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여러가지 철칙이 있는데 다음은 그 중 하나다.

<내가 전공한 것은 남을 가르칠 수 있어야 하고, 내가 전공하지 못한 분야라도 남이 설명하면 이해할 수 있어야 하며, 거기에 더해 질문할 수 있어야 한다.> 

벌써 삼십년도 더 넘은 일이다. 내가 크래식 기타아(Classic Guitar)에 입문한 것이 1979년 9월 1일 이었다. 우리가 어릴 적에는 음악적인 것이 별로 발달하지 못했던 것 같다. 초등학교 시절 <전석환>인가 하는 사람으로 기억하는데 통기타 반주에 맞추어 건전가요를 열심히 불러댔던 것 같다. 그리고는 김세환이니 윤형주니 하는 양반들이 등장해 가히 통기타 전성시대를 열었다. 청바지의 유행과 함께.

바로 위의 형님이 기타아에 미쳤었다. 형님이 고교시절 (즉 나에게는 초등말에서 중등시절) 우리 형님은 인천 지역사회에 내노라하는 음악꾼이 되어있었다. 여기 저기 초대받고 기타아반주에 노래하러 다니곤 했다. 그 덕에 나는 기타아를 특별히 배운 것도 없이 어깨너머로 알게되었다. 대강 반주법에 코드까지 섭렵해 고교시절엔 제법 애들이 노는데 뺄 수 없는 존재가 되기도 했었다.

고3 때 우연히 악기점 앞을 지나다가 이상한 음악을 듣게 되어 나도 모르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악기점 사장 아들이라는데 대학을 다니고 있었는지 청바지에 장발머리를 하고 열심히 기타아를 치고 있었다. 그런데 그 기타아가 쇠줄이 있는 통기타가 아니고 흔히 나이롱줄이라고 하는 것이 매여져 있는 크래식 기타아였다. 그 때 연주하던 곡이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었다. 분명히 혼자 치고 있는데 들리기는 둘이 연주하는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그 때부터 크래식 기타아에 매료되었다. 저것을 꼭 배워야지!

고3 때 빌어먹을 놈의 바둑에 미치는 바람에 대학 진학이 2년이나 늦게 되었다. 1학기에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했다. 이유는 제대로 된 기타아를 구입하기 위해서였다. 한학기 모으고 그 당시 5만원이라는 거금을 투자해 기타아를 구입했다.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일지 잘 모르겠는데, 악기점 가보니 대략 그 당시의 악기수준을 고려해보면 지금 시세로 30만원~70만원 정도를 호가하고 있었다.

인천 지역사회에 크래식 기타아를 전문으로 하시는 분이 계시다. 지금은 고희가 넘으셨는데, 호를 여석(如石)으로 하신다. 얼핏 들으면 멋진 호이긴 하지만, 이 녀석 저 녀석 할 때의 여석인 것이다. 또 별호를 다전도인(茶田道人)이라 하시는데 커피를 너무 좋아하셔서 붙이신 별호란다. 아무튼 괴짜셨고, 국문학을 전공하셔서 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시는 교사이셨는데, 크래식 기타에 미치셔서 학교는 뒷전이고 학원까지 내신 분이다. 그 분의 제자로 입문한 것이다.

나에게는 <백일독공(百日毒功)>이라는 좌우명이 있다. 주로 잡기(雜技)를 연마할 때 쓰는 마공인데, 어떤 종류가 되었건 약 100일 정도를 하루에 8시간 이상 거기에 몰두하는 것이다. 웬간한 과목이 아니면 거의는 대강 마스터가 된다. 나의 경험으로는 바둑, 장기, 마작, 탁구, 당구 등 거의 100일이면 대강 남들하고 놀 정도는 된다. 골프는 하다가 사업 말아먹는 덕에 100일을 못 채웠다.

기타아 역시 겨울 방학을 맞이해 하루 8시간 이상을 연습했다. 한 3개월 미친 듯하니까 선생님이 지휘하시는 합주단에 들어오라고 하신다. 입문 6개월만에 입성한 것이다. 1980년부터 매년 세종문화회관, 국립극장 등에서 연주활동을 했었다. 그러다 대학 졸업 후 끝이었지만...

한참 기타아에 빠져있을 때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있었다. "여현아! 너는 크래식 기타아를 어떻게 생각하니?" 멍하니 쳐다보니 왈 "기타아는 하나의 악기다. 즉 크래식 음악을 연주해 내는 피아노나 바이올린 같은 하나의 악기에 불과한 것이다. 따라서 네가 훌륭한 연주가가 되기 위해서는 크래식 음악을 알아야만 한다." 

