭은 120킬로는 밟고 있을것이다.

일본의 일반도로의 제한속도는 40-50킬로이다.

외곽을 달리는 바이패스 도로라도 60킬로이다.

물론, 곳곳에 속도감시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다.

카메라는 제한속도를 30킬로 초과했을때 작동하지만 더미나 전원을 꺼 놓고 있는곳도 많다.

달릴수 있는곳에서는 달리라는 배려일것이다.

트럭운전수는 카메라가 있는 장소를 잘 알고 있다.

그러니까 트럭의 뒤를 따라 달리면 카메라에 찍힐일은 별로 없다.

그러나 한 번이라도 걸리면 상당한 대미지를 당한다.

벌금8만엔정도에 한 달간 면허정지 처분이다.

50킬로를 넘으면 두 달간 면허정지, 70킬로를 넘으면 거의 한 방에 아웃이다.

그러니까 지금 내 옆을 달리고 있는 트럭은 속칭「쥐잡기」에 걸리면 운전면허와 직장이 동시에 날라간다.

이렇게 가슴을 두근거리면서 달리는것도 30분 뿐.

도중에 카메라가 대 여섯군데 있었지만 속도를 줄인적은 없다.

계속해서 시속 100킬로 이상으로 달렸다.

3.여로

바이패스도로로 우쯔노미야를 통과했다.

시간이 있으면 우쯔노미야시내를 달려보고 싶었지만, 밤이라도 중심지는 신호대기등으로 혼잡하다.

우쯔노미야를 지나면 갑자기 시골의 풍경이 나타난다.

도로도 편도 1차선으로 바뀐다.

지금까지 눈에 익은 일본의 풍경과는 다르다.

토치기(栃木)현은 일본의 다른 지역에 비해서 발전이 늦다.

메이지유신때 막부편에 서서 신정부에 대항했던 지역이기 때문이다.

여기서부터 고독한 여행의 시작이다.

요코하마를 출발해서 세 시간.

길고 긴 자동차의 행렬속에서 극도의 피로를 느낀다.

남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몸을 비틀면서 졸음과 싸운다.

가끔 큰 소리로 노래도 부른다.

달려도 달려도 끝이 없는 길이다.

시속80킬로로 달릴때도 있지만, 트럭등이 길을 막고 있을 때는 뒤에 붙어서 40이나 50킬로로 달려야 한다.

앞 뒤로 줄을 지어 달리고 있으니 추월도 안되고 휴게소도 없다.

30분, 심할때는 한 시간이나 이렇게 달려야 한다.

몸은 쓰러지고 싶을 정도로 지쳐있고 이 때 만큼 힘든것도 없다.

신호에라도 걸리면 10초정도 눈을 감을수 있겠는데 시골구석에 신호조차없다.

가끔씩 나오는 추월구간이 유일한 탈출구이다.

2-3킬로 정도의 2차선 구간인데, 모두들 해방된듯 씽씽 달린다.

그러나 그 마저도 매너있는 트럭이나 화물차만 빠졌을 뿐 차의 순서는 변함이 없다.

밤길이지만 위험하지는 않다.

시골길이라 통행인이 없기 때문이다.

중앙선만 침범하지 않으면 비교적 안전하다.

끝없이 이어지는 자동차의 빨간 미등이 이 순간만큼은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토라부루」의 노래 「로드(ROAD)」의 한 장면을 보는것 같다.

토치기현을 지나 후쿠시마현으로 들어 섰다.

후쿠시마현이 의외로 넓다는 것을 실감한다.

코오리야마 시내로 들어가는 길과 바이패스 도로가 갈라지는 곳에 라면점이 있다.

밤길을 달리는 운전수들을 위해 24시간 영업이다.

나도 몇 번인가 들른적이 있다.

맥도널드 가게와 붙어 있는데 맥도널드는 이미 영업이 끝났고, 노랗게 빛나는 간판만이 밤하늘에 걸려 있다.

멀리서 맥도널드의 간판이 보이면 여기까지 왔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잠시후면 도착한다는 것이 아니고, 돌아가기에는 이미 늦었다는 뜻이다.

한 밤중인데도, 시내에서 떨어진 외곽을 달리는 바이패스도로인데도, 라면가게에는 의외로 손님이 많다.

주문이 나오기까지 제법 기다려야 했다.

「시치미(七味)」라는 조미료가 있다.

고춧가루를 비롯해서 일곱가지 향신료를 섞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라면에 듬뿍 뿌렸다.

혀가 얼얼한게 뱃속까지 따뜻해져 온다.

일본에는 라면가게가 많다.

그만큼 인기가 있다는 뜻이며, 각 가게마다 독자의 맛을 가지고 있다.

