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일이었다. 오전 아홉 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는데도 센트럴파크와 주변 도로에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호수 쪽에 숲과 비탈면 아래로 보이는 산책로에는 조깅을 하는 사람도, 산책을 하는 사람도, 나와 가다처럼 하루를 더 사는 듯한 행색의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건 공원 동쪽 담장 너머로 보이는 거리와 유대인 박물관 주변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가다와 함께 아까의 벤치로 다시 돌아가 두 시간 째 앉아 있었다. 그런데 나는 이미 지루함을 느끼는 중이었다.

  처음에는 그녀가 말한 메시지 도착을 알리는 소리에 음의 높낮이가 바뀌었다는 증언이 놀라웠다. 내가 알기로는 아직까지 어떤 회사에서도 그와 같은 서비스를 하지 않고 있었다. 어쩌면 앞으로도 그런 발상을 하는 개발자는 없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미 그녀가 들었던 소리가 환청이었을 거라고 믿고 있었다.

  타인의 이야기에 놀라워하며 귀 기울이는 마음이 불신의 마음으로 바뀌는 데에는 두 시간이라는 간격이면 충분했다. 아마도 내일 아침까지 도달하면 그녀가 들었던 소리가 데이비드, 샬롯, 빌리였었다고 해도 나는 놀라움을 잊게 될 게 분명했다. 내게 가장 익숙한 세 이름이 처음 보는 타인의 입에서 연이어 나올 수 있을 확률은 얼마나 될까. 데이비드는 내 이름이고, 샬롯은 이제 전처가 되어 버린 아내의 이름이고, 빌리는 당분간 접근 금지 명령을 받은 내 여섯 살 된 딸의 이름이었다. 

  냉각시간. 그건 내가 시카고 트리뷴의 정치부 기자로 있을 때, 모건 E 트레이시 편집장이 늘 강조하던 지침이었다. 그는 스피드가 생명인 일간지 편집부에서 느림의 미학을 추구하려 하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의 철학은 늘 옳았다. 기자들이 특종을 건져 신문사로 달려왔을 때, 그는 들떠 있는 기자가 쓴 기사를 읽어보지도 않은 채 임원들 앞에서 사건 개요부터 설명하게끔 했다. 그리고 무조건 비난하고 가서 다시 써 오게 했다. 냉각시간을 거친 기사는 대부분 자료가 더 뒷받침되어 독자들의 신뢰감을 높이는 일로 이어졌다. 게다가 몇 분의 차이로 인해 오보를 막은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가다는 나의 뱃속에서 꼬르륵 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을 무시한 채 자신이 어젯밤에 겪었던 일들을 세 번째 말하고 있었다. 냉각시간은 이미 충분히 적용되고도 남았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겪은 체험의 빛깔이 퇴색되는 걸 막으려는 듯 계속해서 색을 보정하려 했다.

  나는 나와 몸싸움을 벌이다 내 머리에 받혀 코피를 흘리던 트레이시 편집장의 기분을 알 것 같았다. 나는 그녀에게 제발 입 좀 닥치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건 마치 내 얼굴에 침을 뱉는 것 같아서 차마 내뱉지 못하는 유일한 진실이었다.

  사실 그녀가 받았던 메시지는 내가 받은 것들보다는 더 흡인력이 있었다. 그들은 그녀의 사생활과 개인적인 비밀들까지도 꿰뚫어 보고 있다는 느낌을 전하는데 성공하고 있었다. 아마도 그녀가 보낸 답신들 속에 힌트가 있었으리라.

  아무튼 나는 생기를 찾아가는 그녀의 모습을 계속 대하자니 그들의 공로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다와 나는 마침내 서로의 대화 상대가 되어 주고 있었고, 어쩌면 한 사람은 살아나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녀는 우울증 환자의 모임이나 알코올 중독자의 모임 같은 곳에서 자신의 발언 순서가 올 때까지 인내한 끝에 기회를 얻은 사람처럼 자신의 사연들을 쏟아내는 중이었다.

  나는 배가 고픈 것을 제외하고는 그녀의 말을 들어주지 않아야 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계속 귀를 기울이는 척했다.

