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일기 101~107편이 나작에 누락되어있어 다시 올려놓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바둑일기102, 인생의 자충수
선수들 모임이 토요일 오후2시여서 터미널 앞의 선배가 운영하는 기원으로 들어선다.
오래전 충암 연구회의 발간물, 해설, 기보 등을 마치 무림의 비급이라도 얻은 듯 새로운 시도들과 힘찬 변화들이 경이로우며 기쁨 속에 보던 시절이 생각난다.
각 기수의 대표선수 중에서도 가장 쎈 기력의 동문대회 우승이나 준우승자 이거나 전국대회 우승 급의 선수들을 선발하여 따로 모여 연습과 토론, 준비 등을 한다.
4년째 참가한 마산 전국대회에서 첫 우승을 계기로 전력상 우리도 모든 대회에 가능성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자부심속에 시작한 선수모임의 준비는 최근 인터넷 서적판매회사 예스24배 2회전에서의 패배로 조금 무색하게 되었지만 더운 여름 휴가철 속의 모임에도 대표 급 선수들은 많이 모인다. 나야 선수 자격은 안 되겠지만 선발이나 오다 작성 등 임원의 자격으로 동문 기우회 창립과 온라인에서의 활동에 공헌한 자격으로 초청되는 것이겠지.
오로 왕별도 선수에 무조건 선발이 안 될 정도니 오로6단이야 명함도 내밀 생각을 말아야 겠지. 기수별 대회에선 상대기수의 1장을 이긴 적도 여러 번 있긴 하지만 전국대회 우승이라는 내게는 꿈과 같은 업적을 이룬 동문들이거나 적어도 대학 대표1진 정도는 되어야 한다.
선배는 문간에서서 반갑게 맞는다. 기원을 운영하는 초로의 영감님.
“나도 이제는 영계에 속해.”
전부 나이 지긋한 이들만 앉아 바둑을 두는데 50대도 적고 거의 60, 70대 이다.
K대 응원단장 이셨다던 선배는 용틀임치는 정열을 어떻게 삭이고 기원을 지키고 앉아계실까?
초반전의 반상엔 41회 1장이신 선배가 흑번으로 상대는 화장실에 갔는지 없고 혼자 희희낙락이다. 초반부터 난전인지 백은 양곤마고 흑은 추격하며 실리도 많이 확보한 모양이지만 마치 10 급 바둑처럼 뭔가 이상한 반면이다. 상대가 누군데 저리 똑같이 무식하게 두었을까? 모양과 포석, 완급이 배제된 하수끼리의 모습이다. 양곤마를 만들었다고 좋아하는 41선배.
41기 조 선배님 그 분은 정말 바둑을 좋아하신다.
종로3가부터 서울역까지 걸어서 기원들을 전부 들려보니 13곳인지 가는 곳마다 만 원짜리 내기할 사람 있느냐 청하니 단 한 사람도 응한 이가 없었다는 일화의 주인공이다.
대학등록금이 3만 원 정도 하던 시절이니 만원이면 지금 돈 백만 원 정도 했을 것이라며 결국은 나중에 누군가 강호의 고수와 붙어 만원을 날리고 수학여행 간다고 집을 나섰는데 돈을 잃어 여행도 못가고 집에도 못가니 기원에서 며칠만 숙식을 시켜달라고 하여 자장면만 매일 얻어먹었다는 주인공.
오페라의 아리아를 지금도 멋지게 부르며 기억하시며 고교시절 오페라 교내 공연에 참가했던 추억에 자부심을 곰씹으신다. 언젠가 회식 후 노래방에서 정말 노래를 잘 하시던 기억이 나 그 다음 뵜을때 요즘도 노래방에 가끔 가시냐고 여쭈니 요즘은 틀니를 해서 못가. 소리가 자꾸 새버리는 것 같아 하실 때 내심 혼자 안타까움도 느꼈지.
52기 후배와 돌을 가려 대국을 시작한다.
모두 한 펀치 하는 내공의 강한 기력들이니 긴 바둑으로 잘게 쪼개며 계가로 가리라 다짐한다. 초반부터 맹공에 사석작전으로 버리며 좌 우 양변에 큰 집을 짓고 20여 호 이상 우세한 국면이 되자 좌변에 침입을 몇 집 양보하면 될 것을 관전하는 이들을 지나치게 의식했는지 더 큰 손해를 보곤 반집패이다.
그래도 내심 속으로는 대학연맹 선수를 유리하게 이끄는 내 실력도 다들 보았겠지 싶으며 자위한다.
동문들이 모이는 것도 좋지만 바둑을 토론과 연구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실력향상에 큰 도움이 된다. 반 치수를 늘려면 10년 걸린다는 것이 과거의 경험치 이었는데 이곳 토론에선 하루에 반 치수가 향상되는 느낌이다.
화장실서 돌아오지 않는 상대를 기다리는 조 선배는 신이 나 계신다. 다 이긴 것처럼.
조선배의 실력도 무시할 실력은 아니지. 지금도 41기 1장이고,
지난번 연습에선 대표선수인 52기 2장을 이기기도 했지. 다들 놀란 표정일 때 선배는 양복 안쪽 포켓에서 월간바둑 부록 작은 책을 꺼내며 나는 지금도 이렇게 공부해 하며 좌중을 놀라게 했지.
무더운 여름 반팔셔츠에 주머니도 적은데 바지 뒷주머니에서 또 예의 그 부록 책을 꺼내신다. 항상 공부해야 한다며.
화장실에서 돌아온 이는 우리 대표선수중 공인 최강 한 선배이다.
비어있던 좌석에 앉으며 반상을 돌아본다.
아니 한선배가 바둑을 이렇게 둘 때도 있나? 상대가 무조건 몰아치니 일단 급한 비를 피한 것일까? 의아하면서도 재미있어 둘러앉아 관전을 한다.
곤마를 몰아치며 실리도 굳혀놓은 것 같아 유리해보이던 흑은 몇 수 진행되자 금세 반면은 뒤집힌다. 양곤마를 몰던 가운데 말이 오히려 죽고 군데군데 두터움이 빛과 예리함이 되어 흑은 맥없이 던지고 만다. 어린애 손비틀기라던 속담이 제격이다.
“바둑은 인생의 자충수야.” 41기 조 선배
“아니 선배님 그렇게 멋있는 말씀을.”
그리도 바둑을 좋아했고
자신의 실력에 자부심을 가졌고
지금도 열심히 바둑공부를 하시지만
바둑에 쏟아 부었던 열과 성을 다른 곳에 투자했더라면 더 많은 성과를 이룩했을 것이라는 말씀이시다. 지금도 현역으로 항공운송회사를 운영하시는 선배는 끊임없는 노력과 반상의 감투정신으로 지금의 위치를 지켜내신 것 아닐까? 그것은 바둑의 힘 아니었을까?
뒤풀이 저녁에는 백숙과 소주로 더위를 씻어낸다.
최강의 기력수준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옛이야기 무용담 들은 항상 새롭고 배울 점이 있다.
하반기엔 온라인 활동을 강화하여 오로에서 모든 동문이 동참하는 활발한 장을 열기로 의견을 모은다.
동문들이어 좋은 것일까?
바둑인 들이어 좋은 것일까?
끝.
08.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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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팔공선달
가죽商타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