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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상일기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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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까다의 창작집 - 묘수풀이집-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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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반상 圖書 일기(11월 6일) - 사까다의 창작집 - 묘수풀이집-7
11월의 다섯 째 날 밤 6시 42분.
겨우 6시. 그런데 나는 밤이라고 부른다.
가을이 오늘 낮에 본 가을에서, 떨어져 쌓인 은행잎이 하얗게 탈색되는 것을 봤다.
논에 벼, 가을의 수확, 그 노랗게 정정하던 가을의 벼 이삭도, 한 순간 탈색한다. 스스로 벗어나는 걸까. 그러리. 탈색된다고 표현할 수 없으리.
낮에 선배와 점심을 했다. 그 고추, 간장에 절인 고추의 그 매운 맛이 아직도 혀를 지배한다.
밤에 드니까 문득 숙제를 하나 생각했다. 무슨 숙제냐고? 바로 이 일기다. 내 쓰는 일기는 매우 어렵다. 나에게 어렵다. 맹자에 이런 말이 있지 않은가. 사람의 큰 우환은 바로 남의 스승되기를 열망하는데 있다. 오랜 만에 읽은 글. 읽고 나면 곧 잊는 글. 말씀.
내 옆에 현자들이 계셔도 못 알아보니, 그건 내 탓. 타고난 탓이라 하면 그 또한 어리석다.
사까다의 珠玉詰碁 (1995, 동경: 성문당신광사)
내 이 책을 언제 옆에 두었나? 분명히 1995년은 아니다. 난 97년 가을까지는 바둑에서 거리가 천년이었다.
사까다 선생이 전념을 다하지 않은 책. 그러나 적당히 넘기지도 않은 책. 매일신문에 묘수풀이를 출제한 적이 있었다. 다까가와 선생이 세상을 달리 한 다음에. 그리고 여기 저기 약간씩 산재한 문제를 모아서 200문제를 펼쳤다.
이 분 75세 기념. 기사생활 60년 기념. 75세에 저리 할 수 있단 말이지? 좋아. 좋군. 좋아. 나도 할 수 있으리. 우리 모두 할 수 있으리. 집중에 집중. 항상 하는 건 바보 짓이고 또 그리 해서는 얼마 못견디는 것이 보통이겠지만, 그래도 할 수 있으리. 하겠다는 맘은 잡고 다음을 넘어야 하리.
이 또한 내 일기를 쓰면서 얻는 좋지 않은 점이다. 난 일기 쓰는 방식을 달리 해야겠다. 독자께서 말씀 주시지 않으시련지? 외유내강한 친구는 두었지만, 난 그렇지 않다. 난 그 반대에 가깝다.
묘수집으로써 이 책은 매운 편에 속한다.
이 책이 한국에 소개되었을 때, 프로들이 말했다. 그거 어려운 책이던데? 맞아. 볼 만해. 사까다의 눈매가 잘 드러난 책이라는 것이 모두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과연 그렇다. 가만, 이거 번역되어 나왔던가? 그랬던 듯한데, 그렇지?
매섭다기보다는 매운 묘수집이다.
지금부터 내 쓰는 말은, 사까다 선생에 대한 것이 아니다.
자칫 오해 살 수도 있으리. 그러나 그렇기에 지금 할 만하다. 왜냐? 사까다는 자신에 대한 자부가 대단한 인물. 그건 우리 모두가 짐작한다. 아는 건 아니지만 짐작은 한다. 그 짐작을 뒷받침하는 글들을 우린 꽤 읽었다.
그렇기에 내가 이제부터 말을 한 마디 할 수 있다. 자부심과 능력을 둘 다 갖고 있는 자는 자신의 문제를 누가 지적해도 감사할 수 있으리. 겸손까지는 내 모른다. 나는 겸손의 덫을 놓을 수도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된다.
사까다의 책에 고전의 냄새가 풍기는 문제가 몇 개 있다. 많지는 않다.
거의 같은 것도 있다.
사까다는 서문에 말했다.
창작은 어려운 것이며, 고전을 수정한 정도도 있다. 실로 새로운 발상이라고 자부하더라도 다시 돌아보면 그렇지 않다.
나는 내가 본 그 어느 묘수집에서도 - 하나의 예외는 있다. 그건 잠시 후에 말하자- 고전과 완벽히 다른 문제만을 엄선한 창작만을 다룬 책은 못 봤다.
‘나’는. 나는 그랬다.
내 보기에 이건 일본의 기사들이 훌륭한 기초를 지녔다는 것을 말해주는 좋은 증거다. 나는 일본기원 발행의 ‘주간 碁’를 틈틈이 보는데, 실로 즐거울 때가 많다. 기사들이 문제를 내는데, 그 묘수풀이가 매우 훌륭하다. 깔끔하면서도 바둑의 묘미를 잘 드러낸다. 바둑문화의 깊이를 말해주는 것으로 나는 받아들인다.
문화에 자칫 오해 마시라. 바둑 문화, 그 개념에 함유된 뜻은 바둑에 관한 우리의 상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도 있다. 우리의 사랑하는 바, 아끼는 바도 그 속에 포함된다. 그러나 그 보다 넓은 세상을 문화라는 개념은 포괄하고 있다.
바둑의 세계, 그것을 바둑의 문화라고 불러도 되리.
바둑이 세계? 그건 우리 모두가 말할 수 있는 개념이다. 바둑에 관한, 바둑의, 바둑으로 인한, 바둑이 영향을 주는, 바둑에 무관한, …, 그러리. 바둑에 무관한 것까지 포괄할 수도 있으리.
사까다의 묘수집에는 다른 기사의 문제와 중복되는 문제가 등장한다. 고전과 중복되는 문제가 등장한다. 돌 몇 개 틀리지 않고 거의 형태가 같은 문제가 등장한다.
자, 나는 말하고 싶다.
그래서? 그게 어떻다고? 그래서 창작집이 아니란 거냐?
내 보기에, 창작집이다. 사까다의 맛이 배어있다. 깊게 배어있다.
그러면 왜 중복이 있느냐?
방금 찾아봤다. 200문제 중에 24개.
고전 또는 내가 본 묘수집에서 나오는 문제와 중복되는 것이 열에 하나다.
1) 고전에 충실한 공부를 했다.
2) 묘수집이 본업이 아니다. 나중엔 잊었다.
실로 하나의 문제만 제대로 된 창작이 있어도 그건 훌륭한 거다. 그러나 이 정도로 넘어가진 않겠다. 공부한 거다. 고전부터 그 이후까지 공부한 거다. 공부할 때 열심히 한 거다. 비록 사까다 스스로 실전을 통해서 실력을 키웠다하더라도 이미 사까다는 일본의 바둑계에서 자란 사람이다. 1935년 입단.
이창호도 고전은 그리 많이 접하지 않았다 했다. 아니, 그건 내 틀린 표현. 일본의 옛 명인기보는 그리 보지 않았다 했다. 내가 물어본 것이니, 틀리지 않으리.
자, 어려운 문제가 만들어질 참이다. 아까 내가 머릿 속에 그린 것보다 좀더 문제의 외연이 넓어졌다.
그만 하겠다. 내 일기라고 맘대로 한다? 그런 점도 있지만, 힘들다.
또 하겠다. 그러면 되지 않을까? 아니, 그래야 한다. 누구도 집중은 오래 지속 못한다.
7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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