  그녀는 이집트 출신이었으며 부유한 집의 외동딸이었다. 그런데 사촌 오빠들을 따라 카이로 시내의 비밀 클럽에 가서 춤추는 일을 좋아했던 가다는 거리에서 히잡을 쓰는 일을 유독 싫어했다. 그녀는 자신의 머리카락은 부끄러운 게 아니라 알라가 주신 선물이라는 표현에 스스로 고무되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가다의 부모는 딸의 결혼 적령기가 다가오자 클럽 출입을 금하고 그녀가 신부수업을 받기를 원했다.

  가다에게 있어서 부모가 원하는 미래는 지옥과도 다름없었다. 특히 그녀의 아버지가 바라는 대로 명문가의 자제와 결혼해서 살게 되면 히잡이 아닌 니캅을 쓰게 될 게 뻔했다. 어쩌면 그녀의 아버지가 거래하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장사꾼들 집안으로 들어가게 된다면 부르카를 뒤집어쓰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모두 가려야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가다의 표현에 의하면 부르카는 상상만 해도 스스로 손목을 그어 버리고 싶을 만큼 혐오스런 옷이라고 했는데, 그건 나로서도 공감이 갔다. 다시 고백할 수밖에 없지만 나는 볼륨감 있는 몸매의 여성을 좋아 했다. 차도르나 부르카를 뒤집어쓰고 있는 여성을 보고 어떻게 짝을 고른단 말인가.

  가다는 오랜 시간 부모를 설득한 끝에 부룩클린에 있는 친척 집에 머물며 어학연수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6개월의 단기 코스였기 때문에 가다로서는 그 기간 안에 아무 것도 얻지 못할 게 분명했다. 그녀는 조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자신과 같은 생각을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될 만한 남자 아이를 찾아낼 수 있었다. 둘은 곧 사귀게 되었고, 그녀는 그가 자신을 지켜줄 거라 믿었다. 그런데 비자 기한을 이틀 넘긴 며칠 전, 그는 가다에게 이집트로 돌아갈 것을 요구했다.

  가다는 사흘을 추궁한 끝에 그가 더 이상 그녀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게다가 그에게는 이미 새로운 여자가 생겼다는 고백을 듣게 되었다. 그리고 어젯밤엔 그의 뒤를 밟아 그가 새로 사귄 여자의 집에 들어가는 걸 목격했던 것이다.

  가다는 그들에게 복수를 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폭탄 제조 기술 같은 걸 알지 못했던 그녀는 피투성이가 된 자신의 시체를 남자친구에게 보여주는 것만으로 만족하길 원했다. 이때 그녀는 이집트의 이슬람 형제단 같은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이 자행한 정치인 암살 사건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나의 질문에 어리둥절해 하다가 모욕감을 느끼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나는 재빨리 사과했고, 그녀는 쉽게 용서해주었다.

  가다는 자신의 복수에 대한 정당성만큼은 굽히기를 원치 않았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이 지난밤에 지녔던 분노에는 이집트에 있는 부모에게도 복수심이 연장되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리고 내 입가의 씰룩임에서 내가 한심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걸 간파해 낸 그녀는 다시 흥분하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죽음이 나사르 대통령의 사망 이후 1974년부터 이집트에 몰아닥친 이슬람 전통주의의 물결을 몰고 왔던 모든 보수 세력에게도 해당하는 복수라고 장황하게 설명했다.

  어쨌든 그녀는 복수를 위한 정당한 명분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했기 때문에 아파트 옥상의 난간 위로 올라가는 일은 어렵지 않았던 것 같았다. 나는 상상만 해도 현기증이 났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그녀에게 동행을 제안하고 나의 권총을 빌려주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가 이집트의 부모님 집으로 돌아가게 하기에는 나로서도 역부족이었다. 내가 그녀와 대화를 나누게 된 일을 다시 후회하는 순간은 계속되고 있었다.

  “그분은 나에 대해서 속속들이 알고 있었어요. 심지어 내가 이집트의 집에 두고 온 고양이 미뇽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고요.”

  “그들이 미뇽의 이름을 알고 있지는 않았겠죠. 아마 고양이도 아니고, 집에 애완동물이 있었다는 사실 정도를 말했을 것 같은데. 아닌가요?”

