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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상일기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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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마 시절 - 전병윤 님께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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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반상 일기(1월 4일) - 나의 아마 시절 - 전병윤 님께 배우다
새벽 3시 26분.
잠에서 깨어났다.
우리 집에서는 이런 얘기를 곧잘 했다.
용직이, 저 녀석은 잠이 없어.
나는 낮잠을 자는 사람은 아니었다. 물론 학교에서 점심을 먹고 난 다음 책상 위에 머리를 기대어 조는 것은 있었어도, 대개는 낮잠을 자지 않았다. 졸기야 했으리. 수업 시간에 집중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힘든 노동 중의 하나가 아니었겠는가.
그러나 우리 집은 잠에 대해서는 일가견이 있는 집이었다. 우리 어머니와 큰형, 작은형은 머리에 기댈 것만 있다면 곧 잠에 빠질 수 있는 자질을 타고 난 분들. 난 요즘 얼마나 부러워하는지 모르겠다.
나의 성장은 어떻게 이뤄졌는가. 나에게 수업시간은 있었는가.
사실 의외로 나의 중학교 시절은 남는 것이 없다.
바둑에 대해서는 말이다.
바둑 외의 것에 대해 말한다면 남들 하는 것은 그런대로 해봤을 것이다.
그러나 바둑에 대해서는 의외로 할 말이 별로 없다.
내가 충암고로 진학을 결심하던 1974년 여름까지는.
그래도 기억에 남는 것으로 나에게 바둑의 세계를 다소나마 보여준 분이 계셨으니, 바로 전병윤 님이다.
내 중학교 3년 때 이 분이 김천으로 오셨다.
봄날이었다.
가까이 아는 분이 함께 가자고 해서 간 곳이 그 분이 가게를 열던 곳. 바둑판을 손질하고 계셨다. 피나무 바둑판이었는데, 직접 나무를 재단하고 니스를 칠해서 손질하고 있었다. 사실 피나무는 바둑판 재질로는 별로 좋지 않은 것인데, 당시로서는 김천 같은 곳에서 마땅한 바둑판을 구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무도 마침 있고 해서 만들고 싶어 하셨는지도 모르겠다.
작은 쪽방에 앉아 인사를 드리고 바둑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었다.
그 분은 당시 프로 입문을 꿈꾸고 계셨는데, 입단대회에 대해 처음으로 이야기를 들었다.
그 분이 오고 난 이후로 김천에서는 그 분이 제일 강했다.
가끔 가서 바둑을 배우곤 했다. 과연 다른 수준이었다.
입단대회 3차예선 실력이었다.
입단대회 3차예선 실력은 대단한 것이었다. 본선 바로 밑이니, 보통 노력과 시간 가지고는 오를 수 없는 실력이었다. 프로를 꿈꾸는 대부분의 아마추어가 본선에 얼굴도 내밀지 못하는 것이 현실. 그건 어느 시절이나 비슷했다. 3차예선? 난 충암고에 와서도 2년 반이나 공부해서야 본선에 오를 실력이 되었다. 정확하게는 입단실력이 되었다. 이제 입단할 수 있구나. 자신 스스로 알 수 있게 되는 그 수준.
그 분에게 물어봤다.
귀수묘수를 보고 나니까 실력이 왜 되려 주느냐고.
답을 주셨다.
실력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실력을 훌쩍 뛰어넘는 그런 어려운 책을 보게 되면 혼돈이 와서 그렇다고.
그 분은 바둑만 두시지는 않았다. 생활을 위해 일을 해야만 하는 입장이셨던 듯한데, 한편으로 입단만을 위해 바둑에 매진한다는 것이 얼마나 모험인가를 잘 아시는 듯했다.
사실 그랬다. 지금 돌이켜보니, 바둑만으로 생활을 꾸려간다는 것은 어려운 시절이었다. 청년 때에야 집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해도, 그 다음이 모호하다. 입단해도 생활이 쉽지 않은 1970년대에 바둑이 좋아서 바둑에만 집중한다는 것은 실로 여간한 형편 가지고는 되지 않으리.
나는 이리 본다.
프로에 입단하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으로는, 1970년대에는 특히, 낙천적인 성격을 제쳐놓을 수 없다고.
앞날에 대한 불안감이 강해서는 입단에 이르기까지의 길을 제대로 걸어갈 수 없을 것이라고.
