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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산책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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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대로, 그리고 적당히 끼어들어야 즐거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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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시간 즐거운 한 때였다.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모딜리아니의 작품을 만났을 때, 발길 멈추어 그저 그 방에만 있었을 때. 루브르 박물관에서 변주를 들었을 때. 미로의 비너스를 주제로 방 하나 가득 채운 조소(彫塑)의 변주. 점심으로 가져간 치즈와 빵이 뒤섞여 꾸둑한 향내가 주머니 밖 나올 때까지.
나는 바둑을 어떻게 즐기고 있을까. 최근의 경험 하나. 2월 11일 제49기 국수전 도전 3국. 그 날 난 밀린 숙제도 있고 해서 인터넷으로 관전했는데, 이창호와 최철한의 10시간도 넘는 집중은 멀리서 바라보기만 해도 고뇌와 차탄(嗟歎)이 가까운 듯 들려왔다. 풀리면 꼬이고 당기면 밀고, 그런 국면의 연속.
그러나 나를 끌어당긴 것은 대국의 진지함보다 “내 참여하는 과정.” 국면을 따라 “나라면?” 하고 묻되 답 없이 물러서는 그 과정. 예리한 감각 세밀한 수읽기도 좋았지만, 시간적 일탈과 함께 하는 감상의 과정 그 자체가 즐거웠다. 줄곧 관전만 할 수 없었고, 다른 일도 해야만 할 때의 즐거움. 30분 후에 다시 들여다보면 얼마 나가지 않은 착수, 착수. 그래서 다시 한 번 “나라면?”
독서에도 길이 있다. 어린 시절에는 소설을 읽어도 그냥 그저 스토리를 중심으로 빨리 달려가기만 했다. 물론 다독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나, 대화는 음미하는 것이 좋고, 서정적인 소설은 그 배경을 천천히 그려야 맛이 있다.
고전이라고 불리는 것도 저마다 읽는 방식이 다르다. 만약 증명이라면 일일이 손으로 써가며 증명의 방식, 착상, 그리고 그 함의 등을 음미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어떤 고전은 속독도 좋다. 높은 곳에서 한 마디 툭 던지는 안목이 주제라면, 그것을 가볍게 빨아들이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래, 한 판의 바둑이 이끌어가는 10시간은 농구나 축구가 주는 감상과는 그 품격과 여유를 달리 한다. 왜냐? 굴곡 있는 시간이 주어지니 내 그 과정에 참여해 얻는 바가 다양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저마다의 실력과 시간, 관전 방식이 다를 것이니, 오늘 의견은 순전히 나만의 한 때이다.
장면도는 무한한 공간에서 두 기사가 상상력을 발휘해서 답을 찾아가는 과정. 흑1은 쌍방의 요처. 흑3은 A와 B를 노리는 난해한 감각. 두 기사의 팽팽한 지적(知的) 경쟁에 관전자도 즐거이 끼어든다. 끼어야 즐거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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