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연정(燕精)의 재갈

참으로 맹랑한 노릇이다

얼토당토 안은 헛소리를 지껄이는 그녀에게 왜 뒤를 따라가고 있는지

상황 설명을 하려 가까이 다가서다 나는 꼼작도 못하고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바짝 다가선 그녀의 머릿결에서 천길 나락으로 떨어지는 아득함과

아름다움을 꿈꾸게 할 것 같은 말로 형언하기 어려운 미묘한 향기가 풍겨 나왔기 때문이다

“내가 예뻐 보여 따라 왔어요?“

처음엔 복장이 단정해 착해 보이더니 불량학생 인가보다“

갑자기 그녀의 얼굴을 똑 바로 바라볼 수 가 없었다

귀밑까지 새빨개진 얼굴로 땅 바닥만 바라보고 신발로 바닥을 비벼대며

쓰레질을 하고 있는 내가 우습게 보였던지 그녀는 여유 있는 표정으로

나를 훓어 보며 주위를 두어 바퀴 돌더니 이젠 아예 턱밑에 머리를 들이밀고

생글 생글 웃어가며 고양이가 쥐 데리고 놀듯이 나를 놀리고 있다

아무 말도 못하고 쩔쩔매고 있는 자신에게 울화가 치밀어 콧구멍 귀구멍에서

연기가 솟아오르도록 속은 타지만 어쩌랴!

초등학교 때 짝을 하던 여자 친구에게도 말을 잘 건네지 못할 만큼

나는 어려서부터 숫기가 부족한 여자 멀미증을 갖고 있었다

중학교 입학 이래로 이렇게 낯선 여자와 얼굴을 가까이 대 보기는 처음인데다

들이민 그녀의 머릿결에서 점점 진하게 풍겨 나오는 향기는

내 가슴을 뛰게 해 나는 웬일인지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결국 내가 선택한 길은 도망 이였다

바둑이고 승부고 늙은 영감탱이고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어떻게든 그 자리를 벗어나야만 했다

내 가슴에서 울려 나오는 이 쿵쾅 거리는 소리를 그녀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키득키득 웃음을 참고 있는 그녀의 볼이 불룩불룩해 오는 것을 더 이상 볼 수 없어

말 한마디 못하고 다짜고짜 황급히 그녀 곁을 도망치는데 내 발걸음을 쫒아

그녀의 맑은 웃음소리도 따라 뛰어오며 길게 들려왔다

“호호 호!”

죽어라 아무 생각 없이 뛰어오다 허름한 늙은이의 집이 보이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

왜 이렇게 죽을둥 살둥 허겁지겁 뛰어 다니고 있지?

다리에 맥이 탁 풀리며 주저앉은 곳은 공교롭게도 그와 바둑을 둔 평상 이였다

까닭모를 허탈이 앞 파도처럼 밀고 지나가더니

뒤파도처럼 발등을 찍어 버리고 싶은 충동을 담고 후회가 왕창 밀려왔다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늙은이에게 관심을 가졌던 내 쓸데없는 오지랖에도

개가 물어가도 시원치 않을 이 난감한 상황 속으로 나를 끌어들인

늙은이의 얼굴을 떠올리며 원망을 퍼부어 댔지만 엉킨 마음은 풀리지 않고

이제나 저제나 식은 국을 되 데우며 기다리던 어머니와 밥상에 마주 앉아 밥을 먹으면서도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갔는지도 모르게 나는 계속 허둥대고 있었다

이런 우라질!

이게 무슨 꼴이람!

“그쪽이 우리 작은 할아버지랑 바둑을 두었다는

그 학생이 맞나요?“

다음날 감기도 오지 않은 몸에 열이 나고 으슬으슬 추운 한기가 들어

조퇴를 하고 코가 쑥 빠져 힘 아리가 하나도 없이 터덜거리며 집으로 돌아가는데 

집 앞 골목 담 벽에 기대있던 그녀가 나를 놀래 키며 불쑥 내 앞에 나타났다

“어젠 미안 했어요

작은 할아버지가 궁금해 그랬던가본데 난 그런 줄도 모르고

웬 정신 나간 녀석이 쫒아오는지 알았지 뭐예요“

입으론 미안하다고 사과를 건네 왔지만 표정은 사과는 커녕 어제 일이 생각났는지

얼굴에 살살 웃음이 피어나더니 그녀는 또 다시 키득 거리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보면서 어제 거의 밤을 새다시피 나를 뒤척거리게 한 것의 정체가

