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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상일기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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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간의 승부 - 수도하던 기사 - 기사의 자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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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반상 일기(11월 30일) - 5년간의 승부 - 수도하던 기사 - 기사의 자리는
새벽 6시 14분.
프로는 바둑을 두는 사람들.
바둑에 젊음을 바치는 사람들.
공식 대국은 프로에게는 일종의 의식 儀式이 된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상당수의 기사들은 대국을 儀式을 치루는 듯이 신성시한다. 그렇게 나는 보아 왔다.
아마도 이럴 것이다.
대국 전 날엔 내일을 생각하며 일찍 잠이 든다.
대국날 아침이면, 다른 날과 달리 세수를 정성껏 한다.
대국장에 도착하면, 자리를 찾아 조용히 앉는다. 차를 한 잔 옆에 두고서.
아침 10시.
발걸음이라든가 간단한 인사라든가, 그런 소리들이 사라지고 대국장은 순식간에 젖어든다.
각자의 내면만이 듣는 소리 속으로.
김종범 사범이 있었다.
1981년 입단이니까 나보다 2년 빠르다. 나이는 나와 같았던가.
그는 대단히 성실한 사람으로 대국 태도가 그렇게 진지할 수가 없었다. 한 판의 대국을 마치 수도자가 벽을 마주하는 듯한 자세로 만났다. 의자 대국이지만, 그는 무릎을 꿇고 앉곤 했는데, 일단 돌을 가리면 아무 것도 주변에는 없는 듯했다.
파안 破顔으로 웃는 얼굴이 더할 나위 없이 소탈했던 그.
그러나 대국 중에는 웃음이란 사라졌다.
옆차를 입에 대곤 했는데, 그 행동마저도 마치 신념을 다짐하는 듯이 느껴졌다.
김 사범은 절에서 공부하곤 했는데 그건 실로 드문 일이었다. 입단 전에는 절에서 공부하는 예가 많지만, 입단 후에는 절 공부가 드문 것이었다. 절 공부를 하더라도 저단진일 때 하는 경우가 많다. 고단진은 가정이 있는 생활인이 되는 것과 맞물리기 때문일까.
나는 프로기사를 수도자와 비슷한 인상 印象으로 바라볼 때가 많았다. 마주하는 상대가 없지 않지만, 근본적으로 반상과 홀로 마주하는 사람이 기사들이다. 그리 본다. 믿고 안 믿고를 떠나서 이런 적 있었다.
우연히 다른 기사와 함께 어느 유명한 역술인을 만나 얘기한 적 있었다. 손을 보자고 하기에 보여주었더니, 막 웃는 것이 아니던가. 예측한 그대로라고. 세 사람 손에 똑 같은 상 相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시대는 바뀌는 법.
공부의 분위기와 공부하는 사람의 자세 또한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
그렇다고 과연 근본이 변할까?
바둑에서 근본이란 무엇일까.
고려시대 상류층의 애완이었던 바둑이, 조선시대에는 좀더 널리 확산되었던 사실. 그리곤 1945년 이후, 조남철 선생이 일으켜 세웠던 한국 프로 바둑.
사랑방 기객 棋客의 일화가 많았던 조선시대 말기의 국수 國手들도 과연 오늘날의 기사와 근본이 같을까?
단순히 흥미 위주의 얘기가 아니다. 과학적으로 답할 수 있는 주제이다. 또 그래야 하고.
김종범 사범 얘기를 하나 더 하자.
여름날, 기원에 나가니까 김 사범이 있었다. 바둑을 두었다. 그냥 연습으로 속기 바둑. 그는 짜장면 내기도 두지 않았다. 점심을 누가 사느냐? 그건 했던 적도 있는 듯한데 잘 모르겠다.
여름에는 공식 대국이 별로 없기에 손이 많이 간지러운 편이다. 점심 전에 시작해서 약 두세 시간 만에 10국. 점심으로 한국기원 옆 골목에서 가볍게 말은 국수 하나와 탁주 한 사발. 점심 후 다시 연구실로 돌아와서 다시 10국. 옆에 임선근 사범이 있었는데, 바둑이란 것이 재미가 있는 거라서 옆에서 관전만 해도 즐거운 것.
시종 임 사범도 옆을 떠나지 않았다. 물론 저녁 때를 기다렸겠지. 저녁에는 우리들의 술이 기다리고 있다. 가만, 임 사범은 왜 있었을까? 당시 25연승을 하던 때라 본선 대국이 많아 서울로 올라와 있던 때였을까. 그랬던가 보다.
김종범 사범과 속기 바둑을 스무 판이나 두었다는 것은 귀한 추억이다. 그것도 탁주 한 사발을 중간에 곁들이고서. 그 날의 대국은 연구생실에서 두었는데, 당시 한국기원은 좁았기에 조용히 두 사람만을 위한 방을 찾은 것이었다. 방은 약간 어두워서 대낮에도 전등을 켜야만 하는 가운데 방이었다. 창으로는 옆 건물에서 반사된 빛만이 들어올 뿐.
아침 7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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