  가다는 나에게 배신감을 느끼는 것 같은 표정으로 바뀌더니 말을 더 이상 이어나가지 않았다. 나는 이제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이 되었음을 알리는 말을 준비해야 했다. 만일 운이 좋으면 그녀가 먼저 일어설지도 모를 일이었다. 두 시간 동안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내가 더 이상 신과의 접촉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제 그녀가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내가 먼저 그녀의 죽음을 외면하지 않았다는 안도감을 지닌 채 그곳을 떠날 수 있을 터였다.

  가끔은 대화의 종료 선언을 좀처럼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아주 가끔은 그러한 두 명이 만나서 서로를 고문하는 경우가 있었다. 나는 주로 상대가 먼저 잘 가라는 인사를 하기를 기다리는 편이었는데, 가다는 이야기를 다시 원점으로 되돌려 말을 반복하는 타입이었다. 그렇다면 그녀와 나의 매칭은 최악이었다.

  “데이비드. 아까 당신에게 왔다는 문자 내용이 궁금하지 않아요? 자. 봐요.”

  가다가 보여준 내용은 확실히 나에게 온 것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 새로울 것도 없었다.

  ‘그녀와 대화를 해야 해. 그리고 귀를 기울이게. 그녀는 영적인 감도가 누구보다 높기 때문에 곧 나와 자네와의 메신저 역할을 할 수 있게 될 거야.’

  벌써 12시간 가까이 애쓰는 그들의 노력은 인정해 줄 만한 것이었다. 하지만 영적이라는 등의 소릴 하면서까지 끝까지 기만적인 태도를 고집하는 것은 괘씸했다. 지금쯤이면 차라리 전화를 걸어와서 따뜻한 위로와 함께 대화를 시도하거나, 가까운 성당에라도 가보라고 권해야 하는 게 옳지 않은가.

  나는 이제 더 이상 그들과 관련되는 일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화제를 돌린 뒤 자연스럽게 작별인사를 하는 수순을 기대했다.

  “그 종이 가방은 뭐죠? 가벼워 보이지는 않는데.”

  가다는 대답을 망설이는 듯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그 종이 가방은 여전히 그들과 연관이 되어 있었다.

  “사실 난 밤사이 미션을 수행하느라 바빴어요.”

  “미션?”

  그녀는 종이 가방을 열어서 안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 안에 들어 있는 물건들은 보잘 것 없는 것들이었다.

  “구겨지지 않게 말아 놓은 이 두꺼운 종이는 야간 마켓을 찾아가서 폐지 버리는 곳을 한 참 뒤진 끝에 발견했어요. 그리고 이 사인펜과 플라스틱 자는 거기서 산  거고요. 바닥에 깔려 있는 작은 조약돌들은 그 분이 알려준 강가로 가서 주워온 거예요. 모두 3백 개가 넘죠.”

  가다는 자신이 미션을 모두 수행해 냈다는 사실에 기뻐하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그 보잘 것 없는 물건들이 그녀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들은 그녀에게 밤바람을 쏘이며 여러 곳을 돌아다니도록 할 목적으로 그와 같은 일을 시켰을 게 분명했다.

  “그 분이 가장 강조한 것은 이 돌들이었어요. 반드시 엄지손톱보다 너무 커서는 안 되고, 납작하고 서로 크기가 비슷해야 한다고 했죠. 그 분은 흰 색과 검은 색 각각 150개가 넘어야 한다고 하셨는데, 나는 모두 합해서 361개까지 주웠어요.”

  나는 그녀가 강가로 가서 랜턴을 켜고 작은 돌들을 찾는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몇 시간 전만 해도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하려고 했던 사람으로 하여금 강가로 달려가 조약돌이나 줍게 만들다니. 그들은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의 대단한 능력을 지니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들이 가다를 살려냈다는 사실보다 그녀에게 헛된 기대감을 안겨주었다는 사실에 더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 했다. 그것은 내가 유대교를 버리고 유대인이라는 사실도 부정하며 살았던 발자취에 비추어 볼 때 당연한 태도였다.

  신의 존재유무는 사람마다 확신하는 차이가 다르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곧 신으로부터 응답이 오리라고 믿는 사람은 위험했다. 우연이 반복되는 일은 어느 순간에 이르러 끝이 나기 마련이었다. 그러한 일은 신이라도 지지하기를 거부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녀는 이미 자신이 준비한 도구들을 통해서 신과 접촉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는 상태였다.