그때부터 다시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스테레오 카셋트를 사기 위해서다. 형님하고 몇 달 같이 모아서 일제 Sony를 구입했다. 주파수를 KBS FM에 맞추고 밥을 먹으나 잠을 잘 때나 오로지 듣는 것이다. 그놈의 크래식 음악이라는 것을 처음 들으니 미칠 지경이었다. 특히 오페라의 아리아를 들으면 신경이 곤두서고 머리칼이 쭈뼛해왔다. 그러건 저러건 이것도 백일독공 과목이 되었으니 줄창 죽어라 하고 듣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음악통론의 독파와 함께.

대략 화성학이니 대위법이니 뭐니 하는 것들을 알아갈 때 어느 날 라디오를 듣는데 귀가 이상해지는 것이다. 현악4중주 곡인데 악기 소리가 각각 들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제 귀가 트인 것이다. 소위 득음(得音)을 한 것이다.

이 때부터 음악에 미쳤었다. 바로크 음악을 비롯해 고전주의, 낭만주의 등등을 섭렵하였고, 무소르그스키의 <민둥산에서의 하룻밤> <전람회의 그림>에,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짜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하였다>의 광시곡까지 감상하는 수준이 되었다. 이쯔음 되었을 때 음악 공부도 대강 한 정도가 되어서 딸림화음이니 증음정이니 감음정이니 따위도 대략 알고 음악을 들으면 화성을 어떻게 변조하는지도 뭐 대강 알아듣는 정도가 되었다. 지금은 다 잊어먹었지만...

그 당시 현대음악이라고 무조(無調)의 12음계를 쓰는 조류가 있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쉔베르크>다. 그런데 이 양반 음악은 아무리 들으려해도 머리칼만 곤두서지 도통 접근이 안되었다. 아! 나는 현대음악에는 젬병인가 보다 생각하고, 그 이상 진도 나가는 것을 포기했다. 현대음악에 이르면 조(調)도 무조에 도통 낯설은 12음계에 박자도 5박자 7박자 따위 내지 무박자 곡도 있었다. 내가 무슨 음악의 전문가가 될 것도 아닌데 더 들어 무엇하리. 포기.

이 때 <황병기>씨의 가야금 독주곡 <숲>을 들었었다. 세상에~! 입이 절로 벌어졌다. 가야금으로 이런 소리를 낸다는 것이 신기하고 야릇했다. 그 덕에 국악도 대략 듣기 시작했다. 듣다보니 알게된 것이 있다. 무조니 12음계니 무박이니 하는 것들이 모조리 다 국악에 녹아있는 것이었다. 지금은 재즈도 크래식으로 분류되지만 이미 우리 음악에 재즈의 요소까지 몽땅 다 포함되어 있었던 것을 나중에 알게된 것이다. 서른 넘어.

이렇게 장황하게 떠드는 이유는 한시(漢詩)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것인데, 맹세코 나는 한시를 제대로 알지도 못할 뿐더러 그 작시법도 배워본 적이 없다. 내가 경험한 것은 정비석이 쓴 <김삿갓>이란 허접한 소설 6권을 독파한 것이 전부다. 읽고 나니 뭔지는 모르지만 한시에 대해 친근감이 가고 입에서 저절로 흥얼거려지는 것이다. 그러니 운이나 맞출줄 알지 평측이니 이사부동이니 뭐니 아는 바가 없다. 그러므로 그 동안 퍼질러 댔던 것이 유치원 수준의 동시(童詩)마냥 졸렬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다.

사람이 늙어져가니 공부하고픈 것이 한학(漢學)이다. 입으로 읊어댈수록 그윽한 맛이 그만이고, 씹을수록 그 은근한 뜻이 그만이다. 에라 모르겠다. 그래서 입문을 결심했다. 무사독학(無師獨學)해가기로 한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몽학수준이다. 이럴 때 여현에게 필요한 것은 뭐?

그렇다. 비판보다는 <격려>다. 비난보다는 <질정>이다. 스스로에게는 <용기>가 필요하다. 솔직히 이 여현은 겸손할 줄 모른다. 나의 가장 큰 병폐라는 것도 스스로 잘 안다. 그런데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나는 아는 것을 안다고 말한다. 모르는 것 역시 숨김없이 모른다고 말한다. 왜? 모르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정작 부끄러운 것은 모르는 것을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어왔다.

흔히들 <말보다 행동이 먼저다>라고 한다. 그런데 나는 애들한테 그렇게 교육시키지 않는다. 성(誠)이라는 단어를 가지고 <온 마음을 다 한다고 하는 것은, 먼저 말을 하고, 그 말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그것을 이룬 것을 말한다. 따라서 사람은 자기가 하고픈 것을 먼저 밝히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그 말에 책임을 지기 위해 부지런히 노력해야한다>고 지금껏 우리집 아이들을 가르쳐왔다.

그러건 저러건 어느 세월에 <쉔베르크를 아는 수준>까지 될지 은근히 걱정이다. 이 분야는 백일독공으로 해결할 수 있는 잡기가 아니고 학문이기 때문에 더욱 더 옷깃이 여며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