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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상일기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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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간의 승부 - 형세판단은 어렵다 - 쉬었다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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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반상 일기(1월 9일) - 5년간의 승부 - 형세판단은 어렵다 - 쉬었다 가자
새벽 4시 40분.
오늘부터 날이 풀린다고 하니, 어디 창이라도 열어볼까.
훗. 그래도 겨울이군.
2시간 전에 일어났다. 9시 30분쯤에 눈을 붙였으니 얼마나 잤나. 5시간. 충분한가. 괜찮다.
(이창호의 입단결정)
찾았다. 드디어 찾았다.
白: 이창호(원생1급)
黑: 정현산(원생2급)
1986. 7. 31. 제한시간 각 1시간 30분. 덤 5집반. 백96 이하 줄임. 백 불계승.
괜히 부담된다. 현재 세계 제1인자의 바둑을 - 어릴 적 바둑이라도 - 강평한다는 것은 어렵다. 하하. 심리적으로 이 정도는 찔리는가 보다.
백28. 걸침의 방향은 어디일까. 넓은 쪽에서 걸친다고 본다면 좌변에서 걸쳐야 한다. 그러나 판단은 어렵다.
흑33. 실수. A에 두어야 했다. 그리고 33과 상변 공격을 맞보았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백28은 역시 과한 착수라 하겠다.
백34가 요처. 상변을 지키고 좌변을 제한한다.
백76은 언뜻 보기에 맥점 같으나, 틀렸다. 흑77이 실수였는데, 흑77을 78에 두었으면 백이 손해였을 것이다. 백78이 와서 흑75가 쓸모없게 되어서는 흑이 이기기 힘든 국면이다.
별 특색이 느껴지지 않는 이창호의 소년시절 바둑이다. 내가 수준이 낮아서 그런 걸까. 아니면? 그러나 좌변 백38과 흑39를 교환한 것은 과감한 결정이다. 이창호가 결단력 있음을 알겠다. 하긴 뒷날의 얘기지만, 결단력과 형세판단의 능력은 서로가 동반하는 것.
이창호도 이 때는 집바둑보다 싸움이 위주인 것을 알겠다.
그렇다. 사실 언제나 그렇다. 이창호가 자신의 바둑이 집바둑이라고 하는 말은 듣지 못했다.
임해봉도 그랬다. 인내심이 있는 것과 집바둑은 다른 것.
오해하기 쉽다.
그렇구나. 형세판단이란 어려운 것.
내가 학업을 한 학기 쉬고자 한 것은 형세판단을 하기 어려워서 그랬구나.
모르면 손을 빼라는 기훈棋訓에 따른 것일까.
여유가 있을 때였다. 심리적으로.
나이는 아직 30을 넘지 않았고, 바둑을 두니 실업자는 아니었고, 돈도 별로 필요하지 않았고, 또 세상은 이런 저런 곳. 이런 저런 이야기가 널려있는 자리가 세상.
관심을 둘 만한 것이 많지 않았어도 그래도 할 것은 많은 곳. 그것이 젊은 날의 세상.
86년 봄, 한 학기 쉴 때 나는 친구와 함께 야학을 했다. 우연히 오후 늦게 친구 만나러갔다가 그만 저녁 자리에 함께 어울렸다. 선생이 한 명 부족하다고 했다. 그래서 맡은 것이 중학 영어. YMCA 뒤 좁은 골목은 라면에 김치에 소주에 탁주 먹기 좋은 곳. 그런 곳이기도 했는데 그만 어쩌다.
중학교 영어는 의외로 어려웠다. 가르친다는 것은 정말이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학생마다 수준이 다르고 감정도 다르다. 보이는 것과 드러나는 것의 차이도 있다. 점차로 드러나는 재능일 경우엔 또 다르다. 뒷날 해본 대학생 강의는 차라리 쉬운 것이었다.
그 언젠가 그러니까 1999년인가 덕성여대 부속 초등학교에서 바둑을 가르쳐 보았다. 이런! 그렇게 어려울 수가! 입문반이었는데 대단히 어려웠다. 초등학생들의 심리를 몰라서도 아니 되었고, 교육이론에 대해서 배우지 않아도 곤란한 것이 아닌가 느꼈다. 두 학기인가 하다가 그만 두었다. 자신이 없었다. 입문책 한 권 쓸 생각도 있었는데 포기했다.
86년 초.
바둑을 다시 열심히 했을까.
그러지는 못했다. 이도저도 아닌 생활.
관전자의 역할보다는 나았지만 그러나 바둑이란 쉬운 게 아닌 것.
치열한 경쟁 속에서 한 번 뒤로 물러나면 다시 앞으로 나아가기 쉽지 않은 세계.
학업을 그만 둔다고 마음 먹었다면 바둑에 집중할 수 있었을까. 자신할 수 없다.
나와는 별개로 그러나 바둑계는 흥미로운 기획을 또 하나 잡았으니 다름 아닌 탐험대결.
85년의 위험대결이 많은 관심을 이끌자 86년 월간 바둑은 또 하나를 기획했다.
조훈현과 신예 3인의 치수고치기 9국.
조대현 四단, 유창혁 三단, 양재호 五단.
내 마음에 처음 들어오는 것은 나의 자화상.
새삼스레 나는 멀찌감치 뒤로 떨어진 존재임을 실감했다.
늦은 입단에 성적도 없다. 관심사에는 깊이가 없다.
조대현은 내 1년 후배. 양재호는 5년. 유창혁은 8년.
나이가 절대적으로 중요한 요건인 바둑의 세계.
(탐험대결 제1국)
조대현이 1국을 승리했다.
白: 조훈현 九段
黑: 조대현 四段
1986. 4. 3. 제한시간 각 4시간. 백242 끝. 흑 2집 승.
소비시간: 백 3시간. 흑 3시간 59분.
굳이 백242까지 두어봤다. 종반엔 백이 유리했다는 증거도 있어서.
그러나 초반 흑27로 우변 백을 압박했을 때 백의 기분은 좋지 않았을 것이다. 덤이 없었으므로 백은 다소 과하게 두어야 했는데 그런 기분에 초반 백의 운석은 다소 엷었다.
흑27이 놓여졌을 때 “주최측이 장미 담배 3갑을 사다놓았는데 조九段의 담배 죽이는 속도가 이 무렵부터 빨라졌다.”는 관전기가 있다. “흑29를 보자 조九段은 장미 담배를 또 한개 피워 물었다.”
흑43이 과감했다. 초반에 패가 없으니 좋았다.
백62. 2선인 65에 젖힐 수야 없다. 이에 대해서는, 서봉수 “조九段이 약간 손해라도 실전처럼 둘 거야.”
변화 변화. 그것이 불안정한 반상의 다른 이름이다.
나는 이 당시 박카스배 본선토너에 유일하게 올라가 있었는데 8강에서 좌절했다. 정수현 선배에게 졌다.
아침 5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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