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하고 집에 들어오니 시계 바늘이 6시 5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배는 고팠지만 침대로 들어가 푹 쓰러지고 싶었다.

그러다 문득 어제 저녁에 마지막 남은 냉동 만두를 다 구워먹은 기억이 떠올랐다. 들어오는 길에 뭔가 먹을 걸 사온다는 게 까맣게 잊은 것이었다. 

결국 그는 -기왕 이렇게 된 거- 장도 보고 저녁도 먹을 겸 다시 집을 나섰다.

한참을 고민한 끝에 그가 선택한 저녁 메뉴는 평범한 한식이었다.

갑자기 따스한 밥과 구수한 된장찌개가 너무 그립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런데 밥을 먹으러 어디를 가야 할 지가 문제였다.

이 곳으로 이사 온지 얼마 되지 않아 동네에 어떤 식당이 있는지 잘 몰랐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의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조선시대의 부잣집을 연상시키는- 근사한 기와집의 한식당이 있었고, 그는 반가운 마음에 망설임 없이 걸어 들어갔다.

“몇 분 이세요?”

“혼자에요.”

“안 쪽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자주색 계통의 단정한 개량 한복을 입은 종업원을 따라 식당 안 쪽으로 들어가니 한 쪽 에서 애인 사이로 보이는 젊은 커플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의 자리는 그 테이블에서 한 번 건너뛴 자리였다. 아무리 평일이라지만 식당 안은 너무나 한산 했다.

우리 나라 경제가 어렵다는 걸 이런 데서 실감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약간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뭐 드시겠어요?”

종업원이 물과 차림표를 건네주며 물었다.

“된장찌개 주세요.”

차림표를 대충 훑어본 기영이 말했다.

그는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는 동안 할 일이 없어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보았다. 아침에 했던 팀장님과의 대화가 떠올랐다.

‘역시 참신함이 부족한 걸까.’

사실 아무리 획기적인 생각을 해보려고 해도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 데는 별 수 없었다.

어쩌다가 떠오르는 건 다 엉뚱한 생각들이어서 그냥 상상에 그치고 말았다.

그러다가 문득 창 유리에 비친 그림자를 보고, 옆 테이블의 남자가 자신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무슨 일인가 하고 옆을 돌아봤더니 그 남자가 벌떡 일어나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기영이…?”

“맞는데요.”

그는 자신의 이름을 아는 이 사람을 어디서 본 적이 있었는지 기억해 내려 애쓰며 대답했다.

“기영아 나 성준이야, 최성준. 중학교 때 친구! 기억하겠어? 우리 항상 같이 장난치다가 선생님께 혼나고 그랬는데.”

“성준이? 너 정말 성준이야? 야아 너무 반갑다! 그 동안 어떻게 지낸 거야? 중학교 졸업한 이후로 처음이지?”

“그런가? 아무튼 반갑다 정말, 참! 나 일주일 후에 결혼해. 저쪽은 내 약혼자. 서로 인사해.”

성준이 같이 식사하고 있던 여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는 중학교 시절에 기영과 가깝게 지냈으나 고등학교를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게 되어서 어쩔 수 없이 헤어졌던 친구였다.

그런데 10여 년이 흐른 지금 이렇게 다시 만난 것이었다.

“안녕하세요. 김기영입니다. 이 친구 중학교 때는 상당히 말썽꾸러기였는데. 지금은 조금 괜찮아졌나요?”

“안녕하세요. 정다연이에요. 성준 오빠는 지금도 여전해요. 나이에 맞지 않게 얼마나 장난이 심한지 몰라요.”

“하하 그럴 줄 알았습니다.”

“야 아니야, 나 장난 안 쳐. 다연이가 괜히 하는 말이야.”

성준이 손을 강하게 저으면서 부인했다.

“근데 얼굴은 왜 빨개지니?”

“빨개지긴 누가 빨개졌다고 그래. 저기 네 음식 나오나 보다. 우린 다 먹었으니까 먼저 갈게, 내일 저녁에 시간 괜찮지? 연락 할 테니 술이나 한 잔 하자. 할 얘기도 많을 것 같은데.”

“그래, 내일 꼭 연락해! 다연씨 다음에 또 봐요!”

“네, 식사 맛있게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