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당한 알코올 의존 금단 증상

지난 팔공모임 때 술에 취해 방갈로에 가서 잠을 잤는데, 주인장의 실수로 불을 넣어주지 않아 추위에 떨다 깨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지독한 감기몸살이 찾아왔다. 객지생활도 외로운데 아프기까지 하면 공연히 처량한 생각이라도 들까봐 서둘러 병원을 찾았다. 보통은 감기에 잘 걸리지도 않거니와 설령 걸렸다 해도 얼큰한 콩나물국에 소주 한 병 곁들여 마시고는,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 땀을 쭉 빼면 그만 이었다.

두 번째 약을 타러 갔는데 의사 왈 “혈압이 좀 높은 것 같습니다.” 하는 것이었다. 그런가? 여태껏 혈압이 제대로 잘 조절되어 왔기 때문에 크게 신경 쓰고 있지 않았었다. 그래서 그날부터 계측을 하고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몸에서 어이없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었던 것을 알게 된 것이었다.

어떤 때는 정상치보다 아래로 떨어질 때도 있었고, 어떤 때는 180~190 : 90~100으로 치솟기도 하였다. 이상한 일이었다. 여태 이런 일이 없었는데. 기껏 높아봐야 145 : 85 정도였는데 왜 그럴까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것이다.

지난 주 중반 부산에 왔으면서 제대로 해산물을 못 먹어본 것이 서운해서 횟집에 가 회에 소주 1병을 마셨다. 한 시간 반에 걸쳐 천천히 음미하며 먹고 마시니 불콰해져 왔다. 천천히 숙소로 돌아와 자기 전에 혈압을 재보니 105 : 65 였다. 깜짝 놀랐다. 이게 무슨 일이지? 여하튼 낮아졌으니 오늘 밤은 좀 편히 잘 수 있겠구나 생각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깨자마자 다시 재 보았다. 어랍쇼! 160 : 90 이었다. 이상한 일이네 생각을 하다 문득 혹시...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거 내가 혹시 알코올 중독 금단 증상에 빠진 것이 아닌가?

음주와 고혈압의 역사

나는 대학시절까지 거의 술을 입에 대지 않았다. 그러다 26살에 세상에 나서며 술맛을 알기 시작했다. 늦게 배운 도둑질 날 새는 줄 모른다고, 어지간히 퍼마셨다. 40대 초중반에 벤처기업으로 옮겨가면서, 또 개인 사업을 영위하기 시작하면서 절정에 달했다. 업무상 혹은 영업상 접대를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사업을 망해먹고 그 충격으로 잠자기 전에 소주 2병을 마셔도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래저래 술로 몸을 망가뜨리고 있을 무렵 우연치 않게 병원을 갔다가 혈압을 재보고는 깜짝 놀랐다. 고혈압이었다. 그 전까지는 늘 120 : 80 딱 떨어졌었는데...

거기에다 심인성 기질이 좀 심하게 작용하였다. 흥분하거나 마음이 불안해지면 혈압이 즉시 상승하는 것이었다. 할 수 없이 혈압 약에 진정제를 처방해야했다. 그렇게 몇 개월 처방 받다가 진정제에 의존하는 자신이 우스운 것 같아서 빼달라고 했다. 고교동창인 친구를 주치의로 두었으니 비교적 쉽게 의논해갈 수 있어 그 친구 의사도 흔쾌히 동조했다.

그러면서도 매일 술을 마셨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한잔 하지 않으면 잠을 제대로 못 잘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밖에서 친구들과 마시는 일이 없으면 집에서 반주로 늘 소주 1병 이상을 마셨던 것이다. 무려 3년 6개월을 매일같이...그러니 당연히 알코올 중독이라고 여길 수밖에.

명현(瞑眩)현상인가?

그러다 부산에 와서 술을 안마시겠다고 다짐을 하고 실행에 옮겼으니 몸에 이상이 오는 것도 당연한 일이겠다 싶었다. 다음날 의사에게 전후 사정을 말하니 내과 전문의는 그럴 개연성이 충분하다며 신경정신과를 가보라고 추천한다.

신경정신과에서는 이렇게 저렇게 문진을 하더니 알코올 중독까지는 아니고 의존정도가 좀 심한 편이라고 한다. 또한 금주하는 것이 혈압의 안정과는 직접적 연관이 있다는 그 어떤 임상결과도 없다면서, 혈압을 조절하기 위해서 온 것이라면 내과를 찾아가라고 권하는 것이었다. 다만 술을 끊기 위해서라면 도와줄 수 있다고 한다. 답답한 것은 내가 그런 것이고, 자기들은 태평세월인 답만 내놓는 것이다. 별 수 있으랴. 목마른 놈이 우물 판다고. 할 수없이 좋다고 하고 약을 타가지고 왔다. 먹어보니 약간의 효과는 있는듯한데 별반 큰 차이는 없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일하는 곳 바로 가까이에 신경정신과와 내과를 겸하는 병원이 있었다. 오호라! 여기라면 서로 미루는 일은 없겠구나 싶어 그 병원을 들어갔다. 지금까지 두어 시간대 별로 계측한 혈압 기록지를 내미니 의사는 이렇게 저렇게 물으며 계측치를 살펴보았다. 그러더니 그럴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즉, 혈압이 높은 사람은 오전에 오르고, 정서불안 등 신경성은 오후에 오른다는 것이다. 그런데 환자 같은 경우는 오전 오후 다 오르락내리락 하니 양쪽을 다 봐야겠다. 다만, 소견으로는 혈압으로 인한 요인보다는 후자 쪽일 가능성에 좀 더 무게를 둔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일단 3일치 약을 지어주고 그 경과를 살펴보자고 한다.

