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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상일기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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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마 시절 - 서울에서의 첫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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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반상 일기(1월 9일) - 나의 아마 시절 - 서울에서의 첫발
밤 8시 53분.
서울에 왔었다. 1974년 8월. 비로소 시작되는 나의 아마 시절.
충암학원 그 언덕은 건조했다. 학교 앞 홍은동 백련산 기슭에는 명지고등학교가 자리잡고 있었고 그 일대는 논으로 덮여 있었지만 충암학원 근처는 택지 개발의 열기가 한창인 듯했다. 충암학원이 자리 잡은 언덕은 햇볕에 몸을 가릴 만한 장소가 없었다. 서울의 신흥 학교가 대부분 그랬듯이.
김천고등학교는 뒷산에 몸을 누이고 넓은 들판과 시내를 앞에 두었기 때문에 여름 쪼이는 햇살에도 몸을 피할 만한 서늘한 장소는 눈만 돌리면 얼마든지 있었다. 뒷산엔 사용한지 오래된 수영장도 있었고 연못도 있었으며 봄이면 매화, 가을이면 단풍, 겨울이면 눈발이 있었다. 나는 그 자연을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서울로 첫발을 내디딘 순간, 나는 김천의 그 자연을 떠났다는 것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학교 근처 남가좌동에 하숙을 구했다. 내 서울의 집이 되었던 남가좌동 2층 양옥. 귀여운 소영이 그 어린 유치원생은 이제 아이까지 가진 어머니가 되었지만, 남동생 병수도 이제 30이 넘었지만, 그 때 1974년엔 소영이 어머님도 젊은 새댁이었다. 우리 어머님은 최근에도 소영이 어머님을 절에서 만나곤 하신다.
하숙집엔 이미 바둑에 인연을 두었던 충암의 선배가 있었다. 남두현 선배. 김상호 선배는 나중에 함께 있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 1974년의 늦가을에는 - 지금의 양재호 9단이 국민학교 6년생으로 함께 하숙을 했다. 고향이 울산인 소년 양재호는 대단히 총명한 棋才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래, 그런 시절에 어떻게 생활했는가는 천천히 회상해도 늦지 않으리.
나는 서울에 올라온 이후 바둑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바둑을 시작했다. 바둑공부는 아직 시작하지 못했던 것이 아닌가도 싶어 그리 표현한다.
당시 충암에는 뛰어난 선후배가 많았다. 허장회 선배는 앞선 실력에도 불구하고 입단이 늦어지고 있었고, 정수현, 김학수 선배는 입단한 상태였다. 정대상 선배는 1년이 빨랐지만 실력과 재주로는 10년은 앞선 듯했다. 조대현 강만우는 1년 후배였는데 실력으로는 이미 입단대회 본선을 넘어선 상태였고, 왜 입단이 늦어지고 있는가 하는 아쉬움이 주변에 쌓이고 있었다.
나는 어디 쯤에 서 있었을까.
9월에 입단대회라는 곳에 처음으로 출전을 해보았다.
내 실력은 3차예선에 올라갈 정도. 그러나 6명이 한 組로 된 E조에서 나는 2승 3패를 기록했다. 그러나 그 2승 3패가 5승이 되기까지 나는 2년 반을 공부해야만 했는데, 그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리라고는 여전히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기억에 남는 재밌는 것이 두 개 있다.
3차 예선 첫판은 지금은 작고하신 임창식 사범과의 대국이었는데, 내가 흑을 잡고 크게 유리했었다. 물론 실력으로는 2점일까, 아니면 先둘 정도의 차이일까. 선둘 정도가 맞을 것이다.
그러나 기백은 중요하며, 또 한 번 아차하면 그 차이가 쉽게 좁혀지는 것이 바로 선둘의 치수. 아침에 두기 시작한 바둑. 내가 흑으로 계속해서 공격에 공격을 거듭했다. 임창식 사범도 당혹했으리. 어디서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신출내기가, 감각은 그런대로 예민한 점이 없지 않았고 또 수를 읽는 것은 꽤 정확했을 테니까 말이다.
그러나 결국은 실력이 말을 하는 법. 나는 돌을 던졌다.
임창식 선배와의 대국에서
좌상귀 형태는 내가 흑을 잡았을 때 열심히 반복하던 당시의 유행정석.
하변 백의 사활이 걸렸던 상황이었다. 나는 흑1 젖혔는데 백이 6 젖혀 살아가는 수를 깜박했다. 당연히 우상귀에서 보듯, 흑7 먹여쳐서 패를 만들 수 있는데도 말이다.
진짜 재밌는 상황은 내가 돌을 던진 바로 그 때 일어났다.
나는 사활을 놓치자 앞뒤 분간 못하고 그만 돌을 던졌는데, 그 장면을 주의 깊게 지켜보고 계셨던 문명근 선배가 마치 자신의 바둑인양 아까워 하는 것이었다. 왜 돌을 던지냐? 네가 그래도 유리한데! 임창식 선배는 말이 없었다. 인정하는 것이었으리.
승부의 마음을 통제하는 것은 그 후 지금까지 내 미치지 못하는 경지이다.
다른 하나는 김수장 선배와의 대국. 같은 E조에 속해 있었다.
내가 이겼다. 하하. 내가 이겼었다. 김수장 선배가 회돌이축을 착각했던 것이다.
그 해 가을엔 김수장 선배가 입단했다. 하하. 속으로 아차 했으리. 입단대회에서 특히나 3차 예선에서는 전승을 해야만 한다. 그런데 그만 先둘 하수에게 졌으니, 크게 당혹했으리. 다행히 4승 1패로 본선에 올라갔으니 그렇지 정말이지 입단을 놓칠 수도 있었으리.
김수장 선배와의 대국에서
아쉽게도 그 회돌이 축은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에 남는 것은 우변 흑1. 나는 저런 수를 그 당시에는 잘 발견할 수 있었다.
실로 그러하다.
실력이 부족할 때는 저런 예리한 수를 잘 본다.
그러나 실력이 프로의 수준에 가까이 가면 저런 변칙적인 수보다 두텁고 형태감각이 표준적인 수를 선호한다. 당연히 변칙적인 수법은 사고의 감촉에 잡히지 않는다. 멀리 한다.
일방적인 이해는 예리한 감각을 줄 수는 있을지언정
너르고 균형 잡힌 감각과 판단력은 주지 못한다.
그러면 무엇을 보고 棋才를 평가할 수 있을 것인가.
실로 어려운 질문이다.
밤 9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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