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만물을 바라볼 때 나름대로의 相을 갖고 보는 듯하다. 현대식으로 말을 하자면 필터가 부착된 안경을 쓰고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리라. 그러니 파란 색 필터를 붙였으면 세상이 파랗게 보일 것이고, 노란 색을 붙였으면  노랗게 보이지 않겠는가!

언젠가 어느 글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인류가 65억인데, 각자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아마도 65억개의 세계가 존재할 것이다.> 정말 그럴지도 모를 일이다. 하나의 현상을 보고 수용하고 해석하는 것은 제 각각이기 때문이다.

가령 이창호와 이세돌이 둔 바둑이 있다고 하자. 사람따라 급수따라 그 바둑을 보는 관점은 다양할 것이다. 10급인 자도 일인자들이 둔 바둑을 보며 잘 두었네 못 두었네 혹은 멋지네 어쩌네 평가를 한다.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말이 아니다. 그것이 세상 아니겠는가. 오히려 당연한 일이겠다.

간혹 글을 써서 올리고 이 글이 어떻게 읽힐 것인가? 생각해보게 된다. 내가 말하고픈 것이 그대로 전달될 것인가 자문해보지만 대답은 <아마도 아닐 것이다>로 끝난다. 이미 나를 떠났고, 보고 읽는 자의 몫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들이 갖춘 相으로 읽고 받아드릴 것이다.

나는 오로의 나도작가방을 나의 <개인 블로그>로 여긴다. 나의 사진을 공개하든 말든 나의 실명을 거론하든 말든 그것은 나의 자유다. 사이버의 장점이 익명성이라고 하는데 그게 왜 장점인지는 모르겠고 특징 중의 하나라고 할 수는 있는데, 욕설이나 하고 비방이나 일삼는 자에게는 장점일 수도 있겠다.

나의 사진을 공개한 시점은 바둑TV 고교동문전에 출전한 내용의 글을 쓰고 나서부터였다. 케이블TV를 통해 전국에 그것도 여러 번 재방으로 나의 쪽(?)이 전국적으로 퍼져나갈 바에야 사진을 올리지 못할 까닭이 무엇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혹자는 그것이 불만인 모양이다. <술익는향기>님은 가족사진을 나작방 아이콘으로 쓰고 있다. 이것은 어떻게 해석해댈지 모를 일이다. 나로서는 보기 좋더만.

혹자는 유독 호칭에 집착을 보인다. 양, 군, 님, 선생, 씨 등. 나로서는 그렇게까지 까다로워야 될 일이 없다고 생각하고 편안하게 한다. 가령 <매월당 김시습>이란 글에서 나는 칸트를 거론하며, 칸트 선생이니 칸트씨라고 호칭하지 않았다. 김시습 역시 그의 호 설잠까지 쓰면서도 아무런 호칭도 없었다.

<고은>에게는 선생 칭호를 썼다. <이문구>에게는 본문에 세 번 거론했는데 <씨>를 두 번 썼고, 마지막에는 <선생>이라고 호칭했다. 그런데 누구는 선생이고 누구는 왜 씨냐고 불만인 것이다. 웃음이 안 날 수 없다. 나는 그것이 다 경칭이라 여겨 별반 신경을 쓰지 않았다. 아직도 무슨 차이가 있는지 모를 일이다.

그 글에서 나는 말하고 싶었던 것이 세 가지였다. 하나는 김시습이라는 인물에 대해 소설을 통해 많이 얻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했다는 것과 그 다음은 생육신이라는 편향된 관점에서 쓴 것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말했고 마지막으로는 토속어에 매달린 탓에 전체를 제대로 조감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여 앞으로 다시 읽어볼 것이라는 것이었다.

새벽에 글을 접하면서 유쾌한 웃음을 지었다. <相과 名>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도덕경에 나오는 말이던가? 만물에 이름을 부여함으로써 비로소 그 존재를 인식하게 된다고. 붓다는 일체 相을 깰 것을 금강경에서 다음과 같이 열심히 설파했다. 그 덕분에 새벽에 금강경 일독을 했다. 외우지 못하니 읽을 수 밖에. 외울 생각도 없지만.

