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떠보니 새벽 2시였습니다. 제 자신이 싫어졌습니다. 조금 더 자주지! 벌써 깨우시면 어떻게 하시나? 저를 깨운 저한테 투덜댑니다.

정비석이가 쓴 김삿갓이란 허접한 소설에 보면, 글자풀이하면서 농 짓거리를 일삼던 소재들이 제법 나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나무 위에서 나팔을 또또또 부는 글자가 뭐냐는 겁니다. 정답은 뽕나무 상(桑)이랍니다. 또 우(又)자(字) 세 개가 나무 위에 있으니 그럴듯하지 않습니까?

그제 김천에서 떡이 되도록 술을 마시고, 아침 해장에 막걸리 한통, 점심에는 손두부에 또 막걸리 한통.

인천에 도착했는데 그 흥건하고 걸쭉한 정(情)을 지울 길이 없어, 친구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이 보시게. 이 여현이 기분이 너무 좋아 그냥 들어갈 수가 없네. 어떠신가? 그 전라도 영광 출신이라는 주모가 하는 집에서 막걸리 한잔 하시려는가?

불감청이면 고소원이라던가! 얼씨구나! 두부김치에 조기매운탕으로 일배 부일배. 이 벗은 서도(書道)를 하니 자연 옛글을 대하는 빈도가 높습니다. 따라서 이러저러 이바구가 결국은 석가(釋迦)가 어떠니 노자가 어떠니에 이르러, 애꿎은 공자만 폄훼 당하였습니다. 이 여현이나 여현과 가까이 하는 벗들은 공자 알기를 도올같이 여깁니다. 딱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머리 나쁜 놈들이었다는 거죠.

2시에 기침한 후 이것저것 정리하다 보니, 담배도 떨어졌고 속이 출출해옵니다. 써득써득한 새벽길을 걸어 담배 두 갑과 소성주(인천 특산 막걸리) 한 통을 사왔습니다. 사실은 살짝 고민 좀 했습니다. 두 통을 살까? 아니야. 한 통만 먹고 죽자.

일단 술을 입에 대면 한 삼일은 마셔야 직성이 풀리는 못된 성격으로 지금 이 시간에 김치 그리고 참치와 잣을 안주 삼아 마십니다. 이래서 글 제목을 우우우장취(又又又長醉)하기가 쪽(?)이 팔려 상장취(桑長醉)로 하였습니다. 실상은 떠오른 시상(詩想)을 정리하기 위해서였습니다만.

김천 간 김에 낙동의 도도한 물길을 보려했건만, 이러저러한 이유로 실행에 못 옮겼습니다. 꿩 대신 닭이라던가! 직지사 계곡물에 탁족(濯足)이라도 해야 안 되겠나!

결국 직지사 말사인 운수암(雲水庵)까지 갔습니다.

誰人指心何直指 (수인지심하직지) 언놈 마음을 가르켜 직지라 했나?

雲水處鬱松深谷 (운수처울송심곡) 운수암은 솔숲 계곡 깊은 곳에 있건만

稚尼讀經響寂庵 (치니독경향적암) 어린 여승(女僧) 독경소리 고요한 암자 울릴 때

飮泉作煙休困脚 (음천작연휴곤각) 샘물 한 모금 마시고 담배 한 대 피워 물며

                                              지친 다리 쉬노라

내려오다 보니 찻집(茶亭)이 있더군요. 솔잎을 발효시킨 차라던가! 속까지 청량감이 밀려옵니다. 옆에 계곡물 흐르는 소리가 장관이었습니다.

聽雷聲溪邊 (청뇌성계변) 시냇가 물 흐르는 소리 천둥같은데

談多情茶樓 (담다정다루) 찻집에 많은 이야기 정도 깊어라

昨夜降暴雨 (작야강폭우) 지난 밤 비가 퍼부어서인가?

淸水轉濁流 (청수전탁류) 맑은 물이 흐려 흐르네

이런! 막걸리가 떨어져 갑니다. 저 죽으러 가겠습니다. 실시간 댓글놀이 못해드려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