오늘이 이틀째인데 꽤 안정이 되는 듯하다. 혈압도 정상치에 근접하게 조정이 되고 있다. 아마도 그 동안 술을 멀리하였으므로 몸이 정상으로 돌아오는데 수반하는 명현현상이 아닌가 한다. 담배도 함께 확 줄여보려는 시도는 일단 보류하기로 했다. 술과 담배를 동시에 끊어버리면 몸에서 반란을 일으킬 것 같다. 다만 담배는 하루 3~4갑 피우던 것이 지금은 거의 한 갑에서 한 갑 반 정도로 줄었다. 일단 혈압이 안정세로 돌아서면 그때는 절연을 시도할 생각이다. 금연까지는 아니고.

인생무상(人生無常) 성주괴공(成住壞空)

이번 일을 겪으면서 자연스럽게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혈압이 오르면 머리가 무거워지고 안압이 높아져서 사물을 보는데 겹쳐 보이는 듯도 하고 기분이 멍해지면서 가볍지만 약간 마음이 흥분되는 증상이 온다. 당연히 집중력이 확 떨어진다. 그러면서 혹시 뇌졸중이라도 오면 어떻게 하나 하는 불안감이 엄습해온다. 차라리 죽어버리면 이것저것 알 필요 없으니 괜찮겠으나 반신불수라도 되면...상상만 해도 끔직한 일이다. 불안감은 계속 혈압을 상승시키는 악순환을 불러온다.

중간에 집사람이 부산에 왔다. 오랜만에 만났으니 모처럼 방사를 질펀하게 치루고 있는데 갑자기 좌측 뒷목에서부터 뇌 좌측으로 통증이 치밀어 오르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머리가 빠개지듯 아파왔다. 그러더니 급격하게 혈압이 오르는 느낌이었다. 얼른 재보니 190 : 100 이었다. 겁이 더럭 나서 한밤중에 택시를 집어타고 병원 응급실로 달려갔다. 응급실에서는 경과를 보자며 잠시 안정을 취하라고 한다. 누워서 삼십여 분 정도 지났을까? 145 : 90 으로 떨어졌다. 응급조치 필요 없으니 그냥 돌아가란다.

숙소로 돌아오면서 집사람에게 농을 던졌다. 하마터면 복상사할 뻔 했다. 서방 잡아먹는 여자로 전락할 뻔했는데, 이렇게 멀쩡하니 내가 얼마나 훌륭한 남편인지 이제 아시겠느냐 등. 겉으로는 제법 호기롭게 웃어넘겼지만 속으로는 쓴웃음이었다.

사업을 망해먹기 전까지 건강에 관한한은 언제든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어쩌다 몸이 이렇게 되었단 말인가? 집사람이나 나나 홍안의 얼굴은 어디로 가고 이젠 주름진 중년의 그것이 되었고, 서로가 육체미에 대해서는 자신하던 그 몸매가 이제는 전형적인 다이아몬드형 체형으로 변해있다. 거기에 건강마저 이렇다니....

성주괴공(成住壞空)이라 했던가. 모든 만물은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원소가 시절인연따라 모여 이루어지고, 그 상태를 유지하다가, 서서히 무너져가며 결국에는 공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이제 무너져가는 괴(壞)의 상태인가보다. 공연히 마음이 심드렁해지고 조급해진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미 몸은 내 마음과 달리 정해진 시간표에 따라 원소들이 흩어질 준비를 하고 있는 중이다.

그동안 이루어 놓은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내 이름 석 자 남길만한 그 무엇이라도 있는가? 이 세상에, 사회에 “나”라는 존재가 기여한 바는 무엇인가? 나의 존재가치는 무엇이며 그 값어치는 얼마나 되나? 이제라도 어떤 역할을 해야 할 텐데 가능한가? 그렇다면 무엇을 남겨야 옳다는 말인가? 그렇게 할 만큼 시간은 충분하게 주어질 것인가?

혈압이 불안정한 기간 동안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고 맴돌던 화두였다. 더더욱 이제 인생 2막을 여기에서 새롭게 시작해보겠다고 온지 얼마 되지도 않지 않았는가. 이런 저런 상념이 들어 심란한 가운데 나도작가방에서 저격병님의 “나무(木)에 대한 이해”라는 시를 읽고 크게 감명 받았다. 내 현재 심경이 그래서인가? 너무도 절묘하게 나의 생각과 맞아떨어진 것이다. 그 감동을 즉시 한시로 옮겨 봤다. 흥을 잃을까 먼저 댓글로 올려놓고, 그 동안 맞아떨어진 소회를 이렇게 글로 쓰고 있는 것이다.

나무에 대한 이해 (理解於木)

욕묘화목 (欲描畵木) 나무를 그리려고
관기심진 (觀其深盡) 그 깊은 속을 봤다
재등명조 (在燈明照) 그 안에는 등이 있어 밝았음을
약관시인 (弱冠始認) 나이 스물에 비로소 알았다

찰간지형 (察幹枝形) 줄기와 가지의 모양을 보던 중
상사여십 (相似如十) 그 생김이 십자가 같았음을
과혹경지 (過惑竟知) 불혹을 넘겨서야 비로서 알았으니
제사능집 (諸事能執) 그제야 모든 것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풍래혜순요심 (風來兮噋搖心) 바람 붊이여! 흔들리는 마음 자꾸 일깨운다.
장지혜하구립 (長支兮何久立) 오래 버팀이요! 언제까지 서있을 것인가?

※ 噋 : 느릿할 톤, 일깨울 순, 말 바르지 않을 퇴, ⓐ(되풀이해서)일깨우다 (순)

아! 인시 및 해시 정좌 호흡과 참선은 계속 진행 중이고, 내일은 헬스와 온천을 함께 운영하는 곳에 등록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