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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상일기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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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마 시절 - 75년 겨울의 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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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반상 일기(1월 31일) - 나의 아마 시절 - 75년 겨울의 발길
정오를 막 지난 12시 01분.
날은 차다는데 햇살은 왜 이리도 따가운가.
눈이 부시다 못해 부셔 초여름 울타리 싸릿대 만나는 듯하다.
나는 1975년 가을까지 입단대회에 세 번 참가했다.
모두가 3차예선에 올랐고 또 거기에서 그쳤다. 세 번째는 같은 조 6명 중에서 최소한 1명 또는 2명은 나보다 강했다. 1명은 분명한 차이. 그러나 다른 1명은 비슷하지만 승부에서 밀리는 차이.
그러나 그 거리를 단축한다는 것은 실로 쉽지 않았다. 그것을 절감하게 된 때가 바로 그 해 겨울. 여전히 마산으로 부산으로 다녔지만, 대구 MBC배 바둑대회에도 나갔지만 모두가 잘해야 16강이었다. 입단대회 본선 바로 밑의 3차예선 실력임이 분명했다.
대구 MBC에 가보니, 당시 경북고 1년이던 조병탁 군이 매력적인 검은 눈동자로 우리를 맞아주었다. 자신감이 탁 트여있는 친구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스스로의 기준을 갖되, 그 기준을 의심할 줄 아는 것. 그런 것을 갖고 있었다.
바둑도 참 재주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와 시합에서 만나지는 않았지만 그냥 두어보기는 했다. 나보다 약간 약하다는 느낌을 가졌는데, 내가 그 때 그런 정도의 느낌을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이 말해주는 바가 하나 있었다.
실력이 강해질수록 상대와 나의 거리를 쉽게 알 수 있다.
실로 그러하다.
서울에 온지 1년 반. 그래도 1년 반 동안 나는 실력이 몸에 좀 붙었던 것이다.
그 해 겨울 마산 학초배에서는 내가 장려상을 받았는데 이거 참! 민망하기 짝이 없다. 지금 생각하니 말이다. 분명히 내 기억에 내가 본선 토너먼트 1차에서인가 2차에서인가 떨어졌는데 말이다.
상품이 무엇이었는지는 모르겠다. 당시는 우승하면 냉장고나 오디오세트를 상으로 주던 때였다.
어지럽다.
2학년 말인가 3학년 초인가에는 신당동의 어느 기원 개원식 기념 대회에 나가서 그런대로 성적을 낸 적도 있었지만, 대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고 다녔는지는 모르겠다. 그저 바둑 공부. 그저 바둑 공부였었다.
체계적으로 어떻게 공부해야만 하는가에 대한 뚜렷한 지도는 없었다. 그건 나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모두가 그랬을 것이다.
한국기원에 연구생 제도가 있었지만 그래서 75년 겨울에는 연구생으로 들어가기도 했지만 사실 당시의 연구생 제도는 유명무실한 것. 관철동 4층 층계를 올라가면 방이 3개. 제일 오른쪽이 프로기사들의 방, 그리고 중간엔 중간 정도 크기의 방. 가만 그 방이 월간 바둑 편집부였던가. 대부분 편집부는 5층 왼쪽 끝방에 있었다. 여하튼 연구생들의 방은, 언제나 열려있지는 않았다. 다만 때로 프로들의 대국을 기록하는 일을 맡는 것이 당시 연구생들이 한국기원에서 하던 유일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기사들의 본선 대국이 있을 때 연구생의 방은 열릴 때가 많았던 것이다.
연구생에게 특별한 기회를 제공하기는 했다. 본선에 2명을 연구생으로 채운다는 것. 그러나 그것도 1975년 이후 두세 번에 그쳤다. 1974년 이전은 내 모른다.
2학년 말이 왔다.
학년말. 선생이 불러 가보았더니 3학년 때 자연계로 갈 것인가, 인문계로 갈 것인가를 물어보셨다.
나는 2학년에 올라올 때 자연계를 택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고 그냥 수학이나 물리 그런 거 하면 - 나중에 할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 판단한 때문이다. 믿을 만하진 않더라도 근거는 하나 있다.
김천고 1년 때 적성검사를 했고 학교에서는 그 검사 결과를 스스로 알 수 있도록 나눠주었다. 곧 결과물을 회수해갔지만. 당시 난 약간 쇼크 받았었다. 중학교 때 할까 말까 망설이던 것이 문학이었는데, 내 적성에서 글과 관계된 것이 제일 낮았다. 물론 높다는 수준이었지만 말이다. 다행인지 아닌지 몰라도 모든 게 높았는데, 특히 자연계통이 가장 높은 점수를 얻고 있었다. 그래도 쇼크는 쇼크.
그래서 고교 2년 올라갈 때 자연계로 잡았지만 선생이 불렀을 때 내 성적은 720명 중에서 약 540등. 난 시험을 고교 2년 때 두 번 봤다. 그래도 가끔 교실에 가고픈 때가 있었던 것인데 하필이면 그 때가 시험 날짜였던 것이다. 수학을 0점 받았다.
에라 모르겠다. 인문계로 다시 옮기겠습니다. 그런데 이대로 가면 분명히 우열반 중에서 열반으로 갈 터인데, 제가 마지막 시험을 한 번 공부해서 보겠습니다. 그 때 시험 잘 보면 그 결과로 배정해주시겠습니까, 선생님. 선생은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가타부타 답은 없었다.
겨울은 추웠다.
나는 그 약속을 실행에 옮기지도 못하고 고교 3년을 맞이하는 늦겨울로 접어들고 있었다.
몸과 마음이 얼어붙는 - 진부한 표현이구나 - 시간이었다.
학업도 바둑도 모두 제자리 걸음, 아니 뒷걸음질 하는 기분도 들곤 했다.
물론 그건 내 1년 후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당시에는 나에게나 1년 선배나 1년 후배나 모두에게 닥쳐오던 문제였다. 입단하기 전까지는. 그리고 학업을 확실히 포기하던지 바둑을 확실히 포기하던지, 그것이 결정되기 전까지는.
12시 29분.
1월이 가는구나. 안녕!
가만, 내 그 때 1월은 어땠을까. 그렇군. 이미 앞서 얘기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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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뇌
jepeux
문용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