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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산책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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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으로 남는 기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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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 없는 것은 의문으로 남는 것일까. 1850년 11월 17일과 18일에 걸쳐 둔 슈사쿠(秀策)와 이토(伊藤)의 어성기(御城碁) 한 판은 나에게 의문으로 남는 것. 뭐라 할까, 혼백이 던져지는 것이랄까, 그런 것이 그 바둑.
흑을 잡았던 그 바둑에서 슈사쿠는 초반 큰 실착을 여러 번 두었다. 형세는 아연 불리. 바로 그 때 비로소 슈사쿠는 힘을 냈다. 훗날 기성(棋聖)이라 불리는 그 평가에 조금도 이의가 없을 정도로. 역경에 처해서야 비로소 발현되는 힘을 냈다. 힘을 낼 때 고수들은 패를 활용한다. 그 바둑도 처절했다.
기보를 보자. 패싸움이 한창인데 흑1이 묘한 패감. 백2 따내고 다시 흑3 따내 패를 계속하지만, 이 가운데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다. 무엇보다 흑1은 3집 손해 패감이다. 만약 백2를 3에 두었다면 흑은 다음과 같은 수순으로 살아야 한다. 흑A 백B 흑2 백C 이하 흑F까지. 그것은 흑1을 2에 잇고 백3 흑D 백C 흑F로 사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런데 왜 슈사쿠는 굳이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패를 계속했을까. 백이 패를 중단하면 아무런 변화도 없었을 터인데 말이다. 손해는 손해로 남고.
아무도 답을 모를 것이다. 무아지경에 빠져서 그 판단까지는 미처 하지 못했을 수도 있을 것이며, 패기 또는 기백으로 패를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자신에게 내비치는 과정이었을 수도 있다. 이토가 양보하면 패도 사라지지만 말이다. 당시 슈사쿠는 21살, 이토는 49살이었으니, 기백에서 차이가 있었을까.
슈사쿠는 상대의 심리를 이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건 슈사쿠가 남긴 편지, 평소의 행동, 바둑을 대하는 태도 등을 보면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시간이 넉넉한 이 바둑에서 치밀하지 않았을 리도 없고.
그렇다면 이렇다. 패를 계속하다보니, 그것도 어려운 역경에 처해서, 어떤 식으로든 패를 계속하고픈 심정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그래서였을 것이다. 사실 흑이 패를 그쳐도 국면은 흑에게도 이제는 희망이 보이는 상태였다.
이토가 패를 지속한 것도 무의식적인 반응이었을까. 알 수 없다. 그러나 하나 분명한 것은, 바둑에는 이런 알 수 없는, 시간이 지나면 의문으로 남는 그런 결단이 왕왕 존재한다는 것이다. 바둑과 우리 사이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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