秀行, 철학으로 이겨냈을까

I. 후지사와, 그의 술과 바둑에의 집중

과연 요즘엔 후지사와의 평가가 어떠할지 모르겠다.
그의 바둑.
요즘엔 어떤 평가를 받고 있을까.
젊은 기사들의 안목이야 최신의 깊이와 넓이가 있을 테고
반상은 그 흐름이 변하는 곳이니 말이다.

이런 글을 보았다.

"藤澤秀行: 인간과 바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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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인 北杜夫(기타모리오)는 중증의 병이라고 한다.
쓰기를,
‘나는 일반적으로는 입원이 필요한 환자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정신과 의사이므로 증상을 인지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정신병 환자와는 명확한 선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전문용어로 ‘증식’이라고 한다.
藤澤秀行도 그런 의미에서 증식이다. 스스로가 중독이라는 것은 알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지인인 의사에게 자신의 평소 음주상태나 증상을 말하고 진단을 구했다.

“분명히 상당히 진행되어 있는 중독 환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北杜夫의 문학과 자기인식이 그것을 지탱하고 있듯이,
바둑이 알콜의 ’대체물‘로써 아니 그것을 능가하는 요인으로써 분열증으로의 진행을 막고 있는 것이다.

분열증이 나타나면 이미 중증이라, 즉석에서 입원이 필요하다.
나빠지면 폐인과 같아지고 가령 치료한다 하더라도 현재의 힘을 다시 발휘할 수는 없다.
그리고 그 위험성도 크다.

술과 바둑이 관련되어 있는데, 현재는 바둑이 우세하다.
술 쪽이 우세해지면 기사로써의 생명은 끝나게 되는 상태이다.
그러나 이 미묘한 균형 위에 있음으로써 다른 사람의 배가 되는 정신력 집중력의 비밀이 있을지도 모른다.

秀行 말하길 ‘나의 기량으로 사물을 재지 말라.’ (p.283.)

50세를 넘은 수행의 공부량은 엄청나다.
술을 마셔도 마시지 않아도 머릿속은 바둑뿐(p.284).

秀行은 득의양양하게 말하기를,
'자신은 만성타입이다. 50세를 넘어 바둑에 눈을 떴다. 다음에 도전해올 이는 大竹 加藤일 것이다. 아직 기성의 자리는 양도할 수 없다. 특히 가등에게는 지는 방법을 바르게 인도해줄 필요가 있다.‘
 
秀行의 현재의 힘이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알 수 없으나
기사 秀行은 위대하다.
그리고 인간 秀行은 매력적이다.

마지막으로 秀行의 바둑에 대한 신조를 써두겠다.

’바둑판을 두고 마주하는 상대를 공경하라.‘

신(神)의 입장에서 보면 본인의 藝는 어린아이의 그것에 지나지 않는다,
라는 뜻이다(p.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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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대표기사명승부시리즈 3 藤澤秀行.” 명문당에서 펴낸 것인데 작가 小西泰三의 글이다. 읽기 편하도록 번역문을 약간 고쳤다.
 

참으로 대단한 인간.
그런데 정말이지 의문이 없다할 수 없다.
그렇게 술을 마시고도 그렇게도 높은 수준의 바둑을 유지할 수 있단 말인가.

물론 보았다.
10년 전 쯤 후지사와 선생을 방문했을 때 그 양반 바둑 공부를 하고 있었다.
최신의 기보를 받아들고서 기보용지 위에 볼펜으로 - 파란 것과 붉은 것으로 - 메모해 가면서 공부하고 있었다. 그 용지의 두께가 한 묶음이었다.
감탄했다.
최근의 이창호 바둑을 놓아보라고 해서, 기억을 더듬어 아슬아슬하게 복기할 수 있었다. 등에 식은땀이 약간 흘렀다.

II. 40대의 우울에 반상의 선택 주어지나

후지사와, 그의 술과 바둑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뭘 어떡해? 이미 저 앞에 누군가가 분석해서 기록해 놓았구먼.”

하하.
그런 말 누군가 지금 막 하는 듯하다. 동감이다. 그렇지만 한 걸음만 더 나아가 보겠다.

사실 대단히 조심스럽다. 누(陋)가 되지 않을까. 그러나 긍정적인 안목에서 바라보고 있고 또 그리 이해하고 있으니, 어디 한 번 약간만 더 들어가 보겠다.

40대에 와서 바둑을 잘 둔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데
그 원인으로서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은 다음과 같다.

우선 체력이 떨어진다.
기억력과 감각의 예민함도 20대와 같지 않다.
사회생활의 폭이 넓어진다. 그 만큼 바둑에의 집중은 어려워진다.
당연하지만 가정에서의 책임이 늘어나는 것도 반상의 집중을 억제한다.
관심사가 넓어질 가능성도 나이를 먹으면서 높아진다.

대충 그런 것일 게다.
이런 것도 있을 것이다.

나이 40대면 그 누구나 중년의 위기감을 겪는 경향이 있다.
생리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그런 위기를 겪는다.
문제는 증상.
그 대표적인 증상 하나는 우울증.

우울증이란 무엇인가.
많은 정의가 있겠지만, 이리 말하는 것도 흥미롭다.

삶의 공성(空性)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

그런 시기가 오면 반상도 허무해진다.

물론 반상에서 그런 허무감을 표현함으로서 우울함, 그 배경이 되는 공성(空性)의 정체감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 여지가 없다할 수 없다.