若取法相 卽着我人衆生壽者
만약 법상을 취하면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에 집착하는 것이요
若取非法相 卽着我人衆生壽者(제6분)
법상을 취하지 않는 것도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에 집착하는 것이다

莊嚴佛土者 卽非莊嚴 是名莊嚴(제10분)
불국토를 장엄하는 것은 장엄이 아니니 그 이름이 장엄일 뿐이다

是身 爲大不...佛說非身 是名大身(제10분)
이 몸이 크지 않겠느냐?...붓다는 몸이 아닌 것을 말하니 그 이름이 큰 몸일 뿐이다

佛說 般若波羅蜜 卽非般若波羅蜜 是名般若波羅蜜(제13분)
붓다가 반야바라밀을 말했으나 반야바라밀이 아니요 그 이름이 반야바라밀일 뿐이다

如來說 三十二相 卽是非相 是名三十二相(제13분)
여래가 32상을 말하였으나 32상이 아니요 그 이름이 32상일 뿐이다

是實相者 卽是實相 如來說明實相(제14분)
실상이라는 것은 실상이 아니요 여래가 실상이라 이름하였을 뿐이다

忍辱波羅蜜 如來說非忍辱波羅蜜 是名忍辱波羅蜜(제14분)
인욕바라밀에 여래는 인욕바라밀이 아님을 말하였고 그 이름이 인욕바라밀일 뿐이다

一切法者 卽非一切法 名一切法(제17분)
일체법은 일체법이 아니요 그 이름이 일체법일 뿐이다

如來說莊嚴佛土者 卽非莊嚴 是名莊嚴(제17분)
여래가 불국토의 장엄을 말했으나 장엄이 아니요 그 이름이 장엄일 뿐이다

如來說諸心 皆位非心 是名爲心(제18분)
여래가 모든 마음을 말하나 그것은 마음이 아니요 그 이름이 마음일 뿐이다

如來說諸相具足 卽非具足 是名諸相具足(제20분)
여래가 모든 상이 갖추어졌다고 말했으나 구족이 아니요 그 이름이 제상구족일 뿐이다

衆生者 如來說非衆生 是名衆生(제21분)
중생을 여래는 중생이 아니라고 말하니 그 이름이 중생일 뿐이다

善法者 如來說卽非善法 是名善法(제23분)
선법을 여래는 선법이라고 하지 않으니 그 이름을 선법이라고 할 뿐이다

凡夫者 如來說卽非凡夫 是名凡夫(제25분)
범부를 여래는 범부가 아니라 하니 그 이름이 범부일 뿐이다

如來者 無所從來 亦無所去 故名如來(제29분)
여래는 그 오는 바가 없으며 가는 바가 없으므로 그 이름을 여래라 할 뿐이다

佛說微塵衆 卽非微塵衆 是名微塵衆(제30분)
붓다는 많은 것을 말하나 많은 것이 아니요 그 이름이 많은 많은 것일 뿐이다

三千大千世界 卽非世界 是名世界(제30분)
삼천대천세계는 세계가아니요 그 이름이 세계일 뿐이다

法相者 如來說卽非法相 是名法相(제31분)
법상에 여래는 법상이 아닌 것을 말했으니 다만 그 이름이 법상일 뿐이다

여하튼 나는 나일 뿐이다. 누가 A라고 해서 A도 아니요 B라 한들 B도 아니다. 나 역시 어제의 내가 아니요 오늘의 나는 내일의 내가 아니다. 그래서 금강경에 過去心도 不可得이요 現在心도 不可得이요 未來心도 不可得이라고 했던가!

如夢幻泡影 應作如是觀
꿈과 같고 허깨비 같고 물거품 같고 그림자 같으니 마땅이 이와같이 살펴보라.

그러건 저러건 금강경의 사구게만이라도 다른 사람을 위해 말하는 복덕이 어마어마하다는데, 오늘 이렇게 많은 말을 하게 했으니 그 공덕을 생각하면...이렇게 선연(善緣)을 짓게 해준 인연에 감사드리며 三拜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