  사람마다 삶의 무게는 다를 테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릇된 믿음을 확인하는 순간 가장 깊은 고통을 느끼기도 했다. 나는 그녀가 지금까지보다 더 끔찍한 고통을 느끼다가 삶을 마감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그녀의 비자가 만료되어 이집트로 돌아가야 하는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할 것이었다. 더구나 그녀를 지겨워해서 다른 여자에게로 가 버린 남자를 돌려보내 주지도 못할 것이었다. 어쩌면 그녀는 자유를 향한 헛된 희망을 품었음을 깨닫고, 자포자기 하다가 마약이나 매춘의 길로 빠져들지도 몰랐다.

  나는 그들이 내게서 관심을 끊는다면, 계속 그녀의 곁에 머물면서 그들이 이끄는 결말을 보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타인의 삶에 간섭하는 일로부터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일에 중독되어 버렸을 그들의 헛되고 원론적인 충고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이 자리를 떠나는 것 밖에는 없었다.

  “나는 그만 가 봐야 할 것 같아. 가다. 행운을 빌어요.”

  그녀는 나의 느닷없는 작별인사에 당황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더 지체하다가는 그녀에게 도착하게 될 나에 대한 그들의 무례함과 다시 마주하게 되는 일을 피할 수 없을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나의 우유부단함을 저주할 수밖에 없을 게 분명했다.

  나는 일부러 심호흡을 크게 한 뒤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가다에게 안녕이라는 말을 하기 위해 돌아보았다. 그런데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아무 행동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이미 울먹이고 있었던 것이다.

  가다의 작별인사는 길어지고 있었다.

  나는 그녀 곁에 다시 앉지도, 그대로 가 버리지도 못한 채 서 있어야만 했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우리가 머물고 있는 공원 외곽에 조성된 오솔길을 지나가는 사람이 아직까지 한 사람도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가다와 나의 나이 차이는 스무 살 가까이 되었다. 전 날에 이어 지금 다시 흘리는 눈물로 인해 초췌해 보이고 눈이 충혈 된 그녀와 나 사이를 오해한 누군가 참견이라도 하게 될 일은 질색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끊임없이 말을 쏟아내었다.

  “나는 신이 모든 걸 창조했다고 믿지는 않았지만, 알라께서 무슬림들과 함께 하신다는 건 믿었어요. 그런데 어젯밤에 내게 말을 걸어오신 그 분은 내가 알라가 맞느냐고 묻자 분명히 ‘NO’라는 답신을 보내왔어요. 그래서 나는 그분께 다시 물었죠. 그럼 여호와시냐고요. 답은 역시 아니라는 대답으로 돌아왔어요. 나는 이해할 수가 없어서 그럼 어떤 신이냐고 물었죠. 그러자 한참 만에 다시 답이 왔어요. 그분은 모든 신보다 높은 분이라는 거예요.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나와 함께 할 수 있다고 했죠.

  데이비드, 당신은 아까 그분이 내 고양이 미뇽의 이름은 몰랐을 거라고 했죠. 그렇긴 하지만 그분은 분명히 나의 애완동물이라고 말하지 않고, 나의 고양이도 지켜주었다고 했어요. 그건 지난달에 미뇽이 장염에 걸려서 죽을 뻔한 일을 말하는 거였어요. 나는 그때 이집트행 비행기를 타고 미뇽을 보러 돌아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죠. 그런데 열흘 정도를 앓다가 동물병원에서 사망 판정을 받고 집으로 데려온 미뇽이 살아났다고 부모님은 흥분하시면서 전화를 주셨던 거예요. 나는 그 때의 기쁨을 기억해 내었기 때문에 어젯밤에 옥상에서 뛰어내리지 않았던 거라고요.    그리고 한 마디만 더 들어줘요. 중요한 건 그분은 온통 내가 만나야 할 사람에게만 대단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어요. 나의 존재는 마치 내가 그분과 그 사람을 연결해주는 소품 밖에 되지 않는 듯이 말했죠. 하지만 나는 기뻤어요. 신의 도구가 될 수 있는 일만도 감사해야죠. 신이 정말 살아 계시다면 말예요. 그래서 나는 그분께서 명령을 명령한 물건들을 구해서 여기까지 오게 된 거예요.”