그러나 확인만으로 이겨낼 수 있을까?
반상에 현재의 정체감을 그려보고 싶은 충동이 쏟아질까?
반상에서 그런 공허감을 메울 수 있을까?

III. 반상에서의 공성(空性) 확인, 삶의 공허감을 메울 수 있을까

반상에서 승부를 멀어지지 않게 하는 방식 있을까?
반상에서 삶의 공허감을 메울 수 있을까?

그래.
후지사와에게서 다음 이미지가 강하게 느껴지는데 어떨까. 이 글만의 인상일까.

몰락에의 충동, 공성(空性)에의 몰입.

그가 중독(中毒)되었다는 것은 틀림이 없으리라.
술의 과다로 인해 술을 끊었을 때 금단현상까지 몸에 찾아오고, 그것을 이겨내면서 또 바둑을 두니 말이다.
몇 번인지는 몰라도 입원했다는 글도 있으니 말이다.

중독이란 무엇인가.

텅빈 공허감을 메우기 위한 열정.

그것을 중독이라 할 수 있다.

바둑에의 중독.
술에의 중독.
일에의 중독.

있을 법한 설명이랄까, 그런 거 하나는 다음과 같다.

(있을 법한) 설명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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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사와는 바둑사에 독창적인 手를 하나만 남길 수 있어도 기사로서 만족한다고 그리 토로한 적 있다. 과연 대단한 배짱이라고 하겠다. 그래서 술과 바둑 그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면서까지 중독“했을까.” 삶의 의미를 얻는다는 것은 때로 메우는 것을 의미한다. 삶을 “그 무엇”으로 목적화 하는 순간부터 삶은 공허해지기 때문이다. 그 공허감. 그것은 삶을 대단히 위태롭게 만든다. 그러므로 메워야 한다. 메우지 않고서는 불안에 못 견딘다.

그 메우는 것을 中毒이라 부른다. 일에의 중독. 돈에의 중독. 사랑에의 중독. 알코올에의 중독. 과연 그런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런 것은 사실인 듯하다.

독창적인 手, 그것도 바둑史에 남을 만한 그런 수를 열망하는 인간에게 반상은 언제나 부족하다. 좁은 공간이다. 그 좁은 공간. 정신의 너비를 채워주지 못하는 공간. 그런 공간은 무너져야 한다.

그것이 열망이다.
“광대무변이야, 광대무변.” 그 표현의 뒤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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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도 (廣大無邊이야, 廣大無邊 광대무변이야, 광대무변)

후지사와는 저 한 수를 그냥 두지 않았다.
한 마디 크게 던졌다.
반상도 크게 던졌다.

후지사와는 저 1도의 장면에서 왜 저토록 냅다 소리를 지르면서 반상을 두드렸을까.
왜 그토록 장고를 거듭하다가 저 장면을 저 한 수로 마감했을까.

이제 이 글은 이해했다. 이렇게 이해했다.

일반적으로 중독을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대개는 무너진다.
空性과 有 사이에서 이겨낼 수 있는 자 없다.
이겨낸다면, 그건 무서운 긴장을 이겨내고 있다는 이야기다.
불가능하다. 찰나에 불과하다. 이겨낸다면 찰나에 그친다.
두 대극(對極) 사이에서 견딜 수 있는 인간은 없다.

그러나 그에게는
반상에서 그 공성을 확인하는 것에서 삶을 견녀내는 힘을 얻은 흔적이 있다.

일반적으로는 과제가 적당해야 몰입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몇 몇 사람들은 적당한 과제로는 만족하지 못한다.
적당한 과제로는 집중할 수 없다.

후지사와에게는 중독 자체가 그의 정체성인가 싶다.
그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확인하는 방식은 그에게 하나.

승부에의 중독.

그는 중독이 필요한 사람이었으리.
그에게는 중독 그 자체가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과정이었으리.

IV. 철학으로 넘어섰을까

후지사와는 말했다.
나이 25세에 공부를 끝냈다.
50 넘어서 개안했다. 늘었다.

아마도 그의 말이 맞을 것이다.
그에게는 철학이 생겼던 것이다.
바둑에의 심리적 통찰이 생겼던 것이다.

통찰이란 무엇인가.

의식적으로 이뤄낸 심리적 변환.

문제는 그 내용.

그 내용에 힌트를 주는 것으로서 과연 의미심장하게 들리는 한 마디가 있다. 이미 몇 차례 제시한 것인데 다시 보겠다.

“廣大無邊이야, 廣大無邊.”
“에라, 모르겠다.”

그 한 마디가 터져 나온 장면은 모두가 초반이다.
초반.
초반의 결정에 사용된 표현이다.

그와 관련, 다른 두 개의 기보를 더 보도록 하자.

      2도 (회심의 한수)

      3도 (밀어가는 수. 우리는 그리 못 두겠다)

죠와(丈和) 명인이 말했다.

“50수 이전에 승부를 보는 것을 제일로 한다.”

야마베(山部)가 말했던가.

“50수 이전이라면 秀行을 이길 자는 없지 않을까.”

하나로 모인다.
반상은 50수 이전에 결정된다.
결정은 반상의 공간을 구획하는 것으로 이뤄진다.
반상의 공간을 잘라가는 힘이 후지사와에게는 강하다.

1도부터 3도까지.
후지사와의 반상 자르는 안목을 충분히 보여준다.

반상은 쉽게 잘라지지 않는다.
그 언제나 반상은 공허할 수 있다는, 그런 안목 없이 반상은 잘라지지 않는다.
반상을 자르는 것은 결단.
결단은 공성(空性)의 체감 없이 이뤄지기 힘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