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문과 장문 은유 - 확장을 위하여 (3)             

I. 공간은 반상에서 어떻게 자신을 드러내나

지난 번에 이리 말하면서 끝을 냈다.

돌에서 공간으로 우리의 관념이 크게 돌아섰기에
장문 쓰임새의 확장이 있었다는 것을 확인하는 그런 단계에 우리는 서 있다.

부분의 감각이 전체를 스케치할 수 있는 힘을 우리에게 안겨주고 있음을 확인하는 수준에 와 있다.

장문과 장문 감각.
그것을 구별했다. 그렇지만 장문의 감각으로 두어지는 수법을 한 마디로 개념화할 수는 없었다. 바둑의 수준이 아직은 그 단계에 도달하지 못한 때문인지,
아니면 이 글의 수준이 그에 합당한 언어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그와 관련 이런 이해 하나 더해보자.

1도를 보자.

      1도 (수법과 공간 지각력 사이에 이런 영향 없을까)

흑1 잡는 수법에는 힘이 실린다.
그런데 공간의 지각력이 높아질 때 저 흑1 수법을 두다보면 저 한 점 잡는 것에만 눈이 멈추지는 않았을 것이다.
뒤 배경까지도 눈에 잡혔을 것이다.

그리고 그 뒤 배경, 즉 공간에만 그 시야가 멈추지는 않았을 것이다.
공간을 바라보는 심리적 공간에로 확대되었을 것이다.

      2도 (안목이 변화는 와중에 이런 과정도 있을 듯)

2도는 그런 과정에서 내면에서 새겨지는 하나의 과정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2도는 1도에서 돌 몇 개를 들어낸 것이다.

그것이 장문과 장문의 감각이라고 부르고 싶은 그 수법의 연결고리 같은 거 아닐까 생각하는 것이다. 반상에서 특정의 수법이 그 자체 독립적으로 우리의 내면에 새겨진다고 보는 것은 분명히 좁은 생각일 것이다. 그 어느 수법이나 일단 새겨지면 스스로 그 한계를 넓히고자 다른 수법과 그리고 다른 반상 이해와 영향을 주고받고 할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그 동안 이런 식의 이해를 뒷받침해주는 사례나 연구가 뚜렷하지 않았기에 현재 우리가 저 문제를 깊이 들여다보지 못하고 있을 뿐, 오늘 우리가 처음 이해하는 그 이상의 진실이 숨겨있을 것으로 본다. 여러분은 어떤 판단, 어떤 예상을 하고 계신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도 저 문제를 들여다보자.

돌이 전경이 되면 공간이 배경이 되듯이
공간이 전경이 되면 돌이 배경이 된다.

시간을 인식하려면 사건이 필요하듯이.
공간을 인식하려면 돌이 필요하다.

3도를 보자.

      3도 (돌이 시야에 잡힌다. 석점이 보인다)

3도에서 시야에 잡히는 것은 흑돌.
그러면 다음 4도에서는 무엇이 첫 번째로 시야에 잡히는가?

      4도 (공간이 보일 것이다. 그것이 어느 정도 강력한가가 문제)

4도에서 먼저 시야에 잡히는 건 공간.
아니다. 이 정도 그림에서는 그리 뚜렷하지 않다. 공간인지, 돌인지. 그러나 이미 그러한 모호함에 들어섰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공간과 돌의 상관관계가 한눈에 잡힌다.

      5도 (공간과 돌, 어떻게 서로를 반영하나)

5도는 또 다른 인상을 우리에게 안겨준다.

대칭되는 곳으로 시야가 모인다는, 그 잘 알려진 사실 이상의 진실이 숨어있겠다.

편하게 표현하면 이리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돌에의 감각과
공간에 대한 지각력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그렇다면!
공간 감각이 높아진다면 돌에의 감각 또한 높아질 것을 예측할 수 있다. 그렇다면!
진보에 대한 희망이 크게 다가오겠다.
우린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발전할 수 있겠다. 부족한 것이 더욱 큰 힘을 얻을 수 있겠다. 부족한 것이 언제나 배경으로 전경을 살려줄 테니까 말이다.

