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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상일기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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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마 시절 - 고성으로 함께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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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반상 일기(2월 15일(2)) - 나의 아마 시절 - 고성으로 함께 갈까
오전 7시 49분.
오늘은 부지런하군. 할 일이 손에 잡혀서 그런가, 아니면 술이 지긋지긋해서 그런가. 맑은 정신이 드는 날은 참으로 기껍다. 내 놓치지 말아야지, 그런 맘이 든다.
설날도 훌쩍 지났다. 그러나 설을 지나니 마치 한 세상 훌쩍 넘긴 것만 같다. 어느덧 봄의 기운을 느껴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舊正 이후 술을 사흘 마셨더니 그만 정신이 사라지는 듯했다. 무서운 게 시간이고 나이. 다시 끊자.
그래, 내 77년 1월에 부산에 내려갔더니, 주변 경관은 확 변해있었다. 어느새 임선근 군이 결승에 올라서 당시 아마최고위였던 임창식 선배와 도전기를 치를 정도가 되었다. 나는 결승에 오를 실력은 못되고 8강 또는 16강 언저리 정도만 가능했는데 말이다.
아니다. 내 고교 졸업식에 가지 않고 집에서 한 것은 누워서 정석책 보는 일이었다. 나는 정석책을 매우 간단한 것만 보았는데 실로 깊은 연구 한 번 제대로 해보지 않았던 것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언젠가 들었다. 조훈현 국수도 정석책은 뒷날 한 번 눈으로 보았다던가. 실로 정석책이란 한 번 들어가기가 힘든 것이다. 사실 딱딱한 것이 정석의 변화.
나는 누워서 사흘을 읽었다. 조남철 선생의 定石精解(법문사 刊). 그랬더니 아, 내가 한꺼풀 벗었구나 하는 느낌이 강하게 왔다. 시원스럽게 일어나 앉았었다.
왜 그랬을까. 짐작컨대 정석을 한 번 一統하면서 그 동안 내가 미심쩍어 했던 맥점들을 한 눈에 꿰어서 그랬던 거 아닐까? 그리 본다.
난 앉아서 알았다. 내가 입단 실력에 왔구나. 그리 느꼈다. 실로 바둑이 둥글게 보이는 그런 정도의 경지. 순간이겠지만, 누가 뭘 물어도 답해줄 수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내면에 들어왔다.
그러나 부산에서 내가 얻은 것은 8강 정도. 틀림 없다. 왜냐? 내가 부상으로 받은 것이 믹셔기였으니까. 하하. 당시는 믹셔기를 8강 정도에 주었다.
제8회 아마최고위 도전3국-白:임창식 黑:임선근
당시 부산의 아마최고위전은 도전기 3번승부 형식을 취하고 있었는데 75년과 76년을 임창식 사범이 연패하고 있었다. 77년 제8회는 임선근 군이 도전했고 준우승. 2대1로 패했다. 한국기원 연감엔 신영철 님이 준우승한 것으로 나왔는데 내 부산일보를 찾아보니 임창식과 임선근이 도전기를 했다.
흑을 잡은 임선근 군이 약간 밀린다. 물론 흑55까지는 좋은 형세. 백38이 작은 곳이다. 백38은 감각적으로는 43에 두었으면 좋았으리. 그러나 흑59 흑61이 작은 곳으로 이후부터 약간 행마가 이상했다. 노련함에서 밀렸다.
임창식 사범은 돌 놓은 손길이 매우 독특했다. 착점 하나 하나에 반상의 체중이 실리는 느낌을 주곤 했다. 손놀림에서 본다면 홍종현 사범님이나 서봉수 명인과 닮은 분이셨다.
대회는 풍성한 잔치마냥 끝났다. 150명 채 못되는 인파가 참여했는데, 구경하는 애기가들까지 포함하면 그야말로 活況의 場勢.
토너먼트에서 떨어지면 뭐하는가?
아는 사람끼리 돈 약간 걸고 또 토너먼트 한다. 그 때야말로 고수들과 부지런히 두어서 실력 연마를 게을리 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재미도 있다. 그 언제 그런 재미 느끼겠나? 20대를 넘어서면 그것도 힘들다. 체력이 딸리고 감정도 밀리는 것이다.
반집의 명암
나는 약간 예민한 수준까지 왔다. 예를 들면 다음 기보에서 백1 먹여칠 필요가 없다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패감이 백에게 많다면 백1은 분명 한 집 손해다. 실제로 이 장면은 바로 내 옆에서 누군가가 두는 것을 보았던 것인데, 결과는 백이 반집을 졌다.
상변 흑10도 둘 수 있었다. 흑10이 아무런 패감도 남기지 않는 수다. 저런 수가 한 눈에 보였다. 뭐, 별거 아닌가? 하하.
그런 시절이었다.
대회가 끝났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길. 어디 오라는 데도 없는 시간.
임선근이 말했다. 야, 너 고성에 함께 가지 않을래?
야, 너 고성에 함께 가지 않을래?
오전 8시 45분.
약간 구름 낀 날이구나. 그래도 그림자 흐릿하나마 또렷하니, 햇살 또한 구름 위를 거닐고 있음을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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