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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산책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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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혹한 치수고치기도 겁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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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떤 승부에서도 패자는 괴로울 것이다. 바둑도 승부를 다투는 기예. 바둑의 승부에서 가장 가혹한 것으로는 어떤 것을 꼽을 수 있을까.
승패의 차이가 일정 이상 발생하면 치수를 고치는 치수고치기가 있다. 1980년대 초 조치훈은 신예 3인과 2점 바둑을 두었다. 2국을 연속해서 지면 치수를 고치는 그런 대국. 우리나라에서도 조훈현과 중견 5강의 위험대결이 있었다. 정선(定先)으로 시작해서 정선으로 끝난 승부. 1986년엔 조훈현과 신예 3인의 대결이 있었는데 정선에서 출발하여 호선(互先)으로 마쳤다.
치수고치기 중에서 유명한 것은 10번기. 그를 통해 약 20년 동안 오청원은 일본의 정상들을 모두 한 등급 낮추는데 성공했다. 상대 중 한 사람인 후지사와 호사이 9단은 그 일로 인해 기사를 사퇴했을 정도로 심리적 고통은 컸다.
작지만 우리도 그런 바둑 많이 둔다. 3판 연속 이기면 치수를 올리고 내리는 그런 게임을 우리도 많이 해보지 않았던가. 비록 하룻밤 세우는 피곤이 있더라도 기적(棋敵)을 누르는 그 맛은 어디에 비길 손가.
참, 조훈현은 일본에서 공부할 때 후지사와 슈코와 수많은 연습 바둑을 두었다 들었다. 두드리는 바둑돌로 인해 19줄이 닳아 선(線)이 눈에 잘 안보일 정도의 낡은 판자 반(盤)을 가지고. 한 판에 한 점씩 치수가 변하는 승부. 결과는? 조훈현은 4점까지 치수가 올라갔으며, 후지사와도 선(先)까지 내려간 적 있었다 한다. 당대의 명인인 후지사와가 미완(未完)의 천재 조훈현에게.
기보는 후지사와가 바둑의 신에게 목숨을 걸고 둘 때의 넉점 바둑 구상. 그러나 두 기사는 이런 바둑은 절대 두지 않았으리. 이기는 것보다 바둑에 대한 기백과 그들이 바라본 기사 본연의 자세를 찾아서 두었으리.
실은 나도 입단대회에서 3점 하수와 만나보았는데 무서운 것은 하수의 기백. 져도 잃을 것이 없는 만큼, 상수와 만나서 호선 승부를 겨루는 것은 하수의 유쾌함. 그러나 나는 떨렸다. 만약에 지면 얼마나 한심할 것인가. 기댈 언덕이 있다는 것은 편한 일이지만, 명예나 돈처럼 잃어버릴 수 있는 자산은 마음을 좁게 할 수 있다는 말씀이 그렇게나 절실하게 다가왔다.
그러나 현실에서 명예와 돈과 여유는 상당 부분 서로 교환되는 것. 바둑이 아닌 인생, 내 감히 논할 일이 아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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