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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상일기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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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간의 승부 - 밤에는 무엇을 생각했을까 - 회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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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반상 일기(11월 8일) - 5년간의 승부 - 밤에는 무엇을 생각했을까 - 회고인가
밤 11시 34분.
내일 나는 GS 칼텍스배 예선 대국을 두러 나간다.
이렇게 의식하는 것은 정말이지 몇 년 만일까.
나만 그럴까, 모두가 그럴까.
내 일기는 나만의 일기다.
그 점을 분명히 해야겠다.
객관적인 사실 외에는 모두 나의 감상과 회상과 현재의 현실감이 빚어낸 꿈결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나는 의문을 가진다. 왜 우리는 대상에 대해서, 자신에 대해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가. 너무나 당연한 우리의 의문이다. 인간의 의문이다.
수 없이 많은 일기를 쓴다고 해서 과연 해결될 문제인가. 아닐 것이다.
그래도 한 번 되돌아 본다.
1984년 그 어느 한 때를.
내가 처음 나간 대회는 승단대회였는지, 또는 박카스배였는지, 그 점은 분명치 않다. 다만 하나는, 본격 기전으로는 박카스배를 제일 먼저 나간 것으로 기억한다. 왜냐? 내 처음으로 나간 기전에서 처음으로 본선 토너먼트에 올라가 봤으니까.
프로 입단한 햇병아리들은 처음에는 성적을 대부분 상당히 낸다. 나도 그랬고 대부분 그렇다. 그런 경향이 있다.
왜 그럴까. 기백이라는 것이 있어서 그런 걸까. 아니면 선배들이 후배, 그것도 갓 입단한 후배를 가벼이 여겨서 그런 걸까.
패배는 무섭다. 자꾸 맞으면, 아픔을 잊게 된다. 그러면 아픈 기억을 잊고, 무엇이 아팠는지를 모른다. 기억하지 않으려 노력하는지도 모른다. 여하튼 그렇다. 그렇다. 지금도… 깊이 생각지 않고 싶어하는 내 자신을 보니, 과연 무엇인가 의식의 저 밑에서 의식을 제어하고 있는 요인이 있는 듯도 하다.
나는 이랬다.
승단대회는 열심히 두려고 했다. 상대적으로. 그것이 프로 입단한 나에게 의무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일반 기전은 승단대회보다는 신경을 덜 썼다. 사실이다. 기전은 1년에 일상 日常으로 있는 것이고, 승단은 일상이 아니었다. 승단의 목표는 九段. 나는 그것만은 크게 그림잡고 있었다. 요즘하고는 다른 시절이었음이 분명하다. 타이틀보다 九段을 나는 의미있게 마음에 담았었다.
정말이지 승단대회는 다른 시합보다 열심히 두었다. 내가 84년에 갓 입단한 유창혁을 백을 잡고 이긴 것도 기억한다. 물론 세계대회 우승자인 유 사범은 내가 그 때 이겼는지 여부에는 옷깃 하나의 기억도 없겠지만, 그거야 나로서도 당연한 것. 그 바둑의 묘수도 기억하는데 그거 하나 만들어볼까. 돌 몇 개의 자리야 틀리겠지만 말이다. 하하. 초반 어떻게 두었는지도 일부 기억한다. 내가 무리했다. 그러나 열심히 무리를 만들었다. 백이었으니까. 덤 없는 백이었으니까.
나는 자부심으로 프로를 생활했다고 지금 믿는다. 프로의 내면을 누구 못지않게 잘 안다고 자부도 하면서. 프로 바둑계의 중심도 어느 누구 못지 않게 잘 안다고 자부하면서.
그러나 내일이 큰 승부라고 해서, 잠을 못 이룬다거나 아침밥을 굶는다거나, 그 어떤 징크스를 피하려거나, 그런 태도는 거의 가져보지 못했다. 아니 그러려고 한 것이 아니라, 승단대회 외에는 큰 의무감 - 나 자신에 대한 - 은 가져보지 못했다. 아니, 아니 가지려고 노력했다고 말해도 틀림이 없을 것이다.
프로에게 승단은 중요한 것이었다. 적어도 1990년대 중반까지는 그랬다.
프로의 마음도 시대의 산물인 것.
내 주변에는 나 정도의 마음이 아니라, 바둑 하나 하나에 자신을 모든 것을 홀연히 집어넣고자 하는 친구들도 선배들도 후배들도 많았다.
누군들 그러지 않으랴.
그러나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그건 내 느낌 이상의 진실일 것이다.
나는 소박할 정도로 바둑에 몰입하지 않았다. 부끄러움도 없지 않다. 그러나 그건 그것!
내일 나는 GS칼텍스 시합에, 예선전에 나간다.
묘하게도 오랜 만에 그 점을 확인해본다.
나는 기권을 거의 반 이상 하는 타입이다. 적어도 지난 몇 년 이상을 그렇게 했다. 그것이 프로로서의 자격을 상실할 정도로 비사회적인 것은 아니라고 본다.
프로의 생활. 그것은 그리 간단하지 않은 것을 나는 일찍부터 알았다.
그 앎이 나의 프로 생활을 미리 예상시켜 주었다.
나는, 그 앎이 나의 프로 생활을 어떻게 이끌어갈지에 대해서
그렇게 모르지는 않았다. 예상하는 삶을 살고자 했다.
기억은 그렇다.
밤 11시 52분.
아침에는 어떤 마음이, 어떤 글이 들어올지 참 궁금하다. 일단 자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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