나는 진한 국물맛의 「동코츠(豚骨)」라면을 좋아 한다.

돼지뼈로 국물을 우려내므로 동코츠라고 하지만, 보통 닭뼈를 같이 넣어서 국물을 낸다.

국물까지 다마시고 나니 시치미의 찌꺼기가 바닥에 가득 남아 있다.

이것까지 먹을 자신은 없다.

라면그릇을 보고는 점원이 눈을 똥그랗게 하고 놀란다.

라면가게의 주차장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싶었지만 그대로 출발했다.

기력이 있을때 조금이라도 달려야 한다.

산길에 접어 들면 넓은 주차장이 있다.

장거리 운전을 하는 트럭이나 밤길을 달리는 사람들을 위해서 만들어진 주차장이다.

큰 트럭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차를 세웠다.

이젠 극한이다.

뱃속이 따뜻해지면서 피가 배로 몰렸는지 피로가 엄습해왔다.

의자를 뒤로 눕히고 같이 쓰러졌다.

그런데, 잠이 오질 않는다.

잠시라도 잠을 자야 하는데 전혀 잠이 안온다. 

조금전까지만 해도 그렇게나 피곤했었는데...

눈을 감으니 빗소리와 함께 지나가는 차소리가 그대로 들려 왔다.

그렇다, 아까부터 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제야 알아 차린것은 아니다.

비가 제법 많이 내리고 있다.

가로등의 불빛 아래에서 올려다 보는 빗방울은 실제보다 더 크고 많게 보인다.

일본의 6월이면 장마이다.

한국보다 한 달 빠르다.

자동차 유리를 흘러내리는 빗물과, 빗방울이 차의 천장을 두드리는 소리가 기분을 가라 앉혀 준다.

지쳐있긴 하지만, 지금부터 몇 시간후면 만날 가족을 생각하면, 지금 이 시간이 제일 행복한 시간이다.

30분정도 쉬고 나서 또 다시 자동차의 긴 행렬속으로 뛰어 들었다.

새벽 네 시 반.

출발때 누른 주행계의 숫자는 200킬로가 채 안된다.

겨우 반을 온 것이다.

주위가 조금씩 밝아져 왔다.

4.추억

얼마나 달렸는지 모른다.

어디를 어떻게 달렸는지도 모른다.

그냥, 길따라 앞차를 따라 달렸다.

정신을 가다듬고 보니 날이 완전히 밝아 있었다.

주행거리는 350킬로를 넘고 있다.

아침 일곱시가 지났다.

세 시간만에 150킬로를 달렸으니까, 평균시속은 50킬로이다.

계속 70킬로이상으로 달린것 같은데, 주행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것 같은 생각이 든다.

후쿠시마를 지나면 센다이까지는 금방이다.

도로도 왕복 4차선으로, 토쿄-우쯔노미야에 못지 않다.

역시 동북 최대의 도시 센다이의 위력이다.

센다이(仙台).

전국시대 애꾸눈의 맹장 「다테 마사무네(伊達政宗)」가 다스리던 지역이다.

미야기현의 현청 소재지이며, 토쿄 이북에서 제일 큰 도시이다.

2000년경, 센다이시의 인구가 백만명을 넘었다고 발표했다.

그 직후, 우리가족 다섯명이 센다이시를 빠져 나왔으니까 정정을 해야 하지 않았을까?

아침 여덟시, 센다이 공항이 있는 나토리시의 「요시노야」에서 「규동(소고기 덮밥)」을 먹는다.

오늘은 다른때보다 빨리 센다이에 도착했다.

토요일은 아이들과 함께 지낼수 있는 즐거운 시간이다.

집에 도착해서도 바로 자지 않는다.

일단 아이들을 데리고 공원에라도 나간다.

단신부임으로 가족과 떨어져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나는 그래도 행복한 편이다.

이렇게 하루를 보내고, 일요일 오후 요코하마로 돌아 온다.

돌아오는 길에는 저녁 도시락을 아내가 건네준다.

고속도로를 타면 네 시간만에 토쿄에 도착하지만, 통행료가 7천엔이다.

고속도로를 타지 않는 것은, 요금이 비싸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보다도 긴 긴 길을 트럭들과 경쟁하면서 달리는 즐거움이 몸에 배어 버렸기 때문이다.

경찰몰래 시속 160킬로로 달리는 고속도로도 스릴있고 매력적이지만, 장거리를 달리는 피곤한 가운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정감이 교차하는 4호선이라는 긴 길동무를 두고,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특권」을 누리기에는, 웬지 4호선에게 미안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

1999년 4월부터 2001년 봄까지의 추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