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코하마 그리고 토쿄

일본의 정치의 중심지 토쿄 나가타쵸(永田町).

국회의사당이 있는 곳이다.

바로 앞의, 전화 도청도 안된다는 TBM빌딩, 그리고 호텔 뉴오오타니의 신관 포람등 두 군데에 사무실이 있었다.

하는 일은?

없다. 사기꾼회사였으니까.

밤차로 오사카에 도착했다.

전 날 밤 9시에 센다이역을 출발해서 다음 날 아침 7시에 오사카의 우메다에 도착하는 야간 고속버스이다.

전좌석이 일인석으로 되어 있지만 발을 마음놓고 뻗을만큼 넓지는 않다.

몸집이 큰 사람에게는 고역일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당시에는 군대제대때의 날씬한 체중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열 시간을 밤길을 달리는 버스이다.

버스안에 음료수서비스와 간이 화장실도 딸려 있다.

도중에 20분정도 운전교대를 의한 휴게를 하기는 하지만, 승객들은 대부분 그대로 앉아 있다.

커텐을 열고 바깥풍경을 보고 싶어도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고, 열어 보아야 고속도로위에서 옆을 달리는 차량들의 불빛을 보는것이 고작이다.

운전석과는 칸막이가 가려져 있어서 전방의 경치를 보는것도 불가능하다.

뒤로 조금 젖힌 좌석에 파묻혀서 CD플레이어의 헤드폰을 귀에 꽂은채 꼼짝없이 앉아 있어야 하는 신세가 고통스러웠다.

이런 상황에서는 예외없이 어떤 환영이 떠오른다.

옛날의 감옥 풍경이다.

100명정도의 포로가 갇혀있다.

모두들 탈출을 꾀하고는 땅굴을 팠다.

지하로 길게 이어진 땅굴.

한 사람씩 기어 나간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굴속을 앞사람의 기척을 따라 비좁은 틈새를 빠져나간다.

나는 딱 50번째였다.

굴의 한 가운데쯤 왔을때, 더 이상 나아가지 않았다.

출구를 막아버린 것이다.

뒤에서는 남은 사람들이 계속 따라 들어온다.

그리고 들어 오는 입구도 막아 버렸다.

앞으로 갈 수도 뒤로 돌릴수도 없다.

몸도 제대로 움직일수 없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주위의 발악소리와 함께 무더위로 숨이 턱턱 막혀온다.

꼼짝없이 갇혔다.

그것도 지하굴 한 가운데에....

목이 터지게 고함을 지르고는 그대로 기력이 쇠진하여 정신을 잃는다.

그것이 제일 덜 고통스러운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버스 안.

소리를 내지를수 없는 상황이라는것을 알고는 허공을 향해 입을 벌리고 가쁜 숨을 속으로 삼키며 몸을 떨었다.

눈물이 흘러 내렸다.

몸이 조금만 구속당해도 이런 생각이 온 몸을 에워싸며 한 바탕 몸을 떨어야 했다.

내 전생은 무엇이었던가?

잠도 오지 않고, 어둠속에 버스의 바람을 가르는 소리만이 가냘프게 들려와서, 굴속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모로 누워서 그 누군가의 품에 안긴것처럼 안도감과 함께 지극한 평안을 느낀다.

밤새 달려서 오사카에 도착했다.

아침 일곱시.

오랜만에 맡아 보는 오사카의 공기였다.

한큐전철, 한신전철, 지하철 미도스지등 모든전차가 출발하고 통과하는 오사카의 중심지 우메다(梅田)는 변함없이 사람들로 붐볐다.

구인표를 들고 면접을 본 곳은 쿄토였다.

액정화면 제작을 위한 프레스를 판매하는 회사였다.

한국말을 할 줄 안다는 이유로 그 날로 요코하마의 본사로 옮겨졌다.

삼성과 현대등에 기계를 납품하는 회사였기 때문이다.

오사카에 온 지 3일만에, 중고로 구입했던 자전거와, 거지같은 아파트 한 달 월세 10만엔(방세 3만엔, 소개료 7만엔)을 뜯긴채 요코하마의 기숙사로 이동했다.

요코하마(横浜).

섬나라는 여성을 상징한다.

일본의 지도는 여인이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이라 한다.

토쿄만(湾)이 여인의 항문이라면 요코하마는 음부에 해당한다.

그 곳에 아메리카의 시커먼 흑함부대가 들어와서 대포알을 몇 방 쏘아대자 막부에 의해 굳게 닫혀있던 일본 처녀는 그만 몸을 열어 버린다.

아메리카에 몸을 허락하고 나자 비로소 자기의 진짜 신랑은 조선이라는 것을 알고는 급하게 조선을 품었다던가?

야경이 아름다운 항구도시였다.

한국에서도 30년전에 「BLUE NIGHT IN YOKOHAMA」의 간드러진 음률이 유행했었지.

그 요코하마에 회사와 기숙사가 있었다.

회사주차장을 빌려서 자동차도 구입했다.

그런데 회사가 나와는 맞지 않았다.

회사가 맞지 않았다라기보다는 사장과 맞지 않았고, 바로 위의 상관인 과장과도 맞지 않았다.

내 일이 무엇인지 몰랐다.

입사한 지 일주일만에 무턱대고 한국 출장이었다.

삼성과 현대전자등 공장의 생산설비시설을 방문했다.

영업직이었으나 이 회사가 무엇을 하는 회사인지도 몰랐다.

누구도 설명도 없고 물어 볼 사람도 없었다.

모두들 바쁘게 일하고 있었으나 자기 일만 할 뿐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결국 7개월만에 사장으로부터 사직을 권고 받았다.

내 앞에 서너달 만에 그만둔 한국인이 세 사람이나 있었다는 이야기도 그 때 들었다.

2년전에 한국 유학생을 한 명 채용했단다.

사장과 너무나 잘 맞아서 한국출장도 같이 가고 했는데, 어느 날 술을 마시고 아침에 일어 나니 죽어있는 것을 사장이 발견한 것이었다.

그 이후로 한국인을 채용하기는 하나 누구도 사장의 성에 차지 않는 모양이었다.

토쿄를 방황했다.

밤새도록 시부야의 하치코(시부야역앞에서 9년간이나 주인을 기다렸다는 아키타견의 동상)앞에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기도 했다.

나는 밤이 좋았다.

낮에는 흐리멍텅하게 지내다가도 밤에는 정신이 말짱하게 되돌아왔다.

형형색색으로 반짝이는 불빛을 보고 있으면 뇌속이 무언가 뇌를 미치게 만드는 물질로 가득찬 것 같았다.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역시 건설현장이나 경비직이었다.

젊은 한국인2세가 사장으로 있는 건설현장에서 석달을 일했다.

일이 끝나면 온몸에 밀가루를 뒤집어 쓴듯 아스베스트의 유리섬유가 붙어 있었다.

오사카에서도, 센다이에서도, 그리고 토쿄에서도 가는곳마다 한국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만나졌다.

작은 인연이지만 같은 말을 사용한다는것이 무척이나 소중하게 느껴진 시절이었다.

그러다가 누군가의 소개로 토쿄, 그 제일 중심지에 월세 50만엔짜리 사무실을 두 개나 쓰고 있는 어떤 회사로 들어 갔다.

그리고 6개월간 또다른 세계를 경험했다. 

프로 사기꾼의 세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