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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상일기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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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마 시절 - 돌아보는 3년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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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반상 일기(2월 23일) - 나의 아마 시절 : 돌아보는 3년 반
02시 17분.
저 눈 밭에 어제 내 나가지 못한 까닭은 두려워서였다.
정말 얼마만일까. 내 두려움 느낀 시간은.
무엇을 두려워할까.
과거로 돌아갈 것만 같았다. 집밖을 나서면 그 언젠가로 돌아갈 것만 같았다.
푸르른 산이 푸르다 못해 어둡어지면 그건 힌 눈 탓이다.
오늘, 바라보는 저 산과 들은 고즈넉하다.
78년 1월.
나는 다시 돌아왔다. 서울로 돌아왔다. 본고사 1주일 전.
전공하고 싶은 것이 하나 있었으니, 러시아문학.
당시 고려대와 외국어대에 러문학과가 있었다. 그러나 고대는 시험 볼 수가 없었다. 내가 공부한 것은 국어, 영어, 수학이 전부였는데 그만 그 대학에는 사회과목이 본고사에 포함되어 있었다. 자신 없었다.
국영수만 보는 대학이 유일하게 하나 있었으니 바로 서강대. 서강대 문과. 예비고사를 40% 가산했으니, 원서를 써주실 때 선생님은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셨다. 평균보다 35점이 낮았으니 말이다. 선생님은 나중에 나를 불합격한 것으로 처리해두셨다. 하하. 교무실 현황판에.
합격했다.
그 때의 감정이야 약간은 착잡했으리. 그랬다.
바둑 두려고 서울 왔다가 결국 여기에 왔구나….
그리곤 시간….
요약해볼까.
1)
나는 1974년 8월 더운 날에 바둑을 두려고 서울로 왔다. 1978년 1월에 도착했다.
바둑은 입단실력에 두점 약한 바둑에서 입단실력으로 향상했다.
입단에 실패했다.
2)
1978년 1월 대학에 들어갔다. 소위 말하는 再修.
공부는 실패랄까…. 작은 형이 나에게 말한 적이 있었으니, 내가 바둑을 아니 두었으면 하고 푸념했을 때, 네가 김천고에 남았으면 뒷산에서 막걸리밖에 더 마셨겠냐? 그럴지도 모르겠다. 내가 김천고를 떠날 때도 나는 공부를 못했다. 700여 명 중에서 80등 했었다.
3)
소설 읽을 시간이 없었다. 마음의 여유가 없은 탓은 아니다. 적어도 나의 능력으로는 소설 읽어가면서 바둑할 수는 없었다.
4)
공부와 바둑은 양립할 수 없었다.
바둑을 할 때는 바둑을 해야 했고, 공부를 할 때는 공부를 해야 했다. 서로 시간이 달랐다. 집중해야 했기에, 예를 들면 하루에 - 오전에는 바둑, 오후에는 공부 - 두 가지를 한 적은 없었다.
5)
바둑에의 진보를 말해주는 시간표는 실로 주어지지 않았다. 스스로 알아서 각자의 능력에 따라서 해야만 했다. 이건 요즘은 다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연구생 제도와 도장 제도가 주어지지 않았을 때 자신을 측정할 수 있는 지표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6)
고독했다. 서러웠다. 나만의 감정은 아니었으리. 그리 본다.
7)
바둑책은 구할 수 있는 것은 대부분 봤다. 물론 일본 고전과 같은 책은 그리 몇 권밖에 보지 않았다. 책은 부족했다. 요즘도 난 책이 부족하다고 본다.
8)
바둑의 세계는 좁았다. 돌아보면 그건 어느 세계나 마찬가지다. 내 경험으로는 정치학의 세계도 좁았다. 작은 공동체인 것이다. 인구가 적어서였을까. 그 점도 있지만, 주제가 잡혀지면 좁아지는 법이다.
9)
1974년 봄과 1978년 1월, 그 4년.
아마추어계는 훌쩍 컸다. 1977년 열린 13개의 전국대회 중에서 6개가 그 4년 동안에 새로이 만들어졌다.
10)
공부는 다듬어질 때가 있는 법이다. 그리 본다.
나는 1977년 1월부터 5월까지 경남 고성 權在龍 박사 댁에 있을 때 입단실력으로 다듬어졌다. 그 전에 실력이 도달했지만, 필요한 것은 집중적인 연습이었다. 10여 명에 가까운 비슷한 실력들과 수없이 많았던 그 대국, 대국들. 그 실전, 실전들. 그것이 나를 담금질 했다.
11)
바둑에서도 각자의 재주가 다 다른 법인데, 그것을 알려주는 선생은 만나기 힘들었다. 요즘은 어떨지 모르겠다. 부족한 것이 있는 법이고, 지나치는 것도 있는 법이다. 부족한 것을 채워넣어야 할까? 매우 어려운 문제다.
12)
앞서 말한 바, 열한 가지 항목은 내 주관적인 경험이 과도하게 개입한 것이다.
13)
프로바둑계는 어느 정도 발전했을까.
바둑 애호가들은 어느 정도 확산되었을까.
나는 그 점에 대해서 오늘 다루고 싶지 않다.
이 글을 쓰는 나는 그 점에 대해서는 적어도 1978년 1월까지 조금도 관심두지 않았다.
14)
바둑은 실로 쉬운 것이 아니다. 입단실력이 되려고 한다면 말이다. 입단 실력이 되어도 운이 따라야 한다. 운명을 믿던 말던. 운명이 있던 없던.
15)
내 진보한 바를 볼 때 과연 재능이 있는 걸까.
내 1974년과 1977년 여름의 바둑을 볼 때 과연 재능이 있는 걸까.
재능은 변하는 걸까.
뒤늦게 드러나는 재능도 있는 걸까.
모르겠다.
16)
돌이켜보니, 바둑의 세계에는 사회적인 성격이 강하게 내재되어 있다. 개인적인 눈으로 그 세계를 알기는 쉽지 않다. 예컨대, 내가 1974년부터 바둑을 두게 된 것은 우연만이 아니었다. 변화하는 한국 사회, 그 단면이자 그 영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 점에 대해서 굳이 설명하려고는 하지 않겠다.
17)
…
요약은 끝났다.
첫 번째의 아마시절은 끝났다.
아니군. 1974년 8월 이전을 첫 번째, 1978년 1월 이후를 세 번째로 하겠다.
내일 다시 시작하자.
건조한 그림이었다. 시간만 따라가는.
그러나 나에게 남아있는 기억은 그밖에 없었다. 나는 감탄사를 즐겨 쓸 수 있는 타입은 아니다. 아니, 그 반대인가? 하!
02시 55분.
오늘은 눈밭으로 나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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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꼬릿글 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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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도 난 책이 부족하다고 본다.-문사범님의 관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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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오르메 |
｜ 2005-02-26 오전 11:45:00 [동감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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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의견에 한마디 |
역시 그러셨군요. 저 같은 아마추어에게 프로의 세계는 신기하기만 합니다. 맛 보여 주심에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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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운 청춘이기도 합니다. 공부에서 해방되어서 대학도 들어가시구요. 그 부분 설명이 아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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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만장한 청춘이랄까, 뭰지 멋지죠. 청춘소설을 보는 기분입니다.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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