나는 중학교 3년 때 쯤에 월간 바둑을 구독하기 시작했다.
전병윤 님께 전해들은 바둑의 세계는 바둑에 대한 나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아마 3단쯤은 되고 싶었으며, 또 전병윤 님과 비슷한 실력은 되고 싶었다. 아니다. 그 분 실력까지는 꿈을 꾸지 않았으리. 그건 분명하다. 난 바둑을 내 길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이건 내 버릇인데, 나는 무엇을 해도 그것을 내 길이라고, 내 인생의 길이라고 생각한 적은 그 후로도 한 번도 없었다. 지금까지.
지금 나는 무엇을 내 인생에서 할 만하다고 보고 있는가.
아직 없다. 뚜렷하지 않다.
목적 없는 삶?
그렇게까지 잘라 말할 수는 없으리.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슨 성취의욕이 반드시 있어서만 살아가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럭저럭 시간은 지나갔다.
중학교 3년 말에는 월간 바둑 기력 테스트에 응모하기도 했다.
지금도 기본은 비슷한데, 95점을 3번 연속해서 넘으면 아마 3단인가 주던 때였다.
나는 98점, 100점, 97점을 얻었다.
그런데 나온 것은 아마 초단.
하하. 난 몰랐었다. 아마 3단을 신청해야만 3단을 주는 것이지, 3단의 요건을 충족한다고 해서 3단을 주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아마 초단을 신청했었다. 그래도 3단 요건을 갖추면 3단을 주는 것으로 알았다. 하하.
테스트 문제와 답
기억에 남는 문제가 하나 있다. 내 실력으로는 풀기가 만만찮았는데 그래도 고생해서 풀었다. 좌하귀가 문제이고 우상귀가 답이다. 우하귀는 잡히는 고전적인 수순.
다른 바둑책은 보지 못하고 있었다. 책도 없었으며, 또 그 정도까지 열정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그럭저럭 중학교를 졸업할 때에는 김천에서는 너댓번 정도의 실력이 되었으리. 김천은 인구 5만을 가까스로 넘는 소비도시. 학교는 많았다. 교통의 요지인 때문에 인근에서 김천으로 자제들을 유학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아, 그 때 이만수 선배가 있었다.
지금 김천에서 이만수 교실을 운영하는 선배로, 학교의 2년 선배였다. 나는 김천중학교, 그 분은 김천고등학교.
그 분은 신문의 바둑란을 오려서 공부하고 있었다. 그것이 큰 도움이 된다고 공부할 것을 권하기도 했는데, 사실 그건 대단한 성실과 노력이 들어가는 일이었다. 그 분의 바둑 느는 속도는 빨랐다. 나에 비해서 매우 약했는데 어느 사이엔가 비슷한 수준까지 왔던 것이다.
늦은 여름 날, 그 선배 댁의 남산동 과수원에서 바둑에 대한 얘기를 하다가 밤이 늦어서 어둑한 길을 걸어내려왔던 기억이 새롭다. 물론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남는 것이 없다. 과일을 먹으며 열정어린 눈빛이 어둠에 빛나던 것은 살아있지만 말이다.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바둑은 먼 얘기였다. 먼 세계였다. 나는 남들처럼 학교를 다녔으며 앞날에 대한 특별한 희망은 갖고 있지 않았다.
아니다. 문학을 해볼까 하는 마음은 있었다. 소설을 읽고 다니던 시간. 그것이 내가 중학교에서 그래도 가장 많은 시간을 들인 일 중의 하나가 아니었을까.
등교하고 하교하는 시간이 가장 많은 시간을 잡아갔다.
가족과 친구와 그리고 또 누군가와 이야기로 시간을 보냈다.
책을 읽었다.
바둑을 두었다.
중학교 3학년 때는 친구들이 대구 경북고 가겠다고 계성고 특차를 가겠다고 공부도 하곤 했었는데 그건 남의 일이었다.
우리 집에서도 그런 것은 전혀 신경도 쓰지 않고 나에게 자유를 주었다. 알아서 잘 하겠지. 이것이 우리 집의 일관된 전통이었다. 무관심에 다름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내 졸업식에 단 한 번도 가족이 와 준 적은 없었는데, 나도 그것을 서운하게 생각한 적도 없었다.
04시 18분.
자, 이제 뭐하나. 자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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