예를 들어보자.
오늘날 초보자의 경우에도 행마나 공간에 대한 감각은 좋은 경우가 많다. 아니다. “많은” 정도가 아니다.

      6도 (공간에 대한 감각이 18급의 사활수준을 넘는다)

6도를 보자.
백20 이하의 수순은 공간에 대한 감각이 18급이 갖는 사활의 수준을 넘는다는 것을 무섭도록 제대로 말해주고 있다. 이 기보는 6월 29일 밤 오로 바둑에서 첫걸음에 구한 것이다. 대국자 두 분 모두 18급이었다.
이는 이론적 이해가 반상의 실천을 충분히 높인다는 예증일 것이다.

18급의 뛰어난 공간 감각은 포석에서의 배석(配石)은 물론이고, 중반에서 어디로 눈길을 돌릴 것인가 즉, 반상의 초점을 잡는데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부분적인 돌의 사활과 맥의 영역까지 그 영향을 미칠 것이다.
물론 수법이 부족하면 안목은 그 버팀목을 잃게 될 것이나, 다행히 수법 또한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쉽게 이해될 거 또한 예상된다.

물론 아직은 멀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은 아직도 요원하다.

“부분적인 맥과 급소 등의 이해가 어느 정도 반상 전체의 안목에 영향을 미칠 것인가?”

예전에 화초바둑이라는 용어가 있었는데,
모양은 좋으나 힘이 부족해서 - 맥과 급소 등에 약해서 - 한계가 적지 않다는 뜻에서 쓰이곤 했었다.

그처럼 공간감각과 부분의 힘은 서로가 별개의 것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현재 우리의 한계 - 연구가 부족하다는 한계 - 를 인정하기 시작할 뿐이다.

물론 공간 지각력과 돌의 생명을 확인하는 능력이 서로가 완전히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며,
또 서로의 영향력이 동일하다는 것도 아니다.

어려운 문제이다.
어릴 적 몇 달 만에 기원에 가면, 어느새 실력이 1-2급 상승해 있는 자신을 볼 때가 있었는데, 이는 이해가 어디에 기초하고 있는가에 대한 약간의 힌트를 주는 사례인 듯하다.

이론을 이해하는 것에 시간이 들어간다는 이야기일까.
무의식적인 의식 활동 속에서 실력이 향상되는 것이 우리에게 자연스럽다는 걸까.
답이 완결되지 않은 질문이 주어졌을 때,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그 답을 찾는 노력을 계속하게 된다는 그 널리 인정받고 있는 현상에 대한 반추로 충분히 답할 수 있는 문제일까.

II. 장문의 감각, 핵심은 통제

장문과 장문의 감각을 다루다보니 다루어야 할 것이 하나 더 드러났다.
그것은 반상 위의 구상 - 저번에 말한 접바둑의 안목, 그거.
우린 그 인식을 보다 구체적으로 우리의 안목 속에 집어 넣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 방식을 다루는 대상의 하나가 한칸이며 장문이다. 모든 수법이 다 가능하지만, 그래도 한칸과 장문이 가장 적절한 수법의 예가 되겠다.

먼저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해보자.

장문의 감각은 그 기본이 左右이기 때문에
帽子보다도 공간을 하나 더 추가한다.

모자는 上下가 초점이다.
그러나 장문은 左右上下가 초점이다.

지난 번에 보았던 기보 하나 다시 보도록 하자. 1도

      1도 (장문은 그 뒤 배경을 전경으로 당긴다)

      7도 (모자의 제한은 上下에 머문다)

7도를 보자.
백1은 좋은 감각. 그러나 흑돌에 대한 머리 즉 上의 위치만 점했을 뿐이다. 흑2는 그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좌우랄까, 백1은 옆은 통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에 비해서 다음 8도는 上下는 물론이고 左右도 통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8도 (장문의 수법은 상하와 좌우를 통제한다)

따라서, 장문의 감각을 익히면 반상을 上下左右로 나눌 수 있는 안목이 길러질 것이다.

