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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상일기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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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간의 승부 - 프로의 세계에서 - 익숙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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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반상 일기(12월 7일) - 5년간의 승부 - 프로의 세계에서 - 익숙해져 갔다
아침 9시 39분.
한 여름이 지났다.
나도 그제는 자연스레 프로기사가 되어 있었다.
기사실에 나가도 어색하지 않으며, 누구를 만나도 “문용직입니다. 바둑 두는 사람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프로로써 거북한 점도 느끼기 시작했다.
한 번 부산에 내려갔다가 마산에 들렸는데, 3三會라는 모임에 우연히 자리를 함께 했다. 바둑 동호회 모임에서 대접 받는 것이 자연스레 여겨졌다. 부산이 고향인 임선근 군과 함께 자리를 했었다. 박수현 선배도 있었는데 그 분이 입단을 하지 않았었다.
프로의 자리를 안 쪽으로 마련해 주는데 어찌나 거북하던지. 프로와 아마를 구별해서 대접하는 듯했다. 그 분들도 의식적으로 그랬던 것은 아니었겠지만, 그러나 내면의 어색함은 피할 수 없었다.
그래, 그런 것은 세상살이의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일일이 다 하나하나 따져서 살아갈 수는 없는 일이다.
그 날 주는 술을 조금도 사양치 않다보니, 늦은 밤엔 만취했다. 그래도 한 잔, 또 한 잔.
그 날 밤 마지막 자리에 갔더니, 회원 중의 한 분이 혼자 스탠드바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매우 적적한 듯이 보였다. 그래, 종이에 “다정 多情도 병 病”이라 한 줄 써서 드렸더니, 그 분은 그 종이쪽을 위스키 잔 아래에 가만히 새기는 듯 넣어두곤 술을 드셨다.
다음 날, 늦은 아침.
회원 한 분이 점심을 하자 했다.
장어구이에 소주.
질렸다. 하하.
사실, 난 기름기 많은 음식은 싫어하는 편인데 대접을 못 본 체하기도 그랬고 해서, 주시는대로 마셨다.
또 마셨다. 계곡을 찾아서 백숙과 소주.
그 이후, 장어구이는 내가 거의 손도 대지 않는 음식이 되었다.
프로들에게 아쉬운 일이 하나 있다. 오래 전부터.
지도대국을 하면, 상대는 봉투가 아니라 술자리를 마련한다는 것이 일반적이다. 참, 그건 왜 그럴까. 술자리야 흥겨운 것이지만, 그래도 프로는 바둑으로 밥을 먹고 사는 사람들. 술을 먹고만 살 수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아마추어는 술자리로 지도대국의 고마움을 해결한다.
프로에게 주어지는 아픔 중에는 공물 貢物로 진상되는 것이 있었다.
어느 날 - 이건 시간적으로는 1985년 가을의 일이지만 - 대학 선배가 전화를 했다. 누군가를 만나러 가자고. 평창동 어귀 어느 빌라로 갔다. 집은 넓고 밝았다. 커다란 유화 그림이 액자에 갇혀 구석에 몇 개인가 처박혀 있었다.
주인이 바둑을 두자고 했다. 난 영문도 잘 몰랐지만 무겁고 두꺼운 바둑판 앞에 앉아 두 판인가 상대를 했다. 그리곤 선배와 그 분과의 대화. 난 옆에 비껴 있었다.
그리곤 돌아왔다.
하!
그런 현상이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일상적인 것이었는지를 내 자신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비슷한 경험을 프로들은 가끔 했으리라고 본다. 프로라는 직업에 대한 사회적 평가, 또는 이해를 이로써 단순화 할 수는 물론 없다. 그러나 바둑계를 포함한 넓은 사회의 바둑계에 대한 이해는 바둑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프로의 자의식 自意識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바둑계 스스로 노력할 일이기도 하다.
1984년 여름이 지나갔다.
프로 바둑계의 생활에 익숙해져갔다.
프로의 자의식을 나의 의식 속에 밀어 넣었다.
익숙해져만 가는 나 자신을 바라보면서, 다른 세상은 다르게 바둑을 바라본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기 시작했다.
나는 바둑계와 바둑, 그 자체를 대상화하는 단계의 첫 걸음을 걷고 있었다.
아침 10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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