영감을 만난 후회나 어처구니없는 내 행동에 실수 때문이 아니라

그녀에게 멋지게 보이지 못한 안타까움 때문 이였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며

내 얼굴도 다시 빨갛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아마도 나도 모르게 뒤죽박죽으로 헝클어 져갈 나의 삶을 예고한

운명이 씌워오던 굴레를 받아들이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녀는 나를 부리기 위해 운명이 내게로 밀어 넣은 재갈 이었다

말의 입 구조를 보면 앞니6개가 아래위로 있으며 앞니와 어금니 사이에는

약간의 공간이 비어 있다.

그 공간 사이를 양 옆으로 가로질러 가느다란 쇠막대를 집어넣어

혀와 입술사이에 자극과 고통을 줄 수 있도록 만든 것이 재갈이고

쇠막대 양쪽 끝 부분에 고삐로 쓰는 줄을 넣을 수 있는 동그란 자리를 만드는데

그것이 우리가 부르는 굴레다

입 양쪽에서 뽑아낸 두 줄을 이용해 말을 조종 하는 것은 고삐라 불린다

재갈 이어도 좋았다

어둠의 밖을 나와 환한 햇살아래 서 있던 그녀의 모습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다시 불룩 거리기 시작한 그녀의 볼은 깨물고 싶도록 귀여웠고

참지 못하고 웃음을 토해내며 벌린 입술 틈새로 보이던

가지런한 하얀 치열은 순결해 보였다

장난기 가득한 그녀의 작은 웃음은 나를 꽁꽁 묶어 왔고

맑고 깊은 호수 같은 그녀의 두 눈 속으로 걸어 들어가며

나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은 채 운명이 건네준 재갈을 내 손으로 입에 물렸다

“작은 할아버지가 많이 아파요

병원에 갈려고 나온 길인데 같이 가지 않을래요?“

대답도 듣지 않고 그녀는 벌써 앞서 걷고 있다

아니 뭐 저런 놈이 다 있어!

머리는 투덜거리고 있는데 몸은 어느새 그녀 뒤를 바짝 쫒고 있다

옆에 붙어 나란히 걷지도 못하고 두어 걸음 간격을 두고 뒤를 따르는 나를 보며

어란 아이의 다음 행동을 예측하는 엄마처럼 그녀가 화사하게 웃어준다

빌빌 거리며 조퇴를 한 내 발걸음은 이젠 천리 길도 두렵지 않은 힘이 실려 있다

피식!

그녀의 뒤를 병아리 마냥 종종 거리며 따라가는 자신을 질책하는 실소가

내 입가를 스쳐 갔지만 무시해 버리기로 했다

난 지금 몹시 행복 하니까!

북적거리는 시립병원 한 귀퉁이에 있을 영감을 생각하며 따라갔던 나는

그녀가 열어놓고 손짓 하며 부르는 병실 내부를 보며 눈을 크게 떠야했다

개인병원 1人용 특실은 쓸고 닦는 것을 즐기는 내 어머니가 쓰시는 안방보다

더 깨끗하고 정결해 허름하고 남루한 그의 평소 모습과 병실은 너무도 어울리지 않았다

알 수 없는 의혹이 그녀가 만들어준 행복 사이를 파고 들어왔다

“어서 오시게

우리 해인이가 손님을 모시고 왔구먼!“

반 접힌 침대에 힘겹게 기대있던 영감이 몸을 일으켜 세우며 억지웃음을 띠워 줬지만

그의 희미한 웃음은 겨울나무에 매달린 나뭇잎처럼 춥고 쓸쓸해 보였다

                                              -계속-

p.s : 
긴 호흡으로 시작한 글이라 아무래도 연재를 끝낼수 없을것 같아
거의 다 썼던 7회분을 정리해 올리고 이만 줄일까 합니다
 
이사온지 얼마 되지 않아 나작 코너가 재 단장에 들어 간다니 아쉽긴 하지만 
더 좋은 자리에서 두루 만나게 되겠지요
기회가 되면 꼭 다시 시작해 마무리 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그간 설익은 글을 읽으며 보내주신 감사한 마음들 깊이 간직해 두고 잊지 않겠읍니다

고맙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