上下左右로 나눌 수 있는 안목이 길러질 때 비로소 공간은 그 자신의 독자적인 존재를 주장하게 될 것이다.

지난 번에 말했듯이 장문과 장문감각을 구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장문이라는 개념, 그 개념의 은유 폭이 넓어질 수 있고, 또 실제로 넓어졌다는 점에 있었다.
다만 그 넓어진 수법을 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린 아직 그 넓어진 사용법을 확인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름은 더더욱 붙이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장문이 은유하는 바는, 통제.
상대를 통제가능한 수법은 장문의 감각과 비슷한 심리적 부담감(통제)을 상대에게 안겨 줄 것이다.

다음 9도와 비교하여 볼 때, 말하고 싶은 것은 삭감과의 차이.
예컨대, 어깨 짚어 삭감하는 수법은 장문의 감각과는 거리가 멀다.

      9도 (삭감의 어깨짚음. 장문감각이 아니다)

참고로 말하면, 저 삭감의 어깨짚음에 대한 용어는 “현현기경”에는 없다는 것이다. 삭감, 그 자체에 대한 개념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것이 중세 중국 바둑의 특징이었다. 아니다. 특징이라기보다 속성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겠다.
이만 보더라도 저 삭감의 어깨짚음은 문(門)과는 거리가 아주 멀다고 하겠다.

삭감은 상대를 좁히기는 하지만 상대가 움직일 수 있는 여지는 여전히 크다.
그러나 장문의 감각이라고 칭할 수 있는 수법에서는, 상대가 좌우로 압박을 당한다.

삭감은 반상 공간에서 일부(一部)만 제한한다.
그러나 장문의 수법을 당한 경우엔 반상의 공간에서 2부(二部)가 통제된다.

삭감은 통제력이 약하다.
장문의 감각으로 두어진 수법은 통제력이 강하다.

삭감에서 반상은 객관적 공간이 된다.
장문에서 반상은 심리적 공간이 된다.

III. 통제와 반상의 장문

지난 번에 본 것을 다시 보겠다.
아래 10도에서 흑1은 장문에 가까운 급소이다. 장문이라고 부르고 싶을 정도.
“10도 흑1이었다면 (백이) 곤란했던 것이다. ‘머리를 내기에 적당한 곳’이 없다.”

      10도 (머리를 내밀기에 적당한 곳이 없다. 흑1은 장문 자리)

      10-1도 (실전. 젖힘 당해도 백의 중앙이 두터우니 문제 없다)

10도와 10-1도에서 보듯이
左右가 마주치는 자리, 바로 그 자리가 장문의 급소이다.
左右가 마주치는 자리, 네모의 급소이다.

그것은 다음 10-2도와 비교해서 검토할 때 분명하다.

      10-2도 (백1이 있다고? 없다. 흑4가 아프다)

그렇다면 이리 말할 수 있다.
장문과 네모 둘 다 左右를 함께 통제하려 하는데,
그 사실이야말로 장문과 네모가 반상의 원형(原型, 모델) - 만약 있다면 - 에 아주 가깝게 접근하는 증거가 될 것이라 하겠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이런 유추 하나 얻는다.

만약 네모와 장문이 左右를 통제하려는 지향성을 잘 드러내는 원형에 가까운 것이라면, 그것을 반상 전체로 확장하는 그런 안목, 그런 수법이 왜 없겠나? 원형은 본질적으로 모방을 허용하는 것을 전제로 하니까 말이다.

묻자.
반상 전체로 左右의 효용을 드러내는 수법, 있나?

있다.
지난 번에 장문의 감각으로 두어진 몇몇 기보는 그런 사례라고 하겠다.
그러나 장문만이 그런 수법을 다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이 문제를 표현하는 것으로 다음 11도를 보자.

      11도 (후지사와의 "에라 모르겠다")

백1이 성공적인 착수라면, 그 효과는 다음과 같다.

1) 우변 흑진을 삭감한다.
2) 상변에 강하게 버티고 있는 흑 세력을 제약한다. 
3) 반상을 백1을 두기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구획한다(자른다).