  고양이에 관한 부분은 신기했다. 병원에서 죽은 고양이가 집에 돌아와서 살아나다니. 그런 이야기는 내셔널 인콰이어러 같은 곳에서도 접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껏 우리가 메시지를 주고받았던 상대가 알라나 여호와보다도 높은 신이었다니.

  나는 차라리 제우스나 포세이돈을 믿는 사람들과 대화를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부활을 한 고양이 이야기는 이제 신기하다기보다 황당하게 여겨졌다. 여호와나 알라라면 고양이를 부활시키는 따위의 일은 하지 않을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가다가 말한 최고의 신이라는 분은 ‘우연의 신’이어야 했다.

  나는 나의 결론이 마음에 들었다. 우연의 신이라면 확실히 여호와나 알라보다도 높은 존재일 수도 있었다. 그는 이 드넓은 우주에서 지구라는 별을 골라 생명체가 진화하도록 하여 스스로의 존재를 증명해 보이지 않았던가.

  나는 가다가 말을 그친 틈새를 놓쳤다가는 당장이라도 발목에 차고 있는 마우저 소형 권총을 꺼내서 내 머리에 대고 쏴 버릴 것만 같았다. 그건 신의 존재를 강요하는 자 앞에서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자가 느끼는 스트레스에 대해서 가장 적절한 표현이었다. 다행히 나는 그녀보다 먼저 입을 열었고, 다시 작별인사를 할 수 있었다.

  “가다. 당신의 이야기는 대부분 믿어요. 하지만 당신이 만나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럼 나는 이만 가 봐야겠어요.”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이번에도 ‘안녕’이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그건 줄곧 인적이 없던 그곳에 나타난 어떤 동양인 때문이었는데, 내가 바라는 대로라면 그 동양인이 가까워지기 전에 인사를 마치고 그곳을 떠났어야 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나와 가다의 사이를 오해할 것을 두려워하던 나는 그 사내가 가까이 다가올 때까지 그대로 머물러 서 있었다.

  그것은 그가 규칙적으로 손에 들고 있는 모바일 폰을 확인하는 동작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있는 남쪽에서 올라온 동양인 사내는 가까이서 보니 나이가 꽤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검은 머리 못지않게 많은 흰머리로 인해 머리가 회색으로 보였으며, 얼굴의 주름으로 보아 60살은 분명히 넘어 보였다. 그는 마른 체구에 간편한 정장 차림이었는데, 계절에 어울리지 않는 옷차림으로 보아 방금 외국에서 도착한 것 같았다.

  센트럴파크엔 봄꽃들의 꽃잎이 절반 이상 땅에 떨어져 있었다. 그런데 그가 입은 자켓 재질은 두꺼워 보였던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줄곧 손에 든 폰과 주변을 번갈아 보면서 다가왔던 그의 행동 때문이었다.

  그는 처음에 내가 그랬던 것처럼, 숲에서 동쪽으로 내다보이는 빌딩가 중에서 유대인 박물관을 먼저 확인했다. 그리고 그곳을 바라 볼 수 있는 두 개의 벤치가 있는 것까지 확인하고 있었다. 이어 그는 꽤 멀리까지 보이는 산책로의 다른 곳에는 벤치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더 이상 걸음을 떼지 않았다.

  ‘우리 말고 또 있었다.’

  나는 그러한 생각을 떠올리고는 가다를 돌아보았다. 역시 가다도 동양인 사내를 주목하고 있었고, 내가 지닌 것과 비슷한 표정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이제 정말로 이곳을 떠나기만 하면 되었다. 조금 전에 내가 생각했던 대로 메시지를 받은 사람은 우리 말고 또 있었다. 방금 도착한 그가 가다가 기다리던 상대일 가능성은 충분했다.

  하지만 나는 그곳을 떠날 수가 없었다. 나는 방금 그 자가 땀을 닦기 위해 주머니를 뒤져 손수건을 꺼낼 때, 여권이 주머니에 들어 있었던 것을 보았던 것이다.

  그는 어쩌면 우리와 같은 자살 시도자가 아닐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