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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상일기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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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마 시절 - 고교 때 내 걸음 닿던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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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반상 일기(2월 9일) - 나의 아마 시절 - 고교 때 내 걸음 닿던 곳
밤 6시 34분.
乙酉年 첫날이다.
시간이야 겨우 6시를 넘겼지만 오후라고 하기엔 밖이 어둡다. 새해 첫날이라 더욱 그리 맘에 와 닿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직 아이다. 어린 아이다. 물론, 얼굴과 몸은 이미 48이다. 인정하자. 그러나 굳이 맞추어서 살지는 않겠다. 나에게 주는 다짐이다.
다시 돌아본다.
76년 누군가는 입단하고 누군가는 돌아섰다.
돌아서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가.
입단대회에 걸었던 희망은 별로 없었지만, 그래도 돌아서서 집의 문을 들어설 때면 그건 달랐다. 이제는 더욱이 하숙도 아니었다. 남가좌동으로 우리 가족은 이사했다. 김천을 완전히 떠났다. 하나 남은 김천을, 김천도 떠났다.
그래서인가. 하숙집과는 달리 하루하루가 부담이 되었다. 생활 자체가 아무래도 눈치가 보였다. 잘 나가는 인간이라면 눈치야 볼 필요가 없다. 그러나 모든 것이 헝클어진다는 느낌이 내면에서 고개를 들곤 할 때면 눈치가 보인다. 눈치라고? 그래, 눈치다. 가족이기에 다들 저 마다의 가족의 임무랄까 뭐 그런 것을 가끔은 인식하지 않는가?
가족의 기대란 건 별거 아니지만, 누구나 갖고 사는 그런 것이지만, 그러나 내 기억에 76년 그 때는 달랐다. 그 이전에 내가 김천에서 가졌던 그런 나는 아니었다. 나는 바둑이라는 목표에 내 고등학교를 걸고 있었다. 어느새 나는 멀리 나아갔던 것이다. 학교 공부와는 완전히 담을 쌓은채, 나는 바둑에 매진하고 있었다. 공부야 뭐 별거 있나, 하고 부인해도 그래도 나는 공부와는 저만치 떨어져 있었다. 우리 집이 공부에 대해서는 한 없이 관대하다 할지라도 그거야 공부를 잘 할 때의 일이다. 물론 내 고3 때도 집에서는 아무런 말이 없었지만, 스스로 한심하다 여겨지는 거만큼 보다 더욱 더 가족의 눈길처럼 와 닿는 것은 없지 않겠는가.
물론, 내가 한심하다는 느낌은 우리 가족 어느 누구도 갖지도 주지도 않았으리. 그러나 내가 가졌다면, 그건 우리 가족이 가진 거와 다름이 없다. 가지지 않았더라도 말이다.
자신의 내면 속에는 가족과 친구와 사회가 함께 섞여 사는 법이다. 그것을 부인할 수 있는 인간은 없다.
그래, 허전했다.
입단대회가 끝나고 나는 멀었다는 느낌이 드니까, 그야말로 허전했다. 손에 잡히는 게 없으니 어디로 가겠나. 발걸음 닿는 곳으로 간다.
나에게 그런 곳이 있었다.
白蓮山.
白蓮寺 절이 그 중턱에서 山이 백련산임을 알려준다.
명지고등학교가 그 자락에 앉아있다.
그때도 명지고등학교가 그 산자락에 자리 잡았지만, 그래도 76년 그 때 더욱 산을 기울였던 것은 바로 과수원과 논밭이었다. 홍은동 우물은 76년엔 없어졌지만 - 그 참 ! 74년엔 있었는데 ! - 그래도 논과 밭은 꽤 남아있었다. 2층 3층 양옥집들이 산을 파먹듯이 점령하지는 않았었다.
큰길을 지나 몇 걸음만 산으로 옮기면 오솔길이 나오고 과수원도 나오고 시골도 나왔다.
나는 그 길을 따라 산으로 올라가곤 했다. 달 밝은 밤에도 어두운 밤에도 올라가곤 했다. 나는 산을 무서워하지 않았었다. 한 때는 그저 그렇게 산책으로 망연히 올라가곤 했지만, 75년 가을쯤에는 외로울 때 발길을 돌리곤 했다. 깊은 산은 아니었지만 산치고 깊지 않은 산이 또 있을까.
하나는 뚜렷하다. 집으로 터덜터덜 걸어오다가는 산길로 접어든다. 산에 가서 뭐했을까. 낙엽에 파묻혔다. 그리 했다. 누구와 술을 기울일 입장도 못되었으니, 또 그래도 고교생이니 어디 가서 한잔 거나하게 몸을 기댈 자리도 마땅치 않았었다. 난 매우 올바른 학생 축에 속했다. 그리 생활했다고 믿는다.
산 속에 파묻힐 수 있을까, 그 정도 생각만 머리 속에서 그릴 수 있었으리. 그 때의 내 수준에서는 말이다. 그랬던 듯하니까 그렇다.
여하튼 그런 낙엽 속에서 눈을 잠시라도 붙임은 바둑을 꿈꾸던 사람들에게는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을 그런 외로움 아니었을까. 누군가는 하숙집에서 홀로 문 닫고 처박혔으리. 누군가는 기원에서 밤을 지새우기도 했으리. 기원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공부해야 했던 분들의 서러움이야 나는 들었을 뿐이지만, 나도 서러웠으리.
그래. 맞다. 입단대회에서 낙방하면 서러움만이 남은 감정이었으리. 그래 맞다. 그 표현이 딱 알맞다. 서러웠다. 나도 서러웠다.
75년 가을과 76년 봄의 입단대회, 실력이 안 되는 줄 번연히 알면서도 낙망하여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내 유일하게 기댈 곳은 서러움뿐이었던 듯하다.
나는 60년대 70년대 근대화 물결 속에서 서울로 쫓겨오고 밀려들던 우리 이웃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분명하다.
내 이제 알겠다. 바둑이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한국 바둑의 근대화는 60년대 70년대. 바로 그 시간대가 핵심이었다.
근대화가 무엇인가.
산업화 물결 속에서 사람들의 태도와 생활과 직업과 관념이 바꾸어지는 과정을 말한다. 그리 말해도 된다.
나도 그 속에 있었다. 바둑은 하나의 새롭게 등장하는 직업일 뿐이었다.
그 전에는 바둑이 직업이 아니었나?
실로 근대화만이 빚어낼 수 있는 그런 것이었나?
그렇게 단정은 못해도 그리 파악하면 훨씬 현실에 가깝게 접근해서 설명하고 이해할 수 있다. 그리 본다. 나는 그리 본다.
7시 09분.
방금 탁주 한 잔 했다.
그 때 힘들어했던, 그 때 스스로 인식하지는 못했을지라도 떠밀려서 시대적 인간으로 살아올 수밖에 없었던 그 분들과 건배를 했다. 소리가 들려오는데도 듣지 못하는 그런 바보는 되고 싶지 않다. 내가 사회과학 배운 게 이토록 고마운 감정을 주는 일은 없었던 듯하다. 인문학만 감정을 살리는 것은 아니다.
7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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