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별반 많이 읽은 편은 아니었지만, 평생에 책을 읽다 내던진 적이 딱 세번 있었다.

첫번 째는 대학1학년 때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읽다가 내던졌다. 당시는 한참 철학에 관심이 가던 때여서, 이 정도는 읽어야겠다고 도서관에서 빌려보는데, 무슨 놈의 <용어정의>가 그렇게 많고 지루하던지. 아~! 내가 무슨 철학자가 될 것도 아닌데, 이 지겨운 용어들을 일일이 다 이해한다는 말인가! 포기.

두번 째는 1991년 고은 선생이 쓴 <화엄경>이란 장편소설이었다. 당시에는 불교에 대한 이해도 거의 없었을 뿐더러, 불경 등에서 같은 말이 반복되는 것에 지겨움을 떨었었다. 이 책 역시 읽다가 지쳐서 좀더 성숙해지면 봐야겠다고 포기.

세번 째는 1992년 이문구씨가 쓴 <매월당 김시습>이었다. 무슨 까닭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릴 때부터 김시습이란 인물에 필이 꽂혀 있었다. 아울러 당시 신문의 서평이, 우리의 토속적인 말을 사용했다는 등 꽤 좋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무튼 이번 기회에 김시습을 제대로 알아 보자고 구입했었다.

내가 자동차를 구입한 것이 1993년도였으니 당시는 전철로 출퇴근을 할 때다. 인천에서 왕십리까지 오고가는 그 지겨운 시간을 한참 독서로 메우던 시절이었다. 막상 책장을 펴보니 토속적인 단어가 제법 나오는데, 모르고 넘어가자니 어딘지 개운치 못하고, 그 거 알자고 전철 안에서 사전 펴보아가며 소설책 읽기도 남사스럽고. 에휴~! 언제 한가할 때 사전 옆에 놓고 찾아가면서 읽어야지 했던 것이 18년이나 흘렀다.

요새 <한시 톺아보기>를 하면서 인물에 대한 이해가 제대로 안 되어있으면, 그들의 작품을 옳게 감상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마침 지난번 번역했던 것 중에 김시습의 작품이 몇 수 있었다. 따라서 그에 대해 이것 저것 자료를 꽤 조사했었다. 아울러 이번 기회에 이 책을 독파하자 마음 굳게 먹고 일일이 사전을 찾아가며 일독(一讀)을 끝냈다.

사전에서 찾은 단어의 뜻을 책 여백에 꼬박꼬박 써넣어두는 것도 고역이었다. 읽다가 사전 찾고 적고 해서 그런지 책을 읽고 난 후에도 별반 감흥이 없다. 또 생육신이라는 것의 부각으로 세상을 비관하고 비판하는 시각에서 그를 조감한 듯한 편향성도 약간 엿보인다. 자료의 부족일 수도 있겠으나, 오히려 김시습에 대해서는 그의 작품이 너무나 많아 자료의 넘침으로 인해 미처 다 소화해내지 못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작가의 말>에서도 이문구씨가 김시습의 행적을 되밟으려고 노력했지만 그 때마다 이러저러한 사연으로 문턱 앞에서 좌절되고는 했다고 고백하면서, 선생께서 이 소설을 허락하지 않았다는 느낌이었다고 적어놓고 있다.

나 역시 雪岑(설잠-김시습의 법호) 자료를 조사하면서 처음에서는 <김시습 평전> 수준으로 할까 하는 겁없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그의 수많은 작품들을 보건대  이것은 며칠 정도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고 아무리 적게 잡아도 삼년 이상 걸릴 일인 듯 싶다.

그러건 저러건 한번 책을 잡으면 삼독(三讀)은 해야 읽었다고 말할 수 있으니 앞으로 다시 읽어볼 것이다. 그 때는 읽는 것 외의 다른 행위를 안할 것이니 집중도가 높아져 이문구 선생이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 제대로 알려나 모르겠다.

여기에 그 동안 찾았던 토속적인 우리말 중 몇 가지를 그 뜻과 함께 무순(無順)으로 추기해 놓는다.

에움길        에워 돌아가는 길                         
두름길        둘러서 돌아가는 길
바위츠렁     바위가 겹겹이 많이 있는 험한 곳    
구럭           망태기의 방언                                
시축(詩軸)  시를 적은 두루마리                   
구실아치     벼슬아치 밑에서 일하는 사람      
빗아치        관아에서 사무보는 사람 
대끼다        애벌 찧은 수수나 보리 따위를 물을 쳐가며 마지막으로 깨끗이
해토머리     얼었던 땅이 녹아서 풀리기 시작할 때 
바이없다     1. 어찌할 도리나 방법이 없다
                 2. 비할 데없이 심하다
곤댓짓        뽐내어 우쭐거리며 하는 고갯짓      
칙살스럽다  하는 짓이나 말 따위가 잘고 더럽다
터분하다     1. 입맛이 개운하지 않다
                 2. 음식 맛이 신선하지 않다
                 3. 날씨나 기분이 매우 답답하고 다분하다
시나브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 
걸때           사람의 몸집이 체격
수수러지다  돛 따위가 바람에 부풀어올라 둥글게 되다
내전보살     알면서도 모르는 체 가만히 있는 사람
넌덕           너텃웃음을 치며 재치있게 말을 늘어놓음
입맷상        큰 상을 차리기 전에 먼저 간단하게 차려 대접하는 음식상
뒷갈망        뒷감당
그루박다     1.물건을 들어 바닥에 거꾸로 탁 놓다
                 2. 머리를 아래쪽으로 돌려 내려가게 하다 
                 3. 사람을 기를 펴지 못하게 억누르다.
육미붙이     짐승고기 총징
제여곰        제가끔의 고어
숫접다        순박하고 진실하다
더덜뭇하다  결단성이나 다잡는 힘이 모자라다
노적부리다  말, 표정, 몸짓 따위가 일부러 꾸미는 듯하다
수긋           고개를 조금 숙임
보동되다     길이가 짧고 통통하다
바라지다     갈라져서 사이가 뜨다
숙수지공(菽水之供)  가난 속에서도 정성을 다하여 부모를 잘 섬기는 일
둘러방치기  ~을 슬쩍 빼돌리고 그 자리에 다른 것을 대신 넣다
행리           행장
수나롭다     무엇을 하는데 어려움 없이 순조롭다
시르죽다     1.  차리지 못하다
                 2. 기를 펴지 못하다
부액하다     부축하다
시뻐하다     1. 마음에 차지 않아 시들하게 생각하다
                 2.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
너볏하다     몸가짐이나 행동이 번듯하고 의젓하다
오망하다     물건의 바닥이나 면 따위가 납작하고 오목하다
                 하는 짓이나 태도가 괴상하고 요망스럽다
봉놋방        주막에서 여러 사람이 잘 수 있는 제일 큰 방
명지바람     보드랍고 화창한 바람
풋장           가을에 억새, 참나무 따위의 잡풀이나 잡목을 베어서 말린 땔나무
띠앗머리     ‘띠앗’을 속되게 이르는 말. 띠앗 : 형제나 자매 사이의 우애심
짬짜미        남모르게 자기들끼리만 짜고 하는 약속이나 수작
등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