1)과 2)는 쉽게 알 수 있는 해석이다. 보통 그리 해석한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바둑의 이해에 부족하다고 보는 것이 오늘의 입장이다.

“에라 모르겠다.”
한 마디 던진 이 표현이 실로 진술 3)을 잘 대변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만약 세상이 연속적이라면
반상도 연속적이라면
그 변화가 극심한 것이 아니라면
지층의 단절을 가져오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니라면

“에라 모르겠다.”와 같은 어조는 등장할 수 없다.
물론 이 글은 “에라 모르겠다.” 그 어조에 기대어 논의를 진행하는 것이 아니다. 이 글의 견해와 설명을 잘 드러내기 위해 그 어조, 그 표현을 빌려온 것뿐이다.

반상의 좌우가 바뀌었다.
반상의 흐름이 일순 크게 굽이쳤다.
반상의 리듬이 일순 혼란으로 들어섰다.
새로운 질서를 잉태하느냐 마느냐, 그 긴장으로 들어섰다.

그것이 후지사와가 백1을 던졌을 때 상대인 조치훈에게 준 충격이었다.

삭감과 통제는 그 동안 함께 다루어지지 않았다.
실제로 두어졌지만, 대국자는 그 구별을 몸으로 알고 있었지만 - 몰랐다면 “에라 모르겠다.” 그런 토로가 나올 수 없다. - 그것을 표현할 수 없었다.

왜냐. 대국할 때에는 삭감은 의식에 없는 단어다. 단지, 두어지고 난 다음에 “삭감”이라는 표현을 쓴다.

반상해설에서 일반적으로 발견되는 해설 방식을 하나 생각하자.

1) “흑2 한칸은...” 백1 날일자는...“
2) “흑2는...” “백1은...”

많은 경우 1)과 같은 방식이 쓰인다. 왜 그럴까. 1)에서 “한칸”이나 “날일자”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된다. 시각적으로 이미 다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쓴다. 아마도 그 이유는, 착점에 의미(의도)를 부여하고 싶지만 의미를 말할 언어가 마땅치 않다는 점도 있지만, 형태와 의미를 혼동하는 데에서 오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 한계!
표현의 한계.
실제와 표현. 그 갭(gap).

이리 말하고 싶다.

11도 백1은 삭감에 그치지 않는다. 그 수는, 압도하는 공간에의 욕구를 강하게 드러내는 수법이다.

삭감을 넘어선 거다.
上下左右로 반상을 자른 것이다.

모든 수법은 그 수법 너머를 목적으로 하기에
삭감이 목적이 아니라 통제가 목적이었던 것이다.
반드시 장문의 감각이 아닌 수법이어도 - 여기 11도에서는 모자다 - 통제(반상의 재구성)는 충분히 주어질 수 있다.

11도 백1이 上下左右를 제한하는 수법임을 확인하시라.
단순한 삭감이 아니다.

우변 흑진을 삭감한다.
상변 흑 세력도 삭감한다.

우변과 상변.
그 두 개의 조건을 삭감하는 것이다.
두 개의 조건. 그것이 上下左右.
보통의 삭감은 하나만 조건으로 삼는 것이다.

그렇다.
그것이 통제의 핵심적인 절차다.

이제 다른 기보를 검토하겠다.

장문을 보았으니
장문의 감각을 보았으니
반상의 장문, 그 통제의 힘을 보도록 하겠다.

“반상의 장문”이라는 이름으로 반상을 통제하는 사례 몇 개를 검토해보겠다.

장문은유의 확대, 그 길을 걷고 싶은 것이다.

물론 여기서의 기보 몇 개가 어느 정도 반상을 제대로 설명하고 있는지는 자신할 수 없다.
그러나 훗날 이러한 안목이 어찌 필요하지 않겠나, 하는 그 희망으로 약간 엮어가고 싶다.
반상에 이런 측면이 강하게 있다는 점이 공감되기만 하더라도 그 희망은 충분히 미래의 현실로 남을 수 있으리라고 본다.

장문.
장문의 감각.
반상의 장문.

그렇게 개념의 외연을 넓혀본다.
큰 곳, 급한 곳의 구별에도 도움 되는 구별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