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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상일기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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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마 시절 - 갈등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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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반상 일기(1월 6일) - 나의 아마 시절 - 갈등은 없었다
환한 대낮 오후 1시 14분.
1974년 여름.
내 두려운 인생의 길이 한 길 펼쳐져 있었다.
고교생 바둑대회에서 벗어나 김천으로 내려올 때 난 이미 내심으로는 결정했다.
서울로 가자.
서울 가자.
그 다음은 주변의 동의.
언제나 인간은 약하다. 주변의 동의가 필요하다.
앞날은 알 수가 없다. 알아도 모르는 게 바람직하다. 알 수 있다고 스스로 인식한다면, 그건 다 망상에 속한다. 그럴 것이다.
김천에서 몇몇 분들께 물어봤다.
가서 바둑에 전념해보는 것도 좋지 않겠는가. 그것이 일반적인 반응이었다.
집에서는 어땠는가.
우리 집은 세상 물정 잘 모르는 집. 바둑도 모르는 집. 바둑의 세계에 대해서 모르는 집. 그래서 결정했다. 어차피 대학은 서울로 갈 것이니, 미리 서울 가서 생활하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바둑과 학업의 양립? 그런 개념은 누구도 갖고 있지 않았다. 정말 몰라도 너무 몰랐던 것이다.
바둑과 학업은 양립하기 힘든 것.
그것을 잘 알기에 그리고 바둑공부에 얼마나 시간이 많이 들어가며, 또 입단 실력이 된다해도 입단의 보장이 없는 상태가 얼마나 불안정한 인생을 가져다 줄 것인가에 대해서 잘 알기에 이계훈 선배는 나보고 서울 오지 말라고 했던 것이다. 더욱이 입단을 해도 직업으로서의 전문기사에 대한 낮은 사회적 인식을 잘 알고 있기에 염려를 했던 것이다.
뿐이랴.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내 실력과 나이로는 입단을 꿈꾸기가 쉽지 않은 것이었다. 내 실력은 1974년 가을에 입단대회 3차예선에 올라갈 정도였지만, 고등학교 1학년 때 비로소 그 정도 실력에 도달했다면 그건 늦어도 한참을 늦은 것이었다. 바둑을 일찍 배우지도 못했다. 그것도 마이너스 요인. 바둑 외에도 다른 것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그것도 마이너스 요인.
나는 몰랐다. 우리 집도 몰랐다. 김천도 몰랐다.
그러나 어느 날 그 현실을 직감으로 알게 되었다.
8월 14일 서울 충암고등학교 그 메마른 언덕에 올라섰을 때
나는 알았다. 내가 어떤 결정을 했는가를 알았다.
비로소 알았다. 언덕 위에, 바람부는 언덕 위에, 여름 날 볕이 쏟아지는 그 건조한 존재감 위에 내가 서 있다는 것을 알았다. 무서운 일이었다. 우연일까. 필연일까.
나는 한 때 운명을 이리 보았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변수의 집합을 운명이라 한다.
아마도 나는 5월 서울 관철동 한국기원 4층에 설 때 알았으리.
내가 서울로 올 것이라는 것을 알았으리.
모든 것을 내가 스스로 당겼으리라.
자신을 이해하는 것은 쉬워도 자신을 인정하는 것은 실로 어려운 일.
나는 그 첫 걸음을 딛고 있었다. 나에게는 무서운 일이었다. 어찌 굴다리만 의식의 무서운 지배 장소가 되랴.
서울로 온다?
서울로 간다?
어느 사이 난 그 일을 해치웠다. 서울로 올라오던 날은 지하철 1호선이 개통되던 날이었고 또 육영수 여사의 국장일이어서 종로는 인산인해였다. 버스들은 뒤범벅으로, 사람들은 아우성으로 서로를 밀고 당기고 있었다. 나는 그런 세상을 처음으로 만났다.
나는 현실에 대해서 두려움을 갖기 시작했다.
1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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